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문화’에 투자한다
돈 되는 ‘문화’에 투자한다
중국 요리 인양유(陰陽魚, yin-yang fish)는 제대로 됐을 경우 조리를 마치고 손님 상에 올린 뒤에도 한참 동안 눈알을 움직일 정도로 오래 살아 있다. 이 요리는 생선 대가리와 아가미를 젖은 수건으로 감싼 채 나머지 부분을 튀겨서 만든다. 잔인한 조리법 때문에 요리가 처음 개발된 대만을 비롯해 호주, 독일 등지에선 금지됐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최고급 요리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뉴욕의 미술상 엘리 클라인은 상하이의 한 음식점에서 처음 이 요리를 대했을 때 그것이 하나의 시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리라는 걸 알았다.
당시 클라인은 중국의 유명 미술상 샤나 선과 뉴욕에 중국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갤러리[‘클라인 선 갤러리(Klein Sun Gallery)’]를 설립하기 위해 논의 중이었으며 그 음식점에서의 만남은 매우 중요했다. 클라인은 선에게 신뢰감을 줘 자신과 손잡고 수백만 달러어치의 중국 미술품을 서양에 수출하도록 만들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침착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통에 시달리는 물고기를 먹으면서 미소 지었다. 사실 그가 십대 때 홍콩에서 먹어 본 개고기보다는 훨씬 더 맛있었다.
현재 뉴욕 맨해튼의 갤러리와 베이징의 전시실을 운영하는 클라인은 애초에 구세계 미술상과 경쟁하기를 바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흥미조차 없었다. 그들은 한때 앤디 워홀(미국 팝아트의 거장)을 ‘앤디’라고 부르고 장-미셸 바스키아(미국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마약을 과다 복용해 쓰러질 때마다 구급차를 불렀던 사람들이다. 약 10년 전만 해도 중국 미술품은 골동품 경매장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비인기 품목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클라인은 중국 현대미술의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리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그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클라인의 생각은 적중했고 이제 그는 부자가 됐다. 클라인 선 갤러리는 지난 5년 동안 중국 미술시장의 부상에 힘입어 매출이 치솟았다.
난 20년 전 맨해튼의 한 공립학교에서 클라인과 그의 쌍둥이 형제 데이비드를 만났다. 그들의 가족은 홍콩에서 1년 살다가 뉴욕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다. 클라인 형제는 나나 샌님 같은 내 친구들보다 훨씬 더 멋지고 터프하고 야망이 컸다. 그들은 로워 맨해튼을 마피아 단원처럼 휘젓고 다녔다. 거리낌없이 마리화나를 피웠고 사적인 대화를 할 때는 광둥어를 사용했다. 그들 형제는 우리에게 신처럼 보였다. 마치 비기 스몰스(1990년대에 유명했던 미국 래퍼)의 랩에서 튀어나온 사람들 같았다. 레게머리에 진바지를 엉덩이에 걸쳐 입었던 엘리 클라인은 아주 터프했다. “난 마리화나를 피우고 세상 물정에 아주 밝은 위협적인 인물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누구도 날 건드리지 못했다.”
클라인의 아버지는 홍콩에서 법학 강의를 하게 돼 가족을 데리고 그곳에 갔다. 홍콩에 사는 외국인의 자녀들은 거의 다 영국 학교에 다녔지만 클라인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공립학교에 보냈다. 쌍둥이 형제가 홍콩에서 학교 다니는 동안 얻은 큰 교훈은 독립심이었다. 학교 구내식당에 갈 때면 유일한 서양인 학생이었던 클라인은 늘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했다. 싸움에서 늘 이기지는 못했지만 뒤로 물러선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건 클라인이 통과한 또 하나의 시험이었다. 그 대가로 그는 중국인 여자친구를 얻었는데 그 아버지가 삼합회(중국 마피아)의 일원이었고 오빠는 그의 절친이 됐다. 클라인은 여자친구 가족과 어울려 지낸 시간이 서양인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중국인의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줬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그는 중국인이 말하는 ‘하얀 악마(white devils)’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중국인이 돼야 한다”고 클라인이 설명했다. “난 격식을 갖추려고 통역사를 쓰기 때문에 언어는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사고방식이다. 미국에서 잔인하게 여겨지는 것이 중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서양식 도덕관을 고집하면 불리하고 비위가 약하거나 까다롭게 굴면 끝장이다. 중국의 사업은 변덕스런 관료주의의 지배를 받으며 서양인이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시간 관념에 따라 움직인다. 인내심과 뛰어난 수완, 인맥, 존경심 등의 기본기를 갖춰야 하며 무엇보다 언제 어떤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절대 체면을 잃어서는 안 된다.”
