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식품 강박증이 여성 건강 좀먹는다
건강식품 강박증이 여성 건강 좀먹는다
“음식이 주위에 있으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 딸에게는 표시나지 않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음식을 안 먹겠다거나 접시를 다 비우지 않으면 불안하다.”
영국의 한 대표적인 사설 재활 및 중독치료 센터에서 34~76세의 여성 그룹이 모여 섭식장애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 토론한다. 모두 대학을 나온 성공적인 직장인들이다. 소피(42)는 3세 딸을 둔 싱글맘이다.
“나는 20세부터 거식증에 시달렸다. 딸에게도 섭식장애가 생길까봐 마음을 졸인다. 균형 잡힌 식단을 차려주려 하지만 나는 식단을 짜는 데는 재주가 없다. 딸이 혼자 식사하는 것도 걱정된다. 나는 저녁 때 대부분 아이가 잠자리에 든 뒤 코티지 치즈(cottage cheese, 숙성시키지 않은 부드러운 치즈) 조금 하고 적포도주 한 잔만 마신다. 하지만 식탁에는 그렇게 잘 앉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둘뿐이라는 점이다. 함께 식사할 수 있으면 좋다는 건 나도 안다. 그래도 어린이집에선 친구들과 함께 먹으니까 다행이다.” 십대 아들 2명을 둔 프랜(53)은 “사내아이들이라서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딸을 뒀다면 몸매와 체중에 관한 온갖 근심과 걱정을 감당할 수 없었을 듯하다. 나는 종일 주방에서 음식을 요리해 남편과 두 아들을 먹이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낸다. 모두 대단히 활동적이고 식성이 아주 좋다. 내가 적게 먹는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이 전문직 여성들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자신의 병이 아이들에게 전염될까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거식증(anorexia,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폭식증(bulimia, 신경성 폭식증)이 유전될 수 있음은 여러 조사에서 입증된다. 하지만 자녀의 영양공급을 걱정하는 사람은 섭식장애 병력을 가진 여성뿐이 아니다. 섭식 관련 장애가 없는 한 동료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내게 이렇게 말했다. “딸이 태어나면 내 태도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졌다. 첫 애는 사내아이라 빵·치즈·탄수화물을 아무 걱정 없이 양껏 먹인다. 하지만 여자아이를 그런 식으로 먹여도 될까?”
그런 우려를 갖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유럽 전역에 걸쳐 섭식장애 증상을 나타내는 전문직 중산층 여성(그리고 일부 남성) 세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요즘 들어 건강식품 강박증(orthorexia nervosa)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증상이다. 그들은 완벽하게 균형 잡힌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식사제한과 혹독한 운동법을 결합하고, 칼로리 수치, 녹즙 섭취, 헬스를 통한 몸매 가꾸기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보통 사람들 눈에는 대체로 성공적인 직장생활과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이 여성들이 정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한편으론 음식과 체중에 병적으로 경계심을 갖고 있으며 대다수가 언제나 굶주려 있다. 그런 습관이 평생 지속되기도 한다. 뚜렷한 위기도, 증상이 악화돼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코에 튜브를 꽂아 영양공급을 하는 일도 없다.
이 여성들은 다소 말랐을 뿐 멀쩡해 보인다. 건강에 미치는 위험은 대부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불임, 무월경(amenorrhoea), 불면증, 우울증, 골다공증, 심각한 골밀도 저하, 전해질 불균형(electrolyte imbalance), 폭식증의 경우 콩팥과 심장 이상 등이다. 이런 증상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신체 손상이 정신적 고통과 마찬가지로 감춰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증상이 임상적 관점의 거식증은 아닐지라도 강박증의 경계를 넘나든다. 건강식품 강박증은 거식증을 비롯한 기타 섭식장애와 오버랩된다. ‘올바르거나 정확한 식생활에의 집착’으로 정의되는 건강식품 강박증은 처음에는 라이프스타일을 개선하려는 시도였다 해도 건강하지 않은 집착으로 악화될 수 있다. 자기혐오, 낮은 자존감, 사회적 고립, 나아가 영양실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칼로리를 따지고 ‘청정 자연식 섭취(eat clean)’를 종용 받는 사회에서 건강식 강박증이 번성한다. 인공 첨가물과 방부제를 피하고, 플라스틱 포장재와 감춰진 독소를 경계하고, 무엇보다 살찌지 않도록 종용받는 사회다. 1997년 스티븐 브래트먼 박사가 그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자신의 건강식품 강박증 경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 해 동안 건강한 식생활을 통해 웰니스를 추구했다. 하지만 점차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불쑥불쑥 음식 생각이 떠올라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워졌다. 육류·지방·인공화학물질 없는 식사를 찾아다녀야 하니 다른 사람과의 식사 약속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강박적인 식생활에서 벗어나기가 끔찍하게 힘들었다.” 우리 중 상당수가 이 같은 경험을 해봤거나 이런 사람을 알 듯하다.
