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 건강한 ‘실패 학습’이 성공의 토대
Management - 건강한 ‘실패 학습’이 성공의 토대
2000년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Memento)’는 매 10분마다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메멘토란 사람이나 장소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품). 전직 보험 수사관이었던 레너드(가이 피어스)에게 기억이란 없다.
자신의 아내가 눈 앞에서 살해되는 순간 살인범과의 격투 중에 머리를 다친 그는 사고 이전의 일은 모두 기억하지만 사고 이후의 일은 10분만 지나면 모두 잊어버리는 단기 기억 손실증 환자가 된다(완전히 기억을 잃어 버리는 기억상실증과는 다르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아내가 강간살해당했다는 사실, 그리고 범인의 이름이 존G라는 것이 전부이다.
레너드는 아내의 살인범을 찾아 나선다. 기억력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묵었던 호텔, 방문한 장소, 만났던 사람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어 항상 메모를 해두며, 심지어 자신의 몸에 문신을 해가며 기억을 더듬는 것이다.
그의 곁에는 나탈리(캐리 앤 모스)라는 웨이트리스와 부도덕한 경찰인 테디(조 판토리아노)가 늘 기웃거리고 있다. 그들은 레너드를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레너드에게 그들은 10분만 지나면 언제나 새로운 인물이다. 나탈리는 테디가 범인임을 암시하는 단서를 보여주고, 테디는 절대 나탈리의 말을 믿지 말라는 조언을 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10분만 지나면 기억 잃어게임이론에서 다루는 게임은 크게 ‘일회성 게임(One shot game)’과 ‘반복 게임(Repeated game)’으로 나뉜다. 동일한 게임을 낯선 사람과 한 번 할 때의 결과와 같은 사람과 여러 번 반복해서 할 때의 결과가 다르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게임이 반복되면 이전 게임에서 관찰된 상대방의 성격과 행동 패턴, 그리고 이전 게임에서의 전적(戰績) 등이 나의 전략적 선택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한번 속는 건 실수, 두 번 속는 건 바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영화 메멘토는 단기 기억 손실증 때문에 기억의 축적 없이 매번 일회성 게임을 반복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을 다룬다. 그 결과 관객들은 상식과 기대를 뒤엎는 놀라운 결과와 마주하게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장사 하루 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기업에서 발생하는 일은 거의가 반복 게임이다. 어제·오늘·내일이 연속선상에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기억도 지속돼야 마땅하다. 허나 과연 그럴까? 과거의 기억을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오래 전부터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건수 채우기와 실적 부풀리기를 위한 피상적 정보가 대부분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지금 회사가 당면한 문제는 이미 과거에 누군가 고민한 문제일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한 해답 찾기도 과거를 더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을 끄집어낼 수고를 자처하지도 않는다. 왜일까? 그럴 만한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식과 정보가 힘이고 돈이 되는 시대이다. 그렇다면 마일리지나 포인트 좀 얻겠다고 힘과 돈을 포기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국내 모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 검색에 등록된 정보는 대부분 ‘초딩(초등학생)’들이 장난 삼아 올린 것이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시스템의 한계이다. 아무리 경영의 시스템화가 중요하다고는 해도 직원의 머리 속에 기록된 정보(암묵지)와 가슴에 녹아 있는 경험을 모두 끄집어 낼 수는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기업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협업(Collaboration)’이다. 기존에 갈등 관계에 있던 부서 간, 개인 간, 그리고 유관업체와의 협동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얻자는 의도이다. 그런데 놓친 게 있다. 협업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가 사실상 수평적 협업에 국한돼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 축을 넘나드는 수직적 협업, 즉 과거와의 협업이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다.
선배의 80점짜리 지식으로 120점 아이디어 만들 수도임직원 한 명 한 명을 단순한 지식 매개체가 아닌 ‘걸어 다니는’ 지식 저장소로 인식하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지식이 오가는 ‘인간적인’ 지식경영이 필요한 때이다.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정보는 시스템화하되 세월의 무게와 고뇌의 깊이가 실린 정보는 임직원의 머리 속에 남겨 둬야 한다.
대신 전통적인 선배와 후배(요즘 표현으로는 멘토와 멘티) 간 학습고리를 더 강화하면 지식의 단절을 막을뿐더러 조직문화도 끈끈하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멀리 본다’고 했던 아이작 뉴튼처럼 매번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할 것이 아니라 선배의 80~90점짜리 지식에서 출발해야 120~130점짜리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또 하나 조직의 기억력을 되살리는 방법으로 ‘실패 학습’을 권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성공보다는 실패 기억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패 경험은 되도록 외부에 알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쉬쉬하고 넘어간다. 망신스럽고 조심스러워 그저 잊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건설적 비판과 발전적 복기(復碁)가 없으면 개선의 여지가 없고 실패는 고착화된다.
회사마다 매번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국내만 봐도 M&A에 유달리 취약한 회사가 있는가 하면 제휴만 하면 매번 싸움이 나는 회사가 있다). ‘선별적’ 단기 기억 손실증이라고 해야 할까? 미국의 GE나 보잉 등은 정례적으로 부서별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로의 실패를 비난하거나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않으면서 건강한 학습이 이루어진다면 회사 전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시 영화 이야기. 영화는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 컬러 장면과 시간의 역순으로 진행되는 흑백 장면이 교차편집 돼 진행된다. 관객들에게는 매우 불친절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영화는 인간의 기억에 대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다. 마치 관객들에게 ‘완전히 객관적인 기억이란 존재하는가’ 그리고 ‘과연 당신의 기억은 얼마나 지속되는가’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그나저나 레너드는 결국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영화를 보면서 독자 스스로 판단하고 ‘기억’할 것을 권한다. 영화 속 레너드의 대사처럼 기억은, 기록이 아닌 해석일 수 있기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디딤돌 아니라 걸림돌” 정책대출 규제에 피해는 ‘서민 몫’
2“좀 무섭네요” 신한은행 ‘AI 브랜치’ 방문한 고객이 내뱉은 말
3가계대출 절벽 현실화…1금융 비대면‧2금융도 조인다
4미래·NH證 6개사 ‘랩·신탁’ 중징계 쓰나미...업계 미칠 파장은?
5애플의 中 사랑?…팀 쿡, 올해만 세 번 방중
6 “네타냐후, 헤즈볼라와 휴전 ‘원칙적’ 승인”
7“무죄판결에도 무거운 책임감”…떨리는 목소리로 전한 이재용 최후진술은
8中 “엔비디아 중국에서 뿌리내리길”…美 반도체 규제 속 협력 강조
9충격의 중국 증시…‘5대 빅테크’ 시총 한 주 만에 57조원 증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