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의 역사를 따라 걷다
운동화의 역사를 따라 걷다
7월의 어느 날 오후 미국의 이스턴 파크웨이-브루클린 박물관 지하철 역. 실제보다 큰 신발 포스터가 지하철 이용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컨버스 운동화 광고가 줄줄이 각 플랫폼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순백색 바탕 위에 새겨진 고해상도의 처크 테일러 올스타스 운동화들이었다. 계획됐든 우연이든 이 포스터는 바로 위 지상에서 시사회가 진행 중인 새 전시회의 서막으로 잘 어울렸다.
‘운동화 문화의 부상(The Rise of Sneaker Culture)’ 전시회가 지난 7월 10일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개막됐다. 19세기 중반의 출현으로부터 산업화, 양대 세계대전을 거쳐 현대 문화에 이르기까지 운동화의 진화과정을 탐구한다.
“운동화는 세계인이 열광하는 애호품이 됐다”고 브루클린 박물관의 아놀드 리먼 관장이 말했다. 개막 이틀 전 시사회에 모인 관객 앞에서 연설하는 자리였다. “‘운동화 문화의 부상’에는 탄성을 자아내는 표본 150점 이상이 전시된다. 현재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신는 운동화의 복잡한 사회사와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최초의 전시회다.”
시사회에 몰려든 많은 사람처럼 리먼 관장은 이날 오후 신발을 신중하게 선택했다. 그가 연단에서 내려가 지팡이를 짚고 설 때 그의 발치에 시선이 집중됐다. 정장과 넥타이 차림에 받쳐 신은 일본 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의 노란색 운동화였다. 실내에는 흰색에 네이비·남색 줄무늬의 클래식 아디다스, 두툼하게 뒷굽을 넣은 플랫폼 힐의 금색 운동화, 검은색 끈으로 맨 풍선껌 핑크색 컨버스 운동화, 검정색 나이키 스우시 로고가 새겨진 적-백색 하이탑(발목 부분이 높은 운동화) 외에도 각양각색의 운동화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박물관에 모인 군중이 ‘운동화 문화의 부상’전 테이프를 끊는 그룹이었다. 2013년 엘리자베스 세멜랙이 이곳에서 소규모로 전시회를 기획했다. 그녀는 신발 역사가이자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배타 신발 박물관의 선임 큐레이터다. 미국 예술연맹(AFA)이 그것을 순회전시회로 선정하면서 확대한 것이 이 전시회로 오는 10월 4일까지 열린다. 그 뒤 오하이오주 톨레도 미술관(12월 3일~2월 28일), 애틀랜타주 하이 미술관(2016년 6월 12일~8월 14일), 켄터키주 루이빌의 스피드 미술관(2016년 9월 9일~11월 27일)으로 순회 전시된다.
전시회는 브루클린 박물관 5층 은색으로 칠해진 작은방에서 시작된다. 한쪽 벽면에 걸린 커다란 노란색 고딕체의 전시회 타이틀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하다. 중앙 무대를 차지한 주인공은 운동화로 가득한 유리 케이스들이다. 정지화상, TV 스크린과 함께 안내문이 벽면을 장식한다. 왼쪽에 위치한 주 전시장에서도 같은 진열 세트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직사각형의 대형 전시실에 운동화가 가득한 케이스들이 방 한가운데 2열 횡대로 늘어섰고 벽에도 추가 전시품이 걸려 있다.
“나는 신발과 관련해 운동화가 왜 발명됐고 사람들이 왜 관심을 갖게 됐는지 항상 의문을 가져 왔다”고 하이힐의 역사를 함께 연구해온 세멜랙 큐레이터가 말했다. 운동화의 등장은 기본적으로 고무를 중심으로 한 혁신과 연결돼 있다. 밑창의 두터운 고무는 중남미에서 수세기 전부터 사용돼 왔다. 1800년대 중반 찰스 굿이어가 고온과 저온에서 그 소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법을 개발했다. 그것이 운동화가 산업적 환경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게 되는 전환점을 이뤘다.
산업혁명의 기술 발전(예를 들어 고무의 ‘생고무에 황을 넣어 탄성 고무로 만드는 가황’)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는 운동화가 비집고 들어설 틈새를 열어줬다. 중상류층 기업가들은 테니스와 크로켓 같은 여가활동을 즐겼다. 거기에 필요한 장비를 사용하고 신발을 착용했다. 새로 얻은 지위를 과시하는 한 방편이었다.