건강식품 강박증은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V)에서 공식적인 질병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의 경직성과 죄의식 측면에서 다른 섭식장애와 비슷하다. 거식증이나 폭식증은 칼로리와 체중에 매달리지만 건강식품 강박증은 입술을 통과하는 모든 음식의 순수성과 품질에 집착한다. 건강식품 강박증을 위장한 섭식장애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더 교양 있어 보이지만 집착의 강도는 덜하지 않다. 이처럼 용인되는 심지어 유행하는 장애의 또 다른 하위 분류 항목도 있다. 모든 식품군에 대한 불내증(intolerances), 알레르기, 기피의 증가다. 그런 증상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식품 알레르기나 불내증이 있다고 주장하는 영국인이 5명 중 1명을 웃돈다. 지난 20년 사이 400%나 증가했다. 유럽 알레르기·임상면역학회의 추산에 따르면 식품 알레르기로 고통받는 유럽인이 대략 1700만 명에 달한다. 아동의 알레르기 발생 건수는 지난 10년 사이 배로 늘어난 듯하다. 알레르기 유발물질 정보 사이트 알레르겐 뷰로(Allergen Bureau)의 조사결과도 있다. 유럽 성인 중 30%가 식품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적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진짜 식품 알레르기가 있다고 진단받은 유럽인은 3~5%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호주통계국 자료에선 알레르기나 불내증 때문에 특정 식품 유형을 기피했다고 답한 호주인이 400만 명에 육박했다. 소비자의 알레르기나 불내증에 대한 인식은 실제로 기록된 사례보다 시종일관 훨씬 더 높게 나타난다. 수많은 조사에서 성인 인구의 평균 1~2% 선에서 진짜 식품 알레르기가 발생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유아의 알레르기 발생 비율은 3~7%로 약간 더 높았다).
다시 말해 수백만 명이 특정 식품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판단하거나 그런 판정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밀이 가장 흔하다. 지금은 슈퍼마켓의 한 코너 전체가 무(無) 글루텐 제품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글루텐이 무엇인지 또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물어보면 대다수 소비자가 답변하지 못한다.
섭식장애 진단과 관련된 공식 통계도 실상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할 수 있다. 영국 국립임상연구소에 따르면 영국 내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은 160만 명이다. 하지만 그 수치는 영국 국립건강보험(NHS)이 말하는 이른바 ‘병원 통계(hospital episode statistics)’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다.
뚱뚱하든 말랐든, 체중이 많든 적든, 거식증과 폭식증·과식증과 기타 많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식욕에 관한 깊은 수치심, 음식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느낌, 먹는 것에 관한 죄의식·불안감 또는 당혹감이다. 이 중 누구도 섭식장애자 공식 통계인 160만 명에 포함되지 않는다. 병원 입원 환자도 아니고, 상담을 받지도 않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정상’인 사람들이다. 거기에 운동에의 집착 문제도 있다. 섭식 장애는 필연적으로 과도한 수준의 운동을 동반한다. 섭취하는 칼로리 양을 제한할 때는 당연히 체외로 배출하는 양도 극대화하려 애쓰게 마련이다. 가녀린 몸매의 여성들은 분명 자신의 몸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듯하다. 이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여성들 모두 식사제한과 강도 높은 운동을 병행했다. 일주일에 6~7회씩 운동했다. 소피는 “킥복싱, 실내 자전거 타기(spinning), 서킷 트레이닝(근육운동과 에어로빅을 결합한 헬스 프로그램)을 최대한 강도 높게 한다. 단 하루라도 쉬면 게으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모두 한 번이라도 운동을 빼먹으면 ‘죄의식’을 느꼈다. 프랜은 성탄절에도 러닝을 했다.
나는 십대와 20대 시절 내내 거식증에 시달렸다. 이 같은 가혹한 자학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남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음식을 먹지 않으면 한동안은 초인 같은 기분이 든다. 남들처럼 음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몸이 가뿐하고 광기 같은 허기가 정신을 지배한다. 이는 위험하기도 하다. 최근 프랜이 고관절 골절상을 입었을 때 의사는 그녀의 뼈가 90세 노파 같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의 낮은 골밀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심각해지고 있다. 그들 중 다수가 우유와 치즈 등 칼슘이 풍부한 유제품을 기피한다. 십대와 20대는 인생에서 골량(bone mass) 형성에 중요한 시기다. 거식증 환자의 최대 90%가 일정 정도의 골량 감소를 보인다.
미인·부자·유명인 그리고 부유한 도시인들 사이에서 혹독한 체력단련법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모두 최상의 신체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같이 확산된다. 최근 영국에서 인기를 끄는 미국 군대식 운동법이 이 같은 완벽주의 마인드에 영합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계를 보여준다(kick your ass)’고 주장하는 운동법이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배리스 부트캠프’나 ‘스키니 빗치 컬렉티브’가 대표적이다. 슈퍼 S라인 몸매의 여성, 모델, 유명인사들을 위한 배타적인 피트니스의 신전이다. 웨이트 운동, 고강도 심장강화 유산소 운동(cardio), 데드리프팅(허리를 강화하는 웨이트리프팅), 서키트 트레이닝 등을 혼합한다. 강습은 오전 6~7시에 실시된다. 대다수의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수련자들이 ‘칼로리 소모의 쾌감을 느낄(feel the burn)’ 수 있도록 한다.
영국 런던 중심부의 새벽반 실내 자전거 타기 강습을 시도해 봤다. 번쩍이는 스트로브 조명과 쿵쿵거리는 댄스 음악이 어둑한 지하 스튜디오에 울려 퍼진다. 엄청난 운동 강도에 어안이 벙벙해져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열성적인 수련자들은 귀청이 떨어질 듯한 비트에 맞춰 페달을 밟는 한편 덤벨을 들어올리고 핸들 위에서 푸시업을 한다. 수련장은 부족 집단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울퉁불퉁한 근육을 가진 강사들(주로 댄서와 운동선수들)은 사교 지도자 같은 지위를 누린다.
