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저금리 덕에 경기 상승국면 확장
저성장·저금리 덕에 경기 상승국면 확장
World 美 증시 역설적 강세장 왜?
그런데 미국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가가 쉼 없이 올라 사상최고치를 연달아 경신하는데, 시장금리는 저공비행을 지속 중이다. 올 초만 해도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 대부분은 올해 미국의 장기 금리가 3%대 중반으로 오를 걸로 내다봤다. 금리가 오르면서 주가 상승세는 주춤할 걸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나타난 현상은 정반대였다. 계속 떨어지던 금리는 2%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
이런 모순된 현상에 대해 한동안은 ‘오래 못 갈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주식시장이 잘못 됐거나 채권시장이 오버했거나 둘 중 한 곳은 큰 조정을 받을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그러나 이 엇박자는 교정되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돼 나갔다.
그래서 시장 전문 분석가들은 스스로 판단을 고쳤다. ‘저금리 덕분에 주가는 더 오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금리의 배경은 저성장이다. 따라서 주가는 저성장 덕분에 더 오른다는 새로운 상식이 도출됐다.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세는 2009년 3월부터 시작됐다. 강세장이 5년 반 동안 이어졌지만 꺾일 조짐이 없다. 2011년 여름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사태 이후로는 제대로 된 조정조차 받지 않은 채 주가가 올라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앞으로 5년 간 주가가 더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이 9월 초에 나왔다. 모건스탠리의 미국 증시 담당 수석 전략가 아담 파커의 보고서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번 주식 강세장은 10년 간 계속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담 파커가 초장기 강세장을 예측한 근거는 아이러니하게도 ‘저성장’이었다. 더딘 성장속도 때문에 미국의 경기회복 국면이 길어지고 그래서 경기 사이클과 함께하는 주식시장의 상승국면 역시 연장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향후 5년 간 주가 50% 더 오른다”일반적으로 경기 상승 사이클은 회복세를 넘어 팽창 국면을 거친 뒤에나 리세션(침체)에 빠져들게 된다. 팽창 국면에서 경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면 필연적으로 과잉이 발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수요가 공급능력을 초과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하면서 열기가 빠르게 식는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딛고 나타난 이번 경기 상승 국면은 과거와는 좀 다른 양상이다.
모든 경제 주체들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버리지 않은 탓에 경기가 좀체 열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물경제에서의 과잉은 요원한 일이다. 열기를 좀 낸다 싶으면 기업들이 여지 없이 스스로 속도조절에 나서면서 경기를 냉각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에 나타난 미국 경제의 급작스러운 침체가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 주체들의 자발적인 조정은 마치 중앙은행의 금리인상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연방준비제도로서는 금리를 서둘러 올릴이유가 없다.
아담 파커 전략가는 이 점에 착안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기 상승 국면이 사상 최장 기간으로 연장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번 경기 상승 국면이 5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회복기의 초기 국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경기 사이클은 연수가 길어졌다고 해서 상승 국면을 종료하는 게 아니라 과열에 의해서 끝날 뿐인데 지금 미국의 경제는 오버 히팅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미국 가계와 정부 부문의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이 계속 진행 중이고, 중국 같은 신흥국들의 성장세가 크게 위축됐으며, 선진국들 중에서도 일본과 유로존의 경제는 여전히 들쭉날쭉 불확실하다. 기업들의 투자는 막 살아나고는 있지만 팽창 중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경영자들의 자신감에는 열기가 없다고 그는 지적했다. 저성장이 앞으로 5~6년 더 연장된 초장기의 경기 상승세를 낳게 될 것이라고 본 그는 “현재 2000포인트 수준인 S&P500 지수도 향후 5년 간 3000포인트로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관론을 버리고 항복한 것이다. 내년 말 목표치는 2000에서 2150으로 높였다. 2016년 말에는 2300으로, 2018년 말까지는 2500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랠리가 앞으로 4년 넘게 더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도 초장기 주식 강세장을 전망하고 있다.
그를 항복하게 한 것 역시 ‘저성장’이다. 그는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가 모멘텀을 얻기까지는 과거의 회복기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경기회복기는 더 길어질 것이다. 장기간 이어지는 온건한(moderate) 성장세는 종전의 10년기록에 필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담 파커의 역설적인 강세장전망과 똑같은 논리다.
장기적인 주식 강세장 전망을 도출하는 장기적인 저성장 전망은 채권시장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 채권시장에서도 ‘금리가 급상승할 것’이란 비관론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JP모건의 제이 배리 전략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다른 많은 애널리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시장의 틀린 쪽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백기를 들었다.
그가 새롭게 제시한 올 연말 미국의 장기 시장금리 수준은 다른 애널리스트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낮았다.
채권시장도 저금리 강세장 전망 우세모건스탠리의 수석 글로벌 채권전략가 매튜 혼바흐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 연말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 예상치를 3%에서 2.85%로 낮춰 잡았다. 금리가 올라봐야 지금보다 0.2%포인트 정도밖에 더 높아지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혼바흐는 석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 국채를 최대한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더 떨어졌다.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펼쳐지자 그는 생각을 고쳤다. 혼바흐가 지적한 ‘변심’의 근거는 유로존이었다. 유로존 경제 전망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디플레이션 위험이 더 커짐에 따라 유럽중앙은행(ECB)은 9월 초 정책금리를 더 낮췄다. 은행 대출채권을 사들이는 등의 양적완화로 통화량을 지금보다 50%나 더 많은 수준으로 풀겠다고도 약속했다. 채권시장 비관론의 연쇄적인 멸종은 다시 주식시장 낙관론으로 이어진다. 저금리를 마다할 주식시장은 없다.
미국의 기업들은 채권시장에서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한 돈으로 자기회사 주식을 사들이고 배당을 늘렸다. 유통주식 수가 줄어들고 배당률은 높아지자 투자자들은 마치 채권을 사듯이 주식에 돈을 맡겼다. 채권보다 수익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채권시장 비관론을 멸종시킨 유로존의 부진은 9월 17일 미국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화제가 됐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유로존의 저성장과 저물가는 세계 경제가 당면한 위험들중 하나”라고 우려했다. 옐런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FOMC 위원들이 제시한 (빠른 속도의) 금리인상 전망은 개인적인 의견들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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