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 에스에너지 대표
홍성민 에스에너지 대표
삼성전자의 든든한 우산을 벗어야 할 때는 암담했지만,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모듈 제조판매 기업으로 성장했다. 홍성민 에스에너지 대표는 밑바닥부터 쌓은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출 전문 태양광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처음엔 웃으면서 산에 올랐다. ‘이 정도면 별 무리가 없겠네’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2012년 생애 처음으로 세계적인 명산 트레킹을 시작했다. 네팔의 안나푸르나가 처음이었다. 나이가 들면 도전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시작한 도전. 전문 산악인이 아니기에 고도 4000m 정도의 코스를 택했다. 왕복 1주일이 넘는 일정. 트레킹을 시작할 때 안나푸르나의 아름다운 풍경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얼굴에 웃음이 가시기 시작한 것은 3000m 고도를 통과할 때부터다. 고산병이 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바람은 거셌다. 트레킹 코스 주변 풍경도 몸 상태처럼 삭막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땅을 뚫고 나온 풀마저도 거칠어 보였다. 트레킹을 시작할 때는 저 멀리 설산을 바라보며 풍광을 즐겼지만, 그때부터 한발 한발 힘겹게 떼는 발에 시선을 고정했다. 땅만 보고 걸었다. 함께 트레킹을 하던 이들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셨다. 대화는 사라졌다. 모두들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변 상황은 더 나빠졌다. 가슴 속에서 한마디가 튀어 나왔다.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 꼭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같네.”
한국을 대표하는 태양광 모듈 제조판매 기업으로 성장시킨 홍성민(54) 에스에너지 대표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안나푸르나 이야기를 꺼냈다. “에스에너지 설립 초창기가 더 재미있었다. 지금은 냉혹한 상황을 버티기 위해 더욱 절박해졌다”라고 덧붙였다.
홍 대표는 질문에 짧고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회사 상황이나 자신의 능력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사용하는 단어도 정제되지 않고 날 것인 경우가 많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돌진하는 리더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리더십 덕분에 대기업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았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초창기에는 여유와 웃음이 많았는데….”
홍 대표의 말대로 태양광 산업에서 중견기업이 살아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 위주로 태양광 시장이 재편됐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태양광 산업이 급부상하면서 수많은 기업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정부 지원은 줄어들었고, 2010년 중국발 대규모 태양광 설비 투자는 태양광 부품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많은 기업이 도산했다. 대기업은 도산한 기업을 인수해 규모를 키웠다. 세계적으로 태양광 산업 분야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지만, 규모를 키운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이런 시장에서 에스에너지가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깝다. 홍 대표는 이를 “생존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공룡은 사라졌어도 개미는 살아남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다. 에스에너지의 생존비법은 몸집 줄이기다. 생산설비 라인을 확대하는 등의 대규모 투자는 지양했다. 대신 연구개발에 집중했다. 현장에서 얻은 시행착오를 해결하면서 모듈의 품질을 높이는데 전력투구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2008년 상용화한 BIPV(건물일체형 태양광 발전시스템) 모듈이다. 에스에너지가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내놓은 제품이다. 건물을 지을 때 외벽에 설치하는 유리 대신 태양광 발전이 가능한 모듈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태양광 모듈을 건설자재처럼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제품이다. 개발기간만 5년, 50억원이 투자됐다. 2013년 건설된 전국경제인 연합회 회관에도 BIPV가 설치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BIPV는 내수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많은 매출을 올리지 못하지만, 이 제품만은 세계 넘버원이라고 자부한다.” 에스에너지의 기술개발은 큰 수익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카자흐스탄과 수천만 불 계약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수직계열화’(폴리실리콘 제조부터 모듈 제작까지 태양광 산업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것)로 몸집을 더욱 키우지만, 홍 대표는 수평계열화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수평계열화는 쉽게 말해 모듈 생산에 필요한 폴리실리콘, 웨이퍼, 셀 등은 전문기업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홍 대표는 “부족한 것이 많은 중견기업이기 때문에 파트너십으로 해결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태양광 산업을 이끄는 한화큐셀과 OCI 등을 경쟁사가 아닌 ‘협력 파트너’라 부르는 이유다. “우리는 모듈 제작부터 발전소건설 운영 등의 다운스트림에만 집중할 것이다.”
에스에너지 생존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수출이다. 매출액 중 70~90%가 수출에서 나온다. “에스에너지의 모듈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다”고 홍 대표는 자랑했다. 에스에너지의 제품이 처음으로 수출된 곳은 독일 뮌헨. “2008년 독일 뮌헨의 태양광 모듈 설치업자에게 우리 것을 한번 써달라고 읍소하면서 수출이 시작됐다”고 했다. 당시 수출 규모는 50㎾. 수출 컨테이너 한 대 분량, 수출액은 3억원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보따리 장사 수준이었던 것.
