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악동 통치자?
최후의 악동 통치자?
지난해 7월 1일 아침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시작됐다. 한국계 미국인 피터 한(74)은 중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자치주에 있는 투먼에 오래 전 정착했다. 북한과 국경을 맞댄 도시다. 인구 14만 명 중 절반 이상이 조선족이다. 한 씨는 그곳을 절대로 따분하고 우울하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투먼 주민은 황량한 국경에 접한 지역의 거주민이 대부분 그렇듯이 중국 동부의 여타 지역보다 더 가난하다. 한 씨는 1997년 투먼에서 아내 유니스(67)와 함께 가게를 차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일생일대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였다. 국경선 양쪽의 가난한 주민을 돕는 자선사업을 말한다. 그는 특히 북한 쪽에 사는 주민에게 각별한 애착을 가졌다. 1942년 평양에서 동쪽으로 약 145㎞ 떨어진 원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이 월남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원산에서 보냈다. 거의 20년 전 중국으로 이주한 한 씨는 투먼에 직업학교를 세워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에게 요리부터 자동차 수리, 영어까지 모든 것을 가르쳤다. 그는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릴 목적으로 국경의 북한 쪽에 대규모 제과점을 열어 중국에서 밀과 밀가루를 들여갔다. 그 다음 비료 공장을 설립했고, 북한의 동북단에 위치한 새로운 ‘특별경제구역’에 식품가공 공장을 세웠다. “우린 하루에 2만2000명을 먹였다”고 한 씨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 신문 기자에게 말했다.
한 씨가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으로 이주하기로 한 결정과 그 후 그가 행한 모든 자선사업의 핵심에는 종교가 자리한다. 북한 주민을 돕는 구호단체와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한 씨도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다. 세계에서 가장 횡포한 정권 아래서 시달리며 지구상에서 가장 불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북한 주민을 돕는 것이 자신의 신성한 의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난해 7월 1일 아침 한 씨의 세계가 무너져 내린 것도 바로 종교 때문이었다.
한 씨는 그곳의 기독교 선교사와 운동가들이 추구하는 일을 하다가 국경 양쪽에서 관용 정신이 사라지면서 또 다른 희생양이 됐다. 동쪽에는 김정은, 서쪽에는 시진핑이 통치하는 나라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한 씨는 지난해 7월 1일 아침 중국 당국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다가 4개월 뒤 정식으로 구속됐다.
3년 전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됐을 때 그에 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었다. 늘 그렇듯이 북한은 ‘은둔의 왕국(Hermit Kingdom)’이기 때문이었다. 북한을 통치하는 왕조 정권에서 그의 부친이던 김정일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걸핏하면 돌발적인 행동으로 세계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김정일 아래서 북한 주민은 최악의 기아를 겪었다. 1990년대 북한 주민 최소 50만 명이 굶주려 사망했다. 그 와중에도 김정일은 핵폭탄을 제조했다. 이제 핵무기가 북한 안보의 초석이 되면서 ‘우리를 건드리면 호되게 당할 거야’라는 메시지에 힘이 실렸다.
