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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베트남을 찾아라’-미얀마 | 28억명 오가는 아시아 최후의 생산기지

‘제2의 베트남을 찾아라’-미얀마 | 28억명 오가는 아시아 최후의 생산기지

1986년 베트남 정부는 경제 개방을 발표했다. 전선에서 총을 겨눴던 한국과도 화해 무드가 조성됐고, 1991년부터 대우·금호·태광 등이 베트남 개척에 나서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경제 교류가 시작된 지 올해로 25년이다. 그 사이 양국의 거리는 한층 가까워졌다. 한국에게 베트남은 중국을 대체할 최고의 해외 생산기지다. 낮은 인건비와 높은 노동생산성, 안정적인 정치 구조 등 매력이 넘친다. 그러나 중국의 사례에서 봤듯이 베트남의 호조건도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세계 지도를 펼쳐보니 ‘제2의 베트남’이 될 만한 후보가 넘친다. 아직은 ‘미완의 대기’일지 모르나 잠재력만큼은 베트남에 뒤지지 않는다. 포스트 베트남 국가의 현재를 짚어본다.
미얀마 수도 양곤 중심가의 쇼핑몰 ‘정션 스퀘어’ 내부. 우리나라 쇼핑몰과 비슷할 정도로 상품 가격이 비싸다. / 사진:아산정책연구원 제공
“북한의 변화가 꼭 정권 교체여야 할 필요는 없다. 미얀마처럼 평화로운 과정을 거쳐 변화할 수 있다. 미얀마 군부는 스스로 개혁과 개방을 결정했으며 그 결과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이 쏟아지고, 개발 자금이 밀려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얀마를 두 차례나 방문했고, 미얀마 대통령도 미국을 방문하는 등 양국 관계도 크게 변화됐다. 이 같은 미얀마 경제의 전환과 생활의 변화, 국제협력과 지원은 혁명의 대가로 따라온 게 아니라 평화적 과정을 거쳐 이뤄진 것이다.”

2월 4일 미국 워싱턴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면서 한 말이다. 미국 정부의 핵심 당국자가 북한의 개방 모델로 특정 국가를 제시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외교적 수사에 대한 복잡한 해석은 내버려두더라도 왜 하필 미얀마인지에 대해선 관심이 쏠릴 만하다. 최근 미얀마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변화상을 들여다보면 러셀 차관보의 발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6년 전만 해도 참 조용한 도시라 느꼈는데 공사를 안 하는 곳이 없더라고요. 꼭 1990년대 중국 같은 느낌이었어요. 물가도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허름한 호텔 하루 숙박비로 250달러를 달라는 건 정말 충격적이었죠. 그 가격에도 방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도로는 좁은데 차는 어찌나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요. 천지개벽은 이럴 때 쓰는 말이겠죠.”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도심 전체가 공사 현장
최근 미얀마 경제수도 양곤(행정수도는 네피도)을 다녀왔다는 한 중소기업 사장의 말이다. 2011년 미얀마는 50년 간의 군부 독재를 끝내고 경제 개방을 선택했다. 정부가 수출입 통제를 완화하고, 이듬해 미국 등 서방이 경제 제재를 풀자 돈이 돌기 시작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이뤄지면서 양곤 등 대도시에 사람이 몰려들었고, 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2014년 미얀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270달러로 우리나라(2만8739달러)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치지만 롯데리아(2013년 진출)의 햄버거 가격은 오히려 더 비싸다. 호텔 숙박비와 아파트 임대료 평균치도 서울을 웃돌고 있다. 투자자와 자본이 밀려드는데 공급이 부족해 생긴 현상이다.

최근 외국인 투자자의 눈길이 미얀마에 급격히 쏠리는 건 아시아 저개발 국가 중에서도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2013년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전년 동기 대비 189.3% 증가한 41억 달러에 달했다. 개방 이전인 2011년까지만 해도 FDI는 GDP의 14.9%에 불과했지만 2012년 19.6%, 2013년 23.5%로 점차 비중이 커지고 있다. 2012년 11월 외국인투자법이 개정된 이후 달라진 모습이다. 아직은 제조업 생산기지 건설이 대부분이지만 최근엔 전력·교통·통신 등 인프라 투자가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미얀마가 수년간 연평균 8.25%의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 전망하면서 성장의 원동력으로 외국인 투자와 천연가스 생산량의 증가를 꼽았다.

미얀마의 최대 강점은 풍부한 노동력과 천연자원이다. 미얀마의 인구는 약 6200만명으로 세계 20위권이다. 이 중 68%가량이 생산가능인구(15~64세)로 이 비중은 조만간 70%를 넘어선다. 노동력 공급이 수월한 반면 임금은 저렴하다. 미숙련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이 8만 차트(약 8만5000원) 정도로 아시아 제조업 생산기지 중 임금이 가장 저렴하다는 베트남의 절반 수준이다. 천연자원이 많아 개발 여지도 충분하다. 세계 10위 수준의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고, 루비·비취·사파이어 등 귀금속 자원도 풍부하다. 한국의 6배 정도인 넓은 국토 중 절반 이상이 평야라 개발할 땅이 많은 것도 장점이다.
 외국인 투자 몰리며 땅값·물가 천정부지
탁월한 지리적 조건도 몸값을 높인다. 동남아시아 지도를 펴보면 왜 미얀마가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미얀마는 동쪽으로 태국·라오스, 북쪽으로 중국, 서쪽으로 인도·방글라데시와 국경이 맞닿아 있다. 이들 5개국의 인구만 합쳐도 무려 28억명이다. 그동안 미얀마의 폐쇄정책은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 경제권의 연결을 차단하고 있었다. 현재 미얀마에선 아시아 하이웨이 연결 작업이 한창이다. 인도가 미얀마 서쪽 국경에서 내륙으로 100㎞ 구간을, 태국이 동쪽 국경에서 내륙으로 100㎞를 건설해 미얀마가 자체 건설하는 고속도로와 연결하는 계획이다.

