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중심의 조심스런 개혁
시장 중심의 조심스런 개혁
좋은 말만 가득하다. 열심히 할 것이고 그래서 성과를 낼 것이니 2020년에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약속했다. 예상대로 모호한 언어로 막을 내린 중국 공산당 18기 3차중앙위원회 전체회의(三中全會) 얘기다. 늘 그랬듯 약속은 거창하나 알맹이는 빈약하다. 당내 소관위원회와 정부부처에서 내놓을 세부방안을 지켜봐야 개혁의 속도와 수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평가를 내리기엔 이른감이 있지만 3중전회 폐막 후 현지 언론을 통해 전해진 성명서 내용을 감안할 때 너무 큰 기대를 갖는 건 무리다. 전체적으로 ‘시장주도 경제개혁’이란 핵심의제와 ‘국유기업 구조개혁 등 민감한 세부 과제’를 맞바꿨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결과 기득권은 밥그릇을 지켰고, 시진핑은 그 대가로 국가안전위원회라는 막강한 권력조직을 얻었다.
이번 3중전회가 담은 시진핑 체제 10년의 경제 분야 주요 개혁 방향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①자원배분에 시장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②경제개혁은 전면 심화개혁으로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핵심이다. ③2020년까지 결정적인 개혁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④국유기업(공유제기업)과 사기업(비공유제기업)은 둘 다 중국경제 발전의 주요 토대가 돼야 한다. ⑤당 중앙위는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를 구성해 개혁의 총설계와 협력, 실행 감독을 책임진다.
⑥국가안전위원회를 설립해 국가안전체제와 전략을 개선한다. ⑦사법부의 권위를 유지 보호해 독립적이고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한다. ⑧재정개혁과 세재개혁을 심화한다. ⑨토지개혁을 통해 집체토지에 대한 농민들의 재산권을 확대한다. ⑩자유무역지구(FTZ)의 발전을 촉진한다.
중국의 향후 10년 경제 분야 핵심 의제는 ‘자원배분 과정에서 시장에 결정적 역할을 맡겨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재정립한다’는 것이다. 이는 3중전회가 열리기 전부터 지도부가 강조한 ‘시장주도 경제모델로의 전환’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당은 지금까지 자원배분에서 시장이 ‘기본’ 역할을 한다는 표현을 즐겨 썼다. 이번에 수식어가 ‘기본적’에서 ‘결정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에서 나름 지도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자원배분의 효율성은 시장의 가격결정 기능 제고를 통해 얻어진다는 리커창 총리의 평소 소신을 감안하면 주요 가격지표인 금리와 환율, 원자재, 유틸리티 가격의 결정 과정에서 정부 개입을 차단해나가는 방안이 차근차근 마련될 것이다. 이는 국무원과 인민은행 등 유관부처가 2008년 17차 3중전회 당시 내놓은 개혁방향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12차 5개년(2011~2015년) 경제계획의 정신에 입각하면 이 같은 자원배분 효율화 작업은 중국 내 무분별한 투자집중과 환경오염을 막는 한편, 지방 주도 사업의 사업성을 엄격하게 평가해 자원의 낭비를 막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성장 목표는 한 단계 하향되겠지만 질적 제고 측면에선 도움이 될 것이다. 시장 가격결정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된다면 재화는 돈이 되는 곳으로 흘러가야 할 것이다.
시장 역할 강화에 지도부 강한 의지시진핑 개혁의 의지와 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국유기업 개혁에 대한 내용은 모호하다. 국유기업의 현대화를 추진한다고 했을 뿐 방향성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 없다. 지도부와 원로그룹, 파벌들사이에 국유기업 개혁의 강도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당대회 때 당보고 문건에 담긴 것과 비슷한 내용으로 얼버무려 놨다. ‘국유기업도 중요하고 민간기업도 중요하다’는 식이다. 특히 민간기업의 발전을 배려하면서도 ‘공유제 경제’의 선도적 역할을 강조한 대목은 국유기업의 지배력과 기능을 급격히 허물지 않겠다는 의중으로 읽힌다. 국유기업 개혁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이 적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낙담하긴 이르다. 국유기업의 독점적 지위와 그들이 누리는 힘을 제어하지 않고서는 시장이 결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지도부도 알고 있다. 그간 자원배분 과정에서 국유기업이 사회적 자본을 독식해 왔음을 감안할 때 ‘자원배분에서 시장의 결정적 역할’을 강조한 대목이 국유기업 개혁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확대해석 할 수 있다. 향후 국유자산관리위원회의 개혁안과 진행속도를 살피며 지도부의 의지를 다시 가늠해봐야 할 것이다.
당 지도부가 설립하기로 한 국가안전위원회는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대외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중국 봉쇄에 맞서 안보시스템을 총체적으로 강화한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동시에 대내적 권력기반 강화와 통제강화의 목적도 있다. 국가안전위는 공안과 무장경찰 해방군을 아우르는 절대 권력기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고 수장 자리는 당연히 시진핑이 맡을 것이다. 국가안전위가 시진핑 개인의 핵심 기반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번 3중전회의 최대 승자가 시진핑 개인이라 평하는 이유다. 11월 중순 제이콥 류 미국 재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전후로, 워싱턴의 반응을 참고하면 국가안전위원회의 성격과 의미가 조금 더 분명해질 것이다.
급격한 개혁보다 좌고우면전면개혁의 총설계와 당내외 협력, 추진을 총괄할 ‘전면심화개혁 영도소조’는 어떻게 봐야 할까.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당내 주요 소관위와 정부부처, 주요 국유기업 간 이해관계가 맞물린 민감한 개혁과제를 밀어붙이기 위해선 불편부당한 별도의 당중앙위 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별도의 소조 설치는 지도부가 그만큼 폭넓고 깊이 있는 개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 9개월, 더 길게는 5세대 당 지도부 구성 후 1년간 도대체 뭘 했길래 또 저런 별도 기구를 만드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결국 지난 수 개월 간 민감한 핵심 개혁과제에 대해 당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이번 3중전회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해 별도 태스크포스에다 미뤄놨다는 인상이 짙다. 새로 생기는 소조의 인적 구성부터 향후 우선순위 선정과 구체안 도출까지 실무적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늘 그랬듯 속도감 있는 개혁보다 긴 시간 좌고우면하며 조심성을 꾀하는 개혁 작업이 될 것이다.
금융시장 일각에선 시장주도 경제를 향한 나름의 이정표를 만들었다는 평가와 핵심개혁 과제의 구체성 결여로 실망스럽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다만 금융개혁 일환으로는 연내 일중 위안환율 변동폭 확대가 유력하다는 기대와 함께 예금보장제 도입과 예금금리 자유화 등이 시간표대로 차근차근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중전회(三中全會) 중국 공산당은 5년마다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 격)를 열어 향후 5년 당을 이끌 최고지도부 구성과 당의 주요 안건 등을 논의한다.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를 열어 당 총서기 등 지도부를 선출하고 이듬해 3월 양회(兩會, 전인대와 전국정협)가 열리기 전 2중전회를 열어 국가주석과 총리 등 국가지도부를 선출한다. 이어 11월을 전후해 3중전회를 열어 향후 5년 당과 국가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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