김정은은 스위스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유학했다. 그래서 북한을 취재하는 외국 기자들은 그를 아는 사람을 통해 그에 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거기서 알려진 내용은 놀라우면서도 고무적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미국 프로농구(NBA)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돋보였다. 그는 1990년대 시카고 불스 팀의 팬으로 마이클 조던과 데니스 로드먼 둘 다를 아이돌로 삼았다고 알려졌다. 정상적인 사람임을 시사하는 그런 조짐을 기자들은 길조로 생각했다. 우스꽝스런 선글라스와 바보 같은 머리 스타일을 한 그의 부친 김정일은 전형적인 이블 박사(Dr. Evil, 영화 ‘오스틴 파워’에 나온 악당)로 통했지만 젊고 통통한 그의 아들은 결코 그렇게 되진 않으리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게다가 김정은은 너무도 어리고(부친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그는 29세였다) 경험이 일천해 나라를 오래 통치할 역량이 없어 보였다. 나라 일은 당연히 고모부 장성택이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장성택은 북한의 권력 서열 2위로 2011년 12월 평양 거리에서 김정일의 관을 실은 운구차 곁에서 행진한 7명의 원로 실력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중국인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북한의 섭정 통치할 게 뻔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장밋빛 기대와 예측은 몽상으로 판명 났다. 멀리서 북한 정세를 추적하려는 기자들이 그 다음 주워들은 새로운 소식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김정은이 서방에서 섭정 통치자로 예측되던 장성택을 처형했다는 소식이었다. 장성택이 발가벗겨진 채 굶주린 개 120마리에게 산채로 먹이로 던져졌다는 확인 불가능한 소문도 흘러나왔다. 갑자기 스위스에서 로드먼의 유니폼을 입고 농구를 즐기던 젊은 김정은의 귀여운 모습이 무시무시한 악동으로 변했다.
그 다음 소니영화사가 만든 영화 ‘더 인터뷰(The Interview)’를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김정은이 우스꽝스런 미국 방송 기자 두 명에게 암살당하는 약골 지도자로 그려진 코미디 영화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소니영화사가 기이한 해킹을 당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한 정보 요원도 “북한 최고 지도자의 명예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 지나치게 충성적인 수하들이 해킹을 감행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부 세계는 김정은이 어떤 인물인지 더 잘 알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씨의 옛 친구는 서울의 한 커피숍에 앉아 자신도 동료들도 장성택 숙청과 소니영화사 해킹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 역시 기독교 운동가로 오랫동안 중국에서 일하며 북한 주민을 도왔다. 중국 당국이 탈북자를 돕는 일을 언제부터 단속하기 시작했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3년 전 김정은이 정권을 잡았을 때와 거의 일치한다.”
그런 운동가들과 선교사들이 북한 주민을 위해 하는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 씨처럼 북한에 있는 주민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주민을 중국으로 탈출시켜 최종적으로 한국에 안착시키는 일이다.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 탈북 지원 비밀조직)로 불리는 그 프로젝트는 지난 15년 동안 상당히 규모가 커졌다. 현재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약 2만7000명이다. 그들은 가끔 북한의 끔찍한 실정을 들려준다. 당연히 김정은이 불쾌해 하고 당혹스러워할 이야기다.
대개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척에게 돈을 송금하며 가족들을 데려가려고 탈북 지원단체와 협력하기도 한다. 북한의 가족과 종종 전화 통화도 가능해 바깥세상의 삶이 어떤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북한 당국에는 언제나 눈엣가시였다.
그 때문에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한 이래 북한 당국이 주민의 탈북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기독교 운동가들은 말했다. 그들과 한국 정부의 소식통에 따르면 우선 북한 국경수비대에 적용되는 정책이 달라졌다. 국경수비대원들은 북한의 중개자가 건네는 뇌물을 받고 주민이 국경을 건너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못 본 체해도 괜찮다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알려졌다. 그 대신 누가 언제 뇌물을 줬는지 정확히 보고해야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처음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중국 당국에 의해 강제로 송환된 주민의 처벌도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엔 그들이 수년 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소식통에 따르면 지금은 ‘재교육 수용소’(강제노동 수용소)에서 비교적 단기간 복역하는 처벌로 바뀌었다.
그런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탈북 지원 비밀 프로젝트에 관련된 소식통들에 따르면 정확한 추정은 불가능하지만 지난해 탈북자 수가 김정일의 통치 마지막 해였던 2011년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한국 통일부 추정에 따르면 그 수는 2011년 약 3000명이었지만 지난해엔 1400명 미만이었다.