독일은 당시 태양광 산업이 가장 활성화 된 국가였고, 수출 다변화를 위해서는 독일 공략이 필수였다. 독일 공략을 통해 에스에너지 제품에 대한 신뢰감을 얻었다. 예상치 못한 기후 덕분이었다. 2009년 12월 유럽 전역에 폭설이 덮쳤다. 독일 바이에른 주도 폭설로 인한 피해를 많이 입었다. 당시 바이에른 지역에 에스에너지 제품이 다수 설치된 상황. “다른 제품은 폭설에 문제가 많이 생겼는데, 유독 우리 제품만 멀쩡했다. 우리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홍 대표는 말했다. 에스에너지 모듈을 수입했던 독일 기업은 이 사례를 적극 활용했고, 독일 시장에서 에스에너지의 브랜드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수출 전문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된 것.
2014년 에스에너지는 27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에 있는 공장에서 한해 생산하는 모듈은 530MW 규모이고, 직원은 472명이나 된다. 태양광 산업 분야의 강소기업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인정받지만, 시작은 너무 미미했다. 누구도 에스에너지가 이렇게 성장할지 예상치 못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톱에 올라서봐야 하지 않나!”라고 말하는 홍 대표의 집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홍 대표는 1983년 10월 삼성전자 석사 출신 공채 1기로 입사했다. “당시 가장 수출 실적이 좋은 종합연구소 전자레인지팀에 배치됐다. 몇 개월 만에 태양광발전사업팀으로 발령이 나면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며 웃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태양광 사업 진출을 준비했고, 홍 대표에게 팀장을 맡겼다. 홍 대표가 팀 구성부터 모든 것을 맡아서 해야만 했다. 사내에 전문가도 없었던 상황. 입사 1년도 안된 신입사원이 맡기에는 부담스러운 팀장 직함도 받았다. “태양광 분야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내 관심은 자동화 분야였다”고 회고했다. 태양광 산업에 대한 지식도 전무한 상황. “내가 남보다 태양광 분야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내에서 태양광 산업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1년 삼성전자는 반도체 등 핵심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분야 분사를 결정했다. 태양광발전사업팀도 분사가 결정됐다. 삼성전자라는 든든한 우산은 사라지고 독자생존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태양광발전사업팀에서 함께 일했던 4명의 전문가와 함께 에스에너지를 설립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밑바닥부터 기는 일이었다”는 홍 대표의 말처럼,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무조건 맡았다. 한양대에 설치된 삼성벤처타워에 있는 사무실을 얻어서 모듈을 제조판매하고, 태양광 모듈 설치 의뢰가 오면 무조건 달려갔다. 우선은 시스템 사업에 집중한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은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 태양광 모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였다. 무인도에다가 배도 접안이 안되는 곳이었다. 태양광 모듈 설치가 문제가 아니었다. “A/S가 어려운 곳이다. 이어도에 들어가려면 헬기를 띄워야만 하는데, 비용만 500만원이나 든다”고 설명했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의 운명이 결정되는 사업이었다. 홍 대표는 임직원을 믿고 뛰어들었다. 좋은 성과를 내면서 관급 공사를 계속 따낼 수 있었다.
모듈 판매도 조금씩 속도가 났다. 고향인 충남 연기군(현 세종시)에 15㎡(약 50평)되는 조그마한 공장을 지어서 모듈을 만들었다. 자본금 3억원으로 시작했던 에스에너지는 설립 3년 만에 매출 100억원을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2007년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에 1공장을 건설하면서 모듈 제조판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태양광 기업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2008년 독일 수출을 시작으로 에스에너지는 수출 기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현재 에스에너지는 발전소건설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2015년 완공한 일본 히로시마현의 솔라팜 프로젝트는 일본 내 외국기업이 건설한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이다. 폐 골프장을 활용한 프로젝트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건설한 ‘Elk grove project’는 미국 내에서 한국기업이 처음 맡은 태양광 발전소 프로젝트다. 이 외에도 말레이시아 턴키 프로젝트, 전북에 건설한 에스플랜트사호 등이 에스에너지의 작품이다. “생각해보니 5년마다 집중하는 사업이 변했다. 시대의 흐름에 잘 적응한 것 같아서 만족한다”고 홍 대표는 강조했다.
-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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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트레킹 경험을 기업 경영에 도입
한국을 대표하는 태양광 모듈 제조판매 기업으로 성장시킨 홍성민(54) 에스에너지 대표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안나푸르나 이야기를 꺼냈다. “에스에너지 설립 초창기가 더 재미있었다. 지금은 냉혹한 상황을 버티기 위해 더욱 절박해졌다”라고 덧붙였다.
홍 대표는 질문에 짧고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회사 상황이나 자신의 능력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사용하는 단어도 정제되지 않고 날 것인 경우가 많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돌진하는 리더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리더십 덕분에 대기업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았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초창기에는 여유와 웃음이 많았는데….”
