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의 새 장이 열릴까
로맨틱 코미디의 새 장이 열릴까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뻔한 캐릭터와 남녀 관계의 비현실적인 묘사로 가득한 경우가 많다. 남자친구가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여자, 야심으로 똘똘 뭉쳤지만 그러면서도 한 남자에게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는 여자가 단골로 등장한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는 인기 있는 장르다. 조금만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면 껄끄럽고 골치 아프지만 진실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다. 난 남녀 관계에서 여성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정확히 묘사하는 (여자 작가가 쓴) 로맨틱 코미디에 특히 흥미가 있다. 또 동성애 관계의 복잡미묘함을 탐구하는 (동성애자 작가가 쓴) 로맨틱 코미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남자가 두 여성 친구를 동시에 사귀면서 그들 사이에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어색한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줄거리가 아닌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가 절실히 필요하다.
12월 5일 미국에서 개봉된 ‘라이프 파트너스(Life Partners)’가 그런 영화다. 수잔나 포겔과 조니 레프코위츠가 각본을 공동 집필한 인디 로맨틱 코미디로 두 여성 절친의 이야기다. 완고한 성격의 페이지(질리언 제이콥스)와 자유분방한 사샤(레이튼 미스터)는 영적·정서적 파트너다. 절친인 이들의 관계에서는 배우자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수동적 공격성(passive-aggressiveness,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적대감이나 공격심을 표출하는 행동)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엿보인다. (페이지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사샤를 ‘남편’으로 등록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라이프 파트너스’는 서로에게 헌신적인 두 여자의 친밀함과 그 중 한 명에게 연인이 생겼을 때 두 사람의 우정이 어떻게 변질돼 가는지를 조명하는 사례 연구다.
페이지는 이성애자이고 사샤는 동성애자다. 하지만 이들의 성정체성은 관객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사샤가 커밍아웃하는 대목이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장면, 혹은 그녀가 자신의 절친을 남몰래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라이프 파트너스’가 정체성을 다루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어떤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지를 묻지 않는다는 말이다. “난 너 빼곤 모든 사람이 끔찍해. 그게 우리의 문제야.” 영화 초반부에 두 사람이 침대에서 빈둥거리며 틴더(Tinder, 스마트폰 데이팅앱)에 소개된 남자와 여자들을 훑어보다가 사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미스터의 실제 남편인 애덤 브로디가 틴더를 통해 페이지와 만나 약혼을 하게 되는 팀 역으로 나온다. (이 영화는 스마트폰 데이팅 앱을 통해 알게 된 사람과 실제로 연인이 됐을 때 느끼는 좌절감을 보여준다.) ‘라이프 파트너스’에서 팀은 일종의 로맨틱한 장식물에 불과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샤와 페이지의 관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도 않으며 삼각관계를 형성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두 사람의 성장을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를 통해 페이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사샤는 자기중심적인 얼간이들과의 데이트를 그만두고 뮤지션이 되려던 이전의 꿈을 다시 고려하게 된다.
브로디는 나와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 팀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영감을 자신의 동생에게서 얻었다고 말했다. “동생은 신시내티에서 생화학자로 일하는데 현대적인 것을 싫어하는 반(反)문화적 히피족이다.” 그는 수염을 볼품없게 기른 남자 역할을 하니 해방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TV 드라마 시리즈 ‘디 오씨(The O.C.)’의 냉소적인 세스 코언 역(이 역할은 브로디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을 연상케 하는 고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했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는 TV드라마 시리즈 ‘가십 걸(Gossip Girl)’의 사랑스러운 주인공 블레어 월도프 역으로 인기를 얻은 미스터에게도 도약의 기회가 됐다. ‘라이프 파트너스’에서 그녀는 냉소적이고 불안한 성격의 사샤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내가 과거에 알았던 누군가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다.
‘라이프 파트너스’를 이끌고 가는 긴장감은 변화와 성장을 향한 치열한 싸움이다. 사샤와 페이지는 둘 다 30세를 목전에 두고 있다. 사회적으로 직업과 연애 측면에서 정착할 때라고 여겨지는 시기다. 사샤는 시종일관 음악 사업에서 “성공하려는” 오래된 꿈과 씨름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인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 반면 완고한 성격의 변호사인 페이지는 문제의 다른 측면을 보지 못한다.