세멜랙 큐레이터는 “운동화가 보잘것없는 지위에서 고급으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고 많은 사람은 생각하지만 나는 반대로 귀족 신분에서 출발해 훗날 민주화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초창기 운동화는 별 볼 일 없어 보였을지 모르지만 특권층이 신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산업화 이후 공장 노동과 숨막히는 주거환경의 물리적·도덕적 영향에 관한 우려가 커졌다. 그것이 운동화가 널리 보급되는 기폭제가 됐다. 운동과 신선한 공기가 “도시 병폐의 해독제”로 여겨지게 됐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육체적 완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됐다. 그에 따라 국민성과 인종 담론의 핵심으로 떠올랐다’고 한 전시 안내문에 적혀 있다. ‘일본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이들 불길한 이념들이 체력단련의 대대적인 대외적 과시로 표출됐다. 그리고 1936 올림픽과 같은 경쟁적인 스포츠 경기에 상당한 정치적 아젠다를 부여했다.’ 바로 옆의 벽면에선 올림픽에 출전한 제시 오웬스의 경주 모습이 담긴 흑백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상영된다.
파시즘과 기타 극단 이데올로기의 부상이 운동화의 민주화를 촉진시켰다는 사실은 아니러니라고 세멜랙 큐레이터는 지적한다. 제조기술이 발달하고 생산원가가 낮아지면서 운동화가 더 널리 보급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베이비붐으로 인해 운동화가 아동기 특히 소년의 상징이 됐다고 그녀는 말한다. 전시회는 이어 운동화가 신분과 권위의 상징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1970년대 ‘미 제너레이션(me generation,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베이비붐 세대)’은 피트니스와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를 통한 자기계발에 집착하게 됐다. 이 기간 동안 ‘개성과 패션의 컬트(맹목적인 추종)가 도시 농구 코트에서 만났다. 농구화는 농구장 안팎에서 남성적 개성미를 뽐낼 수 있는 수단으로 탈바꿈했다’고 안내문에 써 있다. 1980년대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을 광고모델로 내세우고 아디다스는 힙합 그룹 런 디엠씨와 광고계약을 했다. 운동화 문화를 더 넓은 계층, 특히 남성들 사이에 더 폭넓게 확산시켰다.
“남자들은 역사적으로 패션에 양떼 심리를 갖고 있었다”고 세멜랙 큐레이터가 3피스 정장을 가리켜 말했다. “남자들이 천편일률적인 정장의 틀을 깨고 나오기 시작하면서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그녀가 덧붙였다. 예컨대 IT 마니아의 진화는 성공과 패션의 대안 모델을 제시한다. “운동화는 말 그대로 남자들이 알아야 하는 패션 어휘 수를 늘리고 있다. 똑같은 복장을 하더라도 그들이 표현하는 패션 스타일은 신발만으로도 전혀 달라진다.”
애덤 디바인은 8일 저녁 박물관에서 열리는 회원 시사회에 입고 갈 옷으로 흰색 버튼다운 셔츠와 진회색 조끼를 선택했다. 청색과 녹색의 대각선 줄무늬가 있는 그의 넥타이가 연녹색 컨버스화와 잘 어울렸다. 창고에서 일하는 디바인은 종종 컨버스화를 신는다고 한다. 밑바닥이 평평하고 튼튼해서 무거운 짐을 들기에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외출은 “멋 부릴 기회”로 행사에 어울리는 새 운동화를 선택했다.
디바인이 서 있는 작은 뒤쪽 방의 한쪽 벽에선 2005년 다큐멘터리 ‘저스트 포 킥스(Just for Kicks)’가 방영되고 작은 테이블에는 종이와 컬러펜이 놓여 있었다. ‘당신에게는 어떤 운동화 스토리가 있습니까?’ 작은 종이조각마다 굵직한 글씨로 묻고 있었다. 디바인은 반대편 벽을 따라 지금껏 붙여진 답변들을 살펴봤다.
‘나는 어렸을 때 컨버스 운동화에 데이지를 수놓곤 했다.’
‘뉴발란스(NB) 993이 최고로 편한 운동화였다.’