나중에 이 같은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동료 수련생에게 물었다. “최고의 신체단련법이다. 1000칼로리가량을 태운다. 나는 금융업체에 근무해서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한다. 운동하고 나면 몇 시간 동안 고조된 기분이 유지된다.” 처음부터 너무 진을 빼는 게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완전히 매료됐다. 내 심신에 아드레날린 왕주사를 맞는 격이다.” 소울사이클(SoulCycle)이 런던을 점령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가질 만도 하다. 미국에서 건너온 스피닝과 동기유발 심리요법의 최고봉이다.
유럽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수많은 여성이 이 같은 수련을 마친 뒤 단백질 보충제(protein shake) 음료로 끼니를 때운 뒤 직장으로 향한다. 런던의 내가 다니는 수영장 탈의실에서 최근 한 중년 여성이 친구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그녀가 아침과 점심 식사를 대신해 마시고 있는 새 음료에 관한 이야기였다. ‘알칼리성 풀브산 미량 무기질을 첨가한 검정물(black water: alkaline fulvic trace-mineral-infused)’이었다.
성인 여성들 사이의 섭식장애는 직업·경제·사회·성·문화의 급속한 변화 시점과 맞물려 유행한다. 자칫 잘못 판단하면 샛길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직장부터 자녀양육, 인간관계, 외모, 노화, 체중까지 성인 여성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숱하다. 직장과 가정의 역할 충돌에 관한 너무나도 많은 죄의식과 혼란. 잡지와 광고, TV와 영화 등 도처에서 이 정도 외모는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듯한 눈부신 슈퍼 슬림 몸매 이미지 등. 불안정한 환경에선 체중감량의 추구가 인정·확실성·질서를 찾는 한 가지 방법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극단적으로 마른 몸매를 원하는 세태를 그 밖에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자기부정은 좋은 음식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기이하게 상충되는 듯하다. TV의 요리 프로그램들,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여성 요리사, 음식 칼럼니스트와 푸드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유기농 재료, 장인의 제빵, 파스타 대신 잘게 썬 애호박을 사용한 요리, 단식, 디톡스(독소 제거)에의 열광 등.
인기절정의 건강식 블로거 ‘델리셔슬리 엘라’ 우드워드(23)는 자신의 요리법은 살빼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정말로 독선적이고 고결한 척하는 인상을 주지 않아야 한다. 나는 체중감량 같은 문제에 관해 거창한 약속은 하지 않는다.” 델리셔슬리 엘라든, 배우 귀네스 팰트로의 블로그 ‘구프(Goop)’든 많은 여성이 이 같은 요리 포르노(culinary porn)에 푹 빠진 듯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먹는 데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여성지에 실린 깡마른 여성들에게 익숙해지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필사적인 살빼기 광풍에 우리가 무감각해질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 문제다. 1986년작 고전 ‘몸에 갇힌 사람들(Hunger Strike, 김명남 옮김, 창비 펴냄)’에서 수지 오바크가 설득력 있게 묘사했듯이 쇼킹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마주치는 거식증 여성은 스스로 굶어 죽으려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B-EAT(선도적인 섭식장애 자선단체)가 의뢰한 보고서가 지난 2월 발표됐다. 섭식장애로 인해 영국 금융·경제에 발생하는 총 피해 규모가 연간 150억 파운드(25조7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거식증이나 폭식증의 알려진 치료법은 없다.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ural Therapy) 같은 상담요법과 약물을 병행하는 치료법 등이 있다. 두 방법 모두 효과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조기개입이 회복률을 크게 높이는 것으로 입증됐다. 예컨대 미국 섭식장애협회에 따르면 폭식증 증상이 나타난 지 5년 이내에 도움을 받은 여성의 경우 회복 확률이 80%다. 하지만 치료 받지 않고 증상을 15년 이상 방치하면 회복 확률이 20%로 떨어진다.
국민건강보험의 축소가 의료 서비스에 압박을 주고 있다고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경고해 왔다. 입원을 기다리는 동안 환자의 증상이 악화된다. 이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지난해 섭식장애 전체 연구 예산을 합친 액수보다 8배나 많은 자금을 조현병(정신분열증)에 배정했다. 하지만 실상 거식증만 봐도 사망률이 조현병의 2배에 달한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섭식장애 대책으로 향후 5년간 아동과 청년층의 섭식장애 치료에 1억5000만 파운드(2590억원)를 할당하겠다고 약속했다. 닉 클레그 부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 내 수십만 명이 섭식장애로 고통 받는다. 하지만 아무 말 못하고 고통 받는 사람이 많다. 일부는 치료를 받는 데만 2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대로 방치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 거식증과 기타 섭식장애로 입원 치료를 받은 어린이는 지난해 2965명으로 12% 증가했다. 10년 전의 2배로 늘어났다. 아동 의료 서비스에 대한 이 같은 추가 자금지원도 중요하지만 성인의 치료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엄마들이 자신의 식품 노이로제를 자식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아무리 잘 숨긴다고 하더라도 뭔가는 유전된다. 스칸디나비아의 최근 여러 조사에서 섭식장애 여성의 딸들은 같은 진단을 받을 위험이 2배에 달했다. 미국과 영국의 추가적인 조사도 엄마의 식습관과 섭식장애가 유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이런 아이들은 주변에 음식이 있을 때 심리적인 문제뿐 아니라 더 전반적인 불안정과 애착 문제를 보인다. 딸들이 엄마의 행동을 보고 배운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유전적인 요소가 있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유망한 신경학적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대다수 인간의 행태와 마찬가지로 선천적·후천적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젊은 여성이 더 원숙해지면 자연히 편식성 다이어트 즉 몸매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다. 섭식장애에는 중독성이 있다. 자기 의사와는 관계 없이 음식을 멀리한다. 폴 로빈슨 박사는 런던 북부에 있는 세인트 앤스 병원의 연구 상담 정신과의사다. 그는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그런 증상을 극복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소수지만 제법 많은 사람이 이른바 ‘중증 지속성 섭식장애(SEED)’로 알려진 증상을 보인다. “건강식품 강박증을 가진 모든 소녀와 여성 중 20%가량에서 고질병으로 발전한다. 중년까지 그 질병을 계속 앓는 그룹이다. 날씬한 몸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어떤 설득 치료 또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도 그 질병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을 가능성이 크다.”