한 씨의 동료들은 그가 10년 이상 탈북 지원 비밀 프로젝트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직업학교 운영과 북한 주민 먹여 살리기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 씨는 그런 비밀 조직에 관여하면 북한에 사는 주민을 돕기가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런 조직과 거리를 뒀다.”
현 상황에서 분명하지 않은 것은 주민의 탈북을 막으려는 김정은의 노력이 그들을 돕는 사람들을 단속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과 맞물렸는지 여부다. 중국 정부는 북한 요원들이 국경을 넘어와 탈북자를 체포해 갈 수 있도록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는 중국이 북한에 별다른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통상적인 시각이다. 거기엔 아주 명확한 한 가지 이유가 있다.
2012년 11월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에 오른 이래 맹방이던 북한과 중국 관계는 잘해야 냉랭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진핑은 김정은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미숙하며 지도자로서 함량 미달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을 막으려고 애썼다. 동북아 지역의 정보통에 따르면 김정은은 핵실험을 강행하고 싶어 안달이다. 한국의 한 관리는 “중국은 북한 측에 또 핵실험을 강행하면 더는 감싸주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진핑은 한국에 매력 공세를 펼쳤다. 그는 북한을 방문하거나 김정은을 베이징에 초청하기도 전인 지난해 7월 먼저 한국을 방문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중국은 북한과 공조 여부를 떠나 탈북자의 중국 유입을 막고 중국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운동가를 단속해야 하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지난해 12월 탈영한 북한군 병사가 두만강 건너편에 위치한 난핑으로 건너가 강도짓을 하려다가 중국인 4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기독교 운동가의 단속은 그 사건에 앞서 시행됐다. 시진핑은 국가주의자다. ‘아메리칸 드림’을 찬양하는 미국 정치인처럼 그도 ‘중국의 꿈’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그런 국가주의는 중국에서 외국의 영향력과 관련된 문제가 대두될 때 특히 더 강경해진다. 그는 외국 기술·미디어 업체를 강압적으로 다룬다. 한술 더 떠 지금 중국 정부는 중국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라 있는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상용 온라인 네트워크마저 차단하려고 한다.
시진핑의 외국 영향력 불신은 종교까지 확장된다. 기독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였다. 현재 중국에는 정부가 승인한 ‘공식’ 교회도 있고 가정집에서 은밀하게 예배를 볼 수 있는 ‘지하교회’도 있다(그런 지하교회가 복음주의 기독교 운동가들에 의해 가장 크게 성장했다). 중국 인구 13억 명 중에서 교회를 찾는 기독교인이 약 7000만 명에 이른다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지난여름 중국 정부는 기독교인이 많은 저장성 원저우에서 새로 들어선 교회 하나를 철거하며 기독교 단속의 포문을 열었다. 대규모 항의 시위가 따랐지만 당국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기독교 운동가들은 그런 조치를 두고 중국에서 지하교회의 지속적인 성장이 더는 용인될 수 없다는 분명한 경고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NGO나 구호단체와 일하는 외국인 운동가들이 당국의 손쉬운 표적이다. 한 씨는 지난해 7월 가택연금을 당하면서 모든 자산도 동결됐다(그의 여러 사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중국에서 활동하던 기독교 구호요원인 캐나다 부부 케빈과 줄리아 개럿이 체포됐다. 혐의는 군사기밀을 훔친 간첩 행위였다.
개럿 부부는 북한 접경 도시인 중국 단둥에서 커피숍을 운영했다. 여러 운동가에 따르면 그 수익금은 북한 주민을 돕는데 사용됐다. 개럿 부부를 잘 알며 중국·북한 양쪽에 연줄이 있는 한 기독교 운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군사기밀을 훔친 혐의를 받는다는 사실은 중국 당국이 우리 같은 사람을 다룰 때 이젠 그럴 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가 웃을 만큼 터무니없는 혐의라는 얘기다.”
운동가들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구호요원 수백 명(거의 전부 기독교인)이 중국에서 추방됐다. 추방은 주로 비자 갱신을 거부하는 방식을 통해 이뤄졌다.
