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 GAMES - 하면 할수록 건강해지는 게임
VIDEO GAMES - 하면 할수록 건강해지는 게임

좀처럼 의사의 조언을 따르려 들지 않는 미국인들이 건강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는 화면 속 조난자들과 날지 못하는 용이 그만일지도 모른다.
의료 서비스가 너무 지루해졌을까? 치료 사례와 관련 연구를 수박 겉핥기처럼 다룬 미국의 한 평론을 보면 현대인들의 심각한 건강문제 일부가 사실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지난 세기 인류가 만들어 낸 인지적, 신체적 재활치료법은 두부 외상, 관절 상해, 정신질환과 관련된 합병증의 위험을 크게 줄였다. 치료 사례나 임상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추론해보면 이런 질환들은 정복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임상의나 연구자에게 물어보면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온다.
예를 들어 노인들의 실족 사고를 살펴보자. 아주 흔한 사고다보니 노인 실족을 알려주는 경보기나 가정용 애플리케이션 등 관련 비의료 기기 산업이 생겨났을 정도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실족은 치명적인 부상이나 뇌 손상의 주된 원인이다. 매년 전체 노년층 3분의 1이 실족 사고로 고통받는다.
이 놀라운 수치는 현재 권장되는 실족 위험감소 프로그램이 보장하는 내용과 전혀 딴판이다. 그런 프로그램 대다수는 임상실험에서 대단한 성과를 냈다고 자랑한다. "잘 따르기만 하면 65세 이상 노년층의 실족 위험을 줄인다는 사실을 입증한 임상실험 결과는 세계 곳곳에서 나왔다"고 물리치료사 셰릴 플린은 말했다. 그녀는 운동학습 및 제어 분야를 연구한다. “문제는 아무도 그런 프로그램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료사들은 거의 모든 환자 계층에서 치료순응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나이 든 환자는 균형잡기 프로그램을 냉장고에 붙여놓고 잊어버린다. ADHD 아동은 집중력 발달 훈련지를 학교에 놓고 온다. 하반신 마비 환자는 의사가 시킨 관절운동 프로그램을 완수하는 데 실패한다. 치료사로서는 환자를 보다 면밀히 관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전화 통화를 더 자주 하고, 더 많이 방문하는 방법이다.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효과도 제한적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디지털 정원이나 광선총을 휘두르는 우주인에서 나올 수 있다고 본다. 플린은 치료용 비디오게임 개발사 블루마블게임컴퍼니의 CEO이기도 하다. 이 회사는 근거중심치료 프로그램을 게임으로 만들어 환자들의 치료순응도를 높인다. 결과적으로 치료 효과도 좋아진다. “실족 위험을 줄인다고 입증된 운동들이 있다”고 플린은 말했다. “우리는 그런 운동을 상호작용이 가능하고 사용자 중심적인 디자인에 끼워넣었다.”
이제 실족 위험을 줄이고 싶은 노인들은 종이 쪽지나 전화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공원에서 3D로 구현된 태극권 강사를 만나면 된다. 마이크로스프트의 키넥트 카메라처럼 사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첨단 게임 장비 덕분이다. 실족 가능성을 35% 낮춰준다고 입증된 운동 프로그램을 전자기기로 구현했다. 칼을 휘두르거나 화살을 쏘는 대신에 균형잡기 운동을 하는 닌텐도 위 게임기라고 보면 된다.
플레이어가 우주인이 돼 거대 우주 장어를 피하면서 화성의 동굴에서 광석을 캐는 게임도 있다. ADHD나 뇌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위해 고안된 게임이다. 집중력과 기억력, 집행 기능 향상 효과가 입증된 의료 처치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플린에 따르면 이 게임은 쏟아지는 새 치료법과 평가에 지친 어린이 환자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

임상의들이 비디오 게임의 치료 효과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지는 오래됐다. 천식 관리를 돕는 ‘브롱키오사우르스 브롱키’나 소아 당뇨 관리용 ‘팩키와 말론’ 같은 게임은 1990년대 중반에 발매됐다. 오늘날 치료용 게임이 종전과 다른 부분은 신체 전체의 종합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한다는 점, 2차원을 한참 뛰어넘었다는 점, 그리고 최근 주류 게임에서 빠질 수 없는 소셜미디어적 요소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플레이어 간 데이터 교환이 용이할 뿐 아니라 개발자와 플레이어가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다.
게임을 치료 목적으로 최대한 활용하려면 개발자들이 단지 과학 연구에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던캘리포니아대 매체게임학과의 매리언티나 고치스 연구원은 효과적인 치료용 게임을 개발하려면 치료 효용보다 게임의 작품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순수하게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항상 실패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같은 대학 내 창조매체행동건강센터의 수장이기도 한 고치스는 게임이 소규모 개발자들도 적은 예산을 들여 몰입감이 강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본다.
고치스가 동료들과 함께 만든 ‘스카이페러’는 하반신 마비 환자들을 위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경험중심 디자인의 모범 사례다. 놀랍도록 흥미로운 이야기와 비유 곳곳에 치유 요소가 배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게임이 어깨통증 환자를 위한 운동 프로그램(STOMPS)을 따라했다는 것이다. STOMPS는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의 어깨를 강화해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가정용 의료 처치다. 환자들은 거실에서 운동을 하는 대신 옛 남미 신화 속의 영혼을 조종한다. 유물을 찾고 비행선을 조립해 안데스 산맥을 넘는 것이 목표다. 게임에 필요한 장비는 굵은 철제 밧줄에 연결된 손잡이와 도르래, 무게추, 평면 화면이 전부다.
이런 게임이 공공보건 분야에서 치료순응도를 크게 늘릴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영향력을 평가하는 종적 연구를 수행하려면 완성된 제품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개발자들이 제품을 손보는 단계다. 그렇긴 하지만 고치스와 플린은 이미 출간됐거나 앞으로 출간될 연구 사례를 들면서 시제품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고 말했다.
고치스의 프로젝트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매리앨리스 조던-마시 서던캘리포니아대 간호심리학자는 비공식 공개실험에서 가장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친구와 친척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느라 애를 태운 것이다. “이 접근방식이 개발되기 전에 재활운동은 환자 혼자만의 일이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완전히 새로운 차원이 열렸다.”
이런 게임들은 환자들이 의사의 충고를 따르게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미래의 치료 전체에 흥미로운 변화를 일으킨다. 갈수록 많은 게임이 이용자를 서로 연결하는 소셜네트워킹 역량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의료 처치의 정의도 보다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치료가 화면을 통해 이뤄지고, 화면 대부분이 모바일 기기인 오늘날엔 병원이 환자들의 최우선 선택지가 아니게 된다. 환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치료용 비디오 게임이 의사와 환자 간 상호관계에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다는 것이다. 게임을 비롯해 상호작용이 가능한 매체 덕분에 삭막한 병원 밖에서도 치료가 가능해진다. 결국 연구자들이나 임상의들은 환자 경험과 참여가 의료 처치 설계의 중요한 일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의료기술을 단순한 과학을 넘어 경험 설계라고 생각한다면 게임은 큰 도움이 된다”고 고치스는 말했다. 의료 서비스는 지금보다 더 재미있어져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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