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공포정치 이번에도 먹힐까
푸틴의 공포정치 이번에도 먹힐까
지난 1개월 동안 러시아군의 시리아 공습은 대다수 러시아인에겐 첨단 비디오게임과 비슷했다. 국영 TV는 정밀 미사일이 전투기 조종실 화면에 나타난 표적에 명중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또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장악 지역이 러시아의 공습으로 기적처럼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적어도 러시아인이 현실에 눈 뜨기 전까진 그랬다. 그러나 지난 10월 31일 러시아 코갈리마비아 항공 소속 메트로제트 9268편이 이집트의 홍해 휴양지 샤름엘셰이크에서 이륙한 후 20여 분만에 시나이반도 사막 상공의 맑은 하늘에서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224명 전원이 사망하면서 그런 환상이 깨졌다.
러시아인 수천 명이 즉시 거리로 나가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승객 다수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겨울궁 앞의 거대한 광장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을 든 시민들로 가득 찼다. 모스크바의 명문 사립 기숙학교는 여객기 추락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우선 입학시키고 학비를 면제해주겠다고 나섰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러시아 대사관 앞 난간까지 조화와 장난감, 촛불로 채워졌다. 러시아와 싸우는 우크라이나인이 가족을 잃은 이웃 러시아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키예프에 사는 의대생 옥사나 메드베데바(19)는 트위터에 올린 조화 사진 아래 이렇게 썼다. “우리 언론은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이 서로 증오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증오가 무고한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지 봤다. 우리는 러시아인 형제자매 여러분과 함께 애도한다.”
그런 애도 분위기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이 제기됐다. 여객기 추락이 사고였을까 아니면 IS의 역습이었을까? IS는 자신들이 러시아 여객기를 공격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시리아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여객기가 추락하기 직전 섬광과 열기를 보여주는 위성 자료부터 동체가 파편에 의해 안에서 바깥쪽으로 폭발한 증거를 보여주는 사진까지 추락 원인이 폭탄이라는 증거가 늘어간다. 그런데도 러시아 당국은 IS 개입설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공보비서는 사건 발생 사흘 뒤 TV에 나와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 작전과 메트로제트 9268편의 추락은 관련 없다”고 말했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도 “러시아 여객기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격추됐다는 소문은 이 지역의 불안정과 이집트의 국가 이미지 손상을 노린 선전술”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샤름엘셰이크를 오가는 여객기 운항을 중단시키고 영국인 2만 명을 귀국시키기 위한 특별 항공편을 마련하자 러시아 관리들은 처음엔 정치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상원 국제문제위원회의 콘스탄틴 코사초프 위원장은 “지정학적 이유로 러시아의 시리아 작전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며 이번 사고를 확실한 증거도 없이 IS의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사고 후 일주일이 지나자 푸틴 대통령은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FSB) 국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추락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이집트를 오가는 러시아 여객기의 운항을 전면 중단시켰다.
지난 11월 9일 이집트 당국이 폭탄에 의한 추락 가능성이 90%라고 밝히자 러시아 국영 TV 채널 로시야1의 뉴스 앵커 드미트리 키셀로프는 미국이 IS와 거래했다는 음모설을 제기했다. 미·영 여객기는 공격하지 않는 조건으로 러시아 여객기 공격을 눈감아 주기로 했다는 가설이었다. 크렘린 충성파로 러시아 주요 통신사 사장도 겸하는 키셀로프는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러시아 측에 시리아 공습으로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고 경고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카터 장관의 발언은 단지 악담이었나 아니면 그는 사전에 뭔가 알고 있었나?”라며 의혹을 증폭시켰다.
메트로제트 9268편의 추락 전까지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 작전은 크렘린에 호재였다. 지난 1∼9월 러시아의 수출이 31.9% 줄었고 수입도 38.8% 감소했으며, 외환보유액이 1600억 달러가 줄어 위험한 수준인 3505억 달러에 이르렀지만 푸틴 대통령의 지지도는 전례 없는 수준(지난 10월의 조사에서 88%)으로 치솟았다. 국제적으로는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서방도 엄두 못 내는 과감한 작전을 펼쳐 러시아를 시리아 문제 해결에 필수적인 존재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제 메트로제트의 참사가 발생하면서 소련 붕괴 이래 러시아의 첫 중동분쟁 개입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러시아의 독립적인 여론조사 기관 레바다 센터가 메트로제트 여객기 추락 직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리아 공습을 지지하는 러시아인의 비율이 54%였다(반면 지상군 파견에는 66%가 반대했다).
