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한옥마을은 지금] 뚝딱뚝딱 망치소리에 잡음도 새어 나와
[전국 한옥마을은 지금] 뚝딱뚝딱 망치소리에 잡음도 새어 나와
잘 지은 한옥 한 채, 강남 아파트 부럽지 않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전통한옥의 가치가 재조명 받고 있다. 집을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다. 너른 마당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사는 한옥생활을 꿈꾸는 사람이 늘면서 전국 각지에 한옥마을 조성 열풍이 불었다. 2014년 필지 분양을 마치고, 공사가 한창인 서울 은평한옥마을이 대표적이다. 세종시는 전주한옥마을을 닮은 정주형 한옥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올 상반기에 부지를 공급할 예정이다. 경기도 화성시, 강원도 강릉시, 전남 장성군도 한옥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한옥 열풍이 전국으로 번지면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한옥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삽부터 뜨다 보니 조성 계획 자체가 물거품이 되는 등의 문제점도 적지 않다. 수도권 최대 규모의 한옥 전용 주거단지로 알려진 서울 진관동 은평한옥마을은 1월 말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156개 필지 중 30개 구역에서 한옥을 올리고 있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7세대가 완공 후 입주를 마쳤다. 사업 시행을 맡은 SH공사가 처음 분양을 시작한 2012년 9월에는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주택시장이 얼어붙어 있었다. 당시 입찰방식으로 10개 필지, 추첨방식으로 9개 필지를 내놨는데, 5개만 주인을 찾았다. 입찰 토지는 1건에 불과했다. 낙찰가도 분양가 9억4072만원보다 600만원 밖에 높지 않았다. 이후 진행된 수의계약 과정에서도 난항을 겪었다. 당시엔 건축에 드는 예상 경비도 3.3㎡당 평균 1000만~2000만원에 육박했다. 수요자들이 선뜻 매입에 나서지 않았던 배경이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서울시와 SH공사는 시공법과 공정 관리 기술을 개선했다. 그 결과 창호와 벽체 기밀성능을 개선한 시범한옥을 내놓았다. 건축비도 60%가량 낮췄다. 필지 크기도 줄였다. 애초 분양 필지 규모가 200~400㎡로 조성돼 1개 필지 값이 10억원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실수요가 적다는 판단에 방향을 틀었다. 기업이나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블록형 필지를 작게 쪼개 개인 실거주용으로 전환했다. 당초 95세대 분양 예정이었지만 용지를 변경해 총 156세대를 분양했다. 한옥 양식도 복층형이나 다락방을 만드는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 거주자의 편의성을 높였다. 2013년 10월 분양을 재개했다. SH공사는 3.3m²당 920만원을 들여 조성한 부지를 3.3m²당 730만원에 내놨다. 필지는 면적에 따라 40~124평(135~410m²)으로 대폭 축소해 나눴다. 분양 받은 필지 안에 자유롭게 한옥을 짓기 때문에 건축비는 천차만별이지만 한옥을 짓는데 소요되는 총 비용도 10억원 내외로 낮췄다. 토지환매제를 도입해 토지 매입 계약 후 사업성 문제로 계약을 취소하더라도 계약금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수요자의 부담을 덜었다. 본격적으로 분양을 재개한 2014년 2월 은평 한옥마을을 찾았을 때(본지 1223호 게재)만 해도 관계자들 역시 반신반의한 모습이었다. 당시 분양 관계자는 “(장기 미분양을 해결하기 위해) 조기 입주자를 대상으로 설계비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분양률을 높일 계획”이라면서도 “한옥의 가치를 알아줄 수요자가 많을지가 관건”이라며 우려했다.
