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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의 ‘반영’ 기법과 미소년 나르시스

Photo - 사진의 ‘반영’ 기법과 미소년 나르시스

피사체가 빛에 반사돼 나타나는 ‘반영(Reflection)’ 기법 실상과 허상의 적절한 면 분할, 추상적 이미지 만들어
사진 1



그리스 신화에는 양치기 소년 나르시스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 목동은 얼굴이 아주 잘 생겨서 요정들의 구애를 받기도 합니다. 어느 날 소년은 양떼를 몰고 가다가 호숫가에 다다릅니다. 우연히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물 위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의 얼굴이 투영돼 있었습니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미소년이 자신인 줄 모르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얼굴을 만지려고 손을 넣으면 파문에 흔들리다가 잔잔해 지면 다시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는 결국 호수로 들어가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나르시스가 간 자리에는 수선화가 피어났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수선화를 나르시스라고 부릅니다.

나르시스 이야기를 과학으로 풀어 볼까요. 물에 비친 소년의 모습은 빛의 반사가 일으키는 자연 현상입니다. 물 표면에 투영된 소년의 모습은 허상, 즉 물그림자입니다. 물그림자를 만지려고 손을 넣으면 물결이 생기게 됩니다. 물결이 강하면 물그림자가 없어지거나 왜곡돼 나타납니다. 빛의 난반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물결이 잔잔하면 빛이 규칙적으로 반사돼 실상과 허상이 거의 똑같이 나타납니다. 그가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날은 맑고 바람이 없는 날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매끄러운 유리나 금속 등 빛을 반사하는 물질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피사체가 빛에 반사돼 나타나는 상을 ‘반영(Reflection)’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거울도 반영의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반영은 사진에서도 아주 중요한 소재입니다. 실상과 허상의 적절한 면 분할을 통해 화면을 아름답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빛의 난반사로 일그러진 허상을 통해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실상과 대비되는 허상에 메시지를 담고, 이야기를 녹여냅니다.

<사진 1> 은 필자의 ‘겨울나무’라는 작품입니다. 안개 낀 강원 춘천 의암호 풍경입니다. 조그만 섬에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미류나무 군락이 있습니다. 물그림자가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물살이 꽤 거셌나 봅니다.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수평과 수직으로 이루어진 풍경에 사선으로 서 있는 나무가 긴장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물위에 쓰러진 나무도 있습니다. 잔물결이 입니다. 물그림자가 일그러져 있습니다. 수평선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듯 합니다. 사진에서 생멸의 순환을 봅니다.

허상은 때로 실상보다 더 감성적이고 강렬합니다. 허상은 레토릭을 담는 그릇이 됩니다. 많은 사진가들이 ‘반영’을 이용해 사진에 자신만의 메시지를 담습니다. 깨진 거울에 비친 자화상이라던가, 물결에 일그러진 피사체, 유리건물에 비치는 도심 풍경, 비 온 뒤 도로 곳곳에 고인물에 비친 행인들의 모습 등 우리 주변에는 반영을 이용한 사진 소재가 널려있습니다.

이를 미적으로 형상화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반영사진의 핵심입니다. 반영은 시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합니다. 사진은 그림보다 시와 가깝습니다. 풍류를 즐기는 옛 시인들은 달을 노래할 때 ‘하늘에 뜬 달’ ‘호수에 비친 달’ ‘술잔 속의 달’ ‘님의 눈동자에 비친 달’ 등 반영으로 비치는 달을 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물·거울 등 반영으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시로 승화시켰습니다. 그의 작품 ‘참회록’은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치열한 참회와 불행했던 시대의 회한을 담았습니다. 또 ‘자화상’에서는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자기성찰을 아프게 얘기합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사진 2> 는 사진가 탁기형의 작품입니다. 유리로 된 건물에 반사되는 도시풍경입니다. 사각형의 유리가 모여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모자이크 작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약간씩 어긋난 조각이 이어집니다. 사진이 굴곡 많은 우리네 조각난 인생을 닮았습니다.

반영은 회화의 양식인 ‘데칼코마니(전사법)’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이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사용한 것으로 두 개의 화면을 밀착시켜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기법입니다. 회화에서는 물감의 흐름이 만들어 내는 우연성 효과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진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성에 맞게 프레임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미지가 좌우상하 대칭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이 닮았을 뿐입니다.

큰 호수나 강이 있는 풍경사진에서 수평선을 중심으로 화면을 둘로 나누고 물그림자를 실제와 똑같이 대칭으로 배치하는 형식입니다. 이런 좌우 또는 상하 대칭의 기법은 인물사진에도 사용됩니다.

<사진 3> 은 중앙일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시인 하상욱’ 사진입니다. 시인은 신세대 감성에 맞게 짧고 쿨하고 유머와 반전이 깃든 시어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권기자는 시인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바닥에 거울을 깔고 상하 대칭의 흥미롭고 코믹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거울로 만든 반영을 통해 재치있고, 끼가 넘치는 인물의 캐릭터를 잘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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