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슈
정부의 건보료 개혁 중단 논란 - 안 할 일은 하고 할 일은 안 해
- 정부의 건보료 개혁 중단 논란 - 안 할 일은 하고 할 일은 안 해

소득 없는데 더 내고, 부자는 덜 내는 건보료

그럴 만했다. 건보료의 기본 부과체계는 약 40년 전에 설계 됐는데 큰 틀을 바꾸지 않고 미세 조정만 해온 탓에 담당 공무원도 모를 정도로 구조가 복잡해졌다. 워낙 모순이 많아 형평성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초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주인집에 ‘죄송하다’는 메모와 밀린 공과금을 남기고 두 딸과 자살한 사건이다. 당시 세대주였던 어머니가 소득이 없는데도 지역가입자로 매달 5만원 가량의 건보료를 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퇴임하면서 “송파 세 모녀도 건보료를 내는데 퇴직 이후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자격이 바뀌는 나는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며 “현행 건보료 체계는 매우 불합리하다”는 내용의 글을 블로그에 올려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소득을 중심으로 동일한 보험료 부과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국제·보편적 상식”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지적대로 기획단은 ‘소득 중심의 단일한 보험료 체계를 구축한다’는 기본 원칙을 세웠다. 현행 건보료 체계의 문제점은 크게 ‘재산을 기준으로 한 부과체계’와 ‘무임승차’다. 고정 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는 별 고민이 없는데 지역가입자가 문제였다. 당장 소득이 없는데도 재산이나 자동차를 근거로 보험료를 매기니 당장 낼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보험료를 부과했다. ‘직장 그만두고 나니 보험료가 더 늘었다’는 은퇴자의 불만도 그래서 나왔다. 직장에 다닐 땐 보험료를 회사와 반반씩 부담하지만 직장을 나와 지역가입자로 전환하면 전부 본인이 내는데다, 아파트와 자동차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보험료를 매기니 황당할 만하다. 심지어 빚을 내 집을 사도 건보료를 더 내야 한다.
이와 달리 돈 좀 있다는 사람은 피해갈 여지가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의 피부양자가 되는 것. 자식이든 아내든 관계없다. 재산이 9억원 이하거나 연금과 금융소득이 각각 연 4000만원 이하면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낸다. 직장가입자 중에서도 무임승차자가 적지 않았다. 근로소득만 있는 경우는 월 소득의 6.07%를 개인과 회사가 절반씩 부담하면 끝이다. 근로 외 소득이 있는 경우엔 기존 건보료에다 추가로 더 내도록 설계돼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오피스텔 등 임대업으로 돈을 벌거나 부업을 하는 경우다. 문제는 근로 외 소득으로 평가하는 기준이연 7200만원으로 매우 높다는 점이다. 근로 외 소득을 버는 사람은 217만명(2011년)이나 되지만 이 중 건보료를 추가로 내는 사람은 약 1.5%인 3만2000명 밖에 안 된다.
‘구조개혁 산으로 가나’ 반발에 청와대도 움찔
무책임한 후퇴라는 반발이 거세지자 청와대가 수습에 나섰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문 장관의 연기 발언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 확보를 위해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적으로 장관이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결정 이면에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었다. 이와 함께 민 대변인은 “백지화가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꼬였다. 강한 국민적 반발이 부딪히자 복지부는 30일 연 소득 500만원 이하 저소득 지역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매기는 기준을 올해 상반기 중에 조정하기로 했다. 1단계로 취약계층의 보험료 부담을 덜어주고, 내년에 부과체계를 전면적으로 손 본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을 감안할 때 ‘사실상 개편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건 변함이 없다. 이‘ 른 시일 내에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해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다. 연말정산으로 불과 열흘 전 홍역을 치른 정부가 다시 또 입장을 바꾸면 그야말로 신뢰는 땅으로 떨어진다. 무슨 일을 해도 일처리가 깔끔하지 않다. 집권 3년차 개혁의 속도를 높이겠다던 정부가 연초부터 수렁 속을 헤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MAGAZINE
MAGAZINE
Klout
Klout
섹션 하이라이트
섹션 하이라이트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 모아보기
- 일간스포츠
- 이데일리
- 마켓in
- 팜이데일리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尹, 사저정치 시동거나…'윤어게인 신당' 주역들과 회동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김종민·에일리·심현섭, 오늘(20일) 결혼… 연예인 하객들 바쁘겠네 [왓IS]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1만원대 맞아?” BBQ 치킨에 짬뽕 무한리필 끝판왕 뷔페[먹어보고서]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한화에어로 유증 여전히 물음표…또 제동 걸렸다[위클리IB]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국내 TPD 회사는 저평가 되었나…당면한 숙제는 '임상'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