홍 대표의 말대로 태양광 산업에서 중견기업이 살아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 위주로 태양광 시장이 재편됐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태양광 산업이 급부상하면서 수많은 기업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정부 지원은 줄어들었고, 2010년 중국발 대규모 태양광 설비 투자는 태양광 부품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많은 기업이 도산했다. 대기업은 도산한 기업을 인수해 규모를 키웠다. 세계적으로 태양광 산업 분야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지만, 규모를 키운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이런 시장에서 에스에너지가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깝다. 홍 대표는 이를 “생존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공룡은 사라졌어도 개미는 살아남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다. 에스에너지의 생존비법은 몸집 줄이기다. 생산설비 라인을 확대하는 등의 대규모 투자는 지양했다. 대신 연구개발에 집중했다. 현장에서 얻은 시행착오를 해결하면서 모듈의 품질을 높이는데 전력투구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2008년 상용화한 BIPV(건물일체형 태양광 발전시스템) 모듈이다. 에스에너지가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내놓은 제품이다. 건물을 지을 때 외벽에 설치하는 유리 대신 태양광 발전이 가능한 모듈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태양광 모듈을 건설자재처럼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제품이다. 개발기간만 5년, 50억원이 투자됐다. 2013년 건설된 전국경제인 연합회 회관에도 BIPV가 설치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BIPV는 내수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많은 매출을 올리지 못하지만, 이 제품만은 세계 넘버원이라고 자부한다.” 에스에너지의 기술개발은 큰 수익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카자흐스탄과 수천만 불 계약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유럽 폭설에도 견딘 모듈로 신뢰 얻어
에스에너지 생존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수출이다. 매출액 중 70~90%가 수출에서 나온다. “에스에너지의 모듈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다”고 홍 대표는 자랑했다. 에스에너지의 제품이 처음으로 수출된 곳은 독일 뮌헨. “2008년 독일 뮌헨의 태양광 모듈 설치업자에게 우리 것을 한번 써달라고 읍소하면서 수출이 시작됐다”고 했다. 당시 수출 규모는 50㎾. 수출 컨테이너 한 대 분량, 수출액은 3억원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보따리 장사 수준이었던 것.
독일은 당시 태양광 산업이 가장 활성화 된 국가였고, 수출 다변화를 위해서는 독일 공략이 필수였다. 독일 공략을 통해 에스에너지 제품에 대한 신뢰감을 얻었다. 예상치 못한 기후 덕분이었다. 2009년 12월 유럽 전역에 폭설이 덮쳤다. 독일 바이에른 주도 폭설로 인한 피해를 많이 입었다. 당시 바이에른 지역에 에스에너지 제품이 다수 설치된 상황. “다른 제품은 폭설에 문제가 많이 생겼는데, 유독 우리 제품만 멀쩡했다. 우리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홍 대표는 말했다. 에스에너지 모듈을 수입했던 독일 기업은 이 사례를 적극 활용했고, 독일 시장에서 에스에너지의 브랜드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수출 전문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된 것.
2014년 에스에너지는 27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에 있는 공장에서 한해 생산하는 모듈은 530MW 규모이고, 직원은 472명이나 된다. 태양광 산업 분야의 강소기업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인정받지만, 시작은 너무 미미했다. 누구도 에스에너지가 이렇게 성장할지 예상치 못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톱에 올라서봐야 하지 않나!”라고 말하는 홍 대표의 집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외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에 집중
하지만 2001년 삼성전자는 반도체 등 핵심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분야 분사를 결정했다. 태양광발전사업팀도 분사가 결정됐다. 삼성전자라는 든든한 우산은 사라지고 독자생존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태양광발전사업팀에서 함께 일했던 4명의 전문가와 함께 에스에너지를 설립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밑바닥부터 기는 일이었다”는 홍 대표의 말처럼,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무조건 맡았다. 한양대에 설치된 삼성벤처타워에 있는 사무실을 얻어서 모듈을 제조판매하고, 태양광 모듈 설치 의뢰가 오면 무조건 달려갔다. 우선은 시스템 사업에 집중한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은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 태양광 모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였다. 무인도에다가 배도 접안이 안되는 곳이었다. 태양광 모듈 설치가 문제가 아니었다. “A/S가 어려운 곳이다. 이어도에 들어가려면 헬기를 띄워야만 하는데, 비용만 500만원이나 든다”고 설명했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의 운명이 결정되는 사업이었다. 홍 대표는 임직원을 믿고 뛰어들었다. 좋은 성과를 내면서 관급 공사를 계속 따낼 수 있었다.
모듈 판매도 조금씩 속도가 났다. 고향인 충남 연기군(현 세종시)에 15㎡(약 50평)되는 조그마한 공장을 지어서 모듈을 만들었다. 자본금 3억원으로 시작했던 에스에너지는 설립 3년 만에 매출 100억원을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2007년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에 1공장을 건설하면서 모듈 제조판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태양광 기업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2008년 독일 수출을 시작으로 에스에너지는 수출 기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현재 에스에너지는 발전소건설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2015년 완공한 일본 히로시마현의 솔라팜 프로젝트는 일본 내 외국기업이 건설한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이다. 폐 골프장을 활용한 프로젝트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건설한 ‘Elk grove project’는 미국 내에서 한국기업이 처음 맡은 태양광 발전소 프로젝트다. 이 외에도 말레이시아 턴키 프로젝트, 전북에 건설한 에스플랜트사호 등이 에스에너지의 작품이다. “생각해보니 5년마다 집중하는 사업이 변했다. 시대의 흐름에 잘 적응한 것 같아서 만족한다”고 홍 대표는 강조했다.
-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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