로빈슨 박사는 아들 둘을 둔 30대의 거식증 여성에 대한 연구를 설명한다. “조사에서 아들들이 5세와 7세에 발육이 멈췄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자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가 퇴원하자 다시 발육이 중단됐다.” 그러나 “엄마의 거식증이 딸에게 전파되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성인이 된 뒤에 처음으로 섭식장애를 일으키는 여성은 더 드물다. 한 조사에선 25세 이후에 거식증이 생기는 비율은 2%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대다수 환자가 더 경미한 형태로든 더 이른 나이에 그런 경험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나중에 재발하거나 또는 회복되지 않는 경우다. 30~40대 여성의 유발요인은 젊은 여성과 다를지 모른다. 임신, 폐경, 체중증가, 이혼 또는 미디어를 통해 50대나 60대까지 ‘몸짱’을 유지해야 할 듯한 분위기의 고조에 대한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
재닛 트레저는 킹스칼리지런던의 정신과 교수다. 그녀는 섭식 장애가 생활양식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지 설명한다. “섭식장애는 쉽게 낫는 병이 아니다. 거식증의 경우 평균적으로 7년간, 폭식증은 12년간 지속된다. 절반 이상이 고질적인 중증 단계로 발전한다. 따라서 이 질병은 커다란 변화와 성숙이 진행되는 시기인 20~30대에 영향을 미친다.
그 피해는 출생 전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저체중 여성의 수태와 임신에 관해 나디아 미칼리 박사에게 물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산하 아동건강 연구소의 선임강사이자 명예 상담 정신과 의사다. “미숙아와 저체중아 출산은 익히 알려진 위험”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제반 조사 결과 저체중 출산과 태내 발육부진은 훗날 정신장애, 발달지체, 신진대사 장애를 초래한다.” 폭식과 비만도 당뇨병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오랫동안 중증 거식증과 폭식증을 가진 여성에게 연구의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이들은 섭식장애 증상을 나타내는 전체 여성 중 실제로 소수 그룹이다. 기타 그리고 부분적인 섭식장애를 가진 많은 여성에게 초점을 맞춘 신뢰성 높은 연구는 많지 않다.”
섭식장애를 가진 모든 여성이 자녀에게 해를 끼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거식증의 가장 큰 피해는 불임이다.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불임치료 전문가 리처드 셔반의 2011년 조사 결과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저체중 여성의 시험관아기 시술(IVF)을 통한 임신 성공률이 약간 과체중인 여성보다 더 낮다는 내용이었다.
토론자 그룹 중 최고령인 발레리(76)는 거식증으로 자녀를 포함해 모든 것을 잃었다고 내게 말했다.
“지난 50년을 돌이켜보면 한 입이라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22세 때인 1958년에 체중이 줄기 시작했다. 항상 아기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임신을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체중을 늘리려 했다. 30대와 40대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이 실패로 끝났다…. 70세 때 만난 심리학자가 마침내 내가 아니라 거식증의 문제였다고 설명해줬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극복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6년 동안 꾸준히 치료를 받았다. 의사가 나를 이 그룹에 참여시켰다. 지금은 정상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월경을 하고 아기를 갖기에는 너무 늦었다. 다시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알게 돼서 몹시 기쁘다. 그러나 아기와 손주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슬프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76세가 돼서야 거식증이 낫기 시작한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다. 발레리는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허비했는지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발레리나 프랜처럼 중년과 그 이후에 거식증, 폭식증과 기타 섭식장애를 가진 여성들, 그리고 그것이 인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의 증거를 더 많이 목격하게 될 듯하다. 이른바 ‘다이어트에 영감(thin-spiration)’을 주는 자료 전문 웹사이트들이 확산된다. 그와 함께 십대 ‘허벅지 틈새(thigh gaps)’의 셀카를 올리는 인스타그램(사진 공유 서비스)이 유행한다. 따라서 엄마의 고통스런 발자취를 따르는 어린이와 젊은이도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만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체중 스펙트럼의 반대쪽 문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섭식장애는 많은 형태와 규모로 나타나지만 모두 육체적·정신적으로 끔찍한 대가를 요구한다.
