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YMENT | 알리페이 한국 진출 전자결제 시장 충격
E-PAYMENT | 알리페이 한국 진출 전자결제 시장 충격
요즘 해외 직구족(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직접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에게 ‘알리익스프레스’는 유명하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의 글로벌쇼핑몰이다. 비자, 마스터 등 해외에서 사용가능한 카드만 있으면 결제도 쉽다. 배송료 무료에 물건 가격도 싸다는 큰 이점이 있다.
7월 중순 직장인 박모씨도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침낭을 구매했다. “자동차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한 동호회 게시판에 알리익스프레스에 관한 글이 많다. 그래서 이용해봤다.” 게시판 글처럼 결제는 쉬웠다. 카드 정보를 입력하고 이메일로 개인 인증을 하면 결제가 이뤄진다. “알리익스프레스의 배송은 느린 것으로 악명 높지만, 결제도 쉽고 물건 가격이 저렴해 자주 이용할 것 같다.”
박씨가 이용한 결제방법은 알리페이(Alipay)다. 2004년 알리바바가 이베이의 페이팔을 벤치마킹해 설립한 온라인 결제 서비스다. 중국 온라인 결제시장 점유율은 50% 정도다. 지난해 중국 온라인 결제시장에서 거래된 금액은 약 5조4000억위안(약 888조원)이다. 이 중 알리페이를 통해 400조원 이상이 거래됐다. 세계 34개국에 진출했고, 이용자는 현재 8억 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거래량은 6000만 건 이상으로 페이팔의 하루 평균 거래건수 1000만 건보다 6배나 많다. 알리페이는 페이팔을 벤치마킹했지만, 중국의 거대한 소비자를 등에 업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페이팔 벤치마킹해 만든 알리페이그런 알리페이가 한국에 진출해 전자결제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지난 7월 18일 사브리나 펑(Sabrina Peng) 알리페이 인터내셔널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 사업을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크로스보더(국제 결제) 사업으로 중국과 한국의 시장을 연결해주는 게이트웨이가 되겠다”고 밝혔다. 중국 소비자가 한국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 공인인증서 없이도 결제를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현재 알리페이는 롯데면세점, 롯데닷컴,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등 400여 개의 사업자와 협력 관계를 맺고 중국과 관련된 지불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 8월 19일에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회장이 한국에 와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알리페이의 한국 진출에 관련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알리페이가 자리잡으면 알리바바 그룹의 쇼핑몰도 한국에 진출할 길이 열리게 된다. 알리페이 뿐만 아니다. 페이팔도 한국 진출을 추진 중이라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이 전자결제 시장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페이팔, 알리페이 등 간편결제를 제공하는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려대 정보보호 대학원 김승주 교수는 “IT 기업들이 간편결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세계적인 트렌드”라며 “페이팔이나 알리페이는 결제에서 끝나지 않고 플랫폼화시키려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카드사는 액티브 X기반의 공인인증서 뒤에 숨어 소비자의 편의성을 돕는 기술의 도입을 서두르지 않았다. 알리페이와 페이팔이 보여준 간편결제 시장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공인인증서 때문에 새로운 전자결제 시스템의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라고 김승주 교수는 지적했다.
금융결제원 금융결제연구소 고평기 전문연구역은 ‘국내 전자상거래 결제서비스 현황과 전망’(2013년 4월)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비금융기관은 은행의 지급결제시스템 또는 통신사의 네트워크를 활용하기 위해 금융기관 또는 통신사와 제휴하는 형태로 결제서비스를 유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비금융기관이 결제영역에서 노하우를 축적하고 독자적인 전략을 개발한다면 더 이상의 제휴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 연구역의 분석대로라면 카드사는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 전자결제 시장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카드사와 마찬가지로 정부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동안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말뿐이었다. 카드사도 비협조적이었다. 글로벌 PG의 한국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7월 28일 금융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전자상거래 결제 간편화 방안’을 발표했다. 페이팔과 알리페이에 비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 때문이다. ‘공인인증서 대체 방안 마련’ ‘간편결제 서비스 추진’ ‘Non 액티브 X 공인인증서 개발’ 등의 안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는 PG가 소비자의 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나왔다. 30만원 이상 결제시 공인인증서 요구 관행이 이어진다고 보고, 금액에 상관없이 공인인증서나 휴대폰인증 등 다양한 인증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냉담하다. “늦은 감도 있고, 선언일 뿐 구체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PG 업체인 페이게이트 이동산 기술이사는 “정부 발표는 기존에 유지했던 금융감독의 체계를 바꾸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페이팔이나 알리페이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서 나오려면 전자결제 인증방법을 가맹점 즉 PG 업체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카드사가 인정한 인증방법만 사용할 수 있다. 2005년 페이게이트가 내놓은 AA인증방식(금액인증 방식)은 2012년 금융감독원 인증방법평가위원회에서 보안 나군으로 승인받았지만, 카드사가 인정하지 않아 사용되지 못했다. 페이팔이나 알리페이의 이메일 인증방식은 한국에서 카드사가 반대하면 이용할 수 없다.
정부의 전자결제 시장 간섭 비판 높아한국의 PG 업체는 페이팔과 다르게 고객의 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없다. “한국 소비자는 PG 업체가 개인정보를 갖고 있어 불안감을 느낀다. PG 업체가 고객의 개인정보를 저장하지 않으면 보안을 강화하는 다양한 수단이 나올 수 없다”고 김승주 교수는 설명했다. “페이팔도 초기에는 개인정보가 많이 유출됐다. 하지만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확실하게 졌다. 보안도 업그레이드하면서 현재의 페이팔이 됐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PG 업체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저장하는 대신 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기업이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공인인증서 때문에 개인이 정보보호 부담을 지고 있다. 글로벌 PG 업체는 비자, 마스터 등 대형 카드사가 참여해 만든 보안 인증프로그램 ‘지불카드 데이터보안표준(PCIDSS)’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PCIDSS에서 정한 보안 가이드라인을 지켜야만 결제를 대행할 수 있는 것.
하지만 한국 PG 업체는 PCIDSS의 인증을 받아도 국내에선 효용이 없다. 고객의 개인정보는 카드사만 갖고 있고, 금감원의 보안성 심의를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동산 기술이사는 “정부가 기술에 개입하면 안된다”면서 “PG 업체가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금감원의 보안성 심의만 통과하면 된다. 전자결제 시장의 생명이 금감원에 달려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김승주 교수도 “정부가 페이팔과 같은 글로벌 기업을 키우기 위해 간편결제 시장을 확대하려는 것인데 보안 기술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PG 업체가 PCIDSS 인증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금감원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 것인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가 고의건 아니건 간에 전자결제 시장에 간섭하고 있는 셈이다.”
IT 기업들은 전자결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분주하게 뛰고 있다. LG유플러스는 ‘페이나우 플러스’라는 앱 간편결제 서비스를 선보였고, 카카오는 LGCNS가 내놓은 엠페이를 적용한 ‘카카오페이’ 간편결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네이버도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밴드’를 통해 송금서비스에 뛰어들고, PG 업체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국내용에 불과하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인증 방법 문제가 있어서 해외 고객은 사용할 수 없다”면서 “해외 진출은 향후 고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이팔과 알리페이 등 글로벌 PG 업체의 한국 공략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데 국내 전자결제 시장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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