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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기오염의 불편한 진실

중국 대기오염의 불편한 진실

차이징은 다큐멘터리 ‘돔 아래에서’를 TED 강연 형식으로 제작했다. 커다란 스크린에 자료화면을 띄워가며 중국의 환경법규 시행 실패를 폭로한다.
중국의 대기오염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돔 아래에서(穹頂之下)’가 중국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 국영 CCTV 앵커 출신인 차이징(39)이 제작한 이 작품은 지난 2월 28일 온라인에 게시된 지 36시간 만에 조회수 1억 건을 돌파했다.

중국의 주요 온라인 비디오 플랫폼(OVP)에 게시된 1시간 44분 길이의 이 다큐멘터리는 대기오염 문제 해결에 관한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주요 도시 대다수가 세계 최악의 대기오염 도시로 꼽힌다. 최근에는 왕안순 베이징 시장이 베이징은 스모그 때문에 “살 수 없는 곳”이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부동산 재벌 판스이는 차이징을 영웅으로 묘사했고, CCTV의 전 동료 앵커 쿠이용위안은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말하면서 CCTV가 그런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한탄했다.

차이징은 2003년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 파동, 중국 석탄 생산 중심지인 샨시성의 폐질환과 공해 등을 다룬 심층보도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지난해 아기를 낳고 직장을 그만둔 뒤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그 깊이가 훨씬 더해졌다. TED 강연 형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에서 차이징은 대형 스크린에 자료화면을 띄워가며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다. 환경법규 시행 실패를 폭로하는 내용이 중국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다양한 대상이 비난의 도마 위에 올랐지만 특히 청정 휘발유 생산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국영 석유회사들에 비난이 집중됐다.

지난 1월 베이징 천단공원을 찾은 관광객들이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를 쓴 채 걷고 있다.
차이징은 자신의 딸이 (양성) 뇌종양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중국 환경 문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대목은 다큐멘터리에 한층 더 힘을 실어줬다. “설득력 있는 사실과 전문가 인터뷰, 열정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이 이 다큐멘터리를 매우 감동적으로 만들었다”고 시카고대 정치학교수로 베이징에서 중국의 환경정책 시행을 연구하는 달리 L 양이 말했다.

중국에서 대기오염은 새로운 화제가 아니다. 2012년 정부는 열띤 온라인 토론에서 비롯된 대중의 압력에 굴복해 전국 대도시의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초미세먼지(PM2.5) 수준을 발표했다. 유명 영화감독 지아장커는 최근 그린피스 동아시아 지부의 의뢰로 대기오염이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단편영화 ‘스모그 여행(Smog Journeys)’을 제작했다. 또 지난해 초에는 스모그에 관한 노래가 담긴 비디오가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차이징이 자비 15만 달러 이상을 들여 만들었다는 ‘돔 아래에서’는 관계자 접근능력(그녀는 정부의 전·현직 고위 관리와 영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과 사실에 기반을 둔 상세한 설명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감정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중국 국영 언론으로부터 든든한 지지를 받았다. 관영 인민일보가 이 다큐멘터리와 관련해 차이징을 인터뷰한 장문의 기사를 내보냈다. 또 중국의 신임 환경보호부장관 천지닝은 공식석상에서 차이징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들어온 중국 환경보호부에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양 교수는 말했다. “신임 환경보호부장관은 지방 당국에 환경법 시행을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시장 2명을 불러 환경법 시행에 한층 더 힘써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다큐멘터리가 아주 적절한 시기에 나온 셈이다. 게다가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3월 4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 하루 전에 발표됐기 때문에 대회 의제로 상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돔 아래에서’는 중국 환경 문제를 제대로 알 기회가 거의 없었던 젊은이들이 많이 시청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양 교수는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방식과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들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성공은 또 중국 정부가 인터넷의 영향과 갈수록 탐사보도의 경향이 짙어지는 중국 언론을 제어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부터 유명 언론인 여러 명이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CCTV 다큐멘터리 채널의 대표도 여기 포함됐는데 언론 관측통에 따르면 그의 퇴임 이후 이 채널에서는 문제의식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유명 블로거도 여러 명 구속됐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한 전직 신문 편집장 정이종은 최근 정부가 언론 ‘말살’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차이징의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중국 정부가 공해와의 전쟁을 약속한 터라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어쩌면 다큐멘터리에서 비난의 대상으로 삼은 국영 석유 독점기업이 정부 반부패 운동의 초점이라는 사실 또한 도움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3월 2일 일부 웹사이트가 이 다큐멘터리에 관한 소식을 메인 화면에서 내렸다. 차이징의 다큐멘터리가 당국에 ‘불편한 진실’(이 작품에 영감을 준 앨 고어의 환경 다큐 제목이기도 하다)을 제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차이징는 정부에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한편 대중에게는 환경파괴 사례의 신고를 요청했다. 당국도 공식적으로는 신고를 독려하지만 내부고발자는 처벌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 다큐멘터리가 나온 뒤 인터넷에는 정부를 비난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이런 정보는 정부가 제공해야 마땅하다”고 한 인터넷 사용자는 말했다. “한 개인에게 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대기오염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안감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건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지도자들이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였다. 정부는 중국 대도시의 PM2.5 수준 측정치를 제공하는 대기질(air quality) 앱에서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이 제공한 측정치(중국 공공기관들이 제공하는 측정치보다 높은 경우가 종종 있다)를 강제로 지우도록 했다. 당시 삭제된 정보는 아직도 복구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오염은 부유한 중국인이 해외 이민을 원하는 주된 이유로 꼽힌다. 또 지난 2년 동안 베이징의 많은 외국인 거주자(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가 대기오염 때문에 이 도시를 떠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사회운동가 겸 작가 원윈차오는 차이징의 다큐멘터리가 발표되자 트위터에 온라인 해외이민 서비스 광고를 올리면서 “외국으로 떠나기 딱 좋을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민일보의 한 시사평론가는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환경 문제를 비난하면서도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가 자국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역시 “향후 5년 동안 괄목할 만한 진전이 없다면 중국의 환경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차이징의 결론에 공감을 나타냈다.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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