궁극적으로 이 같은 증상은 단순히 체중이나 음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풍요·과잉·박탈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문제다.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어떻게 알아내느냐의 문제다. 저체중·정상체중·과체중인 많은 여성의 입장에서 “음식을 먹고 싶다.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
상당히 큰 관계가 있는 듯하다. 우울증, 불안장애, 약물 또는 알코올 중독 같은 다른 정신건강 문제와는 달리 섭식장애는 중산층에서 더 많이 생기는 듯이 보인다. 거식증은 상당히 많은 사립학교와 일류 대학에서 나타나는 야심적이고 완벽주의적인 마인드에서 피어난다. 허영, 돈 문제든 단순히 불안이나 완벽주의 문제든 거식증은 분명 부자병이다. 돈 욕심이나 날씬한 몸매 욕심은 끝이 없다는 옛날 속담이 위험하게 구현된 형태다.
하지만 그것은 까다로운 주제다. 사회·경제적으로 중하위 계층 사람들 사이에서 증가하는 비만 문제를 두고 논리적인 토론을 하기는 쉽지 않다. 부유층 사이에서의 섭식장애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식품과 체중의 사회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유기농·생물역학적(biodynamic, 극단적인 친환경) 재료는 엄청나게 비싸다.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요리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깨끗한 자연식 먹거리’는 돈이 많이 든다.
‘뉴욕푸드뱅크챌리지’에서 여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간신히 나흘을 버텨낸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주일 분의 복지수당 29달러로 버텨내라는 과제가 참가자들에게 주어졌다. 팰트로는 자신의 블로그 ‘구프’에서 4일째 예산이 바닥났다고 털어놓았다. 팰트로는 글루텐·설탕·곡물 없는 라이프스타일을 주창해 종종 비웃음을 산다. 그녀는 그 한 주의 ‘필수 식재료’로 라임 7개, 검정콩, 아보카도, 고수풀, 그리고 케일을 꼽았다.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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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 대표적인 사설 재활 및 중독치료 센터에서 34~76세의 여성 그룹이 모여 섭식장애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 토론한다. 모두 대학을 나온 성공적인 직장인들이다. 소피(42)는 3세 딸을 둔 싱글맘이다.
“나는 20세부터 거식증에 시달렸다. 딸에게도 섭식장애가 생길까봐 마음을 졸인다. 균형 잡힌 식단을 차려주려 하지만 나는 식단을 짜는 데는 재주가 없다. 딸이 혼자 식사하는 것도 걱정된다. 나는 저녁 때 대부분 아이가 잠자리에 든 뒤 코티지 치즈(cottage cheese, 숙성시키지 않은 부드러운 치즈) 조금 하고 적포도주 한 잔만 마신다. 하지만 식탁에는 그렇게 잘 앉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둘뿐이라는 점이다. 함께 식사할 수 있으면 좋다는 건 나도 안다. 그래도 어린이집에선 친구들과 함께 먹으니까 다행이다.”
청정 자연식 세대에 건강식 강박증 심해
이 전문직 여성들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자신의 병이 아이들에게 전염될까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거식증(anorexia,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폭식증(bulimia, 신경성 폭식증)이 유전될 수 있음은 여러 조사에서 입증된다. 하지만 자녀의 영양공급을 걱정하는 사람은 섭식장애 병력을 가진 여성뿐이 아니다. 섭식 관련 장애가 없는 한 동료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내게 이렇게 말했다. “딸이 태어나면 내 태도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졌다. 첫 애는 사내아이라 빵·치즈·탄수화물을 아무 걱정 없이 양껏 먹인다. 하지만 여자아이를 그런 식으로 먹여도 될까?”
그런 우려를 갖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유럽 전역에 걸쳐 섭식장애 증상을 나타내는 전문직 중산층 여성(그리고 일부 남성) 세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요즘 들어 건강식품 강박증(orthorexia nervosa)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증상이다. 그들은 완벽하게 균형 잡힌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식사제한과 혹독한 운동법을 결합하고, 칼로리 수치, 녹즙 섭취, 헬스를 통한 몸매 가꾸기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보통 사람들 눈에는 대체로 성공적인 직장생활과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이 여성들이 정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한편으론 음식과 체중에 병적으로 경계심을 갖고 있으며 대다수가 언제나 굶주려 있다. 그런 습관이 평생 지속되기도 한다. 뚜렷한 위기도, 증상이 악화돼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코에 튜브를 꽂아 영양공급을 하는 일도 없다.
이 여성들은 다소 말랐을 뿐 멀쩡해 보인다. 건강에 미치는 위험은 대부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불임, 무월경(amenorrhoea), 불면증, 우울증, 골다공증, 심각한 골밀도 저하, 전해질 불균형(electrolyte imbalance), 폭식증의 경우 콩팥과 심장 이상 등이다. 이런 증상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신체 손상이 정신적 고통과 마찬가지로 감춰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증상이 임상적 관점의 거식증은 아닐지라도 강박증의 경계를 넘나든다. 건강식품 강박증은 거식증을 비롯한 기타 섭식장애와 오버랩된다. ‘올바르거나 정확한 식생활에의 집착’으로 정의되는 건강식품 강박증은 처음에는 라이프스타일을 개선하려는 시도였다 해도 건강하지 않은 집착으로 악화될 수 있다. 자기혐오, 낮은 자존감, 사회적 고립, 나아가 영양실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칼로리를 따지고 ‘청정 자연식 섭취(eat clean)’를 종용 받는 사회에서 건강식 강박증이 번성한다. 인공 첨가물과 방부제를 피하고, 플라스틱 포장재와 감춰진 독소를 경계하고, 무엇보다 살찌지 않도록 종용받는 사회다. 1997년 스티븐 브래트먼 박사가 그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자신의 건강식품 강박증 경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 해 동안 건강한 식생활을 통해 웰니스를 추구했다. 하지만 점차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불쑥불쑥 음식 생각이 떠올라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워졌다. 육류·지방·인공화학물질 없는 식사를 찾아다녀야 하니 다른 사람과의 식사 약속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강박적인 식생활에서 벗어나기가 끔찍하게 힘들었다.” 우리 중 상당수가 이 같은 경험을 해봤거나 이런 사람을 알 듯하다.