기독교인 중 일부는 한 씨가 체포된 것이 미국 정부의 불필요한 도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2013년 봄 중국-북한 국경 지대를 보란 듯이 방문해 한 씨의 직업학교 학생들과 만났다.
미 국무부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미국인이 베푸는 선행을 강조하기 위한 방문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중국 정부는 심히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중국 안팎의 운동가들은 입을 모았다. 킹 특사는 다음해 여름인 2014년 8월 다시 중국-북한 국경 지대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한 씨의 가택연금은 7월 1일 시작됐다. 선교사들과 한 씨의 친구들은 그 두 날짜가 심상찮은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한 씨는 중국에서 오래 지내며 많은 경험을 했음에도 어쩌면 너무 순진하게 행동했을지 모른다. 그는 북한 주민 구호 프로젝트에 자원봉사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유엔의 도움을 얻으려고 계획을 세웠다. 중국에서 그런 새로운 조직을 만들려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의욕이 너무 앞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친구는 “중국에선 그런 일이 전혀 가망 없다는 사실을 그가 먼저 알아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중국 당국은 한 씨를 정식으로 구속해 룽징의 한 구치소에 수감했다. 당국에 따르면 그는 횡령과 허위 송장 발급 혐의를 받고 있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수년 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는 죄목이다. 한 씨의 변호인 장페이훙은 그 혐의를 두고 “근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한 씨의 가족은 불만이 많다. 선양 주재 미 영사관 직원들이 매달 그를 방문하지만 그가 전립선 장애 치료에 필요한 약을 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미국 정부가 합당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한다. 미 국무부는 한 씨의 석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씨의 부인 유니스는 남편이 가택연금당하자 즉시 서울로 탈출해 아직 일정이 잡히지도 않은 남편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재판을 앞둔 상황을 고려해 유니스는 언론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그녀는 서울에 도착했을 때 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 정부가 외국 NGO의 북한 주민 돕기를 원치 않는 듯하다. 예전엔 우리를 간섭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런 활동을 엄중히 단속한다.”
그 말이 사실인 듯하다. 김정은이 중국 지도부의 존경은 받지 못한다고 해도 그런 정책은 바로 그가 바라는 바다. 시진핑이 베이징에서 그랬듯이 김정은도 대다수의 기대에 반해 평양에서 권력을 확실히 장악했다. 그는 철권으로 북한을 통치하려고 작심한 게 분명하다. 올해 서른 두 살이기 때문에 그가 권좌에 머무는 기간은 아주 길 듯하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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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먼 주민은 황량한 국경에 접한 지역의 거주민이 대부분 그렇듯이 중국 동부의 여타 지역보다 더 가난하다. 한 씨는 1997년 투먼에서 아내 유니스(67)와 함께 가게를 차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일생일대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였다. 국경선 양쪽의 가난한 주민을 돕는 자선사업을 말한다. 그는 특히 북한 쪽에 사는 주민에게 각별한 애착을 가졌다. 1942년 평양에서 동쪽으로 약 145㎞ 떨어진 원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이 월남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원산에서 보냈다.
예상치 못했던 김정은의 권력 장악
한 씨가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으로 이주하기로 한 결정과 그 후 그가 행한 모든 자선사업의 핵심에는 종교가 자리한다. 북한 주민을 돕는 구호단체와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한 씨도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다. 세계에서 가장 횡포한 정권 아래서 시달리며 지구상에서 가장 불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북한 주민을 돕는 것이 자신의 신성한 의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난해 7월 1일 아침 한 씨의 세계가 무너져 내린 것도 바로 종교 때문이었다.
한 씨는 그곳의 기독교 선교사와 운동가들이 추구하는 일을 하다가 국경 양쪽에서 관용 정신이 사라지면서 또 다른 희생양이 됐다. 동쪽에는 김정은, 서쪽에는 시진핑이 통치하는 나라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한 씨는 지난해 7월 1일 아침 중국 당국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다가 4개월 뒤 정식으로 구속됐다.