2012년 브라보 TV에서 방영된 리얼리티 프로그램 ‘갤러리 걸스(Gallery Girls)’는 뉴욕 소호에 있는 클라인의 갤러리를 배경으로 했다. 클라인은 거기서 여자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냉담한 남자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체면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처럼 보일지 모른다. 클라인 정도의 위치에 오른 대다수 미술상이 그런 저질 오락물에 참여해 그동안 애써 관리해 온 이미지를 망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클라인은 그런 행동이 자신이 거래하는 중국 미술가들을 즐겁게 하고 중남미와 옛 소련 국가의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리라는 걸 알았다.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엇갈린다. 전통주의자들은 새로울 것 없는 일시적 유행이라고 보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경매 업체 소더비는 후자 쪽을 지지한다. 러시아와 인도 등 신흥국 고객이 서양보다 중국 미술가를 더 좋아하고 그쪽에 돈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 작품이 가장 잘 팔리는 미술가 10명 중 절반이 중국인이다. 클라인은 그중 2명인 리홍보와 류볼린의 작품 판매를 대행한다. 최근에는 스티븐 윈, 스탠리 호 같은 노련한 수집가들도 아시아 미술에 거액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서양 미술과 중국 현대미술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유럽인은 여전히 고독한 천재에 열광하지만 불교 문화와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란 중국 미술가들은 개성을 중시하는 전통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또한 그들의 고객 대다수가 그런 성향을 건방지다고 여긴다. 중국 미술계에서는 단독 작업보다 공동 작업을 선호한다. 지난해 가을 클라인의 갤러리에서 78명이 3시간 동안 꼼짝 않고 서 있느라고 애쓴 것도 그래서인 듯하다. 그들은 가만히 선 채 류볼린 작품의 일부가 됐다. 류볼린은 자원봉사자들의 몸에 물감을 칠해 기발한 배경 이미지와 하나가 되도록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을 그림 속에 숨김으로써 개인의 자아를 주변환경 속에 녹아들게 한다. 그는 이 과정을 적절한 ‘균형’의 회복이라고 설명했다.
서양의 문화적 우선순위는 정반대다. 서양에서는 자연이나 사회와의 조화보다 개인의 영광을 찬양한다. 하지만 패션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와 안젤라 미소니, 억만장자 투자자 윌버 로스 등 유명인사들이 류볼린의 작품에서 화폐와 벽돌 벽 등의 배경과 하나가 됐다. 록 밴드 본 조비는 류볼린에게 앨범 커버의 디자인을 의뢰했다.
중국 현대미술은 요즘 미술계의 전형적인 스타일과는 다르다. 클라인 또한 평범한 미술상이 아니며(“내 마리화나 담배 마는 솜씨는 완벽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고객들 역시 여느 고객과는 다르다. 고객 대다수가 신흥 경제의 신예 수집가다. 그중 미국인은 3분의 1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뉴욕이나 파리·베를린으로부터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 출신이다. 그들은 서양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작품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또 원하는 건 뭐든 척척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지녔지만 작품을 구입할 때 가슴보다는 머리를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작품을 사는 게 아니라 투자하는 것”이라고 클라인은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고객이 유전 하나와 맞먹을 만큼 비싼 유화를 계속 사들이도록 새로운 홍보 방식을 개발했다. 클라인은 중국 미술이 완벽한 투자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번영을 향해 치닫는 문화 전체에 투자하고 싶다고 치자. 예를 들면 중국에 말이다. 중국 인구는 10억 명이 넘는다. 지구상의 인간 5명 중 1명은 중국인이다. 중국에 돈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기존의 투자 경로 대다수가 막힌 상황에서는 문화로 눈을 돌리게 된다.”
