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김유정 作 [동백꽃]의 ‘호감편향’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김유정 作 [동백꽃]의 ‘호감편향’

점순이는 ‘나’를 이렇게 약올린다. 울그락불그락 하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어느새 독자의 입가에는 미소가 퍼진다. 김유정의 [동백꽃]이다. 김유정의 작품은 항상 그랬다. 봄날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은 것처럼 문장은 발랄했고, 문장이 묘사하는 인물들은 밝았다. 서슬 퍼른 일제 강점기, 원고지 살 돈조차 없이 궁색하고, 병을 달고 살았다던 작가가 남긴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동백꽃]은 1936년 ‘조광’에 발표됐다. 내년이면 발표 80년이 된다.
‘나’는 나무하러 산으로 가는 길에, 우리집 수탉이 점순이네 수탉에게 막 쪼이는 것을 또 목격한다. 점순네 수탉은 험상궂게 생긴 놈이라 덩치가 작은 우리 수탉은 좀처럼 맞서지 못한다. 보나마나 점순이가 붙인 싸움. 고놈의 계집애는 왜 나를 못잡아먹어서 어르렁거리는지 모르겠다. 나흘 전 일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 일하는 내게 대뜸 찾아와 굵은 감자 3개를 내놓은 것은 점순이었다. “느그 집엔 이거 없지?”라는 점순이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나는 “너나 먹으라”며 밀쳐버렸다. 점순이는 홍당무가 된 채 눈물까지 어리며 논둑으로 횡하게 달아났다. 그 다음날 저녁, 점순이는 치마에다 우리 씨암탉을 꼭 붙들어놓고는 암팡스레 팼다. 겨우 닭을 돌려받는데 내 등뒤에서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점순이가 빈정댄다. “느 아버지 고자 아니냐”며.
호의를 무시당한 점순의 보복
작중화자인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점순이는 단단히 토라졌다. 자신이 보인 호의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점순이가 일하는 또래남자에게 말을 붙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삶은 감자까지 내놓은 것은 어지간한 행동이 아니다. 점순이는 ‘나’에게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몰라줬다. 바보처럼. 오죽했으면 점순이는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횡허케 달아났을까.’
사람은 누군가가 좋아지면 그를 도우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호감편향’(Linking bias)이라고 한다. 사랑받고 싶어서 때로 비이성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도 ‘호감편향’ 때문이다. 롤프 도벨리는 저서 [스마트한 생각들]에서 “호감편향은 분별하기 가장 쉽다”며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매번 그 함정에 빠진다”고 밝혔다. 도벨리에 따르면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기는 경우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외모가 매력적인 경우, 두 번째는 출신이나 인품, 관심사가 비슷한 경우, 마지막으로 상대가 먼저 호감을 보인 경우다. 호감이 생기는 확률도 순서대로 크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학창시절, 호감이 가는 이성친구를 위해서는 새벽부터 도서관 자리를 잡고, 보물 같은 필기노트도 선뜻 빌려줬다. 행여 또 다른 도움을 요청하면 무엇이라도 해줄 기세기도 했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그의 행동은 예뻐 보였다. 돌아보면 매우 비합리적인 행동이었지만 ‘호감’의 힘은 그만큼 컸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승민은 서연을 위해 만든 건축모형을 들고가 추운 겨울 밤늦도록 서연의 귀가를 기다린다. ‘GUESS’가 아닌 ‘GEUSS’ 티셔츠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승민은 애꿎은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화를 낸다. 승민은 서연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이런 호감편향을 마케터들이 그냥 놓칠 리 없다. 보험설계사 중에는 고객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챙기는 사람이 많다. 고객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다. 일단 호감을 갖게 되면 상품을 팔기 한층 쉬워진다. 광고기획자들이 광고에 잘생긴 남녀를 기용하는 것도 소비자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다. 잘생기지는 않아도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을 기용할 때도 있다. 길 안내를 경상도 사투리 혹은 전라도 사투리로 해주는 내비게이션이 있다. 영호남 지역 소비자에게 동질감을 줘 호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당신은 그럴 가치가 있다’ 식의 광고도 소비자의 호감을 유도할 수 있다. 소비자는 광고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 것으로 생각해, 호감을 갖고 광고를 바라본다.
호감편향은 투자 결정 때도 영향을 미친다. 주요 투자를 유치할 때 일부러 동향이나 동문 브로커를 투입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동향이나 동문은 신뢰감을 준다. ‘설마 같은 고향 출신인데 나를 속이겠느냐’는 기대가 마음속에 있다. 증권사의 부산지점에는 부산 출신이, 광주지점에는 광주 출신이 많다.
호감은 동네 수퍼나 이미용실의 매출에도 영향을 준다. 친절하고 질높은 서비스로 고객에게 호감을 준 수퍼나 이미용실은 주변 다른 곳보다 장사가 더 잘된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기 위한 기술로 ‘미러링(mirroring)’이 있다. 상대방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준다는 뜻으로 판매원들이 고객의 제스처와 말투 등을 슬쩍 따라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과 비슷한 말투와 몸짓을 갖고 있는 판매원에게 고객들은 이내 호감을 느끼게 된다.
호감편향을 가장 잘 이용해야 하는 직업군이 정치다. 유권자의 호감을 받아야 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철 유력 주자들이 전통시장에 들러 어묵과 떡볶이를 사먹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투자 결정 때도 호감편향 작용
“이년이 바느질하다가 어디 갔어!”라는 어머니의 역정이 산아래서 들린다. 점순은 살금살금 기어서 산아래로,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산위로 치뺀다. ‘호감편향’일 일으킨 점순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이렇게 깨졌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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