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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완화 축소해도 당분간 제로금리

양적완화 축소해도 당분간 제로금리

물가보다 고용회복에 방점 … 예상보다 공격적 통화정책 펼 듯
재닛 옐런 차기 미 연준 의장 지명자가 11월 14일(현지시간) 미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인준 청문회에 앞서 선서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 의장은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졌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최근 있었던 차기 연준 의장 지명자에 대한 미국 상원의 인사청문회에 쏠린 전 세계의 관심은 자연스럽다.

11월 14일(현지시간) 청문회에서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지명자는 ‘경제성장의 가속도’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연준의 법적 책무인 완전고용과 물가안정 둘 중에서 고용에 압도적인 방점을 찍었다. 그러면서 옐런 지명자는 연준의 할 일이 남아 있음을 거듭 밝히면서 “부양적인 통화정책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인플레이션’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2%라는 연준의 장기 목표에서조차 한참 떨어져 있다. 경제성장과 고용에 초점을 맞춘 통화정책만이 연준의 두 가지 법적 책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는 여겼을 것이다. 이 같은 강력한 의지 표명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즉각 영향을 미쳤다.



“경기 부양적인 통화정책 긴요하다”그러나 인사청문회의 특성상 옐런 지명자가 구상하는 구체적인 정책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통화정책 수단 및 그 수단의 운용계획은 세밀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시장의 관심은 그의 이런 강력한 부양 의지가 당장 12월 회의를 비롯한 향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어떻게 관철돼 어떤 정책변화로 이어질 지에 모아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옐런이 지난해 11월 미국 UC버클리대에서 행한 연설은 다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그는 당시 ‘중앙은행 커뮤니케이션의 혁명과 진화(Revolution and Evolution in Central Bank Communications)’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의 특성과 요체, 연준의 이중 책무 달성을 위한 바람직한 정책방향과 구체적인 정책수단의 운용 구도를 상세하게 밝혔다. 이는 1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향후 움직임을 미리 가늠하는데 중요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그 뒤로도 미국의 경제 및 정책환경은 거의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연준이 밝혀온, 그리고 시장이 현재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부양정책을 희망하고 있다. 이는 1980년대 초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공격적인 인플레이션 퇴치정책을 연상케 한다. 물가안정을 위해 일시적으로 고용을 희생시킨 폴 볼커와 옐런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옐런은 완전고용을 위해 일시적으로 물가안정을 희생시키려 한다는 점뿐이다.

옐런의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그의 독특한 시각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연설에서 “오늘날 경제에 미치는 통화 정책의 효과는 FOMC의 현행 정책금리나 양적완화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통화정책 효과는 연준이 설정한 미래 실업률 및 물가 목표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심리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수년 간 연준이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어느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끌어 내릴 계획인지에 대한 ‘기대심리’를 바꿔 경제 주체들의 소비와 투자 행태를 변경시키고 이를 통해 고용과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는 의미다.

옐런은 아울러 연준의 미래 물가 및 고용 목표에 대해 대중들이 ‘이해’하고 ‘신뢰’해야만 통화정책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상이 반영된 것이 이른바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미래 정책금리의 전개 구도를 미리 공개하는 정책이다. 연준은 지난해 12월부터 ‘실업률 6.5%와 물가상승률 전망 2.5%’를 제로금리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로 제시했다. 그 전에는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연준이 미래 고용과 인플레이션을 어떤 수준으로 변화시키려 하고, 이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혀 대중들의 ‘이해’와 ‘신뢰’를 도모하려는 노력이었다. 당시 옐런은 연준의 ‘커뮤니케이션 태스크포스(TF)팀장’을 맡아 이 같은 정책수단을 주도적으로 설계했다. 이 작업은 ‘대중의 기대심리 변경’을 통화정책의 요체로 생각하는 그의 철학과 무관치 않았다.

옐런의 통화정책은 연준의 이중 책무인 고용과 물가를 ‘균형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도 큰 특징이 있다.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은 어느 것이 더 우선시되거나 중요시되지 않는, 동등한 목표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옐런의 생각은 지난해 1월 FOMC가 발표한 ‘장기정책목표와 전략’ 성명서에 그대로 반영됐다.