3년 전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됐을 때 그에 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었다. 늘 그렇듯이 북한은 ‘은둔의 왕국(Hermit Kingdom)’이기 때문이었다. 북한을 통치하는 왕조 정권에서 그의 부친이던 김정일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걸핏하면 돌발적인 행동으로 세계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김정일 아래서 북한 주민은 최악의 기아를 겪었다. 1990년대 북한 주민 최소 50만 명이 굶주려 사망했다. 그 와중에도 김정일은 핵폭탄을 제조했다. 이제 핵무기가 북한 안보의 초석이 되면서 ‘우리를 건드리면 호되게 당할 거야’라는 메시지에 힘이 실렸다.
김정은은 스위스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유학했다. 그래서 북한을 취재하는 외국 기자들은 그를 아는 사람을 통해 그에 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거기서 알려진 내용은 놀라우면서도 고무적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미국 프로농구(NBA)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돋보였다. 그는 1990년대 시카고 불스 팀의 팬으로 마이클 조던과 데니스 로드먼 둘 다를 아이돌로 삼았다고 알려졌다. 정상적인 사람임을 시사하는 그런 조짐을 기자들은 길조로 생각했다. 우스꽝스런 선글라스와 바보 같은 머리 스타일을 한 그의 부친 김정일은 전형적인 이블 박사(Dr. Evil, 영화 ‘오스틴 파워’에 나온 악당)로 통했지만 젊고 통통한 그의 아들은 결코 그렇게 되진 않으리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게다가 김정은은 너무도 어리고(부친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그는 29세였다) 경험이 일천해 나라를 오래 통치할 역량이 없어 보였다. 나라 일은 당연히 고모부 장성택이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장성택은 북한의 권력 서열 2위로 2011년 12월 평양 거리에서 김정일의 관을 실은 운구차 곁에서 행진한 7명의 원로 실력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중국인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북한의 섭정 통치할 게 뻔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장밋빛 기대와 예측은 몽상으로 판명 났다. 멀리서 북한 정세를 추적하려는 기자들이 그 다음 주워들은 새로운 소식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김정은이 서방에서 섭정 통치자로 예측되던 장성택을 처형했다는 소식이었다. 장성택이 발가벗겨진 채 굶주린 개 120마리에게 산채로 먹이로 던져졌다는 확인 불가능한 소문도 흘러나왔다. 갑자기 스위스에서 로드먼의 유니폼을 입고 농구를 즐기던 젊은 김정은의 귀여운 모습이 무시무시한 악동으로 변했다.
그 다음 소니영화사가 만든 영화 ‘더 인터뷰(The Interview)’를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김정은이 우스꽝스런 미국 방송 기자 두 명에게 암살당하는 약골 지도자로 그려진 코미디 영화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소니영화사가 기이한 해킹을 당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한 정보 요원도 “북한 최고 지도자의 명예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 지나치게 충성적인 수하들이 해킹을 감행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부 세계는 김정은이 어떤 인물인지 더 잘 알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씨의 옛 친구는 서울의 한 커피숍에 앉아 자신도 동료들도 장성택 숙청과 소니영화사 해킹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 역시 기독교 운동가로 오랫동안 중국에서 일하며 북한 주민을 도왔다. 중국 당국이 탈북자를 돕는 일을 언제부터 단속하기 시작했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3년 전 김정은이 정권을 잡았을 때와 거의 일치한다.”
그런 운동가들과 선교사들이 북한 주민을 위해 하는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 씨처럼 북한에 있는 주민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주민을 중국으로 탈출시켜 최종적으로 한국에 안착시키는 일이다.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 탈북 지원 비밀조직)로 불리는 그 프로젝트는 지난 15년 동안 상당히 규모가 커졌다. 현재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약 2만7000명이다. 그들은 가끔 북한의 끔찍한 실정을 들려준다. 당연히 김정은이 불쾌해 하고 당혹스러워할 이야기다.