서방 민주주의에선 이런 규모의 공격은 국가 지도자의 신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르다. 여객기 운항 중단 결정이 내려진 직후 러시아의 소셜미디어는 이집트 홍해 휴양지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러시아인 4만5000명 중 일부의 사진으로 도배됐다. 그들은 푸틴의 사진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샤름엘셰이크 공항에서 사진을 찍었다. 모스크바의 한 TV 뉴스 프로듀서는 익명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크림반도 합병 후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국영 TV는 국민에게 주변 세계가 적대적이며 러시아 지도자는 미국 제국주의자부터 이슬람 테러리스트까지 각종 적으로부터 러시아인을 보호하고 있다고 연일 강조했다. 적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보호를 원한다. 전형적인 정치 수법이다.”
크렘린에 충성하는 매체들은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을 문명과 야만의 역사적인 투쟁으로 그려냈다. 키셀로프 앵커는 “우리가 유럽을 4번이나 구했다”고 자랑했다. “처음엔 몽골인, 그 다음은 나폴레옹과 히틀러, 이젠 IS로부터 유럽을 구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공포 정치로 승승장구하는 지도자다. 그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엔 이’로 맞섰다.
강인한 행동파라는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는 1999년 모스크바 아파트에서 발생한 일련의 폭탄테러(아직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로 30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 후 생겨났다. 당시 총리였던 푸틴은 체첸공화국 침공을 명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다음해 대통령에 선출됐다. 취임 초기 폭탄테러와 무장단체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공격을 받을 때마다 그 배로 반격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더 강해졌다.
2002년 체첸 무장단체가 모스크바 교외의 한 극장을 점거하고 인질극을 벌였다. 인질 133명을 포함해 170명이 사망했다. 인질들은 테러범을 진압하려고 살포한 수면가스로 사망했다(인질 중 2명만 살아남았다).
2004년에는 푸틴 통치 아래 최악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체첸 출신 여성 2명의 자살폭탄테러로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51명이 숨졌다. 같은 해 8월 체첸 수도 그로즈니 출신의 여학생 2명이 모스크바와 도모데도보 공항에서 뇌물을 주고 각각 다른 러시아 국내선 여객기에 올라 수하물에 설치된 폭탄을 터뜨려 89명이 숨졌다. 또 그해 9월 1일엔 체첸 반군의 자살특공대가 러시아 베슬란의 한 학교에서 1100명 이상을 인질로 잡았다. 반군과 러시아 보안군의 전투로 335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중 어린이도 다수 포함됐다.
그런 공격에 대한 무자비한 대응으로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훈련 받은 폭력배 수준의 터프함이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그는 “필요하다면 그들을 변소에서 쓸어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은 든든하다고 느꼈다. 그가 체첸자치공화국 수반으로 앉힌 람잔 카디로프는 엄청난 국가폭력을 동원해 그 말썽 많은 지역을 평정했다. 인권단체와 러시아 진보파는 충격 받았지만 어쨌든 체첸 반군의 공격은 중단됐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지원, 그리고 지금의 시리아 공습은 푸틴 대통령의 세계관이 이전과 같다는 점을 시사한다. 폭력을 사용해 러시아의 지정학적 문제를 해결하고 국내에서 지지도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푸틴 대통령은 메트로제트 여객기 추락 사흘 뒤 국영 TV에서 “우리는 시리아든 세계 어디든 테러리즘과 싸울 것”이라며 “누구도 러시아인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만약 메트로제트 여객기 추락이 IS의 소행으로 밝혀진다면 푸틴 대통령의 가장 자연스런 반응은 그 보복으로 시리아 작전을 강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비디오게임처럼 원격 조정되는 공습이었지만 앞으로 비대칭 전쟁의 위험한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상대해야 할 적은 체첸 반군보다 수적으로 더 많고 더 무자비하며 교활한 IS다.