‘라이프 파트너스’는 2011년 포겔과 레프코위츠가 쓴 단막극으로 시작했다. 영화의 감독을 맡은 포겔은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치색 짙었던 그 연극의 밑바탕엔 한 가지 협정이 깔려 있었다고 말했다. 절친인 여성 두 명(한 사람은 레즈비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성애자다)이 동성 결혼이 합법화될 때까지는 둘 중 누구도 결혼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맺는다. 실제로 절친 사이인 포겔과 레프코위츠는 만약 이성애자인 포겔만 결혼을 하게 되고 동성애자인 레프코위츠는 결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 얼마나 난감할까를 이야기하다가 그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포겔과 레프코위츠는 선댄스 랩(Sundance Lab, 신인 감독의 장편영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제도)에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 초고를 바탕으로 워크숍을 열었다. 그 워크숍에 참여했던 크리스틴 벨과 리지 캐플런이 영화에 출연할 가능성이 한때 거론됐었지만 페이지 역은 결국 질리언 제이콥스에게 돌아갔다. 제이콥스는 포겔과 레프코위츠가 이전에 HBO의 한 프로그램에서 함께 작업했던 배우다. 그리고 ‘가십 걸’의 팬이라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포겔은 미스터를 딱 한번 만나 보고 그녀를 사샤로 캐스팅했다. 포겔은 이렇게 말했다. “월도프 역을 연기했던 여배우를 말괄량이 레즈비언으로 캐스팅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 역할을 정말 잘 해내리라고 믿었다.”
우연히도 미국 연방대법원이 결혼보호법(DOMA, 결혼을 이성 간의 결합으로 규정하고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법)을 위헌으로 판결한 2013년 6월 26일 ‘라이프 파트너스’의 1차편집본이 나왔다.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거의 전부가 여성이며 그 중 대다수가 레즈비언이다)가 환호했다. 하지만 포겔은 그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영화 제작이 이미 끝난 시점에 이런 판결이 나오는 바람에 줄거리의 중심축을 이루는 두 친구 사이의 결혼 협정이 무의미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화의 밑바닥에 깔린 정치적 줄거리를 편집했다. ‘라이프 파트너스’의 배경을 결혼보호법 폐지 이후로 설정했다. 두 주인공이 동성 결혼을 방지하기 위한 정치적 불평등에 맞서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오프닝 장면이 동성 결혼을 축하하는 게이 프라이드 행사로 시작된다.
‘라이프 파트너스’는 요즘 TV와 영화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과도현실적(hyper-real,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코미디 중 하나다. 샌드라 불록과 멜리사 매카시가 주연한 버디 코미디 ‘더 히트(The Heat)’와 에이미 포엘러가 제작한 ‘브로드 시티(Broad City)’가 대표적이다. 두 여자 주인공(동성애자인 경우가 종종 있다)이 곤경에 부닥치고, 사랑에 빠지고, 지극히 인간적인 문제들을 겪으면서 자기 자신과 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는 줄거리다. 두 여주인공은 남자 이야기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지나친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싸움을 걸지도 않는다. 현실처럼 실감이 난다.
질리언 제이콥스는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 코미디계의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좋다”고 말했다. “요즘은 기분이 참 좋다. 훌륭한 여자 코미디언을 많이 만났다. 에이디 브라이언트와 케이트 매키넌은 최고의 코미디언이다. 티그 노타로 역시 놀라운 연기자다. 코미디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여자 배우들이 많아서 정말 신난다.” 미스터도 같은 생각이다. “최근 아주 멋지고 복잡한 여자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새로운 배우들을 만났다. 여자가 홀로 우뚝 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라이프 파트너스’는 ‘프랫 팩(1990년대 이후 흥행에 성공한 다수의 미국 코미디 영화에 함께 출연한 남자 코미디 배우들을 일컫는 말. 벤 스틸러, 잭 블랙, 오웬 윌슨 등이 여기 속한다.)’이 유행시킨 남자의 우정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에 반기를 들어 두 여자 사이의 우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남자의 우정과 여자의 우정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차이점을 보여준다. “여자들 사이의 우정은 서로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사랑하며 매우 친밀한 경우가 많다. 동시에 지극히 상호의존적이다. 일종의 불안감이 그 우정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미스터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여자의 우정에는 남자의 우정에서 찾아보기 힘든 취약성과 친밀성이 존재한다. ‘라이프 파트너스’는 사샤와 페이지의 우정에서 이런 측면을 부각시킨다. 에로틱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동료나 자매 사이의 사랑에 가깝다. ‘라이프 파트너스’는 2014년 봄 트리베카 영화제 시사회에서 “관객을 매료시켰다”고 브로디가 말했다. “영화 속의 농담 한 마디 한 마디가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매년 열리는 대표적인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영화제 아웃페스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포겔은 여자의 우정과 관계의 복잡성을 분석하는 진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런 영화들은 아직까지도 주로 인디 영화계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더 넓어진다. 특히 이런 작품에 스타 배우들이 캐스팅된다는 점이 이들 영화를 주류 쪽으로 옮겨가는 데 도움이 된다. ‘라이프 파트너스’가 인생을 바꿀 만한 작품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을 웃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라이프 파트너 또는 절친을 따뜻하게 포옹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축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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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미국에서 개봉된 ‘라이프 파트너스(Life Partners)’가 그런 영화다. 수잔나 포겔과 조니 레프코위츠가 각본을 공동 집필한 인디 로맨틱 코미디로 두 여성 절친의 이야기다. 완고한 성격의 페이지(질리언 제이콥스)와 자유분방한 사샤(레이튼 미스터)는 영적·정서적 파트너다. 절친인 이들의 관계에서는 배우자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수동적 공격성(passive-aggressiveness,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적대감이나 공격심을 표출하는 행동)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엿보인다. (페이지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사샤를 ‘남편’으로 등록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라이프 파트너스’는 서로에게 헌신적인 두 여자의 친밀함과 그 중 한 명에게 연인이 생겼을 때 두 사람의 우정이 어떻게 변질돼 가는지를 조명하는 사례 연구다.