통화 투기가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중국 중앙은행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중앙은행이 중국 상품의 수출 경쟁력을 세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위안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미술 시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이다. 미국 시장이 여전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중국이 빠른 속도로 그 뒤를 쫓고 있다. 이제 더는 부가 유럽의 백인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클라인은 모나코 고객의 전화도 받는다. 하지만 그의 고객 대다수는 새롭게 미술품 수집에 나선 신흥부자다.
기성 미술계는 중국 미술 붐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포브스의 알렉산더 에레라는 중국 미술이 “마오저뚱과 문화혁명에만 초점을 맞춘 단조롭고 질 낮은 작품”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클라인에겐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사업은 사업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돈을 따라가야 한다. 장난기 많고 화려하며 접근하기 쉬운 중국 미술 작품은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집 벽에 걸어놓기에 안성맞춤이다. 또 브라질의 콩 재벌들은 추상표현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클라인은 14세에 홍콩에서 중국인 급우들과 싸우다 코피를 흘린 이후 줄곧 중국 문화의 부상에 대비해 왔다. 그는 베이징에서 재능 있는 미술가를 발굴하고 그곳에 갤러리도 갖고 있지만 사업상 홍콩과의 연계를 유지한다. 20년 전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삼합회의 중간 간부였지만 지금은 홍콩에서 합법적인 사업으로 거물이 됐다. 현재 그는 클라인 선 갤러리 사업이 문제 없이 돌아가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혹시 파리에서 장 폴 고티에가 클라인에게 전화를 걸어 류볼린이 자신을 베르사이유 궁전의 일부가 되도록 그려줄 수 있는지 묻는다면? 클라인은 그런 일도 주선할 수 있다.
- 번역 정경희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시 클라인은 중국의 유명 미술상 샤나 선과 뉴욕에 중국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갤러리[‘클라인 선 갤러리(Klein Sun Gallery)’]를 설립하기 위해 논의 중이었으며 그 음식점에서의 만남은 매우 중요했다. 클라인은 선에게 신뢰감을 줘 자신과 손잡고 수백만 달러어치의 중국 미술품을 서양에 수출하도록 만들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침착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통에 시달리는 물고기를 먹으면서 미소 지었다. 사실 그가 십대 때 홍콩에서 먹어 본 개고기보다는 훨씬 더 맛있었다.
현재 뉴욕 맨해튼의 갤러리와 베이징의 전시실을 운영하는 클라인은 애초에 구세계 미술상과 경쟁하기를 바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흥미조차 없었다. 그들은 한때 앤디 워홀(미국 팝아트의 거장)을 ‘앤디’라고 부르고 장-미셸 바스키아(미국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마약을 과다 복용해 쓰러질 때마다 구급차를 불렀던 사람들이다. 약 10년 전만 해도 중국 미술품은 골동품 경매장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비인기 품목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클라인은 중국 현대미술의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리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그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클라인의 생각은 적중했고 이제 그는 부자가 됐다. 클라인 선 갤러리는 지난 5년 동안 중국 미술시장의 부상에 힘입어 매출이 치솟았다.
난 20년 전 맨해튼의 한 공립학교에서 클라인과 그의 쌍둥이 형제 데이비드를 만났다. 그들의 가족은 홍콩에서 1년 살다가 뉴욕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다. 클라인 형제는 나나 샌님 같은 내 친구들보다 훨씬 더 멋지고 터프하고 야망이 컸다. 그들은 로워 맨해튼을 마피아 단원처럼 휘젓고 다녔다. 거리낌없이 마리화나를 피웠고 사적인 대화를 할 때는 광둥어를 사용했다. 그들 형제는 우리에게 신처럼 보였다. 마치 비기 스몰스(1990년대에 유명했던 미국 래퍼)의 랩에서 튀어나온 사람들 같았다. 레게머리에 진바지를 엉덩이에 걸쳐 입었던 엘리 클라인은 아주 터프했다. “난 마리화나를 피우고 세상 물정에 아주 밝은 위협적인 인물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누구도 날 건드리지 못했다.”
