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의 리더 |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아시아 대표 투자은행 부푼 꿈
[자본시장의 리더 |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아시아 대표 투자은행 부푼 꿈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국내 금융 업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다. 2007년에 사장이 됐으니, 올해로 10년째다. 당시 만 47세의 나이로 사장 자리에 올라 업계 최연소 CEO의 기록도 갖고 있다.
오랜 기간 사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실적 덕이 크다. 유 사장 취임 전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동원증권은 업계 7~8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5년 동원증권이 한국투자신탁을 인수하고 유 사장이 취임한 후 한국투자증권은 국내 최정상급 대형 증권사로 올라섰다. 2011~2014년엔 순이익 1위를 기록했다. 유 사장은 비결을 효율적인 조직에서 찾는다. “대형사 중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놨어요. 특정 분야에 올인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다변화된 수익 구조를 만들고 직원 개개인이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 게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어떤 회사는 지난해 특정 부문에서만 높은 수익을 올렸는데 그런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한국투자증권은 관리비용을 줄여 시장이 좋든 나쁘든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는 구조입니다. 직원들이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죠.” 직원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제반 비용을 다 충당하고도 이익이 남으니 트레이딩 수익 등은 플러스 알파가 돼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갖게 됐다는 얘기다.
조직 얘기는 자연스럽게 리더십 철학으로 이어졌다. “리더십의 요체는 구성원이 조직의 비전을 공유하게 하고 그것을 향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리더는 먼저 희생하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리더의 말과 행동이 다르거나 자기 이익을 앞세워 직원들이 ‘저 사람은 말로는 비전 운운하면서 다른 생각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하면 안 됩니다.” 유 사장은 이를 위해 언로(言路)를 완전히 개방했다. 신입사원도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메시지로 사장에게 직접 자기 생각을 얘기할 수 있다. 유 사장은 일일이 답신을 다 해준다고 한다.
요즘 유 사장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투자은행’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2월 하순에 베트남을 방문한 그는 베트남에서 고만고만했던 현지 증권사를 인수해 업계 10위권 안에 안착시켰다. 올해 목표는 이 ‘KIS베트남’을 톱5에 들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골드먼삭스 같은 금융회사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미국처럼 수퍼파워거나 영국처럼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하고 근대 금융을 만든 나라는 가능하지만 후발 주자는 쉽지 않죠. 독일과 일본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유 사장은 그래서 눈을 아시아로 돌렸다. “지역 플레이어로서 톱클래스는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은 우리가 가서 뿌리를 내려놓으면 상위권에 들 수 있죠. 이 나라들이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 아니겠어요? 그럼 세계 금융시장에서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거래를 하려면 한국투자증권이란 데가 꼭 필요하구나’ 하게 되는 것이죠.”
유 사장은 최근 출시된 비과세 해외 펀드에서도 베트남 펀드와 인도 펀드에 투자했다. “예전엔 괜찮아 보이는 종목을 찍어서 장기 투자하는 걸 권했는데 이젠 산업 사이클이 너무 짧아 졌어요. 분산투자의 중요성이 더 커진 것이죠. 산업과 기업의 트렌드를 잘 보고 있다가 적절한 시점에 리밸런싱을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증권사뿐 아니라 고객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사이클이 바뀌어서 갈아타야 하는데 아무래도 고객들은 돈을 잃으면 쉽게 갈아타지 못하는 경향이 있죠.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손실이 점점 더 커집니다.”
지금은 목표수익률을 낮게 잡고 보수적으로 투자하는 걸 권한다고도 했다. 비과세 해외 펀드처럼 장기간 묻어둘 곳으로는 과감하게 신흥국을 골랐다. “중국은 여러 가지로 불안한 게 많고 베트남과 인도의 성장세가 더 클 것 같습니다. 물론 기존에 선진국 펀드도 많이 가입했습니다.”
유 사장은 금융인 집안 출신이다. 외종조부(외할아버지의 동생)가 1960년대 제일은행장을 지냈고, 유 사장의 아버지도 제일은행에서 오래 근무했다. 이모부들도 서울신탁은행과 외환은행에 다녔다. 유 사장 자신도 대학 때부터 자본시장에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 졸업 후 한일은행에 들어갔다가 1년여 만에 미국으로 MBA를 취득하러 떠났다. 돌아와서 택한 직장은 국내 1위 증권사 대우증권이었다. “우리 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모든 젊은이의 표상이었고, 나 또한 그랬어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증권회사에 들어가서 사장 한번 해보자’ 이런 꿈을 갖게 됐죠.” 입사 5년 만에 영국 런던법인으로 발령난 그는 한국 주식 거래 부문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어떤 날은 런던시장 한국 주식 거래의 5%를 혼자 다 처리하기도 했다. “고객에게 믿음을 준 게 컸다고 생각해요. 주식 브로커를 볼 때 ‘커미션 뜯어먹으려고 오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일단 비즈니스가 되건 안 되건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하죠. ‘나는 정말 당신이 돈을 벌 수 있도록 고민하고 희생하고 노력한다’는 믿음을 준 게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이탈리아 요리를 배운 점도 흥미롭다. 2012년과 2013년 여름 3시간씩 10번 코스로 가까운 후배들과 함께 이탈리아 요리 전문학원에 다녔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요리라는 게 100명에게 똑같은 재료를 주고 만들어보라고 해도 100인 100색이 나오죠. 창조적인 예술행위이자 베풂과 배려의 행위예요.” 은퇴하면 조그만 ‘살롱’을 만들어 가족과 동료, 친구들을 불러 요리해서 먹이고 얘기를 나눌 꿈도 갖고 있다. “한식 요리는 해보니 너무 손이 많이 가더라고요. 설거지 거리도 너무 많이 나오고. 대여섯 명 불러다 해먹일 때 손쉽고 맛있고 편한 게 이탈리아 요리였어요.” 요즘은 잠시 요리를 쉬고 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중국 요리에도 도전해 볼 계획이다.