페이지는 이성애자이고 사샤는 동성애자다. 하지만 이들의 성정체성은 관객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사샤가 커밍아웃하는 대목이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장면, 혹은 그녀가 자신의 절친을 남몰래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라이프 파트너스’가 정체성을 다루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어떤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지를 묻지 않는다는 말이다. “난 너 빼곤 모든 사람이 끔찍해. 그게 우리의 문제야.” 영화 초반부에 두 사람이 침대에서 빈둥거리며 틴더(Tinder, 스마트폰 데이팅앱)에 소개된 남자와 여자들을 훑어보다가 사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미스터의 실제 남편인 애덤 브로디가 틴더를 통해 페이지와 만나 약혼을 하게 되는 팀 역으로 나온다. (이 영화는 스마트폰 데이팅 앱을 통해 알게 된 사람과 실제로 연인이 됐을 때 느끼는 좌절감을 보여준다.) ‘라이프 파트너스’에서 팀은 일종의 로맨틱한 장식물에 불과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샤와 페이지의 관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도 않으며 삼각관계를 형성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두 사람의 성장을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를 통해 페이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사샤는 자기중심적인 얼간이들과의 데이트를 그만두고 뮤지션이 되려던 이전의 꿈을 다시 고려하게 된다.
브로디는 나와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 팀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영감을 자신의 동생에게서 얻었다고 말했다. “동생은 신시내티에서 생화학자로 일하는데 현대적인 것을 싫어하는 반(反)문화적 히피족이다.” 그는 수염을 볼품없게 기른 남자 역할을 하니 해방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TV 드라마 시리즈 ‘디 오씨(The O.C.)’의 냉소적인 세스 코언 역(이 역할은 브로디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을 연상케 하는 고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했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는 TV드라마 시리즈 ‘가십 걸(Gossip Girl)’의 사랑스러운 주인공 블레어 월도프 역으로 인기를 얻은 미스터에게도 도약의 기회가 됐다. ‘라이프 파트너스’에서 그녀는 냉소적이고 불안한 성격의 사샤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내가 과거에 알았던 누군가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다.
‘라이프 파트너스’를 이끌고 가는 긴장감은 변화와 성장을 향한 치열한 싸움이다. 사샤와 페이지는 둘 다 30세를 목전에 두고 있다. 사회적으로 직업과 연애 측면에서 정착할 때라고 여겨지는 시기다. 사샤는 시종일관 음악 사업에서 “성공하려는” 오래된 꿈과 씨름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인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 반면 완고한 성격의 변호사인 페이지는 문제의 다른 측면을 보지 못한다.
