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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스티브’의 결혼을 허하노라

‘아담과 스티브’의 결혼을 허하노라

동성결혼에 대한 항의로 사용했던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있었지 아담과 스티브가 아니다’는 동성결혼 합법화로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크레이그 체스터는 16세 때 고향 댈러스 교외 주택지구의 교회에서 만난 한 소년과 사랑에 빠졌다.

1980년대 초의 일이었다. 남부에서 동성애가 인정받으리라 기대하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이 불운한 사랑을 알게 됐을 때 목사가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하느님이 만드신 건 아담과 이브이지 아담과 스티브는 아니다.” 그리고는 레위기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체스터는 그 직후 목숨을 끊으려 했다. 다니던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칼로 손목을 그었다. 지금은 배우 겸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다. 그의 첫 시나리오는 2005년 ‘아담과 스티브’로 영화화됐다. 동성애 로맨틱 코미디다.

체스터는 “목사님에게서 처음 그 말을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당시 TV에 동성애자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교회에선 강사들을 초청해 LA와 뉴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동성애가 왜 나쁜지 설명하는 세미나가 열리곤 했다. 성장 과정에서 그런 강연을 들으며 상당한 수치심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지난 6월 미국 대법원은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동성 커플의 결혼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 실패로 끝났다. 수십 년 동안 그 싸움은 매번 ‘하느님은 아담과 이브를 만드셨지 아담과 스티브를 만들지 않았다’ 또는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있었지 아담과 스티브는 없었다’는 슬로건으로 귀결되곤 했다. 처음 성적 소수자(LGBT) 논쟁을 목격한 외계인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논리의 전형이자 반석처럼 확고한 증거로 여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나도 확신을 갖고 거론했기 때문이다. 그 동성애혐오적인 상투어구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됐다. 하느님. 종교. 동성관계 비하. 이성 파트너 관계를 인류의 반석처럼 이상화하는 사고방식.
 TV 전도사 제리 팰웰이 슈퍼전파자
‘아담과 스티브’는 1977년 동성애 반대 집회의 피켓 문구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스턴의 한 지역에서 열린 이 집회에 ‘가족 지지(pro-family)’ 시위대 1만5000명이 운집했다. 반 페미니즘 운동가 필리스 슐래플리, 전국생명권리위원회(National Right to Life Committee) 설립자 밀드레드 제퍼슨 같은 초창기 종교 우파의 아이콘들이 동성애·낙태, 그리고 8㎞ 밖에서 열리는 미국여성대회를 규탄했다. 행사 진행자는 리 굿먼이라는 사업가였다. 그는 이 행사를 “미국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날”이라고 선언했다.

뉴욕타임스는 1977년 11월 19일자 기사에서 몇몇 시위 구호를 인용했다. ‘남녀평등헌법수정안(ERA)은 졸작이다’ ‘게이가 아닌, 해피한 사람들, 해피 텍사스(gay에는 동성애 말고도 ‘즐거운’ ‘명랑한’이란 뜻도 있다)’ 그리고 물론 ‘하느님이 만드신 건 아담과 이브이지 아담과 스티브가 아니다’ 등이다.

이 슬로건을 누가 만들었든 분명 ‘하느님이 동성애자를 원했다면 아담과 프레디를 창조했을 것’이라는 문구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듯했다. 1970년 한 그래피티 미술가가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담벼락에 휘갈겨 쓴 문장이다. 그리고 1977년 반동성애 운동가 애니타 브라이언트가 피플 잡지에서 그것을 인용했다(‘프레디’를 ‘브루스’로 바꿨다).

그 문장을 누가 처음 미국 전역의 무대에서 언급했을지 짐작이 간다고? 그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 “동성애자들이 9·11테러를 유발했다”는 발언으로 악명 높은 TV 전도사 고(故) 제리 팰웰이다. 1979년 기자회견에서 그 문장을 사용했고 기독교 잡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에서 받아 썼다. 같은 해 보수 매체 ‘리뷰 오브 더 뉴스’에서도 그의 말을 인용했다. “하느님은 아담과 스티브가 아니라 아담과 이브를 만드셨다.” 1980년대 초에는 팰웰이 애용하는 문장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TV 가이드와 에스콰이어 잡지에서도 단어만 약간 바꿔 인용했다.

