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티니안이 속한 북마리아나 15개의 군도 중에 로타 섬은 독특한 군상을 간직한 채 웅크려 있다. 짙푸른 해변과 파도, 물새, 원주민인 차모로족의 미소만이 섬을 은밀하게 채운다. 서태평양의 로타를 연모하는 이방인들은 바다에 매혹된다. 로타의 바다는 ‘로타 블루’다. 그 푸른빛을 다른 수식어로 채우지 못해 붙은 별칭이다. 절벽과 해안을 따라 섬을 둘러싼 연둣빛 산호바다와 짙푸른 바다가 선명하게 나뉜다. 가까운 바다에서는 스노클링을 즐기는 망중한이 가능하지만 바다는 이내 시린 코발트빛으로 화장을 고친다.
군도 최남단에 위치한 섬은 하루 두 차례 사이판에서 경비행기가 오갈 뿐 외지와는 단절돼 있다. 사이판이 연중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티니안 섬이 카지노로 불을 밝히는 것을 감안하면 로타는 태평양의 속살을 간직한 채 수줍게 숨어 있다. 화산으로 잉태된 섬의 면적은 96㎢로 제주도의 15분의 1 규모, 인구는 3000명으로 단출하다. 번잡한 대중교통 수단도 없고, 딱히 쇼핑타운도 없으며 원주민의 삶과 새소리만이 섬의 생태와 뒤섞여 있다. 그래서 애착이 가고 그 품이 더욱 아늑하게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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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과 절벽을 독차지하는 호사스러움
파도 옆에서 라운드를 즐기는 사이판 해변의 골퍼들.로타의 터전은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자연이 9할이다. 그 사이로 태양이 저물고 새들이 몸을 낮춘다. 섬이 간직한 최대의 비경은 섬 동북쪽의 ‘아스 만모스’ 절벽이다. 이곳에서 거칠고 짙푸른 바다는 절벽을 깎고 아우성을 만들어낸다. 파도는 10m 절벽을 거슬러 올라 포말을 뿌려내며 인간의 접근을 거부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스 만모스는 로타의 숨겨진 낚시 포인트이기도 하다. 아스 만모스에서 펼쳐진 바다는 유독 푸르고 짙다.
로타에서의 휴식은 해변 한 곳을 독차지하는 호사스러움에서 무르익는다. 평일 한낮의 테테토 비치와 물이 솟는 기이한 지형의 스위밍홀 등은 로타를 대표하는 관광지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고요하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네 시간 남짓 날아가면 닿는 해변 중에 이렇게 오붓한 곳이 있을까 싶다. 이름난 관광지에서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한국어를 들을 일도 없고, 외국 관광객들과 북적이며 조우하는 경우도 드물다. 사이판의 유명세와 비교하면 로타의 정적은 오히려 낯설다.
섬사람들이 거주하는 유일한 번화가는 송송 빌리지다. 마을에는 성 프란시스코 데 보르하 교회당과 묘지가 무채색으로 들어서 있다. 로타는 1600년대 초반부터 400년 가까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마을 분위기 또한 스페인이나 남미의 작은 마을을 옮겨온 듯 가지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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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모르족의 미소 깃든 송송 빌리지
2. 마이크로 비치의 고즈넉한 일몰 풍경. / 3. 가라판 지역에서 펼쳐지는 차모르족의 축제. / 4. 로타 섬 동북쪽의 아스만모스는 파도가 빚어낸 절경을 간직하고 있다.송송 빌리지에는 일본 아줌마가 운영하는 다이빙숍이 한 곳. ‘도쿄엔’이라는 식당이 또 한 곳, 피자 가게 하나, 잡화와 음식을 파는 편의점과 은행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들이 관광객들이 접하는 익숙함의 전부다. 골목 뒤편에는 차모로족 원주민 꼬마들의 수줍은 미소가 흐른다. 미국 자치령이 된 뒤 차모로족들은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다. 특별한 직업이 없더라도 이곳 원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송송 빌리지 끝단에는 ‘웨딩 케이크’를 닮은 타이핑코트 산이 무심하게 바다를 향해 뻗어 있다.
북마리아나제도의 맏형 격인 사이판과 로타 사이는 여객선이 다니는 것도 아니다. 두 섬을 오가는 프로펠러 비행기는 승객이 없을 때는 로타 주민을 위한 생필품을 나르는 역할을 한다.
사이판에는 변질된 이국적인 문화와 생소한 자연이 뒤섞여 공존한다. 섬 서쪽은 일상의 삶과 낮은 해변의 공간이고, 동쪽은 자연과 절벽의 영역이다. 도심 가라판 지역의 번잡함을 애써 외면하고 섬의 북동쪽으로 향하면 독특한 광경이 열린다. 그로토는 기암괴석 동굴 안에 위치한 독특한 다이빙 포인트다. 만세절벽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 저항하던 일본군이 뛰어내린 사연이 담겨 있다. 연둣빛 라군을 간직한 마나가하 섬과 호텔 군락을 따라 1㎞ 뻗어 있는 마이크로 비치의 일몰 풍경은 아늑한 여행의 정점을 찍는다. 로타와 사이판에는 같은 차모르족이 거주하지만 이들의 확연하게 다른 문화를 비교하는 것은 북마리아나 여행의 꽤 괜찮은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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