‘라이프 파트너스’는 2011년 포겔과 레프코위츠가 쓴 단막극으로 시작했다. 영화의 감독을 맡은 포겔은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치색 짙었던 그 연극의 밑바탕엔 한 가지 협정이 깔려 있었다고 말했다. 절친인 여성 두 명(한 사람은 레즈비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성애자다)이 동성 결혼이 합법화될 때까지는 둘 중 누구도 결혼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맺는다. 실제로 절친 사이인 포겔과 레프코위츠는 만약 이성애자인 포겔만 결혼을 하게 되고 동성애자인 레프코위츠는 결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 얼마나 난감할까를 이야기하다가 그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포겔과 레프코위츠는 선댄스 랩(Sundance Lab, 신인 감독의 장편영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제도)에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 초고를 바탕으로 워크숍을 열었다. 그 워크숍에 참여했던 크리스틴 벨과 리지 캐플런이 영화에 출연할 가능성이 한때 거론됐었지만 페이지 역은 결국 질리언 제이콥스에게 돌아갔다. 제이콥스는 포겔과 레프코위츠가 이전에 HBO의 한 프로그램에서 함께 작업했던 배우다. 그리고 ‘가십 걸’의 팬이라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포겔은 미스터를 딱 한번 만나 보고 그녀를 사샤로 캐스팅했다. 포겔은 이렇게 말했다. “월도프 역을 연기했던 여배우를 말괄량이 레즈비언으로 캐스팅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 역할을 정말 잘 해내리라고 믿었다.”
우연히도 미국 연방대법원이 결혼보호법(DOMA, 결혼을 이성 간의 결합으로 규정하고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법)을 위헌으로 판결한 2013년 6월 26일 ‘라이프 파트너스’의 1차편집본이 나왔다.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거의 전부가 여성이며 그 중 대다수가 레즈비언이다)가 환호했다. 하지만 포겔은 그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영화 제작이 이미 끝난 시점에 이런 판결이 나오는 바람에 줄거리의 중심축을 이루는 두 친구 사이의 결혼 협정이 무의미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화의 밑바닥에 깔린 정치적 줄거리를 편집했다. ‘라이프 파트너스’의 배경을 결혼보호법 폐지 이후로 설정했다. 두 주인공이 동성 결혼을 방지하기 위한 정치적 불평등에 맞서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오프닝 장면이 동성 결혼을 축하하는 게이 프라이드 행사로 시작된다.
‘라이프 파트너스’는 요즘 TV와 영화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과도현실적(hyper-real,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코미디 중 하나다. 샌드라 불록과 멜리사 매카시가 주연한 버디 코미디 ‘더 히트(The Heat)’와 에이미 포엘러가 제작한 ‘브로드 시티(Broad City)’가 대표적이다. 두 여자 주인공(동성애자인 경우가 종종 있다)이 곤경에 부닥치고, 사랑에 빠지고, 지극히 인간적인 문제들을 겪으면서 자기 자신과 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는 줄거리다. 두 여주인공은 남자 이야기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지나친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싸움을 걸지도 않는다. 현실처럼 실감이 난다.
질리언 제이콥스는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 코미디계의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좋다”고 말했다. “요즘은 기분이 참 좋다. 훌륭한 여자 코미디언을 많이 만났다. 에이디 브라이언트와 케이트 매키넌은 최고의 코미디언이다. 티그 노타로 역시 놀라운 연기자다. 코미디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여자 배우들이 많아서 정말 신난다.” 미스터도 같은 생각이다. “최근 아주 멋지고 복잡한 여자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새로운 배우들을 만났다. 여자가 홀로 우뚝 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라이프 파트너스’는 ‘프랫 팩(1990년대 이후 흥행에 성공한 다수의 미국 코미디 영화에 함께 출연한 남자 코미디 배우들을 일컫는 말. 벤 스틸러, 잭 블랙, 오웬 윌슨 등이 여기 속한다.)’이 유행시킨 남자의 우정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에 반기를 들어 두 여자 사이의 우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남자의 우정과 여자의 우정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차이점을 보여준다. “여자들 사이의 우정은 서로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사랑하며 매우 친밀한 경우가 많다. 동시에 지극히 상호의존적이다. 일종의 불안감이 그 우정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미스터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여자의 우정에는 남자의 우정에서 찾아보기 힘든 취약성과 친밀성이 존재한다. ‘라이프 파트너스’는 사샤와 페이지의 우정에서 이런 측면을 부각시킨다. 에로틱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동료나 자매 사이의 사랑에 가깝다. ‘라이프 파트너스’는 2014년 봄 트리베카 영화제 시사회에서 “관객을 매료시켰다”고 브로디가 말했다. “영화 속의 농담 한 마디 한 마디가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매년 열리는 대표적인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영화제 아웃페스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포겔은 여자의 우정과 관계의 복잡성을 분석하는 진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런 영화들은 아직까지도 주로 인디 영화계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더 넓어진다. 특히 이런 작품에 스타 배우들이 캐스팅된다는 점이 이들 영화를 주류 쪽으로 옮겨가는 데 도움이 된다. ‘라이프 파트너스’가 인생을 바꿀 만한 작품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을 웃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라이프 파트너 또는 절친을 따뜻하게 포옹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축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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