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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주 열풍 어디까지] “IT 버블 닮아” vs “패러다임 변화”

[바이오주 열풍 어디까지] “IT 버블 닮아” vs “패러다임 변화”

사진:중앙포토
말 그대로 뜨거웠다. 지난해 주식시장에 불었던 바이오 열풍 얘기다. 열풍의 핵으로 지목되는 한미약품과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의 시가총액 합은 1월 21일 기준 약 17조2700억원이다. SK텔레콤(15조5800억원)이나 포스코(14조6000억원)보다 많다. 지난해 초 10만원 안팎이던 한미약품의 주가는 현재 72만5000원, 1만원대이던 한미사이언스는 16만원대로 올랐다.

한미약품 한 회사 얘기가 아니다. KRX헬스케어 지수는 지난해에만 90% 넘게 급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12월 28일 5983포인트에 그쳤던 코스닥시장 제약업종지수는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올 1월 20일 7706.77포인트까지 올랐다. 코스피 의약품업종지수도 같은 기간 7862.9에서 9580.57로 상승했다. 이는 국내 증시와는 다른 행보다. 새해 첫 거래일인 4일 1954.47로 장을 시작한 코스피지수는 21일엔 1840.53으로 장을 마쳤다. 보름 사이 110포인트가 하락했다. 중국 증시와 국제유가 급락 영향이 컸다. 이런 상황에도 제약·바이오주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해 12월 2일부터 1월 21일까지 34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하면서 6조 896억원 어치의 국내 주식을 팔았다. 그러나 외국인은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21일 하루에만 약 46억원어치 사들였다.
 가치투자자 “바이오보다는 제조업”
바이오주의 몸값은 계속 오를까. 주목할 것은 바이오주를 바라보는 시선에 미세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외국인은 코스닥 시장 바이오주 시가총액 1위 업체인 셀트리온은 올 들어 1월 21일까지 1366억원어치 사들였다. 하지만 같은 기간 기관들은 약 1286억원의 셀트리온 주식을 팔았다. 업계에선 바이오주가 하락 전환할 때를 대비해 기관이 미리 매도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물론 아직까지 증권가에선 바이오주를 낙관적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정작 매일 주식을 사고 파는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들의 의견은 갈렸다.

국내 가치투자 3인방으로 불리는 이채원 한투밸류운용 부사장, 허남권 신영산운용 부사장, 최웅필 KB자산운용 본부장은 신중론을 폈다. 이들은 “(바이오주 열풍이) 2000년 대 초반 정보기술(IT) 버블과 유사하다”며 “수많은 IT 기업의 주가가 급등했지만 대부분이 사라지고 살아남은 건 네이버와 카카오에 합병된 다음, NC소프트 등 소수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최웅필 본부장은 “한때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업종이 오를 땐 중국 경기가 팽창하면서 이들 업종 실적도 좋아졌다”며 “하지만 지금 바이오업종 대부분은 실적이 좋아질 거란 기대감에 근거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바이오 업종 대신 오히려 주가가 하락 중인 제조업에 주목한다. 허남권 본부장은 “한국 제조업이 위기를 겪고 있지만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 중국의 한계기업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국내 제조업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봤다. 이채원 부사장은 “3~5년 후 실제로 실적이 좋아질 바이오 종목을 고르는 것보다 지금 실적이 좋은데 값이 싼 제조업 종목을 고르는 게 더 불확실성이 낮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바이오주의 미래가 낙관적이란 전망도 많다. 본지 인터뷰와 설문에 응한 8명의 CIO 중 5명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박홍식 맥쿼리운용 본부장은 “생산에서 소비로 경제 중심이 바뀌고 있는 중국, 그리고 고령화라는 거대한 변화로 한국의 산업 구조도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산업이 변하면 기업의 평가 가치도 달라지니 시장도 변하는 게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손동식 미래에셋운용 본부장도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거품은 있게 마련”이라며 “기술력과 브랜드를 갖춘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이오 업종이라고 덮어놓고 투자할 게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을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최광욱 에셋플러스운용 본부장도 낙관론 쪽에 섰다. 에셋플러스운용은 가치투자로 유명한 강방천 회장이 세운 운용사다. 최 본부장은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브랜드 가치·콘텐트·인적자원·네트워크 같은 수치화되지 않은 가치의 중요성이 커진다”며 “바이오 같은 성장주가 가진 이런 무형의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급등한 바이오주, 기대치 낮춰야
가치투자 3인방이 제조업 분야 대형주 비중을 늘리는 것과 달리 “제조업이 반등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안홍익 트러스톤자산운용 본부장은 “중국이 변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제조업이 주식 시장을 이끌던 2000년대 초중반엔 중국이 연 두자릿수대 성장률을 보이면서 공급 부족 상태였지만 지금은 공급 과잉 상태라는 것이다. 안 본부장은 “중국의 한계기업이 무너진다면 그만큼 경기가 부진하다는 의미인 만큼 국내 제조업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제조업을 이을 신성장 산업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견해는 갈렸지만 양쪽 모두 한목소리를 내는 지점도 있다. 저성장·저금리가 바이오 열풍에 불을 댕겼다는 점이다. 이채원 부사장은 “사회 전체적으로 저성장이 심화하면 성장에 과도한 프리미엄이 부여된다”며 “저평가 종목 주가는 오르고 고평가 종목 주가는 내리는 게 일반적인데 지금은 고평가 종목이 계속 오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옥석을 가려서 종목을 골라야지 한쪽으로 쏠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바이오라고 다 오르는 것이 아니고 망할 기업은 망할 것”이란 경고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데에도 의견이 모였다. 이승준 삼성 자산운용 본부장은 “지난해 가격이 많이 오른 데다 미국이 순차적으로 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이니 만큼 올해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새해 들어 불어오는 중국 증시 급락 문제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채원 부사장은 “중국발 위험이 세계 금융시스템의 마비를 불러올 정도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대내외 상황을 미뤄볼 때 종합주가지수가 어디까지 하락할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바이오주’라는 테마에 얽매이지 말고 자산이 풍부해 구조조정 여력이 있는 기업, 현금흐름이 좋고 자사주 매입을 하는 등 주주친화적인 정책에 나서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정선언·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지금 실적이 좋은데 값이 싼 제조업 종목을 고르는 게 낫다” -

이채원 한투밸류운용 부사장

“지금 바이오업종 대부분은 실적이 좋아질 거란 기대감에 근거해 오르고 있다” -

최웅필 KB자산운용 본부장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거품은 있게 마련” -

손동식 미래에셋자산운용 본부장

“고령화라는 거대한 변화로 한국의 산업 구조도 바뀌고 있다” -

박홍식 맥쿼리운용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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