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 KREMLIN - 베일에 가린 푸틴 패밀리
FEATURES - KREMLIN - 베일에 가린 푸틴 패밀리
PUTIN’S FAMILY SECRETS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끊임없이 세계의 눈길 속에 살아간다. 일을 할 때도 휴가 중에도 늘 크렘린 공동취재단과 TV 카메라, 사진기자들에 둘러싸여 지낸다. 러시아의 저녁 뉴스 프로그램은 언제나 푸틴의 그날 활동에 관한 보도로 시작된다. 하지만 푸틴은 직계 가족의 언론 노출을 극도로 피해 왔다. 이를 위한 그의 노력은 KGB(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의 특별공작에 맞먹을 정도로 철두철미했다.
푸틴의 두 딸 마리아(29, 마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와 에카테리나(28, 카티야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다)는 성인이 된 후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진이 없다. 두 사람은 가명으로 러시의 한 대학에 다녔으며 같은 과 친구들도 그들의 진짜 신분을 몰랐다.
지난 7월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이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격추된 후 네덜란드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은 마샤가 네덜란드에서 네덜란드인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단의 기자와 시위자들이 마샤가 살고 있다는 곳으로 몰려갔지만 그녀를 찾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녀를 아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네덜란드 힐베르쉼의 피에터 브로엘트제스 시장은 마샤의 국외 추방을 요구했다(그는 나중에 이 요구를 철회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시위대는 마샤 커플이 살았었다고 알려진 호화 아파트 단지 밖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정말로 거기 살았었다고 해도 그들은 이미 그곳을 떠난 지 오래였다.
푸틴 일가를 둘러싼 비밀의 장막은 크렘린의 철저한 보호를 받아 왔다. 러시아 대통령 일가의 사생활 보도금지 규칙을 어기는 기자들은 즉결 처벌을 받는다. 2008년 진보 성향의 신문 모스코비치 코레스폰덴트가 ‘푸틴이 리듬체조 선수 출신의 마리아 카바예바와 결혼할 계획이라고 보도한 후 그 신문의 편집인은 몇 시간 안에 강제 사임 당했다.
해고 당한 편집인 그리고리 네코로셰프에 따르면 이 신문의 소유주 에브게니 레베데프(런던에서 발행되는 이브닝 스탠다드와 인디펜던트를 소유한 러시아 태생의 억만장자 자본가다)는 처음엔 기자들을 지지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의 한 고위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난 뒤 태도가 바뀌었다. 그 일로 깨달음을 얻은 레베데프는 모스코비치 코레스폰덴트를 폐간했다.
푸틴은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에서 열린 한 기자회견에서 카바예바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자 자신의 사생활에 관한 질문은 금지돼 있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 ‘정치인들은 유리로 된 집 안에 산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물론 알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한계는 있어야 한다 … 에로틱한 상상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의 삶에 콧물 그렁그렁한 코를 들이대는 사람들을 늘 싫어했다.” 푸틴 옆에 서 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당시 이탈리아 총리는 그 질문을 한 러시아 기자를 총으로 쏘는 시늉을 했다.
푸틴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주 명확했다. “푸틴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이다.” 크렘린 공동취재단 출신으로 현재 러시아 국영 통신사에서 일하는 한 기자가 익명을 요구하며 말했다. “우리는 푸틴의 보좌관들과 잡담을 일삼았지만 그의 가족 이야기는 결코 입에 올리지 않았다 … 그것은 불문율이었다. 일인자(푸틴)의 가족 생활은 언제나 비밀에 부쳐졌다.”
2009~2012년 크렘린 공동취재단에서 일하면서 푸틴과 함께 여러 곳을 여행한 이 기자는 그 3년 동안 당시 푸틴의 부인이었던 류드밀라를 딱 한번 봤으며 그의 딸들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이히, 푸틴(Ich, Putin)’을 제작해 수상한 독일의 다큐멘터리 감독 후베르트 자이펠의 경우 작품 제작 당시 푸틴에 대한 이례적인 접근이 허용됐다. 자이펠은 2010~2011년 푸틴과 수백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그 역시 푸틴의 자녀들을 본 적이 없다. 자이펠이 푸틴에 대한 접근을 허용 받을 때 한 가지 명백한 조건이 붙었다. 푸틴의 사생활에 대한 어떤 사항도 폭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푸틴은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난 (다큐멘터리에) 그의 가족을 많이 노출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자이펠이 다큐멘터리 시사회를 마친 뒤 말했다.