- OWEN MATTHEW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러시아 여객기 추락 배후로 지목되는 왈라얏 시나이의 정체는?미국과 영국의 관리와 정보 전문가 사이에서 러시아 메트로제트 여객기 추락에 이슬람국가(IS)와 연계된 조직이 관련됐다는 심증이 커지고 있다. 그들은 누구이며 이집트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을까?
사건 발생 직후 IS의 시나이 지부 ‘왈라얏 시나이’는 자신들이 러시아 여객기를 추락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올해 들어 이집트군과 경찰을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바로 1년 전에 IS에 합류한 단체가 어떻게 그토록 위험한 세력이 됐는지 전문가에게 들어봤다.
왈라얏 시나이는 어떤 단체인가?
이전에 ‘안사르 베이트 알 마크디스(ABM·예루살렘의 지지자들)’로 알려졌던 무장단체의 후신이다.
스탠퍼드대학에 따르면 ABM은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축출된 직후 혼란기를 틈타 이집트와 가자 지구에서 결성됐다. 지난해 10월 ABM이 북시나이에서 보안군 33명을 사살하자 미국 국무부는 그 단체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11월 ABM은 시리아의 IS 중앙사령부에 충성을 서약하고 명칭을 왈라얏 시나이로 바꿨다. 안보 컨설팅업체 레번타인 그룹의 지정학 분석가 마이클 호로위츠에 따르면 그들의 전투원은 1000∼2000명이다.
IS와는 어떤 관계인가?
호로위츠 분석가에 따르면 먼저 ABM 지도부가 시리아의 IS 사령부로 찾아가 작전을 상의했다. 그 후 올해 상반기 그들은 이집트에서 주로 이집트 군과 경찰을 상대로 700건 이상의 공격을 수행했다. 그들은 도로에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등 정교하고 높은 수준의 작전을 펼쳐 IS 중앙사령부에서 정보와 지원을 제공받는 게 분명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호로위츠 분석가에 따르면 메트로제트 추락을 둘러싼 선전전이 그들과 IS의 밀접한 관계를 말해준다. 먼저 사건 직후 왈라얏 시나이는 자신들이 공격했다고 밝히는 성명서를 아랍어로 내놨다. 그 성명서는 곧 영어·스페인어·터키어로 번역됐고, 이어 이라크에 있는 IS의 공식 라디오 매체 알바얀이 방송했다. 호로위츠 분석가는 “완벽하게 조율된 홍보전”이라며 “이라크·시리아의 IS 지도부와 왈라얏 시나이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왈라얏 시나이의 목표는?
현재 이집트 내에서 장악한 영토는 없다. IS에 합류하기 전엔 ABM이 이스라엘군과 시나이반도의 이집트 군경을 간헐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IS에 합류한 뒤엔 영토 장악에 주력하며 라파·셰이크 주웨이드·엘아리시 같은 시나이 도시로 공격 범위를 좁혔다.
호로위츠 분석가에 따르면 왈라얏 시나이는 가자 지구에 대한 이집트의 봉쇄를 끝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럴 경우 IS의 막대한 ‘상징적 승리’가 된다. 지난 7월 이스라엘군은 왈라얏 시나이가 가자 지구를 넘볼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이집트와의 남쪽 국경에 보안을 강화했다. 또 IS는 현재 가자 지구를 지배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타도하겠다고 밝혔다.
왈라얏 시나이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IS와 비슷한 수법을 쓴다. 지난 8월 그들은 이집트에서 일하던 크로아티아인 엔지니어 토미슬라프 살로페크를 납치해 참수했다고 주장했다.
왈라얏 시나이가 러시아 여객기 추락에 개입했을까?
기체의 기술적 결함이나 외부 충격 등의 잠재적인 원인은 배제됐다. 따라서 무장세력이 직접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했거나 그런 행위를 배후 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호로위츠 분석가는 여러 요인을 고려할 때 왈라얏 시나이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왈라얏 시나이가 IS에 충성을 서약한 지 1년 만이며 러시아가 시리아의 IS 거점을 공습한 지 1개월 만에 발생했다. IS는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추종 세력에게 러시아와 미국에 대한 ‘성전’을 촉구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H A 헬리어 연구원은 왈라얏 시나이의 개입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그동안 언론에 노출된 것만으로 그들은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왈라얏 시나이는 이번 사건으로 국제 극단주의 세계에서 유명해졌다. 그 자체가 승리다.”