각종 지원책에도 2014년 상반기까지 119개 필지가 미분양 상태로 남아있었다. 결국 분양대행 전문 업체까지 투입해 적극적인 홍보마케팅을 펼쳤다. 인근 지역의 다양한 개발계획이 알려지고, 한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해 12월에서야 SH공사는 은평뉴타운 한옥마을 땅의 ‘완판(완전판매)’ 소식을 알릴 수 있었다. 156개 필지 중 견본 한옥 부지 1개를 제외한 155개 필지를 모두 분양한 것이다. 처음 분양을 시작한 지 2년 2개월 만이었다. SH공사 측은 “이미 14개 필지에서 한옥 공사 및 인허가 작업이 진행 중이니 늦어도 2016년 상반기면 서울 도시개발지역 내 최대 규모의 한옥마을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한낮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돌던 1월 19일 서울 진관동을 찾았을 때 북한산 자락을 병풍으로 자리한 마을 부지는 그야말로 공사판이었다. 아직 집보다 빈 땅이 눈에 더 띄었다. 당초 올 상반기면 마을의 모습을 갖출 것이라 예상했지만 위용을 드러내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 듯했다. 공사 작업을 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날이 추워서 공사 진행이 더디지만 봄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집을 완공한 일곱 가구가 입주해 살고 있고, 연말까지 34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마을에서 만난 한 입주민은 “공기가 좋고, 주변 환경이 뛰어나 한옥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며 “공사 중인 집이 많아 불편한 점도 있지만 모든 세대가 들어올 때쯤엔 마을의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불편함을 호소하는 주민도 있었다. 그는 “한옥마을 조성이 알려지며 주말이면 동네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며 “세대별로 마련된 주차공간이 있지만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불법 주차나 쓰레기 투기 등 문제가 발생해 민원을 넣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초 서울시가 은평한옥마을을 조성한 배경은 정주형 한옥주거단지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말 그대로 아파트 대신 한옥에 살고자 하는 실수요자를 끌어들인다는 목표였다. 이 때문에 상업시설이 들어설 자리가 마련되지 않아 입주민들은 차로 10~15분 거리의 인근 아파트 단지 내 대형마트나 음식점을 이용하는 게 예사다. 주거전용 지역으로 시작했지만 분양이 끝나고, 공사를 시작한 최근 분위기는 처음과 달라졌다. 은평구가 지난해 한옥마을을 문화특구로 지정하면서 마을 내엔 한옥박물관과 문학관 등도 만들어졌다. 지난 1월 19일엔 구청 내 한옥건축팀을 신설해 한옥마을을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구청은 연내 국립한국문학관을 유치하고, 문화센터·문화관·미술관·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구청 관계자는 “한옥건축팀에서는 한옥 건축 허가를 전담하는 걸 기본으로 신한옥 개발, 한옥위원회 운영, 한옥유지관리 등을 해나갈 예정”이라며 “이 밖에도 한옥마을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청의 계획에 대한 주민들의 입장은 엇갈린다. 입주를 앞둔 김성환(가명)씨는 “은퇴 후 한옥을 짓고 조용히 살고 싶어 귀촌을 대신해 이곳 필지를 분양받았다”며 “이제 와서 문화특구로 키우겠다고 하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분양 당시 계획 그대로 한옥 전용 주거단지로서 입주민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주민은 “초기에 계약한 사람은 대부분 실거주 목적이 많았는데 막판에는 한옥을 활용한 게스트하우스나 기타 상업시설을 지을 생각으로 분양받은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오랜 전통을 지닌 전주한옥마을도 상업화로 몸살을 앓는 마당에 새로 조성되는 마을이 처음부터 투자처로 인식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H공사 관계자는 “공사 측은 토지 조성과 분양 업무를 맡았을 뿐 그 후의 활용에 대해서는 구청과 주민이 협의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의 대표 한옥단지인 은평한옥마을이 주거전용단지와 문화특구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고 있지만 전국에 부는 한옥마을 조성 열풍은 여전히 뜨겁다. 서울은 물론 인천·수원 등 주요 대도시와 지방 신도시에서도 한옥마을 조성이 한창이다.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는 중산층용 민간 임대주택인 ‘뉴 스테이’ 400가구를 한옥으로 지어 공급하기로 했다. 경상북도청이 들어서는 안동 신도시에선 700가구 규모의 한옥마을을 건설한다. 세종시도 한옥마을 부지를 확보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계획과 달리 잡음을 내는 곳이 적지 않다. 전라남도 대표 한옥마을로 2012년 조성했던 장성 황룡행복마을은 저조한 분양률을 보이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분양가에다 도심과 떨어진 지리적인 단점도 걸림돌이었다. 이에 장성군과 전라남도는 분양가를 인하하고, 한옥지원조례를 개정해 개발규제를 완화하는 등 안간힘을 써왔다. 지난해에는 군 관계자와 기아자동차지부, 전남개발공사 등에서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성 황룡행복마을 조기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당시 협약으로 임직원 20세대, 장성군 공직자 24세대 등 총 44세대가 분양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가까스로 대규모 미분양 사태는 피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한옥으로만 지으면 외부에서 은퇴 세대나 귀촌가구가 자연히 찾아올 것처럼 홍보하던 것과 달리 입주한 사람은 결국 공무원이나 지역유지뿐”이라며 “애초에 이런 시골에 한옥만으로 인구 유입을 기대한 것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이에 군 관계자는 “이번 한옥 전용 주거단지를 위해 전기·통신·도시가스 등 각종 인프라를 구축하고, 마을 중앙에 1만1000㎡ 규모의 공원을 조성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초기 분양률이 저조했던 것은 사실이나 광주 도심과도 20분 거리면 닿을 수 있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반박했다.