팰웰이 슈퍼전파자 역할을 한 셈이다. 그 뒤 캘리포니아주의 보수파 하원의원 윌리엄 E 대너마이어에게로 건너뛰었다. 1986년 LA 타임스 프로필의 설명이다. 매사추세츠주 정치인 로저 고옛트는 1985년 동성애자 권리 법안을 저지할 때 그 표현을 사용했다. 세력을 키워가던 종교 우파가 펴내거나 그들에 관한 책에서 ‘아담과 스티브’라는 어구가 눈에 띄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유세프의 1986년 저서 ‘교회인가 문화인가?(Leading the Way: The Church or Culture?)’에선 한 챕터의 제목이 ‘동성애: 아담과 스티브’였다. 별난 사건도 있었다. 록가수 리틀 리처드가 1986년 자신의 ‘동성애자 라이프스타일’을 중단하면서 그 표현을 썼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 표현이 보편화됐다. 뉴스위크에도 2번 쓰였다(한 번은 동성결혼의 불가피함을 예측한 1993년 기사였다). 1996년 ‘뉴욕’ 잡지의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 프로필에도 등장했다. 종교학자 레베카 T 앨퍼트는 1998년 저서에서 그것이 ‘동성애 반대 운동의 중요한 슬로건’이 됐다고 분석했다. 플래카드, 자동차 범퍼 스티커, TV에 단골 메뉴가 됐다고 전했다. 그 뒤로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그 표현을 입에 올렸다. 기억될 만한 사건도 있었다. 영국의 데이비드 심슨 의원은 2013년 동성결혼에 관한 논쟁 중 그 표현을 잘못 인용했다. “태초에 에덴 동산에는 아담과 스티브가 있었다.”

1990년대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됐다. 성적 소수자 저술가와 지지자들이 ‘아담과 스티브’를 무장해제하기 시작했다. 소설가 E 린 해리스는 1994년 작품 ‘내 모습 이대로(Just as I Am)’에서 그 표현을 비웃었다. 소설의 등장인물 중 하나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하느님이 만든 건 아담과 이브지 아담과 스티브가 아니다’는 말이 내 귀에 한 번 더 들리면 호통칠 거야. 그 바보 같은 X소리는 누가 생각해낸 거야? 그 빌어먹을 스티브가 도대체 누구야?”

그 뒤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극작가 폴 러드닉의 1998년작 연극 ‘지금까지 전해진 가장 근사한 스토리(The Most Fabulous Story Ever Told)’에선 하느님이 아담과 스티브뿐 아니라 레즈비언 커플인 제인과 메이블을 창조한다.
 커밍아웃은 이제 문자 메시지로
1977년 동성애자 권리 옹호 운동가들이 뉴올리언즈에서 애니타 브라이언트의 콘서트에 항의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다. 그는 피플 잡지와 인터뷰에서 ‘아담과 스티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러드닉의 자칭 ‘미친 로맨틱 코미디’는 원리주의자들을 조롱해 그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을 못 본 사람들의 반발이 가장 거셌다고 그는 전한다. “알고 보니 독실한 종교인들, 종교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종종 그 연극의 가장 열성적인 팬이었다.”

때마침 ‘가장 근사한 스토리’가 등장한 때를 전후해 체스터가 ‘전 동성애자’ 캠프에 잠입했다. 동성애자 탈피(gay conversion) 운동에 관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 워크숍 장면을 돌이켰다. 동성애자에서 전향했다는 한 남성은 하느님이 만든 건 아담과 이브이지 아담과 스티브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또 다른 남성은 자신의 이름이 아담이고 옛 남자친구 이름이 스티브였다고 했다.

