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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 ‘동양의 하와이’에 수도권 기업 몰린다

BUSINESS - ‘동양의 하와이’에 수도권 기업 몰린다

삶의 질에 대한 관심과 세제혜택 등의 이점으로 제주도에 둥지를 트는 기업이 늘고 있다.
지난해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로 본사를 이전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신사옥 ‘스페이스닷원’ 전경.



탈북 소설가 이호철이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간한 1967년 서울의 인구는 350만 명이었다. 정확히 지금의 부산 인구 수준이다. 현재 서울에는 당시의 3배가 살고 있다. 인구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교육기관과 주요기업 본사는 물론 문화시설과 신규 아파트 분양 물량까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국가 전체로 보면 서울은 한마디로 고도비만 환자다. 소득을 전부 저축해도 내 집 마련에 12년 넘게 걸린다는 집값(지난해 서울 아파트 값 평균 5억9919에 월 평균 소득 412만3524만원)도 모자라 교통체증에 하루 2~3 시간의 출퇴근 고통을 감수하면서 서울에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일자리다.

산업연구원이 5월 발표한 ‘지역산업 고용구조 변화와 일자리 창출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05~2011년 7년간 신규 취업자의 77.1%는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잡았다. 고임금인 대기업 일자리 창출도 수도권 중심이었다. 같은 기간 전국 300인 이상 대기업에 새로 취업한 76만명 중 74%가 수도권 몫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국내 기업을 상대로 꾸준히 투자 유치활동을 벌여온 제주특별자치도에 수도권 기업이 잇달아 본사와 연구센터 등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2004년부터 추진된 본사 제주도 이전 절차를 8년만인 지난해 마무리한 제주 본사이전 1호 기업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내년 완공 목표로 두 번째 사옥 ‘스페이스닷투(Space.2)’를 짓고 있다.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에 있는 본 건물 ‘스페이스닷원(Space.1)’ 옆 1만4107㎡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짓는다.

전체면적 8592㎡ 규모로 회의실을 포함한 사무공간, 6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수면실·샤워실·식당·카페 등 편의시설이 마련된다. 이와 함께 인접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446㎡ 규모의 직원 자녀 보육시설도 함께 건설 중이다.

영평동 다음 본사 방문을 위해 7월 중순 제주도를 찾았다. 무더웠지만 화창한 날씨 속에 제주국제대학에서 제주항 방면으로 차를 몰고 가니 해안으로 이어지는 언덕길 아래 맑게 갠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맞닿은 풍경이 이국적이다. 잠시 후 ‘Daum’ 로고가 새겨진 노트북으로 인터넷 검색중인 돌하루방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본사 스페이스닷원이다.

남해바다를 굽어보며 뒤쪽으로 한라산을 등진 전형적인 배산임수 입지다. 제주도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정보기술(IT) 업계의 트레드마크인 자유분방한 복장 때문인지 몰라도 출장 온 협력업체 직원과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조차 여유 있어 보였다. 점심을 마친 직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포켓볼을 치거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벤치에 앉아 우크렐레(하와이 원주민의 기타와 슷한 4현 악기)를 연주하는 직원도 있었다.

다음의 사무실은 통유리를 통해 실외 자연풍광을 즐길 수 있다.


제주 근무 만족도 90% 넘어제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2004년 시작된 제주 이전 프로젝트 시작과 동시에 다음에 합류한 한동헌 차장은 “서울에 비하면 업무와 가정생활에 한결 여유가 있다”며 만족해 했다.

“초기에는 업무효율성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화상회의가 적극 도입되고 회사에서 출장을 적극 권장하면서 큰 문제가 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제주도에 있으면 좋은 것 중 하나가 협상을 하러 오는 상대방이 서울에서 만날 때 보다 (휴양지이다 보니) 아무래도 좀 긴장의 끈이 풀려서 온다는 거죠.”

