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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bes life | health - 건강의 달인⑮ 패션쇼에서 젊음 찾다

forbes life | health - 건강의 달인⑮ 패션쇼에서 젊음 찾다

국내 유일의 시니어 패션모델 교육과 패션쇼를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인 뉴시니어라이프 구하주 대표는 “나이에 상관없이 패션 모델에 도전하라”고 한다. 바른 자세로 걷다보면 건강을 찾고, 화려한 조명 속 런웨이를 걸으면 삶에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구하주 뉴시니어라이프 대표는 시니어를 위한 모델 교육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린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해보고 싶은 직업이 패션모델이다. 패션쇼는 독특한 장르다. 스토리나 대사가 없다. 단지 런웨이를 걸을 뿐인데 관중의 부러운 시선을 독차지한다. 붉은 카펫 위를 걸을 때는 누구나 주인공이다. 패션모델만이 누리는 삶의 희열이다. 4월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역 사거리 인근의 한 패션 모델 연습장을 찾았다.

“턱을 약간 당기시고, 허리를 펴세요. 양쪽 무릎을 스치듯 걸으면서 천천히 턴 하시고….”

397㎡(약 120평)의 연습장엔 붉은 카펫이 깔려 있고, 그 위를 모델들이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걷는다. 며칠 후 롯데백화점에서 선보일 패션쇼의 리허설 장면이다. 모델들의 당당한 걸음걸이에선 자신감이, 탄탄한 몸매에선 건강함이 묻어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 모델들의 나이다. 패션쇼라고 해서 늘씬한 젊은 모델을 떠올렸다면 오산이다. 적게는 50대 중반의 시니어에서 많게는 90대 노년층까지 다양하다.

“평균 65세가 넘어요. 요즘 50대가 늘어 조금 낮춰지긴 했습니다.” 뉴시니어라이프 구하주(69) 대표 얘기다. 국내 유일의 시니어 모델 교육과 패션쇼를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50대 중반부터는 자아를 성취하는 시기입니다. 시니어 패션쇼는 나이 들어 쓸모없는 인생이라는 생각에 우울해 하는 노인들에게 자신감과 도전의식을 갖도록 도와주는 문화 프로그램입니다.”



패션공부 후 명동에 의상실 열어구 대표는 종심(從心)의 나이에 가깝지만 단아함과 차분한 말투가 예사롭지 않다. 젊었을 때는 뭇사내의 가슴을 꽤나 설레게 했겠다. 아니나 다를까 연애 문제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아픈 사연이 있었다. 구 대표는 경남 하동 출신이다. 부친이 양조장과 정미소를 여러개 갖고 있었으니 당시 갑부의 반열에 들었을 터였다.

아버지는 예쁜 딸이 가문 좋은 신랑감 만나서 시집가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팔자는 손금에 쓰여 있었다. 구 대표의 재능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손바느질에 능했던 어머니를 쏙 빼 닮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신문지로 본을 떠 춘향이가 입은 호장저고리를 만들었어요. 또 치마를 만들어 동생에게 입히기도 했고요.”

지금 같으면 신동 패션디자이너의 탄생을 알리는 예고편이겠지만 어머니는 딸에게 고생스런 바느질을 물려주지 않으려했다. 대학 진학을 시도했지만 그것 또한 벽에 부닥쳤다. 부모 몰래 친척의 도움을 받아 숙명여대 가정과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의상과가 없었으니 차선책이었다.

하지만 남학생의 편지가 쇄도한다는 사실을 안 아버지에게 이끌려 낙향해야 했다. 이번에는 일본행을 감행했다. 오사카에 있는 의상실을 운영하는 복장학원에 들어가 기초를 익혔다. 일본 생활은 2년의 학습과정을 마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음식과 냄새에 민감해 적응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귀국 후 잠시 강사생활을 했던 그는 과감하게 명동에 의상 살롱을 냈다. 이름은 ‘열목’. 이후 ‘하이패션 구하주’로 바꿨다. 개점한 해가 1974년이었으니 그의 나이 29세, 꽃다운 시절이었다. “당시 고급 살롱은 길가가 아닌 2·3층에 자리를 잡았어요. 돈 많은 사람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옷을 맞추고, 시간을 소일했지요.” 의상실이 부유층의 사랑방 역할을 한 셈이다.

수입은 쏠쏠했다. 기성복이 없던 시절인데다 고객이 대부분 VIP들이니 가격이 우선 셌다. 당시 돈으로 한 벌에 100만원을 호가했다. 그래도 증권사 간부부터 총장·교수·준재벌이 즐비했다. 이들은 구 대표의 솜씨에 반해 며느리·시누이·시어머니를 줄줄이 엮어왔다. 이렇게 20여 년 탄탄대로를 걷던 구 대표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기성복 시대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고객의 이동이 시작됐다. 이 무렵 그의 사업에 분수령이 될 사건이 터진다. 단골고객 중 한 명이 자살을 했다.

“7년을 거래한 고객이었습니다. 돈은 많은데 젊은 시절 워낙 고생을 많이 해 어떤 비싼 옷을 입혀도 어울리지 않았어요. 어느 날 음식을 푸짐하게 해와 우리 식구를 먹이고는 ‘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거예요. 그냥 귓전으로 흘려들었죠.” 얘긴즉슨 남편은 외도하고, 자식은 외면하고, 친구들은 자신의 돈만 보고 사귄다는 것이었다.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결국 목숨을 끊었다.