푸틴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기본적인 사항들만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그는 1980년 친구의 소개로 아에로플로트(러시아 국영 항공사)의 여승무원 류드밀라를 만났다. 그들은 소개 받던 날 극장에서 더블데이트(두 쌍의 남녀가 함께 하는 데이트)를 했다. 류드밀라는 2000년 한 인터뷰에서 당시 푸틴의 옷차림이 “형편없었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마주쳤다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만큼 매력이 없었다.” 하지만 푸틴의 끈질긴 구애로 그들은 1983년 결혼했다.
1985년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마샤는 푸틴의 어머니에게서 이름을 땄다. 카티야는 푸틴이 KGB 요원으로 파견됐던 독일 드레스덴에서 1986년 태어났다. 1996년 푸틴 가족이 모스크바로 돌아온 후 두 딸 모두 독어로 수업을 하는 프리드리히 하스 독일 국제학교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 다녔다. 마샤는 생물학을, 카디야는 동양학을 전공했다.
푸틴은 보리스 옐친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 뒤인 2000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명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푸틴의 두 딸은 인터뷰를 단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푸틴과 그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퍼스트 퍼슨(First Person: An Astonishingly Frank Self-Portrait by Russia’s President Vladimir Putin)’은 푸틴 일가가 권력의 테두리 안으로 막 진입했을 때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열네 살의 카티야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가정교사들에게 수업을 받게 된 데 대해 불만을 표했다. “우리가 극장에 갈 때도 경호원들이 따라붙는다.” 카티야가 인터뷰를 위해 푸틴의 저택으로 찾아간 기자 나탈랴 게보르크얀, 나탈랴 티마코바,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에게 말했다.
푸틴은 직계 가족의 언론 노출을 극도로 피해 왔다. 이를 위한 그의 노력은 KGB의 특별공작에 맞먹을 정도로 철두철미했다.“한 남자가 우리와 가까운 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그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고 카티야가 말했다. “보통 우리는 경호원들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우리가 친구와 함께 어디에 갈 때도 그들이 근처에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일에 끼어들려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같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자고 수없이 말했지만 그들은 응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될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 벌컥 화를 냈다.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난 어머니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어머니가 그런 일에 농담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류드밀라는 남편의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 “온종일 울었다”고 말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이 이제 끝났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이미 두 딸은 “아버지를 집에서보다 TV에서 더 자주 봤다”고 류드밀라는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몇 시가 됐든 아이들을 보러 꼭 집에 들어왔다. 그는 딸들을 정말 사랑한다. 모든 남자들이 딸들을 그처럼 다정하게 대하진 않는다. 남편은 애들을 응석받이로 만들었다. 그래서 애들을 엄하게 훈육하는 건 내 몫이 됐다.” 딸들이 아버지를 마음대로 쥐고 흔드느냐고 기자들이 물었을 때 류드밀라는 “어떤 사람도 아버지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순 없다”고 대답했다.
류드밀라는 딸들의 장래 계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샤는 ‘management’라는 영어 단어까지 써가며 경영을 염두에 두는 듯하고 카티야는 가구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두 딸은 스키를 즐겼고 당시 그들이 가장 좋아하던 영화는 ‘매트릭스’였다. 그들은 멋진 옷을 좋아했고 “매우 날씬했다.” 푸틴이나 류드밀라가 공석에서 자녀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했던 때는 2000년이었다.
그후 14년 동안 두 딸의 삶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가끔씩 입증되지 않은 소문이 떠돌 뿐이었다. 2002년에는 그들이 베를루스코니의 딸 바르바라와 사르디니아에서 휴가를 보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2010년 한국의 한 신문은 카티야가 모스크바에 파견됐던 한국 해군 제독의 아들과 결혼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해 마샤의 남자친구로 알려진 요리트 파센(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과 송유관 건설업체 스트로이트란스가즈의 임원이다)은 모스크바 시내에서 운전 도중 러시아 금융업자 마트베이 유린의 경호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그러자 크렘린은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같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자고 수없이 말했지만 그들은 응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될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 벌컥 화를 냈다.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난 어머니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어머니가 그런 일에 농담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류드밀라는 남편의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 “온종일 울었다”고 말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이 이제 끝났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이미 두 딸은 “아버지를 집에서보다 TV에서 더 자주 봤다”고 류드밀라는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몇 시가 됐든 아이들을 보러 꼭 집에 들어왔다. 그는 딸들을 정말 사랑한다. 모든 남자들이 딸들을 그처럼 다정하게 대하진 않는다. 남편은 애들을 응석받이로 만들었다. 그래서 애들을 엄하게 훈육하는 건 내 몫이 됐다.” 딸들이 아버지를 마음대로 쥐고 흔드느냐고 기자들이 물었을 때 류드밀라는 “어떤 사람도 아버지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순 없다”고 대답했다.