당시 시장이 주목한 것은 연준이 설립 이후 처음으로 장기 물가상승률 목표를 2%로 제시한 대목이었으나, 그 안에는 의미 심장한 내용이 따로 담겨있었다. 역시 옐런이 설계한 당시 성명서에서 FOMC는 ‘균형 잡힌 접근법(balanced approach)’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물가와 고용의 목표치 이탈 정도를 고려해야 하며, 두 가지가 같은 시기 안에 목표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부양 이후 긴축’ 경로 따를 듯예를 들어 물가가 목표치를 약간 웃도는 2%대 초반으로 높은 상황에서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을 대폭 상회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약간의 인플레이션 문제와 심각한 실업문제가 공존하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FOMC의 성명서는 이런 상황에서 ‘고용회복’에 더 큰 방점을 두고 부양정책에 나서야 한다는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물가가 ‘수년 간’ 목표치를 더 벗어난 상승세를 탄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고용을 정상으로 회복시킨 뒤에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정책 수순 즉, ‘부양 이후 긴축’ 경로를 따라야 한다는 정책 가이드라인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 같은 지침은 폴 볼커의 ‘인플레이션 파이팅’과 비슷한 접근법이다. 옐런은 지난해 연설에서 고용과 물가 중 하나를 다른 하나를 위해 일시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을 ‘균형 잡힌 접근법의 요체’라고 특히 강조했다.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웃도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의 정책 지침이 이러할 진대, 지금처럼 디플레이션 위험이 제기되는 환경이라면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과 강도에 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진다.

‘커뮤니케이션 TF팀장’으로서 옐런은 이처럼 이미 FOMC의 통화정책 스타일에 심대한 변화를 이끌어 냈으나, 모든 걸 그의 뜻대로 다 관철한 것은 아니었다. 첫째, 그는 연준이 물가와 마찬가지로 고용에서도 구체적인 목표수치를 제시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예를 들어 물가상승률 2%와 상응하는 실업률 5% 또는 6%를 연준의 정책목표로 공식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연준 내부에 이견이 워낙 많아 뜻을 실현하지 못했다.

둘째, 더욱 중요하게는 FOMC가 제시한 금리인상 검토 개시 시기(2015년 6월 말)가 옐런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옐런은 당시 연설에서 ‘최적의 통화정책(optimal policy)’이라고 이름 붙인 미래 정책금리 경로를 그래프를 그려 소개했다. 그가 제시한 최적의 금리인상 시기는 2016년 초였다. FOMC의 생각보다 반 년 가량 미뤄진 시점이었다.

좀 더 주목할 대목은 최초의 금리인상 이후의 계획이었다. 그는 당시 그래프에서 시장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딘’ 속도의 금리인상 국면을 제시했다. 이 같은 ‘지연된 금리인상’ 구상은 FOMC 성명서에도 어느 정도는 반영됐다. ‘경제회복이 강화된 뒤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고도의 통화부양책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약속한 대목이다. 그러나 그 상당한 기간과, 고도의 부양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성명서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해 연설에서 옐런이 아쉬워한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물론 일정 시점 이후부터는 금리인상에 가속도를 붙여 2018년 말쯤에는 시장 예상보다 오히려 더 높은 정책금리를 운용하겠다고 옐런은 제시했다. 초과 부양을 통해 고용을 우선 회복시킨 이후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는 긴축정책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는 구도다. 당시 옐런은 이 ‘최적 정책금리’ 전개구도를 연준 내부에서 사용하는 모델을 통해 산출했다. 시장은 연준과 다른 구형 모델(테일러 준칙)을 통해 미래의 정책금리 구도를 예상해 연준의 부양의지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게 옐런의 지적이었다.



2018년쯤 금리인상에 가속도 붙을 듯이를 교정하기 위해 옐런은 앞으로 시장에 연준이 생각하는 향후 수년 간의 최적 물가상승률 및 실업률 전개 구도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당연히 연준이 목표로 삼는 물가의 전개 양상은 시장의 예상 구도보다 훨씬 높으며 실업률은 훨씬 낮다.

이 사실을 좀 더 분명히 알린다면 시장은 연준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당시 옐런의 생각이었다.

그의 연설을 통해 우리는 옐런이 양적완화보다는 제로금리 장기 유지 약속을 가장 기본적인 통화부양 수단으로 선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청문회에서 옐런은 양적완화 축소를 조만간 개시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연준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중시하는 옐런의 입장에서는 6월에 예고한 양적완화 축소를 마냥 미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는 청문회에서 동시에 양적완화 프로그램 자체는 좀 더 장기간 유지할 뜻을 내비쳤다. 기왕에 초과 부양수단을 확보해 놓은 만큼 이를 최대한 활용해 실업률을 끌어 내리고 물가를 견인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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