‘퓨마 클라이드 1993년산. 대학 시절 나의 운동화!’
‘내 운동화 영감의 원천은 드라마 ‘내 이름은 펑키(Punky Brewster)’에서 색깔이 뒤섞인 컨버스 운동화였다. 한쪽은 자주색, 또 한쪽은 노란색이 다섯 살인 내겐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디바인은 “어렸을 때 펌프스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기억난다”고 했다. 모두가 선망했던 리복 펌프 운동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엄마는 어떻게든 중고 매장에서 대폭 할인된 가격에 운동화를 구해다 그에게 안겨줬다. 그 운동화를 신을 수 있느냐는 “큰 의미를 가진 문제였다”고 디바인은 말했다. “화폐와 같았다. 운동화 같은 실용적인 물건이 그렇게 큰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세멜랙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회의 초점을 남자다움과 남성의 신발에 초점을 맞췄다. “운동화 문화는 압도적으로 남성 중심적이다. 지금은 여성도 운동화 문화에 발을 담글 수는 있지만 아직 전적으로 자유롭지는 못하다.” 여성이 여전히 운동화 문화의 구경꾼으로 남아 있지만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고 그녀는 내다봤다. “5년 뒤에 이 전시회를 다시 개최한다면 결말이 약간 달라질 것이다.” 이번 전시회를 마무리 짓는 루이 뷔통, 크리스찬 루부탱, 프라다 같은 디자이너, 데이미언 허스트와 케힌데 와일리 같은 미술가 작품들의 차원을 뛰어넘는 결말이다.
아직 기획되지 않은 그 새로운 결말에는 대쇼나 스미스 같은 운동화 마니아가 포함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디바인이 가기 바로 전에 ‘당신의 운동화 스토리는?’ 전시장을 지나갔다. 그녀의 맞춤 형광 노란색 나이키 허라치 운동화는 운동화의 물결 속에서도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양말 같은 소재와 통기 구멍은 비 오는 날에 탁월한 선택인 데다 스타일도 만점이었다. “누군가의 발에 밝은 빛이 비칠 때 모든 사람의 가슴에 무지개를 띄울 수 있다.”
스미스는 신발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구두 공방 겸 교육기관 ‘브루클린 슈 스페이스’에서의 강습에 쏟아부었다. 그녀의 운동화 사랑은 무슬림으로 자라던 어렸을 때 시작됐다고 한다. 항상 온몸을 감는 전통의상 끝단 밑으로 운동화를 드러내고 싶었다. 운동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창의성의 배출구이며 “남들과 달라 보이는 방법”이라고 스미스가 말했다. 갖고 있는 운동화가 80켤레 정도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매일 아침 어떤 운동화를 신을지 선택하는 과정이 자신의 표현방법이라고 한다.
- STAV ZIV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운동화 문화의 부상(The Rise of Sneaker Culture)’ 전시회가 지난 7월 10일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개막됐다. 19세기 중반의 출현으로부터 산업화, 양대 세계대전을 거쳐 현대 문화에 이르기까지 운동화의 진화과정을 탐구한다.
“운동화는 세계인이 열광하는 애호품이 됐다”고 브루클린 박물관의 아놀드 리먼 관장이 말했다. 개막 이틀 전 시사회에 모인 관객 앞에서 연설하는 자리였다. “‘운동화 문화의 부상’에는 탄성을 자아내는 표본 150점 이상이 전시된다. 현재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신는 운동화의 복잡한 사회사와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최초의 전시회다.”
시사회에 몰려든 많은 사람처럼 리먼 관장은 이날 오후 신발을 신중하게 선택했다. 그가 연단에서 내려가 지팡이를 짚고 설 때 그의 발치에 시선이 집중됐다. 정장과 넥타이 차림에 받쳐 신은 일본 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의 노란색 운동화였다. 실내에는 흰색에 네이비·남색 줄무늬의 클래식 아디다스, 두툼하게 뒷굽을 넣은 플랫폼 힐의 금색 운동화, 검은색 끈으로 맨 풍선껌 핑크색 컨버스 운동화, 검정색 나이키 스우시 로고가 새겨진 적-백색 하이탑(발목 부분이 높은 운동화) 외에도 각양각색의 운동화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박물관에 모인 군중이 ‘운동화 문화의 부상’전 테이프를 끊는 그룹이었다. 2013년 엘리자베스 세멜랙이 이곳에서 소규모로 전시회를 기획했다. 그녀는 신발 역사가이자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배타 신발 박물관의 선임 큐레이터다. 미국 예술연맹(AFA)이 그것을 순회전시회로 선정하면서 확대한 것이 이 전시회로 오는 10월 4일까지 열린다. 그 뒤 오하이오주 톨레도 미술관(12월 3일~2월 28일), 애틀랜타주 하이 미술관(2016년 6월 12일~8월 14일), 켄터키주 루이빌의 스피드 미술관(2016년 9월 9일~11월 27일)으로 순회 전시된다.