류드밀라는 딸들의 장래 계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샤는 ‘management’라는 영어 단어까지 써가며 경영을 염두에 두는 듯하고 카티야는 가구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두 딸은 스키를 즐겼고 당시 그들이 가장 좋아하던 영화는 ‘매트릭스’였다. 그들은 멋진 옷을 좋아했고 “매우 날씬했다.” 푸틴이나 류드밀라가 공석에서 자녀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했던 때는 2000년이었다.
그후 14년 동안 두 딸의 삶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가끔씩 입증되지 않은 소문이 떠돌 뿐이었다. 2002년에는 그들이 베를루스코니의 딸 바르바라와 사르디니아에서 휴가를 보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2010년 한국의 한 신문은 카티야가 모스크바에 파견됐던 한국 해군 제독의 아들과 결혼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해 마샤의 남자친구로 알려진 요리트 파센(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과 송유관 건설업체 스트로이트란스가즈의 임원이다)은 모스크바 시내에서 운전 도중 러시아 금융업자 마트베이 유린의 경호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그러자 크렘린은즉각 보복에 나섰다. 유린의 사업체가 해체됐고 유린은 사기 죄로 감옥에 갇혔다. 마샤와 파센 커플은 곧 러시아를 떠나 네덜란드 헤이그 교외의 보르스호텐에서 살기 시작했다.
푸틴이 딸들을 왜 이렇게 광적으로 보호하는지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은 그가 젊은 시절 완전히 해체된 두 정치인 집안을 가까이서 지켜봤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한 집안은 그의 KGB 시절 이후 첫 상사였던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아나톨리 소브차크 일가이며 나머지 한 집안은 보리스 옐친 일가다. 소브차크의 부인 류드밀라 나루소바와 그의 딸 제니아의 행동은 “푸틴에게 혐오감을 주었고 소브차크와 푸틴의 유대를 약화시켰다.” ‘허약한 제국(Fragile Empire: How Russia Fell In and Out of Love With Vladimir Putin)’의 작가 벤 유다의KREMLIN설명이다. “그들은 마피아 단원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는 등 부적절한 사람들과 어울렸다. 푸틴은 그들의 저속한 행동에 몸서리를 쳤다.”
나중에 푸틴은 옐친이 두 딸과 그 측근들(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로만 아브로마비치 등 과두재벌을 포함한 이들은 ‘옐친 패밀리’로 불렸다)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봤다. “푸틴에겐 옐친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고 유다는 말했다. “그는 옐친의 사위 발렌틴유마셰프와 베레조프스키의 파렴치한 가족 정치를 머리에 새기며 자신은 결코 같은 운명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푸틴은 딸들을 언론으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그들을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시켰다. 딸들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푸틴의 동료인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독재자들은 둘 다 정치적 야심을 품은 딸들 때문에 문제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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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경쟁적인 선거를 치른 적이 없기 때문에 서방 정치인들처럼 가족을 언론 앞에 내세워 가며 선거운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또 정적이 없기 때문에 공적으론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족은 비밀의 장막 속에 숨겨두는 위선을 비난할 사람이 없다.푸틴은 러시아 언론을 크렘린의 엄격한 통제 하에 두는 걸 철칙으로 삼았다. 러시아의 어떤 주류 언론기관도 대통령 일가의 사생활을 보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2013년 6월 푸틴이 류드밀라와 “분별 있는 이혼(civilized divorce)”을 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국영 TV는 단 하루 동안 예의를 갖춰 그 이야기를 보도했을 뿐이다. 그후로 이전의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마치 그녀가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한 느낌을 줬다.
그녀는 30년 동안 그늘 속에서 살았다. 이혼 후에는 류드밀라에 대한 모든 언급이 크렘린 웹사이트에서 지워졌다. 그녀는 완전히 잊혀졌다. 러시아 법에 따르면 그녀는 푸틴의 공식 연봉 10만2000 달러의 절반까지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혼 시 재산정리에 대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푸틴은 러시아를 옛 소련 시절처럼 사람들이 역사에서 지워질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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