울주군 상북면 산전리 일대에서도 한옥마을 건립을 추진 중이다. 울주군은 기존 지형과 도로를 활용한 친환경 주거단지로 한옥마을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친환경 주거단지 조성을 위해 울주군은 기존 지형과 도로를 활용해 한옥 주거지를 배치하고, 수변공원을 조성키로 했다. 울주군은 군이 나서 대규모 단지를 개발하기보다는 자생적으로 한옥마을이 들어서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위해 한옥을 건립하는 건축주에 총공사비의 절반 범위에서 최대 3500만원까지 지원하는 ‘울주군 한옥진흥조례안’을 마련했다. 한옥 수선에 들어가는 비용도 최대 1000만원까지 지원한다.
그러나 이 조례안이 2012년에 이어 최근 또 한번 보류되면서 사업 자체가 백지화 위기에 몰렸다. 울주군의회 건설복지위원회는 “해당 조례는 군이 추진 중인 한옥마을 조성 사업 지원의 바탕이 된다”며 “이제까지 전국적으로 한옥마을을 새롭게 조성해 성공한 사례가 드문 만큼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계획을 좀 더 세밀하게 짜고 조례를 검토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해 보류하게 됐다”고 밝혔다. 2018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원도는 한옥마을 조성 논의가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한 곳이다. 강릉시는 한옥마을을 전통과 첨단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빌리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강릉시에 따르면 죽헌동 전통역사문화지구에 들어서는 한옥마을을 전통과 첨단 IT기술이 어우러지는 신개념의 테마형 주거·체험공간으로 조성해 나가기로 했다. 강릉 한옥마을은 오죽헌 인근에 문화체육관광부 특구사업(전통한옥 체험단지)과 국토교통부의 R&D사업(올림픽 민속촌 테마지구)으로 진행되는 각각의 사업을 아우르는 말이다.
전통한옥 체험단지는 모두 59억원을 들여 죽헌동 일원 1만 4432㎡ 부지에 내년까지 전통한옥 12개동을 조성할 계획이다. 올림픽 민속촌은 죽헌동 일원 1만2300㎡ 부지에 80억원을 들여 오는 10월까지 한옥게스트하우스 18개동을 선보일 목표다. 한옥마을은 네트워크 통신망 인프라를 기본으로 관광·체류자들을 위한 시설안내, 예약, 멀티 시스템 등 모든 서비스가 IT 기술과 접목돼 제공된다. 강릉시 관계자는 “올림픽 개최 도시 강릉에 새로운 개념의 한옥마을이 탄생하면 올림픽 숙박난 해소는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전통한옥의 우수성을 알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웃 횡성군은 2012년부터 준비한 한옥단지 조성이 최근 무산됐다. 지난 2013년 말 착공한 횡성 베이스볼 테마파크 조성 사업은 1단계 체육시설 기반공사 완공을 앞두고 있다. 올해부터는 113억원을 들여 한옥학교와 공장 등을 갖춘 한옥자원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사업 파트너인 서울시 측과 협의가 안돼 무산됐다. 한규호 횡성군수는 지난해 말 열린 한옥자원단지 주민설명회에서 “그동안 서울시 한옥사업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한옥학교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예산도 편성했지만 서울시와의 접근방식이 너무 달라 한옥자원단지 조성계획을 접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옥자원단지 조성이 무산되면서 횡성 베이스볼 테마파크 2단계 사업도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2단계 사업의 핵심인 민자유치도 부진하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150억원가량의 민간 자본을 유치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호스텔을 제외하고는 민자유치 실적이 없다.