이 고속도로는 중국이 건설을 추진 중인 철도와 X자로 교차한다. 중국은 국경 지역 루이리에서 미얀마의 라쇼·만달레이를 거쳐 인도양 항구 카욱푸까지 진출하는 철도 건설 계획을 세우고 미얀마 정부와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 지역 주민의 반대로 사업이 보류된 상황이지만 중국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해 언젠가는 성사될 사업이다. 지난해 세계은행이 조사한 세계 주요국의 물류성과지수(LPI) 순위에서 미얀마는 조사 대상 160개국 중 145위에 머물렀다. 인프라와 통관절차 등 대부분의 평가 항목에서 세계 최저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고속도로와 철도를 통한 물류망이 완성되면 미얀마의 투자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미얀마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도 미얀마의 성장 전망을 밝게한다. 미얀마투자위원회는(MIC)는 지난해 8월 외국인 투자 제한 분야를 크게 완화하고, 합작 기업에 대한 규제를 푸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2013년 1월 발표한 시행령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인데 외국인 투자금지 업종을 21개에서 11개로, 합작대상 업종을 42개에서 30개로 줄이는 게 골자다. 열악한 인프라와 수많은 행정규제 탓에 외국인 투자가 주춤해진 것을 반영한 조치다. 지난해 12월엔 영주권(PR) 제도를 도입해 영주권 취득자에겐 그동안 금지했던 콘도미니엄(한국의 아파트와 유사) 소유도 허가하기로 했다. 사업 때문에 미얀마에 장기간 거주하는데도 신분이 불안정해 불편을 겪는다는 외국인 투자자의 불만을 수용한 것이다. 뛰어난 잠재력과 투자 환경 개선을 눈여겨본 많은 나라가 미얀마에 구애 경쟁을 펼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한 발 앞서 있다. 중국은 인프라 투자에 일본은 경제특구 개발에 적극적이다. 특히 일본은 양곤에서 불과 23㎞ 떨어진 띨라와 경제특구를 미얀마 정부와 공동 개발하고 있다. 미얀마 수출입 물동량의 85%를 담당하는 최대 항구가 있는 곳인데 미쓰비시·마루베니 등이 속한 일본 컨소시엄이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엄청난 규모의 정부 차관을 탕감해주고, 아베 총리가 현지 방문까지 할 정도로 공을 많이 들였다.

우리나라 기업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한국의 미얀마 투자는 대우인터내셔널의 미얀마 가스전 개발이 시작된 2009년부터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속은 그리 알차지 않다. 현재 180여 개의 기업이 진출해 있는데 총 투자액의 절반은 중소기업이 했다. 자원 개발 사업을 제외하면 의류 봉제나 신발 제조와 같은 영세한 제조 생산업체가 대부분이다. 숙박이나 요식업, 금융·보험 등 서비스업 진출은 아직 미미한 상황이다. 미얀마가 중국·베트남의 뒤를 이를 아시아 최후의 생산기지인 동시에 향후 소득 증가에 따라 대규모 소비시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나라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지난해 10월 미얀마 정부는 현지 사무소를 보유한 43개 외국계 은행 중 일본·중국·싱가포르 등 9개 회사에 지점 설립을 허가했다. 우리나라 은행도 진출에 공을 많이 들였지만 실패했다. 금융의 개념이 아예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 매력이 크지만 일찌감치 토양을 닦은 다른 나라들에 밀리는 형국이다. 한 미얀마 현지 사업가는 “중국과 일본은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엄청난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 확실한 투자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과 우 떼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이 각각 한 차례씩 양국을 방문했지만 눈에 확 띄는 결과물은 없었다.
 올 10월 총선 결과, 고질적 부패는 리스크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해 12월 12일 오후 부산 백스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세안 의장 우 떼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잠재력은 탁월하지만 아직은 리스크도 작지 않다. 일단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발목을 잡는다. 헌법개정과 비례대표제 도입 등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가 많아 올해 10월 열리는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혼란을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선거 결과에 따른 불만으로 대규모 소요사태가 또다시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많은 나라가 투자 시점을 총선 뒤로 미루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권 교체 여부도 관심사다. 여야 모두 ‘경제 개방’이란 큰 틀에선 이견이 없지만 세부적으로는 입장 차가 제법 크다. 최근 미얀마 내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야당이 어떤 입장을 내놓고,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세부 정책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군부 정권의 잔재인 고질적인 부패와 과도한 관료주의도 부담스럽다. 미얀마의 부패인식지수는 전 세계 157위로 투명성이 매우 낮다. 정확한 통계 확보가 어렵고, 행정 절차가 매우 복잡해 현지 기업가들 사이에선 사‘ 업하기 너무 힘든 나라’라는 불평이 나온다. 미얀마 야당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미얀마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법 시스템 개조가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너무 비싼 땅값도 부담스럽다. 실제로 미얀마에 진출하려다 적당한 토지를 확보하지 못해 포기했다는 우리 기업가가 적지 않다. 정부 소유 토지는 일본 등 외국계 기업이 많이 점유했고, 민간 토지는 워낙 비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임금 상승 압력도 서서히 강해지고 있다. 지난 2월 양곤 인근에 위치한 셰비타 공단 등에서 현지 근로자 4000여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다. 정부가 경찰을 동원해 강제 해산시켰지만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한국 기업 중에 미얀마에 공장을 운영하는 이랜드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기도 했다. “노동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추세여서 파업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지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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