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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절충안 내놨지만 노사분쟁 뻔해

Issue - 절충안 내놨지만 노사분쟁 뻔해

내년 임금협상 진통 예상 … 소급적용 관련 줄소송 예고



올 하반기 산업·노동계의 화두였던 통상임금 논란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다만 그동안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아 못 받은 임금을 소급해 청구할 수 있는 조건은 제한했다. 일단은 재계와 노동계 양측의 입장을 절충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격렬한 노사분쟁의 씨앗을 남겨놨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2월 18일 자동차 부품업체 갑을오토텍 근로자와 퇴직자 296명이 회사 측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및 퇴직금 청구 소송에 대한 선고에서 “일정 기간마다 지급되는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성과급이나 휴가비·김장보너스·명절선물비 등 각종 복리후생비에 대해서는 “정기적이지 않거나 근로의 대가가 아니어서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근로기준법에는 통상임금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었다. 다만 시행령에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이라고 추상적으로만 적고 있다. 쉽게 말해 ‘내가 정기적으로 받는 기본 급여가 얼마인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두세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나오는 상여금이나 설·추석 상여금, 휴가비, 교육비 등 복리후생비와 수당을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는 지가 모호했고, 이 때문에 지금까지 논란이 됐다.



재계·노동계 입장 어설픈 절충재계와 노동계가 통상임금에 민감한 이유는 이것이 재해보상금과 4대 보험, 임금채권보장기금,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연·월차 휴가수당 등 각종 법정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고 임금 총액을 기초로 산정하는 퇴직금 액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이 증가하면 이런 수당이 증가하고 임금 총액 또한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노동계에서는 상여금이나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추가 비용이 부담스러운 사용자 측은 그 반대 입장이었다.

이번 판결은 통상임금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사회갈등이 갈수록 커지자 대법원이 명확한 기준을 정하기 위해 열린 전원합의체에서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사회적 논란이 되는 중요 사건이나 기존 판례를 바꿀 필요가 있을 때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부친다. 이를 통해 나온 판결은 일선 법원의 판단기준이 된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 일선 법원들의 판결이 다르다 보니 대법원에서 ‘앞으로 이와 관련한 사건은 이런 방향으로 판결하라’고 판례를 주는 셈이다. 이번 판결은 갑을오토텍 근로자 295명과 퇴직자 1명이 제기한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린 것이지만, 동시에 향후 통상임금에 대한 모든 소송의 기준이 된다. 현재 대법원에는 14건의 유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전국적으로는 160여 건의 소송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림에 따라 내년 초 노사 단체협상 때부터 임금체계 개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회사 입장에서 초과근로수당이나 연·월차 수당, 퇴직금과 같은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각종 인건비의 부담을 줄이려면 상여금과 수당체계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항목의 비중을 낮추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일률적인 정기 상여금을 주는 게 아니라 개인별 성과에 따라 상여금을 주거나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복리후생비를 높이는 방법이다.



투자 위축, 고용 불안 우려도이에 따라 호봉제를 성과연봉제로 전환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노조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따라 달라진 기준으로 임금을 조정해야 하는 내년 노사 임금협상은 큰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통상임금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가만히 있어도 손해 볼 게 없는 노조 입장에서는 새 임금체계에 대한 합의 필요성이 적다”며 “내년 임단협에서 노조가 전가의 보도를 쥔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훈중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대변인은 “변동성이 큰 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것은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려는 판결 취지에 어긋난다”며 “단체협약에서 노동자가 유리해지고 소득이 늘어나겠지만, 이것이 국가경제를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소급 적용에 대해 ‘근로자의 추가 임금 청구로 예상 외의 과도한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된 기업에 한해’라고 붙인 단서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재판부는 통상임금 관련 선고에서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에 대한 청구에 대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근거로 ‘과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기로 노사가 합의했고 사용자 측의 과도한 지출을 부담토록 할 경우 허용할 수 없다’는 조건을 달았다.

‘노사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고 임금인상 등을 합의한 것은 쉽게 뒤집을 수 없는 서로간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사용자 측의 비용 부담에 따른 파장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재계는 소급청구권이 인정되는 경우 21조원의 추가부담이 들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다만 어느 정도가 ‘과도한 재정적 부담’인지가 불분명 하다. 대법원은 이에 대한 일차적 입증 책임은 회사 측에 있다고 설명했다. 소급적용에 의한 임금 부담을 꺼리는 회사 측은 당연히 ‘회사가 어렵다’고 주장하고 노조는 이에 반박할 것이다. 결국 판단은 법원의 몫이다.

재판부는 대규모 추가임금 청구소송을 막기 위해 신의칙을 내세운 것이지만,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줄소송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특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산하 노조들은 회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작다. 강훈중 대변인은 “추가 임금 때문에 문 닫을 기업은 많지 않다”며 “재계가 지나치게 호들갑을 떤다”고 말했다.

반면 재계는 추가비용 탓에 투자 위축과 고용 불안이 심화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통상임금 소급적용에 대한 소송이 시작되면 기업들은 패소에 대비한 자금을 충당금으로 묶어둘 것”이라며 “인건비 증대로 고용 여력이 최소 1% 정도 줄어든다”고 내다봤다. 외국 기업들의 한국 투자 위축도 우려된다. 인건비 상승 탓에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기업 간 임금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통상임금의 혜택이 초과근로나 상여금이 많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에게만 돌아갈 수 있다. 통상임금 적용을 소급한 추가 임금 소송에서도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불리하다. 현대·기아자동차나 한국GM과 같은 대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회사의 재정적 부담을 증명하기 어려워 추가 임금을 줘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규모에 비해 추가로 줘야 할 금액이 커 지급능력이 떨어지는 사업장의 근로자들은 추가임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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