횡성군이 뒤늦게 대안 마련에 나섰지만 주민들은 테마파크 사업마저 ‘반쪽짜리’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주민은 “전국적으로 한옥단지 열풍이 부니 일단 조성하고 보자는 식의 의욕만 앞선 결과”라며 “서울시와 제대로 된 협업 관계를 구축하지 않은 채 지원 조례 재정부터 서둘러 결국 지역 발전을 기대한 주민만 피해를 봤다”라고 비난했다. 이에 군 관계자는 “지역발전에 유리한 다른 사업으로 발 빠르게 전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근 부동산 관계자는 “수도권에서도 높은 분양가 탓에 미분양된 곳이 수두룩한데 지방 실정은 더욱 열악하다”며 “특히 강원도는 올림픽을 앞두고 지역별로 한옥을 조성한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아직까지는 수요 자체가 없어 주거형 한옥단지가 생기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서울시와 SH공사는 시공법과 공정 관리 기술을 개선했다. 그 결과 창호와 벽체 기밀성능을 개선한 시범한옥을 내놓았다. 건축비도 60%가량 낮췄다. 필지 크기도 줄였다. 애초 분양 필지 규모가 200~400㎡로 조성돼 1개 필지 값이 10억원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실수요가 적다는 판단에 방향을 틀었다. 기업이나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블록형 필지를 작게 쪼개 개인 실거주용으로 전환했다. 당초 95세대 분양 예정이었지만 용지를 변경해 총 156세대를 분양했다. 한옥 양식도 복층형이나 다락방을 만드는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 거주자의 편의성을 높였다.
시공기술 개발하고 건축비도 낮춰
각종 지원책에도 2014년 상반기까지 119개 필지가 미분양 상태로 남아있었다. 결국 분양대행 전문 업체까지 투입해 적극적인 홍보마케팅을 펼쳤다. 인근 지역의 다양한 개발계획이 알려지고, 한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해 12월에서야 SH공사는 은평뉴타운 한옥마을 땅의 ‘완판(완전판매)’ 소식을 알릴 수 있었다. 156개 필지 중 견본 한옥 부지 1개를 제외한 155개 필지를 모두 분양한 것이다. 처음 분양을 시작한 지 2년 2개월 만이었다. SH공사 측은 “이미 14개 필지에서 한옥 공사 및 인허가 작업이 진행 중이니 늦어도 2016년 상반기면 서울 도시개발지역 내 최대 규모의 한옥마을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한낮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돌던 1월 19일 서울 진관동을 찾았을 때 북한산 자락을 병풍으로 자리한 마을 부지는 그야말로 공사판이었다. 아직 집보다 빈 땅이 눈에 더 띄었다. 당초 올 상반기면 마을의 모습을 갖출 것이라 예상했지만 위용을 드러내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 듯했다. 공사 작업을 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날이 추워서 공사 진행이 더디지만 봄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집을 완공한 일곱 가구가 입주해 살고 있고, 연말까지 34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마을에서 만난 한 입주민은 “공기가 좋고, 주변 환경이 뛰어나 한옥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며 “공사 중인 집이 많아 불편한 점도 있지만 모든 세대가 들어올 때쯤엔 마을의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불편함을 호소하는 주민도 있었다. 그는 “한옥마을 조성이 알려지며 주말이면 동네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며 “세대별로 마련된 주차공간이 있지만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불법 주차나 쓰레기 투기 등 문제가 발생해 민원을 넣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초 서울시가 은평한옥마을을 조성한 배경은 정주형 한옥주거단지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말 그대로 아파트 대신 한옥에 살고자 하는 실수요자를 끌어들인다는 목표였다. 이 때문에 상업시설이 들어설 자리가 마련되지 않아 입주민들은 차로 10~15분 거리의 인근 아파트 단지 내 대형마트나 음식점을 이용하는 게 예사다. 주거전용 지역으로 시작했지만 분양이 끝나고, 공사를 시작한 최근 분위기는 처음과 달라졌다. 은평구가 지난해 한옥마을을 문화특구로 지정하면서 마을 내엔 한옥박물관과 문학관 등도 만들어졌다. 지난 1월 19일엔 구청 내 한옥건축팀을 신설해 한옥마을을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구청은 연내 국립한국문학관을 유치하고, 문화센터·문화관·미술관·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구청 관계자는 “한옥건축팀에서는 한옥 건축 허가를 전담하는 걸 기본으로 신한옥 개발, 한옥위원회 운영, 한옥유지관리 등을 해나갈 예정”이라며 “이 밖에도 한옥마을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거전용단지냐 문화특구냐 갈등