다음은 2004년 16명의 선발대가 애월읍의 한 펜션에 사무실을 얻으면서 ‘즐거운 실험’이란 제목의 제주도 이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디어본부를 시작으로 2006년에는 제주시 오등동에 글로벌미디어센터(GMC)를 열었다. 초기 직원들의 가장 큰 불만은 문화생활과 인적교류의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국제관광지로서 제주도의 위상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각종 편의시설과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져 상당부분 불편이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선발대의 일원이었던 한 차장은 “당시에는 저비용 항공도 없어 서울에 다녀오기도 쉽지 않았고 주변에 교류할만한 다른 회사도 없었는데 이제는 모두가 오고 싶어 하는 ‘핫플레이스’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회사의 제주근무 직원 462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제주 근무에 만족하는 직원 비율은 90.3%로 2011년 79.6%보다 늘었다. 만족 원인으로는 자연환경이 29%로 가장 높았고 업무환경(26.9%)과 주거환경(15.1%) 뒤를 이었다. 반면 불만족스럽다고 대답한 직원은 2011년 11.3%에서 지난해 2.9%로 대폭 감소했다. 제주 근무에 대한 달라진 인식은 서울 근무 직원을 대상으로 한 문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제주 이전 근무 의향을 묻는 질문에 52.4%(2011년 47.2%)가 ‘근무하고 싶다’고 답했다.

높아진 만족도는 업무 성과로 이어졌다. 서울에 비해 확연히 축소된 출퇴근 시간과 확대된 복지 지원책, 쾌적한 근무공간을 기반으로 블로거뉴스(현재 View), 아고라, TV팟과 검색엔진 등 최근 몇 년간 다음의 주목할만한 성과들이 제주에서 탄생했다. 매출도 2004년 1834억원에서 4534억원으로 늘었다.

제주도로 이전하는 기업은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제주도 조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연간 수출액이 100만 달러 이상인 기업이 본사나 공장을 제주도로 이전할 경우 부동산·기계장비 취득세와 재산세 등이 면제된다. 이에 따라 다음커뮤니케이션 역 사옥을 제주도로 이전해 세금을 23% 감면받았다.

지자체가 기업 유치에 목을 매는 이유 중 하나는 현지 고용 확대다. 다음 본사의 제주 출신 직원 비율은 10%에 머물고 있지만 2007년 제주도에 설립된 자회사 다음서비스가 당시 397명의 직원 중 378명을 제주출신으로 채우는 등 현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최세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지난해 본사 이전 결정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다. “제주 이전 은 프로젝트 초기의 설레는 도전을 넘어 지속가능한 구성원, 지속가능한 회사,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설레는 정착’의 시작입니다. 지역 경제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허브인 제주국제자유도시에서 세계으로 뻗어나가는 기업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다음 외에도 ‘메이플스토리’와 ‘카트라이더’ 등 온라인게임으로 유명한 넥슨의 지주회사 NXC는 2월 제주시 노형동 한라수목원 부근에 새 사옥을 완공했다. 5945㎡ 규모의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로 오름·바다·바람 등 제주의 상징을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텃밭과 게임룸·북카페 등을 갖춘 이 건물에는 NXC 직원 50여 명, 2011년 이전한 계열사 넥슨네트웍스 직원 250여 명이 근무한다.

2009년 본사를 제주로 이전한 NXC는 이후 채용 인력의 80%를 제주 출신으로 뽑았다. 용담해안도로 근처에서 운영하는 문화카페 ‘닐모리동동’을 운영해 얻은 수익금을 지역 문화다양성 지원 기금으로 내놓는 등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150억원을 들여 본사 옆에 컴퓨터박물관을 개관했다.

이와 함께 서울과 수도권에 본사를 둔 제조업체들의 연구소 이전도 줄을 잇는다. 서울에서 이전한 소형가전 전문기업 모뉴엘은 431억원을 들여 첨단과학기술단지에 2만2534㎡ 규모의 사옥과 연구소 신축을 시작해 올해 말 완공된다. 또 다른 가전 수출기업 온코퍼레이션도 오는 10월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연구소(7228㎡)를 연다.

2004년 설립한 온코퍼레이션은 중국 선전 공장에서 연간 120만대의 액정디스플레이(LCD)·발광다이오드(LED)·평판플라스마디스플레이(PDP) 등 평판 TV를 생산해 월마트·베스트 바이·K마트·아마존 등 미국 현지 판매망을 통해 TV를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1년간 수출액은 3690억원이다.

이종원 온코퍼레이션 대표는 관련 기자회견에서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 여건이 좋아 제주도로 이전하게 됐다”며 “지 대학과 협력해 전문 인력을 키워 고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건강식품 제조업체 제이크레이션과 화장품 제조업체 유씨엘도 올해 본사 및 공장 등을 제주도에 지을 예정이다.

제주도는 이들 기업의 투자금액은 총 1537억이며, 관련 사옥과 연구소가 완공되면 일자리 730개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사옥 공사에 지역 건설업체가 참여함으로써 발생하는 지역경제 파급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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