건강식품 강박증은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V)에서 공식적인 질병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의 경직성과 죄의식 측면에서 다른 섭식장애와 비슷하다. 거식증이나 폭식증은 칼로리와 체중에 매달리지만 건강식품 강박증은 입술을 통과하는 모든 음식의 순수성과 품질에 집착한다. 건강식품 강박증을 위장한 섭식장애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더 교양 있어 보이지만 집착의 강도는 덜하지 않다. 이처럼 용인되는 심지어 유행하는 장애의 또 다른 하위 분류 항목도 있다. 모든 식품군에 대한 불내증(intolerances), 알레르기, 기피의 증가다.
여성의 자기부정을 부르는 문화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호주통계국 자료에선 알레르기나 불내증 때문에 특정 식품 유형을 기피했다고 답한 호주인이 400만 명에 육박했다. 소비자의 알레르기나 불내증에 대한 인식은 실제로 기록된 사례보다 시종일관 훨씬 더 높게 나타난다. 수많은 조사에서 성인 인구의 평균 1~2% 선에서 진짜 식품 알레르기가 발생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유아의 알레르기 발생 비율은 3~7%로 약간 더 높았다).
다시 말해 수백만 명이 특정 식품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판단하거나 그런 판정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밀이 가장 흔하다. 지금은 슈퍼마켓의 한 코너 전체가 무(無) 글루텐 제품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글루텐이 무엇인지 또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물어보면 대다수 소비자가 답변하지 못한다.
섭식장애 진단과 관련된 공식 통계도 실상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할 수 있다. 영국 국립임상연구소에 따르면 영국 내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은 160만 명이다. 하지만 그 수치는 영국 국립건강보험(NHS)이 말하는 이른바 ‘병원 통계(hospital episode statistics)’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다.
뚱뚱하든 말랐든, 체중이 많든 적든, 거식증과 폭식증·과식증과 기타 많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식욕에 관한 깊은 수치심, 음식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느낌, 먹는 것에 관한 죄의식·불안감 또는 당혹감이다. 이 중 누구도 섭식장애자 공식 통계인 160만 명에 포함되지 않는다. 병원 입원 환자도 아니고, 상담을 받지도 않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정상’인 사람들이다.
미국 군대식 운동법 영국에서 인기
나는 십대와 20대 시절 내내 거식증에 시달렸다. 이 같은 가혹한 자학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남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음식을 먹지 않으면 한동안은 초인 같은 기분이 든다. 남들처럼 음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몸이 가뿐하고 광기 같은 허기가 정신을 지배한다. 이는 위험하기도 하다. 최근 프랜이 고관절 골절상을 입었을 때 의사는 그녀의 뼈가 90세 노파 같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의 낮은 골밀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심각해지고 있다. 그들 중 다수가 우유와 치즈 등 칼슘이 풍부한 유제품을 기피한다. 십대와 20대는 인생에서 골량(bone mass) 형성에 중요한 시기다. 거식증 환자의 최대 90%가 일정 정도의 골량 감소를 보인다.
미인·부자·유명인 그리고 부유한 도시인들 사이에서 혹독한 체력단련법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모두 최상의 신체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같이 확산된다. 최근 영국에서 인기를 끄는 미국 군대식 운동법이 이 같은 완벽주의 마인드에 영합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계를 보여준다(kick your ass)’고 주장하는 운동법이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배리스 부트캠프’나 ‘스키니 빗치 컬렉티브’가 대표적이다. 슈퍼 S라인 몸매의 여성, 모델, 유명인사들을 위한 배타적인 피트니스의 신전이다. 웨이트 운동, 고강도 심장강화 유산소 운동(cardio), 데드리프팅(허리를 강화하는 웨이트리프팅), 서키트 트레이닝 등을 혼합한다. 강습은 오전 6~7시에 실시된다. 대다수의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수련자들이 ‘칼로리 소모의 쾌감을 느낄(feel the burn)’ 수 있도록 한다.
영국 런던 중심부의 새벽반 실내 자전거 타기 강습을 시도해 봤다. 번쩍이는 스트로브 조명과 쿵쿵거리는 댄스 음악이 어둑한 지하 스튜디오에 울려 퍼진다. 엄청난 운동 강도에 어안이 벙벙해져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열성적인 수련자들은 귀청이 떨어질 듯한 비트에 맞춰 페달을 밟는 한편 덤벨을 들어올리고 핸들 위에서 푸시업을 한다. 수련장은 부족 집단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울퉁불퉁한 근육을 가진 강사들(주로 댄서와 운동선수들)은 사교 지도자 같은 지위를 누린다.
나중에 이 같은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동료 수련생에게 물었다. “최고의 신체단련법이다. 1000칼로리가량을 태운다. 나는 금융업체에 근무해서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한다. 운동하고 나면 몇 시간 동안 고조된 기분이 유지된다.” 처음부터 너무 진을 빼는 게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완전히 매료됐다. 내 심신에 아드레날린 왕주사를 맞는 격이다.” 소울사이클(SoulCycle)이 런던을 점령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가질 만도 하다. 미국에서 건너온 스피닝과 동기유발 심리요법의 최고봉이다.