클라인의 아버지는 홍콩에서 법학 강의를 하게 돼 가족을 데리고 그곳에 갔다. 홍콩에 사는 외국인의 자녀들은 거의 다 영국 학교에 다녔지만 클라인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공립학교에 보냈다. 쌍둥이 형제가 홍콩에서 학교 다니는 동안 얻은 큰 교훈은 독립심이었다. 학교 구내식당에 갈 때면 유일한 서양인 학생이었던 클라인은 늘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했다. 싸움에서 늘 이기지는 못했지만 뒤로 물러선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건 클라인이 통과한 또 하나의 시험이었다. 그 대가로 그는 중국인 여자친구를 얻었는데 그 아버지가 삼합회(중국 마피아)의 일원이었고 오빠는 그의 절친이 됐다. 클라인은 여자친구 가족과 어울려 지낸 시간이 서양인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중국인의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줬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그는 중국인이 말하는 ‘하얀 악마(white devils)’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중국인이 돼야 한다”고 클라인이 설명했다. “난 격식을 갖추려고 통역사를 쓰기 때문에 언어는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사고방식이다. 미국에서 잔인하게 여겨지는 것이 중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서양식 도덕관을 고집하면 불리하고 비위가 약하거나 까다롭게 굴면 끝장이다. 중국의 사업은 변덕스런 관료주의의 지배를 받으며 서양인이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시간 관념에 따라 움직인다. 인내심과 뛰어난 수완, 인맥, 존경심 등의 기본기를 갖춰야 하며 무엇보다 언제 어떤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절대 체면을 잃어서는 안 된다.”
2012년 브라보 TV에서 방영된 리얼리티 프로그램 ‘갤러리 걸스(Gallery Girls)’는 뉴욕 소호에 있는 클라인의 갤러리를 배경으로 했다. 클라인은 거기서 여자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냉담한 남자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체면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처럼 보일지 모른다. 클라인 정도의 위치에 오른 대다수 미술상이 그런 저질 오락물에 참여해 그동안 애써 관리해 온 이미지를 망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클라인은 그런 행동이 자신이 거래하는 중국 미술가들을 즐겁게 하고 중남미와 옛 소련 국가의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리라는 걸 알았다.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엇갈린다. 전통주의자들은 새로울 것 없는 일시적 유행이라고 보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경매 업체 소더비는 후자 쪽을 지지한다. 러시아와 인도 등 신흥국 고객이 서양보다 중국 미술가를 더 좋아하고 그쪽에 돈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 작품이 가장 잘 팔리는 미술가 10명 중 절반이 중국인이다. 클라인은 그중 2명인 리홍보와 류볼린의 작품 판매를 대행한다. 최근에는 스티븐 윈, 스탠리 호 같은 노련한 수집가들도 아시아 미술에 거액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서양 미술과 중국 현대미술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유럽인은 여전히 고독한 천재에 열광하지만 불교 문화와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란 중국 미술가들은 개성을 중시하는 전통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또한 그들의 고객 대다수가 그런 성향을 건방지다고 여긴다. 중국 미술계에서는 단독 작업보다 공동 작업을 선호한다. 지난해 가을 클라인의 갤러리에서 78명이 3시간 동안 꼼짝 않고 서 있느라고 애쓴 것도 그래서인 듯하다. 그들은 가만히 선 채 류볼린 작품의 일부가 됐다. 류볼린은 자원봉사자들의 몸에 물감을 칠해 기발한 배경 이미지와 하나가 되도록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을 그림 속에 숨김으로써 개인의 자아를 주변환경 속에 녹아들게 한다. 그는 이 과정을 적절한 ‘균형’의 회복이라고 설명했다.