구 대표는 이때 “옷을 입는 것은 행복을 입는 것이다. 그럴려면 옷만 예쁘게 만들게 아니라 마음을 살펴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단골고객의 불평·불만도 심해졌다. “나이가 들면 어깨는 굽고, 가슴은 처지며, 엉덩이는 납작해집니다. 다리도 가늘어지지요. 그러니 아무리 옷을 잘 만들어도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몇 번씩 옷을 뜯어 다시 만들어줘도 거친 말투로 심술을 부리는 겁니다.”

고객에 대한 마음이 식으면서 그는 자연히 실버에 관심이 옮아갔다. 단골고객이었던 대학 총장의 권유로 실버산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정규 교육과정이 없던 시절, 1년 코스의 단기코스였지만 맹렬하게 공부한 덕에 젊은 수강생들을 제치고 1등으로 졸업했다. 1기생을 중심으로 실버산업전문가포럼이 만들어졌다. 그는 회장을 맡아 동분서주하며 실버시장에 불을 붙였다.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고령화 사회에 정부조차 정책을 내놓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노인심리학을 공부하다보니 나이가 들면 왜 고집이 세지고, 싸우려하는지, 또 불평에 거짓말을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이분들을 이해하면서 노인이 행복한 노후를 맞도록 도와주는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 패션쇼 개최2004년 그는 웰프라는 회사명으로 노인용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실버시장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블루오션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엄청난 패착이었다. ‘노인에게 품질 좋은 고급제품을 제공하자’는 생각부터가 현실과 맞지 않았다. 정부는 규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지원을 거부했고, 중국에선 싼 제품이 쏟아졌다. 그동안 모은 재산을 모두 털어넣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3년 만에 그는 손을 들었다. 절망의 수렁에서도 희망의 햇살은 보이는 법이다.

2006년 킨텍스에서 열린 실버모델 선발대회를 개최했다. 참가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30명 모집에 280명이나 지원했다. 모델학교의 가능성을 본 그에게 기회가 왔다. 2008년 성북구의 바우처 사업으로 지정되면서 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 이후 보건복지부의 사회서비스 전국 우수사업에 선정되고, 2009년엔 고용노동부의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그리고 2011년엔 정식 사회적 기업으로 등재됐다.



“잘 걷기만 해도 운동이다”그렇다고 그의 사업이 날개를 단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해명 없이 중단됐다. 결국 7000여만원의 빚을 안고 위기를 맞았다. 이때 구원투수가 된게 KBS ‘아침마당’ 프로였다. 구 대표의 시니어 패션모델이 소개되면서 수강생이 몰려들었다. 그동안 모델교실을 거쳐 간 사람은 1000여 명. 요즘은 50대도 많지만 80대도 찾기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 배출된 모델 중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은 96세 남성이다.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 중에는 88세 할머니도 있다.

구 대표는 매년 20여 차례의 크고 작은 패션쇼를 마련한다. 작게는 졸업 발표회부터 크게는 정부 주최 또는 테헤란로의 섬유센터나 코엑스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에도 초청된다. 지난해엔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과 재독 민간단체 초청을 받아 독일 4개 도시에서 시니어패션쇼 순회공연도 했다.

시니어패션쇼는 일반 패션쇼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패션쇼는 원래 디자이너의 작품 발표나 신상품을 선보이기 위해 기획됩니다. 하지만 시니어 패션쇼는 옷이 아닌 ‘사람 쇼’입니다. 뚱뚱하든, 키에 상관없이 약점을 보완하고, 개성을 찾아줘 삶의 연륜과 건강함을 보여줍니다”. 패션모델 교육을 받은 시니어의 가장 큰 건강효과는정신건강이다.

“한때 농약을 먹고 자살기도까지 하신 84세 할머니가계십니다. 힘든 암투병을 거치면서 우울증에 빠지신 거죠. 하지만 지금은 모델 수업을 받기 위해 매주 새벽밥을 지어드시고 원주에서 오십니다.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표정도 밝아지셨어요.” 신체적 건강은 부수적인 효과다. 2시간여 바른 자세로 워킹을 하다보니 무릎관절염과 요통은 가볍게 치유된다는 것이다.

“허리가 아파 병원을 늘 출입하던 대사 부인은 우울증과 함께 어느새 요통이 사라졌다고 했어요. 무릎관절에서 매주 물을 빼던 분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전됐고요.” 그도 그럴 것이 바르게 걷는다는 것은 운동 손상을 주지 않는 가장 훌륭한 스포츠다.

“나이가 들면 체형이 무너집니다. 팔자 걸음이나 오자 형태로 걷다보면 어깨가 처지고 자세가 흐트러집니다. 하지만 모델 교육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단전에 힘을 주고, 무릎을 스치듯 걷습니다. 턱은 당겨 시선은 약간 아래쪽을 보게 되지요. 이렇게 2시간여를 걷다보니 체형이 바르게 바뀌고 다리근력이 생깁니다.” 노인에게 암보다 무서운 낙상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나이 들면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며 틀 속에 갇힙니다. 이를 깨고 나와야 합니다. 레드카펫의 런웨이를 자신있게 걸어보세요. 그동안 감추고 살았던 숨어 있던 끼가 발산됩니다. 우리 모두가 바로 스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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