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의 사치품에 흠뻑 빠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서 열리는 ‘아시아>암스테르담 전’ 전시실 전경.

당시 네덜란드 최고위층이었던 사실상의 국가 원수 프레데릭 헨리 총독과 그 부인 아말리아 폰 졸름스는 아름다운 칠기 캐비닛을 사들였는데 지금까지 네덜란드 왕가의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부유한 상인과 지주들은 아름다운 실크로 옷을 만들어 입고 최고급 도자기 접시와 꽃병, 그릇들을 사들였다. 이런 물건들은 당대에 그려진 멋진 회화 작품에 묘사돼 있다. 이 전시회에 선보인 새이저 폰 에버딩엔의 초상화(고급 실크 옷을 입은 한 VOC 관리를 그렸다)와 빌렘 클라스 헤다, 빌렘 칼프의 화려한 정물화 등이 그런 예다.
아시아 상품의 인기는 세계 최초의 부르주아 계층에 확산됐다. 렘브란트 같은 미술가는 아시아의 진기한 물건들을 상당량 수집했다. 그의 소장품 중엔 조개 껍질과 봉제동물완구, 무기, 인도의 세밀초상화(렘브란트는 이 세밀화들을 정교하게 복제했다) 등이 있다.
유럽 열강이 식민지 경쟁을 벌이던 시대에 네덜란드는 무역에서 큰 성과를 올렸다. 이런 능력이 아시아 공예품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켰고 그 욕망을 충족시켰다. VOC는 중국과의 직접 교역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1609년 일본 히라도에 교역소를 세웠다. 시마바라의 난(1637~38년 발생한 일본 기독교도들의 봉기) 이후 일본은 진압작전을 도운 네덜란드를 제외한 모든 유럽 국가와의 통상을 금지했다. 네덜란드인은 나가사키 근처의 데지마 섬을 근거로 교역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월한 입지를 최대한 활용해 도자기와 고가의 칠기 무역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네덜란드인은 동양의 명품 중에서 도자기를 가장 좋아했던 듯하다.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는 유럽에서 만든 도기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매끈하며 투명했다. 칼프의 정물화들은 빛을 반사하는 동양 도자기의 특성을 기막히게 포착했다.
델프트를 비롯한 네덜란드 각지의 도공들은 재빨리 동양의 청화백자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주석 유약을 바른 토기에 투명 유약을 덧칠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생산된 도자기들은 처음엔 조악했지만 점차 정교하고 세련된 맛을 더해갔다. 유럽에서는 18세기까지 도자기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지 않았지만 네덜란드 청화백자는 1630년대부터 줄곧 큰 성공을 거뒀다.
당대 최고의 사치품이었던 칠기는 아시아산 고급 수입품을 흉내 내려는 유럽 장인에게 도자기보다 더 어려운 도전이었다. 유럽에선 칠기에 쓰이는 옻나무 진을 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제작 공정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진취적인 장인과 사업가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1609년 빌렘 킥은 모든 종류의 칠기 생산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그러나 킥의 제품은 네덜란드 왕가가 소장하고 있는 캐비닛처럼 아름답고 정교한 일본산과는 비교가 안 된다. 헨리 총독 부부의 다섯째 딸인 알베르티네 아그네스가 한동안 소유했던 이 캐비닛 2점은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다.
이 무역에서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명품들이 수출시장의 요구에 따라 수정됐다는 점이다. 일본인은 처음엔 유럽 시장을 겨냥해 제작된 천박한 칠기를 남반(서양의 야만적인 물건이라는 뜻)이라고 부르며 업신여겼다. 하지만 대칭적인 디자인을 좋아하는 서양인의 취향이 결국 최고급 제품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전시회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사치스러울 뿐 아니라 더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건들과 사랑에 빠진 17세기 네덜란드 사회의 모습이 엿보인다. 또한 여러 문화와 스타일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흥미진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치품은 청교도에게 종종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18세기 초 라이덴에서는 일요일 예배 때 대학생이 반얀(18세기 유럽 남성들 사이에 인기를 끈 페르시아와 아시아풍의 의상)이나 일본식 ‘치마’(하카마)를 입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아름답게 만들어진 물건들이 선한 힘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루이뷔통 백과 에르메스 스카프, 보르도산 고급 와인이 중국산 모조품들과 함께 중국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먼 곳에서 온 아름다운 물건들에 대한 열정이 재미없는 개신교도의 나라 네덜란드를 바꿔놓았으며 열심히 일하는 그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줬다는 사실을 분명하다.
- HARRY EYRES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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