서양의 문화적 우선순위는 정반대다. 서양에서는 자연이나 사회와의 조화보다 개인의 영광을 찬양한다. 하지만 패션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와 안젤라 미소니, 억만장자 투자자 윌버 로스 등 유명인사들이 류볼린의 작품에서 화폐와 벽돌 벽 등의 배경과 하나가 됐다. 록 밴드 본 조비는 류볼린에게 앨범 커버의 디자인을 의뢰했다.
중국 현대미술은 요즘 미술계의 전형적인 스타일과는 다르다. 클라인 또한 평범한 미술상이 아니며(“내 마리화나 담배 마는 솜씨는 완벽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고객들 역시 여느 고객과는 다르다. 고객 대다수가 신흥 경제의 신예 수집가다. 그중 미국인은 3분의 1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뉴욕이나 파리·베를린으로부터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 출신이다. 그들은 서양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작품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또 원하는 건 뭐든 척척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지녔지만 작품을 구입할 때 가슴보다는 머리를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작품을 사는 게 아니라 투자하는 것”이라고 클라인은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고객이 유전 하나와 맞먹을 만큼 비싼 유화를 계속 사들이도록 새로운 홍보 방식을 개발했다. 클라인은 중국 미술이 완벽한 투자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번영을 향해 치닫는 문화 전체에 투자하고 싶다고 치자. 예를 들면 중국에 말이다. 중국 인구는 10억 명이 넘는다. 지구상의 인간 5명 중 1명은 중국인이다. 중국에 돈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기존의 투자 경로 대다수가 막힌 상황에서는 문화로 눈을 돌리게 된다.”
통화 투기가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중국 중앙은행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중앙은행이 중국 상품의 수출 경쟁력을 세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위안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미술 시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이다. 미국 시장이 여전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중국이 빠른 속도로 그 뒤를 쫓고 있다. 이제 더는 부가 유럽의 백인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클라인은 모나코 고객의 전화도 받는다. 하지만 그의 고객 대다수는 새롭게 미술품 수집에 나선 신흥부자다.
기성 미술계는 중국 미술 붐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포브스의 알렉산더 에레라는 중국 미술이 “마오저뚱과 문화혁명에만 초점을 맞춘 단조롭고 질 낮은 작품”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클라인에겐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사업은 사업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돈을 따라가야 한다. 장난기 많고 화려하며 접근하기 쉬운 중국 미술 작품은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집 벽에 걸어놓기에 안성맞춤이다. 또 브라질의 콩 재벌들은 추상표현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클라인은 14세에 홍콩에서 중국인 급우들과 싸우다 코피를 흘린 이후 줄곧 중국 문화의 부상에 대비해 왔다. 그는 베이징에서 재능 있는 미술가를 발굴하고 그곳에 갤러리도 갖고 있지만 사업상 홍콩과의 연계를 유지한다. 20년 전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삼합회의 중간 간부였지만 지금은 홍콩에서 합법적인 사업으로 거물이 됐다. 현재 그는 클라인 선 갤러리 사업이 문제 없이 돌아가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혹시 파리에서 장 폴 고티에가 클라인에게 전화를 걸어 류볼린이 자신을 베르사이유 궁전의 일부가 되도록 그려줄 수 있는지 묻는다면? 클라인은 그런 일도 주선할 수 있다.
- 번역 정경희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28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일부구간 '경고 파업' 철회
2‘하늘길도 꽁꽁’ 대설에 항공기 150편 결항
3‘이재명 아파트’도 재건축된다…1기 선도지구 발표
4코스피로 이사준비…에코프로비엠, 이전상장 예비심사 신청
5‘3000억원대 횡령’ 경남은행 중징계….“기존 고객 피해 없어”
6수능 2개 틀려도 서울대 의대 어려워…만점자 10명 안팎 예상
7중부내륙철도 충주-문경 구간 개통..."문경서 수도권까지 90분 걸려"
8경북 서남권에 초대형 복합레저형 관광단지 들어서
9LIG넥스원, 경북 구미에 최첨단 소나 시험시설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