전시회는 브루클린 박물관 5층 은색으로 칠해진 작은방에서 시작된다. 한쪽 벽면에 걸린 커다란 노란색 고딕체의 전시회 타이틀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하다. 중앙 무대를 차지한 주인공은 운동화로 가득한 유리 케이스들이다. 정지화상, TV 스크린과 함께 안내문이 벽면을 장식한다. 왼쪽에 위치한 주 전시장에서도 같은 진열 세트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직사각형의 대형 전시실에 운동화가 가득한 케이스들이 방 한가운데 2열 횡대로 늘어섰고 벽에도 추가 전시품이 걸려 있다.
“나는 신발과 관련해 운동화가 왜 발명됐고 사람들이 왜 관심을 갖게 됐는지 항상 의문을 가져 왔다”고 하이힐의 역사를 함께 연구해온 세멜랙 큐레이터가 말했다. 운동화의 등장은 기본적으로 고무를 중심으로 한 혁신과 연결돼 있다. 밑창의 두터운 고무는 중남미에서 수세기 전부터 사용돼 왔다. 1800년대 중반 찰스 굿이어가 고온과 저온에서 그 소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법을 개발했다. 그것이 운동화가 산업적 환경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게 되는 전환점을 이뤘다.
산업혁명의 기술 발전(예를 들어 고무의 ‘생고무에 황을 넣어 탄성 고무로 만드는 가황’)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는 운동화가 비집고 들어설 틈새를 열어줬다. 중상류층 기업가들은 테니스와 크로켓 같은 여가활동을 즐겼다. 거기에 필요한 장비를 사용하고 신발을 착용했다. 새로 얻은 지위를 과시하는 한 방편이었다.
세멜랙 큐레이터는 “운동화가 보잘것없는 지위에서 고급으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고 많은 사람은 생각하지만 나는 반대로 귀족 신분에서 출발해 훗날 민주화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초창기 운동화는 별 볼 일 없어 보였을지 모르지만 특권층이 신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산업화 이후 공장 노동과 숨막히는 주거환경의 물리적·도덕적 영향에 관한 우려가 커졌다. 그것이 운동화가 널리 보급되는 기폭제가 됐다. 운동과 신선한 공기가 “도시 병폐의 해독제”로 여겨지게 됐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육체적 완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됐다. 그에 따라 국민성과 인종 담론의 핵심으로 떠올랐다’고 한 전시 안내문에 적혀 있다. ‘일본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이들 불길한 이념들이 체력단련의 대대적인 대외적 과시로 표출됐다. 그리고 1936 올림픽과 같은 경쟁적인 스포츠 경기에 상당한 정치적 아젠다를 부여했다.’ 바로 옆의 벽면에선 올림픽에 출전한 제시 오웬스의 경주 모습이 담긴 흑백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상영된다.
파시즘과 기타 극단 이데올로기의 부상이 운동화의 민주화를 촉진시켰다는 사실은 아니러니라고 세멜랙 큐레이터는 지적한다. 제조기술이 발달하고 생산원가가 낮아지면서 운동화가 더 널리 보급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베이비붐으로 인해 운동화가 아동기 특히 소년의 상징이 됐다고 그녀는 말한다.
운동화는 남들과 차별화시키는 소품
“남자들은 역사적으로 패션에 양떼 심리를 갖고 있었다”고 세멜랙 큐레이터가 3피스 정장을 가리켜 말했다. “남자들이 천편일률적인 정장의 틀을 깨고 나오기 시작하면서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그녀가 덧붙였다. 예컨대 IT 마니아의 진화는 성공과 패션의 대안 모델을 제시한다. “운동화는 말 그대로 남자들이 알아야 하는 패션 어휘 수를 늘리고 있다. 똑같은 복장을 하더라도 그들이 표현하는 패션 스타일은 신발만으로도 전혀 달라진다.”