— CONOR GAFF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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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 수천 명이 즉시 거리로 나가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승객 다수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겨울궁 앞의 거대한 광장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을 든 시민들로 가득 찼다. 모스크바의 명문 사립 기숙학교는 여객기 추락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우선 입학시키고 학비를 면제해주겠다고 나섰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러시아 대사관 앞 난간까지 조화와 장난감, 촛불로 채워졌다. 러시아와 싸우는 우크라이나인이 가족을 잃은 이웃 러시아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키예프에 사는 의대생 옥사나 메드베데바(19)는 트위터에 올린 조화 사진 아래 이렇게 썼다. “우리 언론은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이 서로 증오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증오가 무고한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지 봤다. 우리는 러시아인 형제자매 여러분과 함께 애도한다.”
그런 애도 분위기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이 제기됐다. 여객기 추락이 사고였을까 아니면 IS의 역습이었을까? IS는 자신들이 러시아 여객기를 공격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시리아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여객기가 추락하기 직전 섬광과 열기를 보여주는 위성 자료부터 동체가 파편에 의해 안에서 바깥쪽으로 폭발한 증거를 보여주는 사진까지 추락 원인이 폭탄이라는 증거가 늘어간다. 그런데도 러시아 당국은 IS 개입설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공보비서는 사건 발생 사흘 뒤 TV에 나와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 작전과 메트로제트 9268편의 추락은 관련 없다”고 말했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도 “러시아 여객기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격추됐다는 소문은 이 지역의 불안정과 이집트의 국가 이미지 손상을 노린 선전술”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샤름엘셰이크를 오가는 여객기 운항을 중단시키고 영국인 2만 명을 귀국시키기 위한 특별 항공편을 마련하자 러시아 관리들은 처음엔 정치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상원 국제문제위원회의 콘스탄틴 코사초프 위원장은 “지정학적 이유로 러시아의 시리아 작전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며 이번 사고를 확실한 증거도 없이 IS의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사고 후 일주일이 지나자 푸틴 대통령은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FSB) 국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추락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이집트를 오가는 러시아 여객기의 운항을 전면 중단시켰다.
지난 11월 9일 이집트 당국이 폭탄에 의한 추락 가능성이 90%라고 밝히자 러시아 국영 TV 채널 로시야1의 뉴스 앵커 드미트리 키셀로프는 미국이 IS와 거래했다는 음모설을 제기했다. 미·영 여객기는 공격하지 않는 조건으로 러시아 여객기 공격을 눈감아 주기로 했다는 가설이었다. 크렘린 충성파로 러시아 주요 통신사 사장도 겸하는 키셀로프는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러시아 측에 시리아 공습으로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고 경고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카터 장관의 발언은 단지 악담이었나 아니면 그는 사전에 뭔가 알고 있었나?”라며 의혹을 증폭시켰다.
메트로제트 9268편의 추락 전까지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 작전은 크렘린에 호재였다. 지난 1∼9월 러시아의 수출이 31.9% 줄었고 수입도 38.8% 감소했으며, 외환보유액이 1600억 달러가 줄어 위험한 수준인 3505억 달러에 이르렀지만 푸틴 대통령의 지지도는 전례 없는 수준(지난 10월의 조사에서 88%)으로 치솟았다. 국제적으로는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서방도 엄두 못 내는 과감한 작전을 펼쳐 러시아를 시리아 문제 해결에 필수적인 존재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제 메트로제트의 참사가 발생하면서 소련 붕괴 이래 러시아의 첫 중동분쟁 개입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러시아의 독립적인 여론조사 기관 레바다 센터가 메트로제트 여객기 추락 직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리아 공습을 지지하는 러시아인의 비율이 54%였다(반면 지상군 파견에는 66%가 반대했다).
