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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는 청년실업 대책] 재탕·짜깁기·보여주기 정책의 결정판

[대책 없는 청년실업 대책] 재탕·짜깁기·보여주기 정책의 결정판

7월 27일 열린 청년 고용절벽 해소를 위한 민관합동 대책회의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대과에 합격한 응시생들은 임금이 직접 내는 책문(策問)에 답을 해야 했다. 국가 현안의 해결을 위한 엄중한 답안, 이를 ‘대책(對策)’이라고 불렀다. 이 과정에서 나온 좋은 대책은 국가 운영에 반영됐다.

지난 3월 청년(15~29세) 고용률이 1984년 이후 최저치인 38.7%로 곤두박질치자, 박근혜 대통령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7월 27일 정부 6개 부처 관료들이 모여 만든 대책이 발표됐다. 답안 제목은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 한국 경제의 가장 큰 현안 중 하나인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 이번 대책에 박 대통령은 몇 점을 줄까?

본지가 대신 채점을 해봤다. 한마디로 낙제점이다. 정부가 내놓은 50쪽에 달하는 대책안에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었다. 정부도 겸연쩍었는지, 20만개의 ‘일자리 창출’도 아닌 ‘일자리 기회 창출’을 하겠다며 내놓은 54개 추진 과제 중 48개(89%)는 각 부처에서 이미 시행 중이거나, 시행하기로 했던 정책을 긁어 모은 것이었다. 새롭게 보이기 위해 ‘강화·개편·확대·개선·재편·재정비’ 등의 표현이 동원됐다. 이 중 상당수는 효과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정책들이다. 청년실업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인식도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실효성이 의심되는 과제가 허다했다. ‘잘하면 생길 수도 있다’는 식의 일자리 숫자는 과장됐고,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됐지만 알맹이는 없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어린이집 아동학대 여파로 만들어진 정책도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 둔갑했다. 심지어 불과 얼마 전까지 각 부처가 추진하려던 정책과 상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 국책연구기관의 노동전문 연구원은 “화려하지만 아무 내용이 없는 컨설팅 회사의 PT(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대책 발표 직후 보수·진보 언론 할 것 없이 ‘대증요법·급조·빈수레·면피용·눈가림·꼼수·숫자놀음·재탕·뻥튀기·부실·미흡·역부족·판박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메르스 후속 대책도 청년 일자리 정책으로 둔갑
공공 부문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내놓은 교육 분야 대책을 보자. 정부는 교원 명예퇴직을 늘려 ‘2016~2017년 총 1만5000명의 신규 교원 채용 여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1만5000명의 신규 교원을 늘리겠다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올해 신규 채용된 교원은 1만3000명 정도다. 정부는 향후 2년간 명예퇴직할 교원을 지난해(5500명) 보다 연 2000명 늘려 1만3000명을 1만5000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교원 전체 총원은 늘리지 않고, 윗돌(명퇴) 빼서 아랫돌(신규) 괸다는 식이다.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지난해 명퇴를 신청한 교원은 1만3376명. 이 중 실제 퇴직한 교원은 5533명이다. 각 지방교육청이 지방채까지 발행했는데도 예산이 부족해 퇴직금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올 8월 말 명예퇴직을 하겠다며 신청한 교원 1212명 중 405명(33%)만 대상자로 확정했다.

더욱이 교육부는 지난 5월 각 시·도 교육청에 내년 교원 정원 가배정 계획을 통보했다. 지난해보다 2300명이나 감소한 수치였다. 신규 교원을 늘리겠다는 이번 대책과 상충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교원정책과 관계자는 “잘못 알려진 수치”라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관계자는 “교총에서 각 시·도 교육청에 통보된 교육부 방침을 취합한 수치”라며 “청년실업 대책과 엇나가자 교육부가 말을 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6~2017년 시간선택제 교원을 500명 신규 채용하겠다는 것 역시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가 아니다. 지난해 말 정부가 시간선택제 교원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을 때, 전국 교육대학 학생들이 동맹휴업을 벌인 바 있다.

간병에 필요한 입원서비스를 병원(간호사+간호조무사)이 제공하는 포괄간호서비스를 확대해 향후 2년간 1만명의 간호인력을 채용하겠다는 방침은 메르스 후속대책이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 둔갑한 경우다. 이 제도는 2013년 7월 시범사업이 시작됐는데, 2년간의 계약 만료 후 간호조무사들이 일자리를 잃는 등 부작용이 많아 의료계에서 반발하는 정책이다. 관련 예산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최한 공청회 자료에 따르면, 포괄간호시스템이 전면 도입되면 연간 3조~7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청년 일자리 사업에 쓰인 정부 예산은 1조4000억원 정도였다. 지난해 4월 인천 어린이집 아동폭행 사건 후속 대책으로 보건복지부가 추진했던 보조·대체교사 확대 방안도 청년실업 대책으로 바뀌어 이번 대책에 포함됐다.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를 확대해 아낀 재원으로 2년간 8000명의 청년을 고용한다는 대책은 지난 6월 기획재정부가 이미 발표했던 내용이다. 숫자만 기존 6700명에서 8000명으로 늘렸다. 민간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청년 정규직을 채용하면 1인당 연 540만원을 지급해 1만명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제도 역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하지만 노동계가 이 정책에 반발하고 있고, 실제 신규 채용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노동전문가들이 헛웃음을 짓는 대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2년간 각각 10만명에게 기회를 준다는 청년 인턴제와 직업 훈련 확대 대책은 단기 처방과 숫자 늘리기에 불과하다. 공무원 시간선택제 확대 역시 청년층에 혜택이 갈지 미지수다. 애초 이 제도가 경력단절 여성을 위해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시간선택제 공무원 합격자 10명 중 8명은 여성이었고, 합격자 평균 연령은 35.2세였다.

정부가 재계와 협약을 맺고 2017년까지 ‘한시적’으로 민간 부문에서 16만명의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프로젝트 역시 냉소적인 반응이 많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이렇다. ‘창조경제 혁신센터 지원기업(대기업)이 지역상의 등과 협력해 지역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세부 추진방안을 마련한다.’ 기업을 옥죄는 것도 모자라, 대기업을 정책 추진 주체로 떠민 것 자체가 문제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당분간 기업이 쇼잉을 하겠지만, 정부가 사실상 레임덕에 들어설 내년부터는 어떨지 궁굼하다”고 비꼬았다.

이밖에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고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노동시장 개혁과 고용시장 미스매치 해소, 대학구조 개선 등에 대한 대책도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많다. 이규용 한국노동 연구원 노동통계연구실장은 최근 발표한 ‘청년층 일자리정책의 방향 모색’이라는 보고서에서 ‘기존의 (청년 실업)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면 기존의 문제인식이나 정책처방에 대한 재접근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이번 대책을 만드느라 고생한(?) 관료들과 ‘OK’ 사인을 했을 장관들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미국과 독일이 주는 교훈
또 한가지.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밖을 내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주요국 청년층 고용상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독일 청년 고용률은 꾸준히 상승했고,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등은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과 독일은 경기 회복 영향도 있지만 노동시장 유연성과 임금인상, 체계적인 직업훈련시스템, 고용확대를 위한 개혁조치 등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정부 압박에 어쩔 수 없이 화답하는 태도를 보여온 대기업도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좋은 예가 있다. 최근 스타벅스와 마이크로소프트·월마트·JP모건체이스 등 미국 대기업 17곳은 ‘청년 일자리 10만개 제공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자선사업이 아니다. 청년 실업을 해결하지 못하면 더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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