애덤 디바인은 8일 저녁 박물관에서 열리는 회원 시사회에 입고 갈 옷으로 흰색 버튼다운 셔츠와 진회색 조끼를 선택했다. 청색과 녹색의 대각선 줄무늬가 있는 그의 넥타이가 연녹색 컨버스화와 잘 어울렸다. 창고에서 일하는 디바인은 종종 컨버스화를 신는다고 한다. 밑바닥이 평평하고 튼튼해서 무거운 짐을 들기에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외출은 “멋 부릴 기회”로 행사에 어울리는 새 운동화를 선택했다.
디바인이 서 있는 작은 뒤쪽 방의 한쪽 벽에선 2005년 다큐멘터리 ‘저스트 포 킥스(Just for Kicks)’가 방영되고 작은 테이블에는 종이와 컬러펜이 놓여 있었다. ‘당신에게는 어떤 운동화 스토리가 있습니까?’ 작은 종이조각마다 굵직한 글씨로 묻고 있었다. 디바인은 반대편 벽을 따라 지금껏 붙여진 답변들을 살펴봤다.
‘나는 어렸을 때 컨버스 운동화에 데이지를 수놓곤 했다.’
‘뉴발란스(NB) 993이 최고로 편한 운동화였다.’
‘퓨마 클라이드 1993년산. 대학 시절 나의 운동화!’
‘내 운동화 영감의 원천은 드라마 ‘내 이름은 펑키(Punky Brewster)’에서 색깔이 뒤섞인 컨버스 운동화였다. 한쪽은 자주색, 또 한쪽은 노란색이 다섯 살인 내겐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디바인은 “어렸을 때 펌프스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기억난다”고 했다. 모두가 선망했던 리복 펌프 운동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엄마는 어떻게든 중고 매장에서 대폭 할인된 가격에 운동화를 구해다 그에게 안겨줬다. 그 운동화를 신을 수 있느냐는 “큰 의미를 가진 문제였다”고 디바인은 말했다. “화폐와 같았다. 운동화 같은 실용적인 물건이 그렇게 큰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세멜랙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회의 초점을 남자다움과 남성의 신발에 초점을 맞췄다. “운동화 문화는 압도적으로 남성 중심적이다. 지금은 여성도 운동화 문화에 발을 담글 수는 있지만 아직 전적으로 자유롭지는 못하다.” 여성이 여전히 운동화 문화의 구경꾼으로 남아 있지만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고 그녀는 내다봤다. “5년 뒤에 이 전시회를 다시 개최한다면 결말이 약간 달라질 것이다.” 이번 전시회를 마무리 짓는 루이 뷔통, 크리스찬 루부탱, 프라다 같은 디자이너, 데이미언 허스트와 케힌데 와일리 같은 미술가 작품들의 차원을 뛰어넘는 결말이다.
아직 기획되지 않은 그 새로운 결말에는 대쇼나 스미스 같은 운동화 마니아가 포함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디바인이 가기 바로 전에 ‘당신의 운동화 스토리는?’ 전시장을 지나갔다. 그녀의 맞춤 형광 노란색 나이키 허라치 운동화는 운동화의 물결 속에서도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양말 같은 소재와 통기 구멍은 비 오는 날에 탁월한 선택인 데다 스타일도 만점이었다. “누군가의 발에 밝은 빛이 비칠 때 모든 사람의 가슴에 무지개를 띄울 수 있다.”
스미스는 신발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구두 공방 겸 교육기관 ‘브루클린 슈 스페이스’에서의 강습에 쏟아부었다. 그녀의 운동화 사랑은 무슬림으로 자라던 어렸을 때 시작됐다고 한다. 항상 온몸을 감는 전통의상 끝단 밑으로 운동화를 드러내고 싶었다. 운동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창의성의 배출구이며 “남들과 달라 보이는 방법”이라고 스미스가 말했다. 갖고 있는 운동화가 80켤레 정도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매일 아침 어떤 운동화를 신을지 선택하는 과정이 자신의 표현방법이라고 한다.
- STAV ZIV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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