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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법 위에 나는 신기술

기는 법 위에 나는 신기술

이미 인기 높은 드래프트킹스 같은 판타지 스포츠를 정부가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을까?
1910년대 미국의 자동차 수는 20만 대에서 급작스럽게 250만 대로 늘었다. 길에서 움직이는 기계와 맞닥뜨린 말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겁먹어 날뛰었고, 보행자는 시속 32㎞로 달리는 기계를 미처 피하지 못해 치이기도 했다. 심지어 조지아주는 자동차를 ‘흉포한 동물’로 분류했다. 그러나 자동차가 되돌릴 수 없는 대세가 되자 난폭한 동물이라도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정부는 교통법을 제정했다.

요즘 정치적 교착상태에 빠진 미국 의회는 엄청 느린 속도로 기술 혁신에 반응한다. 정부의 굼뜬 반응에 반해 기술은 더 빨리 앞서간다. 신기술이 클라우드 기반의 앱과 SNS를 통해 즉시 퍼지면서 거의 아무런 법적 감독 없이 보편화된다. 정부가 행동을 취할 때 쯤이면 너무 늦어 상황을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신생 기술업체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 특히 택시나 항공기 운항, 자금 흐름 등의 구식 기준을 무너뜨리려는 업체에 호기다. 최근 규제법과 기술 사이의 격차는 스포츠 도박에 관한 규정을 뒤집었다. ‘팬듀얼’이나 ‘드래프트킹스’ 같은 판타지 스포츠 사이트는 기술이 그 격차를 얼마나 신속히 이용하며 정부는 뒷북만 치는 현상을 잘 보여준다. 판타지 스포츠란 비디오게임이 아니라 실제 선수를 일정한 규칙 아래 자신의 방식대로 편성해 가상의 팀을 만들어 경기를 진행하면서 그 선수 성적을 점수로 매겨 경쟁하며 승부에 베팅하는 시뮬레이션 경기를 말한다.

팬듀얼의 CEO 나이절 에클스는 도박금지법에서 기술 게임을 허용하는 조항을 보고 거기에 판타지 스포츠가 포함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올해 팬듀얼과 드래프트킹스는 응용프로그램(앱)을 개발한 뒤 스포츠 채널 ESPN과 손잡고 주요 스포츠 리그·팀과 계약해 5억 7500만 달러의 벤처펀드를 유치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대중시장에 신속히 뿌리내린 것이다.

그러자 정부는 방심하던 중에 벌어진 일을 두고 펄펄뛰었다. 네바다 주정부는 그 회사들이 영업하려면 도박 면허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 법무부는 그 앱의 적법성 조사에 나섰다. 의회는 황급히 서류를 검토하며 청문회가 필요할지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물 건너 간 일일지 모른다. 의회의 진짜 문제는 팬듀얼과 드래프트킨스가 허점투성인 기존 법에 들어맞는지 여부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모펀드 KKR, 케이블TV업체 컴캐스트, NBC 방송, 메이저리그 야구, 실리콘밸리의 여러 창투사 등 주요 투자기관(즉, 선거자금 기부 기관)이 소유한 25억 달러의 가치를 손상시켜야 할지 여부가 문제다. 또 의회는 약 5000만 명이 즐기는 판타지 스포츠를 섣불리 중단시키기는 어렵다. 그중 다수가 의원들에게 표를 줄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 정부가 1년 전에 판타지 스포츠 사이트를 면밀히 검토했다면 그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법적으로 불리하게 밀어붙이기가 비교적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기를 놓친 정부가 오히려 불리한 입장에 처했다. 업체로선 시대에 뒤진 법과 의식 없는 의원들에 맞설 땐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에 신속히 도달하는 게 최고의 전략이다. 기업이 신속히 움직일수록 정부가 가로막을 기회가 그만큼 적어진다.

(왼쪽부터)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와 가상통화 비트코인, 드론은 규제를 신속히 앞지르는 전략으로 사회에 뿌리내렸다
이런 일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드론(소형 무인비행기)이 급속히 미국의 하늘을 메우면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드론 제작·서비스 산업이 생겨났다. 미국 연방항공국(FAA)은 뒤늦게 규제를 마련한다고 허둥댄다. FAA가 선견지명이 있거나 신속히 움직였다면 하늘에 드론이 보이기 시작한 즉시 금지하거나 기존 항공기에 방해가 되지 안는 곳에서만 운항하도록 규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FAA는 드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해 급속히 늘었을 때와 빼닮았다.

가상통화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이 기술의 개발로 수백 개의 신생업체가 생겨났고 수십억 달러의 투자가 이뤄졌다. 어쩌면 비트코인이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개조할 수도 있다. 이미 주류 통화로 진입해 라스베이거스엔 프로 복서 출신 마이크 타이슨이 운영하는 비트코인 ATM(자동입출금기)이 설치됐을 정도다. 하지만 ‘비트코인’이라는 단어를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에서 한 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는가? 정부는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런 점이 비트코인으로선 더 없이 좋은 상황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와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는 정부의 규제보다 앞설 수 있는 전략을 어떻게 실행하는지 잘 보여줬다. 당국이 그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 알았을 땐 이미 늦어 금지하거나 제대로 규제할 방법이 없었다. 뉴욕시는 그 두 서비스를 금지하려 했다가 시민의 반발에 부닥쳐 물러섰다.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는 어쩔 수 없이 그 회사가 세금을 추가로 납부하면 사업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법과 기술 사이의 격차에는 위험이 도사린다. 저술가로 법·기술 전문가인 래리 다운스는 “신경제에 진정한 공공정책 위기가 닥쳤다”고 말했다. 팬듀얼과 드래프트킹스, 또는 우버처럼 법을 앞지르는 신생업체는 법의 보호를 받는 기존 업체에 의해 불필요하거나 위태로운 싸움에 휘말린다. 다운스는 그것을 “구식 법을 신상품과 서비스에 적용하려는 기성 업체들의 잘못된 시도에서 발생하는 유행병”이라고 표현했다.

규제되지 않는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위험한 영향도 있다. 도시 상공을 규제 없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드론은 1916년 미국 거리에 흉포한 동물처럼 등장한 자동차와 비슷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신기술의 잠재적인 피해로부터 사생활과 환경, 안전과 돈을 지키고 싶어 한다. 머지않아 ‘아주 똑똑한’ 인공지능도 개발될 것이다. 그러나 엘론 머스크(전기자동차 테슬라와 우주 수송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페이스X의 CEO)와 영국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등 크게 성공한 사람은 그런 인공지능이 인류에 해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가 핵폭탄으로부터 보호받듯이 그런 기술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있는 법과 행동강령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따라서 시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신기술의 번창을 허용하기 위해선 정부가 ‘똑똑하고, 초당적이고, 전향적으로’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꿰뚫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 KEVIN MANEY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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