대개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척에게 돈을 송금하며 가족들을 데려가려고 탈북 지원단체와 협력하기도 한다. 북한의 가족과 종종 전화 통화도 가능해 바깥세상의 삶이 어떤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북한 당국에는 언제나 눈엣가시였다.
그 때문에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한 이래 북한 당국이 주민의 탈북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기독교 운동가들은 말했다. 그들과 한국 정부의 소식통에 따르면 우선 북한 국경수비대에 적용되는 정책이 달라졌다. 국경수비대원들은 북한의 중개자가 건네는 뇌물을 받고 주민이 국경을 건너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못 본 체해도 괜찮다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알려졌다. 그 대신 누가 언제 뇌물을 줬는지 정확히 보고해야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처음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중국 당국에 의해 강제로 송환된 주민의 처벌도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엔 그들이 수년 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소식통에 따르면 지금은 ‘재교육 수용소’(강제노동 수용소)에서 비교적 단기간 복역하는 처벌로 바뀌었다.
그런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탈북 지원 비밀 프로젝트에 관련된 소식통들에 따르면 정확한 추정은 불가능하지만 지난해 탈북자 수가 김정일의 통치 마지막 해였던 2011년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한국 통일부 추정에 따르면 그 수는 2011년 약 3000명이었지만 지난해엔 1400명 미만이었다.
한 씨의 동료들은 그가 10년 이상 탈북 지원 비밀 프로젝트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직업학교 운영과 북한 주민 먹여 살리기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 씨는 그런 비밀 조직에 관여하면 북한에 사는 주민을 돕기가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런 조직과 거리를 뒀다.”
현 상황에서 분명하지 않은 것은 주민의 탈북을 막으려는 김정은의 노력이 그들을 돕는 사람들을 단속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과 맞물렸는지 여부다. 중국 정부는 북한 요원들이 국경을 넘어와 탈북자를 체포해 갈 수 있도록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는 중국이 북한에 별다른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통상적인 시각이다. 거기엔 아주 명확한 한 가지 이유가 있다.
2012년 11월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에 오른 이래 맹방이던 북한과 중국 관계는 잘해야 냉랭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진핑은 김정은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미숙하며 지도자로서 함량 미달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을 막으려고 애썼다. 동북아 지역의 정보통에 따르면 김정은은 핵실험을 강행하고 싶어 안달이다. 한국의 한 관리는 “중국은 북한 측에 또 핵실험을 강행하면 더는 감싸주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다.
기독교 선교사들의 수난
중국은 북한과 공조 여부를 떠나 탈북자의 중국 유입을 막고 중국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운동가를 단속해야 하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지난해 12월 탈영한 북한군 병사가 두만강 건너편에 위치한 난핑으로 건너가 강도짓을 하려다가 중국인 4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기독교 운동가의 단속은 그 사건에 앞서 시행됐다. 시진핑은 국가주의자다. ‘아메리칸 드림’을 찬양하는 미국 정치인처럼 그도 ‘중국의 꿈’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그런 국가주의는 중국에서 외국의 영향력과 관련된 문제가 대두될 때 특히 더 강경해진다. 그는 외국 기술·미디어 업체를 강압적으로 다룬다. 한술 더 떠 지금 중국 정부는 중국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라 있는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상용 온라인 네트워크마저 차단하려고 한다.