유럽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수많은 여성이 이 같은 수련을 마친 뒤 단백질 보충제(protein shake) 음료로 끼니를 때운 뒤 직장으로 향한다. 런던의 내가 다니는 수영장 탈의실에서 최근 한 중년 여성이 친구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그녀가 아침과 점심 식사를 대신해 마시고 있는 새 음료에 관한 이야기였다. ‘알칼리성 풀브산 미량 무기질을 첨가한 검정물(black water: alkaline fulvic trace-mineral-infused)’이었다.
성인 여성들 사이의 섭식장애는 직업·경제·사회·성·문화의 급속한 변화 시점과 맞물려 유행한다. 자칫 잘못 판단하면 샛길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직장부터 자녀양육, 인간관계, 외모, 노화, 체중까지 성인 여성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숱하다. 직장과 가정의 역할 충돌에 관한 너무나도 많은 죄의식과 혼란. 잡지와 광고, TV와 영화 등 도처에서 이 정도 외모는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듯한 눈부신 슈퍼 슬림 몸매 이미지 등. 불안정한 환경에선 체중감량의 추구가 인정·확실성·질서를 찾는 한 가지 방법이다.
굶주리는 젊은이들
인기절정의 건강식 블로거 ‘델리셔슬리 엘라’ 우드워드(23)는 자신의 요리법은 살빼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정말로 독선적이고 고결한 척하는 인상을 주지 않아야 한다. 나는 체중감량 같은 문제에 관해 거창한 약속은 하지 않는다.” 델리셔슬리 엘라든, 배우 귀네스 팰트로의 블로그 ‘구프(Goop)’든 많은 여성이 이 같은 요리 포르노(culinary porn)에 푹 빠진 듯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먹는 데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여성지에 실린 깡마른 여성들에게 익숙해지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필사적인 살빼기 광풍에 우리가 무감각해질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 문제다. 1986년작 고전 ‘몸에 갇힌 사람들(Hunger Strike, 김명남 옮김, 창비 펴냄)’에서 수지 오바크가 설득력 있게 묘사했듯이 쇼킹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마주치는 거식증 여성은 스스로 굶어 죽으려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B-EAT(선도적인 섭식장애 자선단체)가 의뢰한 보고서가 지난 2월 발표됐다. 섭식장애로 인해 영국 금융·경제에 발생하는 총 피해 규모가 연간 150억 파운드(25조7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거식증이나 폭식증의 알려진 치료법은 없다.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ural Therapy) 같은 상담요법과 약물을 병행하는 치료법 등이 있다. 두 방법 모두 효과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조기개입이 회복률을 크게 높이는 것으로 입증됐다. 예컨대 미국 섭식장애협회에 따르면 폭식증 증상이 나타난 지 5년 이내에 도움을 받은 여성의 경우 회복 확률이 80%다. 하지만 치료 받지 않고 증상을 15년 이상 방치하면 회복 확률이 20%로 떨어진다.
국민건강보험의 축소가 의료 서비스에 압박을 주고 있다고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경고해 왔다. 입원을 기다리는 동안 환자의 증상이 악화된다. 이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지난해 섭식장애 전체 연구 예산을 합친 액수보다 8배나 많은 자금을 조현병(정신분열증)에 배정했다. 하지만 실상 거식증만 봐도 사망률이 조현병의 2배에 달한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섭식장애 대책으로 향후 5년간 아동과 청년층의 섭식장애 치료에 1억5000만 파운드(2590억원)를 할당하겠다고 약속했다. 닉 클레그 부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 내 수십만 명이 섭식장애로 고통 받는다. 하지만 아무 말 못하고 고통 받는 사람이 많다. 일부는 치료를 받는 데만 2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대로 방치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 거식증과 기타 섭식장애로 입원 치료를 받은 어린이는 지난해 2965명으로 12% 증가했다. 10년 전의 2배로 늘어났다. 아동 의료 서비스에 대한 이 같은 추가 자금지원도 중요하지만 성인의 치료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엄마들이 자신의 식품 노이로제를 자식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아무리 잘 숨긴다고 하더라도 뭔가는 유전된다. 스칸디나비아의 최근 여러 조사에서 섭식장애 여성의 딸들은 같은 진단을 받을 위험이 2배에 달했다. 미국과 영국의 추가적인 조사도 엄마의 식습관과 섭식장애가 유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이런 아이들은 주변에 음식이 있을 때 심리적인 문제뿐 아니라 더 전반적인 불안정과 애착 문제를 보인다. 딸들이 엄마의 행동을 보고 배운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유전적인 요소가 있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유망한 신경학적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대다수 인간의 행태와 마찬가지로 선천적·후천적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젊은 여성이 더 원숙해지면 자연히 편식성 다이어트 즉 몸매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다. 섭식장애에는 중독성이 있다. 자기 의사와는 관계 없이 음식을 멀리한다. 폴 로빈슨 박사는 런던 북부에 있는 세인트 앤스 병원의 연구 상담 정신과의사다. 그는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그런 증상을 극복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소수지만 제법 많은 사람이 이른바 ‘중증 지속성 섭식장애(SEED)’로 알려진 증상을 보인다. “건강식품 강박증을 가진 모든 소녀와 여성 중 20%가량에서 고질병으로 발전한다. 중년까지 그 질병을 계속 앓는 그룹이다. 날씬한 몸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어떤 설득 치료 또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도 그 질병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을 가능성이 크다.”
