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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줄리아 로버츠가 돌아왔다

Culture - 줄리아 로버츠가 돌아왔다

45세에 ‘어거스트: 오세이지 카운티’로 은막 복귀 … 탈(脫) 장르의 새로운 경지 보여줘
영화 어거스트에 출연한 줄리아 로버츠, 이완 맥그리거, 메릴 스트립(왼쪽부터)



1990년대 후반 줄리아 로버츠가 세계 최고의 여배우로 평가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미국의 연인(America’s Sweetheart, 동명의 출연작이 있음)’이었으며 미소를 날리면 아무리 굳게 닫힌 냉소주의자의 마음도 봄눈 녹듯 녹아 내렸다. 1997~2000년 사이 로버츠가 주연을 맡은 영화가 잇따라 개봉되며 1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가 그 절정을 이뤘다.

세 자녀를 둔 싱글맘이 추한 에너지 기업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내용의 드라마다. 로버츠는 그 영화의 출연료로 2000만 달러를 받았다. 영화는 세계적으로 2억5600만 달러에 달하는 흥행실적을 올렸다. 그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가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 출연진에 합류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가 그에게 카드를 보냈다는 소문도 있다. “영화 편당 20을 받는다던데” 라는 문구와 함께 20달러 지폐를 동봉했다고 한다. 그의 높은 출연료에 보내는 야유였다. 뻔뻔한 작자들.

로버츠는 2007년작 ‘찰리 윌슨의 전쟁(Charlie Wilson’s War)’에서 남부 사교계에 데뷔하는 명랑한 여성으로 멋들어진 연기를 펼쳤지만 그 뒤로는 썩 순탄하지 않았다. 로맨틱 코미디 ‘발렌타인 데이’는 죽을 쒔다. 필시 그의 히트작 ‘프리티 우먼’의 감독 게리 마샬의 얼굴을 봐서 출연했던 듯하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는 짜증나게 진부하고 비뚤어졌다.

동화를 재구성한 2012년작 ‘백설공주(Mirror Mirror)’는 화려하기만 할 뿐 내용이 없었다. 그리고 ‘반딧불이 정원(Fireflies in the Garden)’이나 ‘로맨틱 크라운(Larry Crowne)’은 영화 팬들도 잘 기억하지 못할 듯하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요즘 그가 다시 주목 받는다.

45세의 로버츠가 보란 듯이 영화의 우리를 박차고 뛰쳐 나왔다. 그리고 ‘어거스트: 오세이지 카운티(August: Osage County, 이하 어거스트)’에 출연해 자신의 배우 경력 중 분명 최고의 스크린 연기를 펼쳤다. 영화는 9월 초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다. 그의 연기는 탈 장르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이 역할을 통해 ‘철목련(Steel Magnolias)’으로 시작된 그의 연기 경력이 활짝 꽃을 피우며 한 차례의 순환을 마무리했다.

트레이시 레츠가 써서 퓰리처상을 받은 동명의 연극이 원작이다. 스토리는 미국 오클라호마주 포후스카의 콩가루 집안인 웨스턴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베벌리(샘 셰퍼드)는 수상 경력이 있는 시인이다. 악처 바이올렛(메릴 스트립)과 함께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른바 ‘잔인한 계약’에 묶여 있다.

“아내는 알약을 삼키고 나는 술을 마시지.” 새로 고용한 도우미 죠나에게 그가 설명한다. 구강암을 앓는 바이올렛은 화학요법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그 때문에 머리카락이 거의 남지 않았다(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굴뚝처럼 줄기차게 담배 연기를 뿜어댄다). 그런 몰골을 감추려고 검은 가발과 검정 색안경을 착용한다. 1966년경의 밥 딜런과 닮은꼴이다.

베벌리가 실종되자 바이올렛은 세 딸에게 도움을 청한다. 바버라(로버츠)는 남편 빌(이완 맥그리거), 14세의딸 진(애비게일 브레슬린)과 함께 콜로라도에서 건너온다. 캐런(줄리엣 루이스)은 작 잼스 앨범의 음악을 즐겨들으며 페라리를 운전하는 약혼자(더모트 멀로니)와 함께 플로리다에서 전속력으로 달려 온다.

인근에 있던 아이비(줄리안 니콜슨)도 집에 들른다. 바이올렛의 여동생 매티 페이(마고 마틴데일)와 남편 찰스(크리스 쿠퍼), 그들의 줏대 없는 아들 리틀 찰스(베네딕트 컴버배치)도 웨스턴 일가와 합류한다. 모두 웨스턴 가문의 본가로 집합한다. 그리고 그뒤 며칠 사이 감춰 졌던 집안의 비밀들이 속속 드러난다.



한동안 부진 씻어낼 기대작‘어거스트’의 감독은 ‘ER’ 제작총괄을 맡았던 존 웰스, 시나리오는 레츠, 제작은 조지 클루니가 맡았다. 클루니는 그 의학 드라마에서 웰스가 준 배역으로 도약의 기회를 잡았었다. 눈부신 연기를 펼친 스트립은 물론 다수의 영화상 후보로 거론될 듯하다. 일련의 매력적이지 않은 클로즈업 장면과 20분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저녁식사 장면이 대표적이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는 가족 하나 하나를 거침 없는 독설로 발가벗긴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부분은 로버츠의 연기다. 바이올렛은 막내와 둘째 딸을 작신작신 짓밟는다. 하지만 바버라는 조금도 밀리지 않고 똑같이 비열한 공격으로 맞받아친다. 그는 일면 엄마처럼 시한폭탄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빠처럼 고통 받는 영혼이다. “우리 미래를 알 수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바버라가 딸에게 말한다. “아니면 무서워서 절대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할 거야.”

빌은 아내 바버라의 삶에서 일관성 없는(그리고 비교적 나사 풀린) 인물이었다. 따라서 바버라가 규율을 잡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게다가 그는 냉담한 바버라와 별거하고 훨씬 젊은 비서와 놀아난다. 로버츠는 1989년 작 ‘철목련’에서 비극적인 희생자를 연기하면서 영화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와는 달리 바버라 캐릭터는 트럭 운전사처럼 입이 거친 생존자다. 부모 세대가 알던 줄리아 로버츠가 아니라 경멸의 대상인 여성이다.

한창 때 로버츠는 명랑한 루저, 미국의 국민 여배우로 알려졌다. 비극적인 여주인공, 순수한 마음씨를 가진 창녀, 학대받는 아내, 상대 역의 여성, 불안한 영화 스타다. 그러나 로버츠는 항상 투쟁적일 때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 그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보란 듯이 감자를 먹인다. ‘브로코비치’나 ‘클로저(Closer)’와 흡사하게 ‘어거스트’에서 그의 연기는 빛이 날 정도로 깨끗한 이미지와 영화 속 희생자 이미지를 보기 좋게 벗어 던진다.

엄마 바이올렛이 음부에 알약을 숨겨 병원으로 몰래 들여가거나, 엄마가 할머니와 말다툼을 하면서 ‘엄마의 염병할 물고기나 먹어요!”라고 고함치거나, 또는 엄마의 손에서 약병을 빼앗으려 몸싸움을 벌이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어떤 장면이든 혼신의 힘을 다한 로버츠의 연기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로버츠는 자신의 배우 경력 중 가장 원색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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