시진핑의 외국 영향력 불신은 종교까지 확장된다. 기독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였다. 현재 중국에는 정부가 승인한 ‘공식’ 교회도 있고 가정집에서 은밀하게 예배를 볼 수 있는 ‘지하교회’도 있다(그런 지하교회가 복음주의 기독교 운동가들에 의해 가장 크게 성장했다). 중국 인구 13억 명 중에서 교회를 찾는 기독교인이 약 7000만 명에 이른다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지난여름 중국 정부는 기독교인이 많은 저장성 원저우에서 새로 들어선 교회 하나를 철거하며 기독교 단속의 포문을 열었다. 대규모 항의 시위가 따랐지만 당국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기독교 운동가들은 그런 조치를 두고 중국에서 지하교회의 지속적인 성장이 더는 용인될 수 없다는 분명한 경고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NGO나 구호단체와 일하는 외국인 운동가들이 당국의 손쉬운 표적이다. 한 씨는 지난해 7월 가택연금을 당하면서 모든 자산도 동결됐다(그의 여러 사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중국에서 활동하던 기독교 구호요원인 캐나다 부부 케빈과 줄리아 개럿이 체포됐다. 혐의는 군사기밀을 훔친 간첩 행위였다.
개럿 부부는 북한 접경 도시인 중국 단둥에서 커피숍을 운영했다. 여러 운동가에 따르면 그 수익금은 북한 주민을 돕는데 사용됐다. 개럿 부부를 잘 알며 중국·북한 양쪽에 연줄이 있는 한 기독교 운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군사기밀을 훔친 혐의를 받는다는 사실은 중국 당국이 우리 같은 사람을 다룰 때 이젠 그럴 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가 웃을 만큼 터무니없는 혐의라는 얘기다.”
운동가들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구호요원 수백 명(거의 전부 기독교인)이 중국에서 추방됐다. 추방은 주로 비자 갱신을 거부하는 방식을 통해 이뤄졌다.
기독교인 중 일부는 한 씨가 체포된 것이 미국 정부의 불필요한 도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2013년 봄 중국-북한 국경 지대를 보란 듯이 방문해 한 씨의 직업학교 학생들과 만났다.
미 국무부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미국인이 베푸는 선행을 강조하기 위한 방문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중국 정부는 심히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중국 안팎의 운동가들은 입을 모았다. 킹 특사는 다음해 여름인 2014년 8월 다시 중국-북한 국경 지대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한 씨의 가택연금은 7월 1일 시작됐다. 선교사들과 한 씨의 친구들은 그 두 날짜가 심상찮은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한 씨는 중국에서 오래 지내며 많은 경험을 했음에도 어쩌면 너무 순진하게 행동했을지 모른다. 그는 북한 주민 구호 프로젝트에 자원봉사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유엔의 도움을 얻으려고 계획을 세웠다. 중국에서 그런 새로운 조직을 만들려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의욕이 너무 앞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친구는 “중국에선 그런 일이 전혀 가망 없다는 사실을 그가 먼저 알아야 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미국 견제 포석?
지금까지 한 씨의 가족은 불만이 많다. 선양 주재 미 영사관 직원들이 매달 그를 방문하지만 그가 전립선 장애 치료에 필요한 약을 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미국 정부가 합당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한다. 미 국무부는 한 씨의 석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씨의 부인 유니스는 남편이 가택연금당하자 즉시 서울로 탈출해 아직 일정이 잡히지도 않은 남편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재판을 앞둔 상황을 고려해 유니스는 언론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그녀는 서울에 도착했을 때 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 정부가 외국 NGO의 북한 주민 돕기를 원치 않는 듯하다. 예전엔 우리를 간섭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런 활동을 엄중히 단속한다.”
그 말이 사실인 듯하다. 김정은이 중국 지도부의 존경은 받지 못한다고 해도 그런 정책은 바로 그가 바라는 바다. 시진핑이 베이징에서 그랬듯이 김정은도 대다수의 기대에 반해 평양에서 권력을 확실히 장악했다. 그는 철권으로 북한을 통치하려고 작심한 게 분명하다. 올해 서른 두 살이기 때문에 그가 권좌에 머무는 기간은 아주 길 듯하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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