서울의 대표 한옥단지인 은평한옥마을이 주거전용단지와 문화특구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고 있지만 전국에 부는 한옥마을 조성 열풍은 여전히 뜨겁다. 서울은 물론 인천·수원 등 주요 대도시와 지방 신도시에서도 한옥마을 조성이 한창이다.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는 중산층용 민간 임대주택인 ‘뉴 스테이’ 400가구를 한옥으로 지어 공급하기로 했다. 경상북도청이 들어서는 안동 신도시에선 700가구 규모의 한옥마을을 건설한다. 세종시도 한옥마을 부지를 확보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계획과 달리 잡음을 내는 곳이 적지 않다. 전라남도 대표 한옥마을로 2012년 조성했던 장성 황룡행복마을은 저조한 분양률을 보이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분양가에다 도심과 떨어진 지리적인 단점도 걸림돌이었다. 이에 장성군과 전라남도는 분양가를 인하하고, 한옥지원조례를 개정해 개발규제를 완화하는 등 안간힘을 써왔다. 지난해에는 군 관계자와 기아자동차지부, 전남개발공사 등에서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성 황룡행복마을 조기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당시 협약으로 임직원 20세대, 장성군 공직자 24세대 등 총 44세대가 분양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가까스로 대규모 미분양 사태는 피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한옥으로만 지으면 외부에서 은퇴 세대나 귀촌가구가 자연히 찾아올 것처럼 홍보하던 것과 달리 입주한 사람은 결국 공무원이나 지역유지뿐”이라며 “애초에 이런 시골에 한옥만으로 인구 유입을 기대한 것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이에 군 관계자는 “이번 한옥 전용 주거단지를 위해 전기·통신·도시가스 등 각종 인프라를 구축하고, 마을 중앙에 1만1000㎡ 규모의 공원을 조성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초기 분양률이 저조했던 것은 사실이나 광주 도심과도 20분 거리면 닿을 수 있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반박했다.
울주군 상북면 산전리 일대에서도 한옥마을 건립을 추진 중이다. 울주군은 기존 지형과 도로를 활용한 친환경 주거단지로 한옥마을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친환경 주거단지 조성을 위해 울주군은 기존 지형과 도로를 활용해 한옥 주거지를 배치하고, 수변공원을 조성키로 했다. 울주군은 군이 나서 대규모 단지를 개발하기보다는 자생적으로 한옥마을이 들어서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위해 한옥을 건립하는 건축주에 총공사비의 절반 범위에서 최대 3500만원까지 지원하는 ‘울주군 한옥진흥조례안’을 마련했다. 한옥 수선에 들어가는 비용도 최대 1000만원까지 지원한다.
그러나 이 조례안이 2012년에 이어 최근 또 한번 보류되면서 사업 자체가 백지화 위기에 몰렸다. 울주군의회 건설복지위원회는 “해당 조례는 군이 추진 중인 한옥마을 조성 사업 지원의 바탕이 된다”며 “이제까지 전국적으로 한옥마을을 새롭게 조성해 성공한 사례가 드문 만큼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계획을 좀 더 세밀하게 짜고 조례를 검토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해 보류하게 됐다”고 밝혔다.
동탄신도시에선 뉴스테이 400가구 한옥으로
전통한옥 체험단지는 모두 59억원을 들여 죽헌동 일원 1만 4432㎡ 부지에 내년까지 전통한옥 12개동을 조성할 계획이다. 올림픽 민속촌은 죽헌동 일원 1만2300㎡ 부지에 80억원을 들여 오는 10월까지 한옥게스트하우스 18개동을 선보일 목표다. 한옥마을은 네트워크 통신망 인프라를 기본으로 관광·체류자들을 위한 시설안내, 예약, 멀티 시스템 등 모든 서비스가 IT 기술과 접목돼 제공된다. 강릉시 관계자는 “올림픽 개최 도시 강릉에 새로운 개념의 한옥마을이 탄생하면 올림픽 숙박난 해소는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전통한옥의 우수성을 알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주군, 한옥 건축 지원 조례안 두 차례 보류
횡성군이 뒤늦게 대안 마련에 나섰지만 주민들은 테마파크 사업마저 ‘반쪽짜리’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주민은 “전국적으로 한옥단지 열풍이 부니 일단 조성하고 보자는 식의 의욕만 앞선 결과”라며 “서울시와 제대로 된 협업 관계를 구축하지 않은 채 지원 조례 재정부터 서둘러 결국 지역 발전을 기대한 주민만 피해를 봤다”라고 비난했다. 이에 군 관계자는 “지역발전에 유리한 다른 사업으로 발 빠르게 전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근 부동산 관계자는 “수도권에서도 높은 분양가 탓에 미분양된 곳이 수두룩한데 지방 실정은 더욱 열악하다”며 “특히 강원도는 올림픽을 앞두고 지역별로 한옥을 조성한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아직까지는 수요 자체가 없어 주거형 한옥단지가 생기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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