로빈슨 박사는 아들 둘을 둔 30대의 거식증 여성에 대한 연구를 설명한다. “조사에서 아들들이 5세와 7세에 발육이 멈췄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자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가 퇴원하자 다시 발육이 중단됐다.” 그러나 “엄마의 거식증이 딸에게 전파되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성인이 된 뒤에 처음으로 섭식장애를 일으키는 여성은 더 드물다. 한 조사에선 25세 이후에 거식증이 생기는 비율은 2%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대다수 환자가 더 경미한 형태로든 더 이른 나이에 그런 경험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나중에 재발하거나 또는 회복되지 않는 경우다. 30~40대 여성의 유발요인은 젊은 여성과 다를지 모른다. 임신, 폐경, 체중증가, 이혼 또는 미디어를 통해 50대나 60대까지 ‘몸짱’을 유지해야 할 듯한 분위기의 고조에 대한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
재닛 트레저는 킹스칼리지런던의 정신과 교수다. 그녀는 섭식 장애가 생활양식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지 설명한다. “섭식장애는 쉽게 낫는 병이 아니다. 거식증의 경우 평균적으로 7년간, 폭식증은 12년간 지속된다. 절반 이상이 고질적인 중증 단계로 발전한다. 따라서 이 질병은 커다란 변화와 성숙이 진행되는 시기인 20~30대에 영향을 미친다.
그 피해는 출생 전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저체중 여성의 수태와 임신에 관해 나디아 미칼리 박사에게 물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산하 아동건강 연구소의 선임강사이자 명예 상담 정신과 의사다. “미숙아와 저체중아 출산은 익히 알려진 위험”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제반 조사 결과 저체중 출산과 태내 발육부진은 훗날 정신장애, 발달지체, 신진대사 장애를 초래한다.” 폭식과 비만도 당뇨병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오랫동안 중증 거식증과 폭식증을 가진 여성에게 연구의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이들은 섭식장애 증상을 나타내는 전체 여성 중 실제로 소수 그룹이다. 기타 그리고 부분적인 섭식장애를 가진 많은 여성에게 초점을 맞춘 신뢰성 높은 연구는 많지 않다.”
섭식장애를 가진 모든 여성이 자녀에게 해를 끼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거식증의 가장 큰 피해는 불임이다.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불임치료 전문가 리처드 셔반의 2011년 조사 결과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저체중 여성의 시험관아기 시술(IVF)을 통한 임신 성공률이 약간 과체중인 여성보다 더 낮다는 내용이었다.
토론자 그룹 중 최고령인 발레리(76)는 거식증으로 자녀를 포함해 모든 것을 잃었다고 내게 말했다.
“지난 50년을 돌이켜보면 한 입이라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22세 때인 1958년에 체중이 줄기 시작했다. 항상 아기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임신을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체중을 늘리려 했다. 30대와 40대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이 실패로 끝났다…. 70세 때 만난 심리학자가 마침내 내가 아니라 거식증의 문제였다고 설명해줬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극복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6년 동안 꾸준히 치료를 받았다. 의사가 나를 이 그룹에 참여시켰다. 지금은 정상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월경을 하고 아기를 갖기에는 너무 늦었다. 다시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알게 돼서 몹시 기쁘다. 그러나 아기와 손주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슬프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거식증의 가장 큰 피해는 ‘불임’
궁극적으로 이 같은 증상은 단순히 체중이나 음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풍요·과잉·박탈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문제다.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어떻게 알아내느냐의 문제다. 저체중·정상체중·과체중인 많은 여성의 입장에서 “음식을 먹고 싶다.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
상당히 큰 관계가 있는 듯하다. 우울증, 불안장애, 약물 또는 알코올 중독 같은 다른 정신건강 문제와는 달리 섭식장애는 중산층에서 더 많이 생기는 듯이 보인다. 거식증은 상당히 많은 사립학교와 일류 대학에서 나타나는 야심적이고 완벽주의적인 마인드에서 피어난다. 허영, 돈 문제든 단순히 불안이나 완벽주의 문제든 거식증은 분명 부자병이다. 돈 욕심이나 날씬한 몸매 욕심은 끝이 없다는 옛날 속담이 위험하게 구현된 형태다.
하지만 그것은 까다로운 주제다. 사회·경제적으로 중하위 계층 사람들 사이에서 증가하는 비만 문제를 두고 논리적인 토론을 하기는 쉽지 않다. 부유층 사이에서의 섭식장애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식품과 체중의 사회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유기농·생물역학적(biodynamic, 극단적인 친환경) 재료는 엄청나게 비싸다.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요리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깨끗한 자연식 먹거리’는 돈이 많이 든다.
‘뉴욕푸드뱅크챌리지’에서 여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간신히 나흘을 버텨낸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주일 분의 복지수당 29달러로 버텨내라는 과제가 참가자들에게 주어졌다. 팰트로는 자신의 블로그 ‘구프’에서 4일째 예산이 바닥났다고 털어놓았다. 팰트로는 글루텐·설탕·곡물 없는 라이프스타일을 주창해 종종 비웃음을 산다. 그녀는 그 한 주의 ‘필수 식재료’로 라임 7개, 검정콩, 아보카도, 고수풀, 그리고 케일을 꼽았다.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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