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남용 막아 국내 기업 지킨다
특허 남용 막아 국내 기업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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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창 미국에서 사업을 벌이던 슈프리마에 특허 소송 전문기업에서 소장이 날라왔다. 지루한 법정 다툼 끝에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한숨 돌리고 다시 사업에 힘을 쏟던 2013년 이재원 슈프리마 대표는 끔직한 등기 우편을 받았다. 또 다른 특허 소송 기업이 비슷한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2년간 50억원의 소송 비용과 시간을 날려 보냈다”며 “그냥 합의를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특허권은 고생해서 기술을 개발한 기업과 연구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특허권을 악용해서 수익을 올리는 특허관리회사(NPE)라는 불청객이 등장하는 원인도 제공했다. 특허괴물로 불리는 NPE는 특허권을 교묘하게 이용해 소송을 벌인 다음 이익을 취하는 소송전문기업을 말한다. 글로벌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벌이던 NPE가 최근 들어 한국의 중소기업에까지 소송을 벌이며 타깃으로 삼고 있다.
2008년 중소기업 대상의 특허소송은 불과 5건이었다. 하지만 매년 빠르게 늘어나 지난해는 44건으로 증가했다. 국내 중소기업에 대한 특허 소송이 증가한 데는 한국 중소기업의 기술력 발달이 있다. 고급 기술 개발에 성공한 데다 융·복합 제품이 보편화하면서 특허권의 적용·해석 범위가 넓어졌다. 연구 개발의 확대가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과거 미국·일본 기업의 기술력을 따라가기 급급했던 한국 기업이 이제는 기술 유출과 특허 공격을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오른 것이다. 강민수 광개토연구소 대표변리사는 “스마트폰 하나에만 수많은 기술과 부품이 들어간다”며 “디자인과 서비스까지 더하면 제품 한 개당 수십만 개의 특허 분쟁 가능성이 도사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과 대만 중소기업은 일찌감치 특허 관리에 힘을 써왔다. 이들의 특허 분쟁 역사는 무려 40년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은 대기업조차 특허에 관심을 보인 시기가 25년 전이다. 1989년 삼성전자가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송사를 겪은 것이 본격적으로 특허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다. 중소기업은 그보다도 뒤늦은 2000년대 중반에서야 특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삼성과 LG는 한국에서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이다. 이들의 특허 사랑은 특허권 문제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미국특허상표청(USPTO)에 등록된 한국의 특허는 1만4548건으로 외국인 등록 특허의 10.1%를 차지해 일본(36.0%), 독일(10.7%)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대만(7.7%), 캐나다(4.5%), 프랑스(4.2%), 중국(4.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 미국에 등록된 특허를 살펴보자. 7534건을 취득한 IBM이 22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고 삼성은 4952건으로 지난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LG 전자는 2122건으로 9위에 올랐다. 지난해 미국에서 한국기업이 등록한 특허의 54%를 삼성과 LG에서 출원했을 정도다. 김상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만, 독일과 달리 한국은 특허 확보 활동이 일부 대기업에 치중된 불균형 현상이 심각하다”며 “중소·중견기업을 포함한 기업 전반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식재산권 보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록 삼성·LG가 자사 기술 보호를 위해 특허권 등록에는 열심이지만 정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다. 지난 여름 4년간의 분쟁을 정리한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이 좋은 예다. 삼성과 애플은 미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진행하는 모든 특허 소송을 철회하기로 합의했다. 양 사는 2011년부터 미국·한국·독일·일본·네델란드·영국·호주·이탈리아·프랑스 등 9개국에서 서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양사는 소송 철회 이유와 논의 시기에 대해 일절 밝히지 않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양사 모두 만 3년이 넘는 법적 싸움을 벌이면서 실익을 거두기 힘들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휴대폰 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양사 모두 득될 게 없는 법적 싸움에 자원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며 “결국 양사가 실용적으로 판단을 한 것”이라고 봤다.
특허 관련 여러 논란이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특허청은 2006년부터 기업의 지식재산(IP) 역량에 따라 총 3단계로 기업의 선행기술 조사, 국내 권리화 지원, 3개년 전략 컨설팅 등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전체 비용 중에서 10~20% 정도만 부담하면 전문가들에게 특허, 브랜드,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 전반에 걸쳐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특허 관리에 관심은 있지만 경험이 없어 주저하던 800여 개 기업이 이를 통해 지원을 받았다”며 “지난해 지원을 받은 151개 기업(IP스타기업) 특허 출원 건수는 40%, 매출액은 27.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새로운 심사지침을 내놨다. NPE의 우월적 시장지위 남용 행위로 △과도한 실시료(로열티) 부과 △표준필수특허 프랜드 적용 부인 △표준필수특허 원칙 부당 적용 △무분별한 특허소송 제기 및 위협 △NPE 내세워 경쟁사업자 공격하는 행위 등 5가지를 구체적 유형으로 적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적재산권 남용행위에 대한 공정거래법 집행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며 “NPE의 특허권 남용행위를 효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만큼 많은 국내 기업을 보호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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