서방 민주주의에선 이런 규모의 공격은 국가 지도자의 신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르다. 여객기 운항 중단 결정이 내려진 직후 러시아의 소셜미디어는 이집트 홍해 휴양지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러시아인 4만5000명 중 일부의 사진으로 도배됐다. 그들은 푸틴의 사진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샤름엘셰이크 공항에서 사진을 찍었다. 모스크바의 한 TV 뉴스 프로듀서는 익명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크림반도 합병 후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국영 TV는 국민에게 주변 세계가 적대적이며 러시아 지도자는 미국 제국주의자부터 이슬람 테러리스트까지 각종 적으로부터 러시아인을 보호하고 있다고 연일 강조했다. 적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보호를 원한다. 전형적인 정치 수법이다.”
크렘린에 충성하는 매체들은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을 문명과 야만의 역사적인 투쟁으로 그려냈다. 키셀로프 앵커는 “우리가 유럽을 4번이나 구했다”고 자랑했다. “처음엔 몽골인, 그 다음은 나폴레옹과 히틀러, 이젠 IS로부터 유럽을 구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공포 정치로 승승장구하는 지도자다. 그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엔 이’로 맞섰다.
강인한 행동파라는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는 1999년 모스크바 아파트에서 발생한 일련의 폭탄테러(아직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로 30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 후 생겨났다. 당시 총리였던 푸틴은 체첸공화국 침공을 명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다음해 대통령에 선출됐다. 취임 초기 폭탄테러와 무장단체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공격을 받을 때마다 그 배로 반격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더 강해졌다.
2002년 체첸 무장단체가 모스크바 교외의 한 극장을 점거하고 인질극을 벌였다. 인질 133명을 포함해 170명이 사망했다. 인질들은 테러범을 진압하려고 살포한 수면가스로 사망했다(인질 중 2명만 살아남았다).
2004년에는 푸틴 통치 아래 최악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체첸 출신 여성 2명의 자살폭탄테러로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51명이 숨졌다. 같은 해 8월 체첸 수도 그로즈니 출신의 여학생 2명이 모스크바와 도모데도보 공항에서 뇌물을 주고 각각 다른 러시아 국내선 여객기에 올라 수하물에 설치된 폭탄을 터뜨려 89명이 숨졌다. 또 그해 9월 1일엔 체첸 반군의 자살특공대가 러시아 베슬란의 한 학교에서 1100명 이상을 인질로 잡았다. 반군과 러시아 보안군의 전투로 335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중 어린이도 다수 포함됐다.
그런 공격에 대한 무자비한 대응으로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훈련 받은 폭력배 수준의 터프함이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그는 “필요하다면 그들을 변소에서 쓸어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은 든든하다고 느꼈다. 그가 체첸자치공화국 수반으로 앉힌 람잔 카디로프는 엄청난 국가폭력을 동원해 그 말썽 많은 지역을 평정했다. 인권단체와 러시아 진보파는 충격 받았지만 어쨌든 체첸 반군의 공격은 중단됐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지원, 그리고 지금의 시리아 공습은 푸틴 대통령의 세계관이 이전과 같다는 점을 시사한다. 폭력을 사용해 러시아의 지정학적 문제를 해결하고 국내에서 지지도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푸틴 대통령은 메트로제트 여객기 추락 사흘 뒤 국영 TV에서 “우리는 시리아든 세계 어디든 테러리즘과 싸울 것”이라며 “누구도 러시아인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만약 메트로제트 여객기 추락이 IS의 소행으로 밝혀진다면 푸틴 대통령의 가장 자연스런 반응은 그 보복으로 시리아 작전을 강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비디오게임처럼 원격 조정되는 공습이었지만 앞으로 비대칭 전쟁의 위험한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상대해야 할 적은 체첸 반군보다 수적으로 더 많고 더 무자비하며 교활한 IS다.
- OWEN MATTHEW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박스기사] 새로운 극단주의 테러단의 부상
러시아 여객기 추락 배후로 지목되는 왈라얏 시나이의 정체는?미국과 영국의 관리와 정보 전문가 사이에서 러시아 메트로제트 여객기 추락에 이슬람국가(IS)와 연계된 조직이 관련됐다는 심증이 커지고 있다. 그들은 누구이며 이집트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을까?
