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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COPE | ENVIRONMENT - 유행병의 근원은 기후변화?

PERISCOPE | ENVIRONMENT - 유행병의 근원은 기후변화?

지구온난화로 바다 온도가 높아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면 콜레라 발병 확률도 커진다.



풀숲이 무성한 어느 이름 모를 정글 한가운데를 정비해 만든 육군기지가 있다. 이 기지엔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병사들과 지역 주민들이 가득하다. 밖에는 시체더미가 불타고 있다. 미군 항공기 소리가 들려오자 미국인과 아프리카인이 천막에서 뛰어나와 하늘 위로 손을 흔들며 항공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기쁨의 미소를 짓던 한 사람의 얼굴은 항공기에서 떨어지는 것이 치료제나 보급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공포로 일그러진다. 폭탄이 터지면서 사람들과 주변 나무들을 태워버린다. 폭발 뒤 폐허 속에서 머리가 흰 꼬리감는원숭이 두 마리가 도망친다.

이상은 1995년 개봉한 영화 ‘아웃브레이크’의 첫 장면이다. 에볼라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미국 땅에 유입되면서 무시무시한 살인 바이러스가 되어가는 내용을 그렸다. 이 영화는 문제의 바이러스를 서구 군의 무차별한 벌목과 직접 연결시킨다. 지역 보건소 직원은 미군 바이러스학자에게 원주민들은 “인간이 나무를 베는 바람에 신들이 잠에서 깨어나 분노했으며, 이 병은 신들이 내리는 벌”이라 믿는다고 말한다.

2011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전’은 세계적 유행병을 다른 관점에서 조명한 영화다. 여기서도 영화제작자는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살인 바이러스 발생 원인은 산업을 위한 벌목이라는 것이다. 이 21세기 유행병 영화에선 다국적기업의 불도저가 중국의 한 야자나무 숲을 밀어버리면서 그곳에 살던 박쥐들의 터전까지 없애버린다. 그 박쥐들은 근처 양돈장으로 날아가 감염된 과일을 우리 안에 떨어뜨린다. 돼지가 과일을 먹고, 사람이 돼지를 먹고, 그렇게 바이러스는 퍼진다.

이 영화들을 비롯해 대중문화에서 묘사되는 유사 에볼라 바이러스들은 세계화와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파괴로 인해 발생한다. 인류를 위협하는 요인이 인류라는 믿음은 할리우드만의 상상이 아니다.

“인간은 최근 발병하는 질병들의 주요 원인”이라고 역학자 조너선 엡스타인은 말했다. 엡스타인은 비영리기구 에코헬스 얼라이언스에서 에볼라 등 유행병을 연구한다. “농업의 확장과 벌목, 여행과 무역 같은 요소들이 우리 환경에 변화를 가하면서 병원균들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오도록 만든다.”

2012년 출판된 한 연구는 30개국의 유행병 전문가들에게 기후변화가 유행병의 양상을 바꿔놓으리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대다수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이런 믿음이 올바른 과학에 기초한 것인지 아니면 맬컴 글래드웰이 1995년 주장했듯이 죄책감 탓에 “질병을 처벌로 간주하려는 생각”인지는 확실치 않다.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서아프리카는 지난 몇 년 동안 명백한 환경 변화를 겪었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2013년 한 보고서에서 시에라리온의 기후변화가 “계절성 가뭄, 강풍, 뇌우, 산사태, 폭염, 홍수, 강우량 변화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세계 곳곳에 창궐하는 유행병은 기온 상승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또 한 가지 요인은 식량 부족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감염된 동물과의 접촉을 통해 인간에게 전염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바이러스는 박쥐나 원숭이 같은 동물 체내에선 숙주에 해를 입히지 않고도 수 년을 산다. 인간이 감염된 야생동물 고기를 먹었을 경우에만 위험해진다. 가난하고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 사는 인구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먹고 살기 위해 야생동물 고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2013년 IFPRI 보고서에 따르면 “가난한 집단이 기후 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이런 집단이 가난해질수록 야생동물을 식량으로 삼으리라는 사실을 추정하기란 어렵지 않다. 인간 행동의 변화는 결국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숲을 침범하는 만큼 에볼라에 더 많이 노출된다”고 컬럼비아대 역학 전문가 스테판 모스는 말했다. “그 결과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확실하지 않다.”

모스는 기후 변화가 미래의 에볼라 발병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추측할 유일한 방법은 과거 에볼라가 창궐했던 아프리카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한 정밀 미기후(지표면과 1.5m 이내로 인접한 대기층의 기후) 분석이라고 믿는다. 에볼라를 비롯한 유행병이 최근 몇 년 간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새로 발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기후 분석도 충분한 해법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연구는 지구온난화가 말라리아 같은 매개인자성 감염질병을 확산시키리라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한다. 모기처럼 그런 질병을 옮기는 매개는 대개 더운 기후에서 번성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해양 온도는 10년 당 평균 0.13도 정도로 크게 상승했다. 콜레라균은 따뜻한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연구는 바다 온도 상승이 콜레라 발병 확률 증가와 연관됐다는 점을 입증했다. 게다가 기온이 높아지면 남극과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더 큰 문제다. 세계화는 아프리카의 인구통계를 크게 바꿔놨다. 갈수록 많은 사람이 시골 지역을 떠나 도심지로 이동한다. 그로 인해 공중보건 문제가 향후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해안 지역 대도시로 이사하면 유행병에 취약해진다. 위생시설과 깨끗한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스테판 모리슨 국제전략연구소 세계보건정책센터 이사는 말했다. “기후 변화 탓에 해안 지역은 범람 위험이 더 커졌다. 그에 따라 콜레라 같은 유행병이 창궐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말라리아와 콜레라는 에볼라보다 훨씬 더 공중보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질병들이다. WHO는 연간 콜레라 사망자를 약 11만 명으로 추산한다. 말라리아 사망자는 2012년에만 62만7000명으로 추정된다. 반면 에볼라가 처음 확인된 1976년 사망자는 1600명에 그쳤다. 인류 생존에 좋은 소식은 아니다. 현대 사회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 에볼라가 크게 유행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공포스러운 다른 질병이 창궐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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