체스터는 그것을 토대로 영화 ‘아담과 스티브’의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과 감독을 맡았다. 아담과 스티브라는 이름의 커플에 관한 코미디다. “평생 동안 나를 따라다녔던 어구다. 그것을 영화 제목으로 올리면서 권리를 되찾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것을 1990년대 동성애자들이 퀴어(queer,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단어였지만 요즘엔 보통명사가 됐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찾은 데 비유한다. 그가 영화 시나리오를 쓸 당시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은 합법이 아니었다. 체스터 감독은 2004년 동성결혼 장면의 촬영을 이렇게 기억한다. “세트에선 정말 슬프고 가슴 찡하고 어느 정도 달콤한 날이었다. 상상 속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평단에서 호평 받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는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체스터 감독의 조카는 텍사스주 덴튼의 한 비디오점에서 우연히 영화를 발견한 뒤 커밍아웃하기로 결정했다. “조카가 DVD 커버에 오른 내 얼굴을 보고는 탄성을 올렸다. ‘세상에, 체스터 삼촌이 게이네. 나도 게이인데.’ 그러곤 내게 문자를 보냈다. ‘체스터 삼촌, 나도 게이라서 행복해요.’“ 체스터 감독이 돌이켰다. “사람들은 요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커밍아웃한다. 어떻게 보면 멋진 일이다.”

펜실베이니아주 유니언타운의 대니얼 리그스는 아담&스티브라는 사진관을 운영한다. 동성애자 결혼과 약혼 사진이 전문이다. 리그스 사장은 켄터키주에서 침례교 목사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작은 마을 고객들이 동성 커플도 받아주는지 마음 편히 물을 수 있는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다.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던 중 우리 성적 소수자 공동체의 모든 사람이 필시 ‘하느님이 만든 건 아담과 이브지 아담과 스티브가 아니다’는 말을 들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없애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아담과 스티브’의 재정의는 디지털 시대에도 계속됐다. 오늘날 그 어구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주로 긍정적인 블로그 기고문, 카툰, 이미지가 뜨며 부정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 로스앤젤레스의 동성 약혼 커플인 윌 셰퍼드와 R J 아귀아의 인기 블로그는 ‘Not Adam and Steve’라는 풍자적인 이름을 갖고 있다(비슷한 생각을 가진 블로그 ‘Meet Adam and Steve’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 표현에 빗댄 웹툰 XKCD 만화도 있다. 요즘엔 그 슬로건을 정색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종종 꼴보수(wingnuts)로 묘사된다. 2013년 인디애나주의 한 교회가 지역 주민들의 항의 표시로 그런 팻말을 세웠을 때처럼 말이다.

지난 6월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 이후 그 상투 어구의 등장 빈도가 또 다시 부쩍 늘었다. 트위터에선 아주 많은 축하 조크와 말장난의 소재가 됐다. 코미디언 가이 브래넘은 “이번 주 결혼하는 ‘아담과 스티브’라는 이름의 커플들에겐 디스카운트를 해줘야겠군”이라고 트윗을 띄웠다.

그렇다고 정색한 얼굴로 ‘Not Adam and Steve’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며칠 동안 지역 뉴스 방송에서, 침 튀기며 비판하는 신문 기고 칼럼에서, 성직자들의 비판 강연에서 튀어나왔다. 심지어 뉴욕의 게이 퍼레이드에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유대 정교회 단체가 들고 나온 피켓에서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주요 언론매체에선 그 어구가 지나간 시대의 상징으로 그만큼 빈번히 등장한다. 뉴욕 일간지 ‘데일리 뉴스’는 리드 기사에서 그 어구를 더 간단명료하게 사용했다. “이제 미국에선 아담과 이브뿐 아니라 아담과 스티브의 결혼도 합법이다.”

그 어구는 오랜 역사와 지나친 반복으로 의미가 무뎌졌다. 모욕적인 뉘앙스를 상당부분 잃었다고 러드닉이 말했다. “요 근래 그 표현을 많이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골수 원리주의자들에게는 분명 일생에서 최악의 한 주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사고를 버리지 못한다. 교회 신자들 사이에서도 현 시점에선 그 표현이 상당히 식상해진 듯하다.”

- ZACH SCHONFELD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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