사건 발생 직후 IS의 시나이 지부 ‘왈라얏 시나이’는 자신들이 러시아 여객기를 추락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올해 들어 이집트군과 경찰을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바로 1년 전에 IS에 합류한 단체가 어떻게 그토록 위험한 세력이 됐는지 전문가에게 들어봤다.
왈라얏 시나이는 어떤 단체인가?
이전에 ‘안사르 베이트 알 마크디스(ABM·예루살렘의 지지자들)’로 알려졌던 무장단체의 후신이다.
스탠퍼드대학에 따르면 ABM은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축출된 직후 혼란기를 틈타 이집트와 가자 지구에서 결성됐다. 지난해 10월 ABM이 북시나이에서 보안군 33명을 사살하자 미국 국무부는 그 단체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11월 ABM은 시리아의 IS 중앙사령부에 충성을 서약하고 명칭을 왈라얏 시나이로 바꿨다. 안보 컨설팅업체 레번타인 그룹의 지정학 분석가 마이클 호로위츠에 따르면 그들의 전투원은 1000∼2000명이다.
IS와는 어떤 관계인가?
호로위츠 분석가에 따르면 먼저 ABM 지도부가 시리아의 IS 사령부로 찾아가 작전을 상의했다. 그 후 올해 상반기 그들은 이집트에서 주로 이집트 군과 경찰을 상대로 700건 이상의 공격을 수행했다. 그들은 도로에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등 정교하고 높은 수준의 작전을 펼쳐 IS 중앙사령부에서 정보와 지원을 제공받는 게 분명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호로위츠 분석가에 따르면 메트로제트 추락을 둘러싼 선전전이 그들과 IS의 밀접한 관계를 말해준다. 먼저 사건 직후 왈라얏 시나이는 자신들이 공격했다고 밝히는 성명서를 아랍어로 내놨다. 그 성명서는 곧 영어·스페인어·터키어로 번역됐고, 이어 이라크에 있는 IS의 공식 라디오 매체 알바얀이 방송했다. 호로위츠 분석가는 “완벽하게 조율된 홍보전”이라며 “이라크·시리아의 IS 지도부와 왈라얏 시나이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왈라얏 시나이의 목표는?
현재 이집트 내에서 장악한 영토는 없다. IS에 합류하기 전엔 ABM이 이스라엘군과 시나이반도의 이집트 군경을 간헐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IS에 합류한 뒤엔 영토 장악에 주력하며 라파·셰이크 주웨이드·엘아리시 같은 시나이 도시로 공격 범위를 좁혔다.
호로위츠 분석가에 따르면 왈라얏 시나이는 가자 지구에 대한 이집트의 봉쇄를 끝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럴 경우 IS의 막대한 ‘상징적 승리’가 된다. 지난 7월 이스라엘군은 왈라얏 시나이가 가자 지구를 넘볼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이집트와의 남쪽 국경에 보안을 강화했다. 또 IS는 현재 가자 지구를 지배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타도하겠다고 밝혔다.
왈라얏 시나이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IS와 비슷한 수법을 쓴다. 지난 8월 그들은 이집트에서 일하던 크로아티아인 엔지니어 토미슬라프 살로페크를 납치해 참수했다고 주장했다.
왈라얏 시나이가 러시아 여객기 추락에 개입했을까?
기체의 기술적 결함이나 외부 충격 등의 잠재적인 원인은 배제됐다. 따라서 무장세력이 직접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했거나 그런 행위를 배후 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호로위츠 분석가는 여러 요인을 고려할 때 왈라얏 시나이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왈라얏 시나이가 IS에 충성을 서약한 지 1년 만이며 러시아가 시리아의 IS 거점을 공습한 지 1개월 만에 발생했다. IS는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추종 세력에게 러시아와 미국에 대한 ‘성전’을 촉구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H A 헬리어 연구원은 왈라얏 시나이의 개입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그동안 언론에 노출된 것만으로 그들은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왈라얏 시나이는 이번 사건으로 국제 극단주의 세계에서 유명해졌다. 그 자체가 승리다.”
— CONOR GAFF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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