요리는 금융과 접점도 있다는 게 유 사장의 생각이다. “우리가 왜 이 금융 일을 하느냐. 우리는 고객들에게 제대로 투자를 하게 해서 자산을 증식시키고 행복하게 해주는 게 우리의 기본 존재 이유예요. 요리도 마찬가지죠. 상대방의 입맛에 맞게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임으로써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죠. 둘 다 타인에 대한 배려, 행복, 주변을 행복하게 해주자고 하는 것이에요.” 다만 뻔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등 요리 방송에서 셰프들이 대결하는 걸 보면서 더욱 많이 느껴요. 판에 박힌 요리로는 어림도 없죠. 금융도 요리도 창의성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유상호 : 1960년생. 1985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한일은행에서 1년여 근무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주립대에서 MBA 취득. 1988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뒤 92~99년 런던법인 근무. 99년 귀국 후 메리츠증권 상무를 거쳐 2002년 한국투자증권(당시 동원증권) 부사장 취임. 2007년부터 사장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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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사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실적 덕이 크다. 유 사장 취임 전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동원증권은 업계 7~8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5년 동원증권이 한국투자신탁을 인수하고 유 사장이 취임한 후 한국투자증권은 국내 최정상급 대형 증권사로 올라섰다. 2011~2014년엔 순이익 1위를 기록했다. 유 사장은 비결을 효율적인 조직에서 찾는다. “대형사 중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놨어요. 특정 분야에 올인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다변화된 수익 구조를 만들고 직원 개개인이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 게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어떤 회사는 지난해 특정 부문에서만 높은 수익을 올렸는데 그런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한국투자증권은 관리비용을 줄여 시장이 좋든 나쁘든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는 구조입니다. 직원들이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죠.” 직원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제반 비용을 다 충당하고도 이익이 남으니 트레이딩 수익 등은 플러스 알파가 돼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갖게 됐다는 얘기다.
장수의 비결은 실적
요즘 유 사장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투자은행’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2월 하순에 베트남을 방문한 그는 베트남에서 고만고만했던 현지 증권사를 인수해 업계 10위권 안에 안착시켰다. 올해 목표는 이 ‘KIS베트남’을 톱5에 들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골드먼삭스 같은 금융회사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미국처럼 수퍼파워거나 영국처럼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하고 근대 금융을 만든 나라는 가능하지만 후발 주자는 쉽지 않죠. 독일과 일본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유 사장은 그래서 눈을 아시아로 돌렸다. “지역 플레이어로서 톱클래스는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은 우리가 가서 뿌리를 내려놓으면 상위권에 들 수 있죠. 이 나라들이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 아니겠어요? 그럼 세계 금융시장에서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거래를 하려면 한국투자증권이란 데가 꼭 필요하구나’ 하게 되는 것이죠.”
유 사장은 최근 출시된 비과세 해외 펀드에서도 베트남 펀드와 인도 펀드에 투자했다. “예전엔 괜찮아 보이는 종목을 찍어서 장기 투자하는 걸 권했는데 이젠 산업 사이클이 너무 짧아 졌어요. 분산투자의 중요성이 더 커진 것이죠. 산업과 기업의 트렌드를 잘 보고 있다가 적절한 시점에 리밸런싱을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증권사뿐 아니라 고객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사이클이 바뀌어서 갈아타야 하는데 아무래도 고객들은 돈을 잃으면 쉽게 갈아타지 못하는 경향이 있죠.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손실이 점점 더 커집니다.”
지금은 목표수익률을 낮게 잡고 보수적으로 투자하는 걸 권한다고도 했다. 비과세 해외 펀드처럼 장기간 묻어둘 곳으로는 과감하게 신흥국을 골랐다. “중국은 여러 가지로 불안한 게 많고 베트남과 인도의 성장세가 더 클 것 같습니다. 물론 기존에 선진국 펀드도 많이 가입했습니다.”
유 사장은 금융인 집안 출신이다. 외종조부(외할아버지의 동생)가 1960년대 제일은행장을 지냈고, 유 사장의 아버지도 제일은행에서 오래 근무했다. 이모부들도 서울신탁은행과 외환은행에 다녔다. 유 사장 자신도 대학 때부터 자본시장에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 졸업 후 한일은행에 들어갔다가 1년여 만에 미국으로 MBA를 취득하러 떠났다. 돌아와서 택한 직장은 국내 1위 증권사 대우증권이었다. “우리 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모든 젊은이의 표상이었고, 나 또한 그랬어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증권회사에 들어가서 사장 한번 해보자’ 이런 꿈을 갖게 됐죠.” 입사 5년 만에 영국 런던법인으로 발령난 그는 한국 주식 거래 부문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어떤 날은 런던시장 한국 주식 거래의 5%를 혼자 다 처리하기도 했다. “고객에게 믿음을 준 게 컸다고 생각해요. 주식 브로커를 볼 때 ‘커미션 뜯어먹으려고 오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일단 비즈니스가 되건 안 되건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하죠. ‘나는 정말 당신이 돈을 벌 수 있도록 고민하고 희생하고 노력한다’는 믿음을 준 게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이탈리아 요리를 배운 점도 흥미롭다. 2012년과 2013년 여름 3시간씩 10번 코스로 가까운 후배들과 함께 이탈리아 요리 전문학원에 다녔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요리라는 게 100명에게 똑같은 재료를 주고 만들어보라고 해도 100인 100색이 나오죠. 창조적인 예술행위이자 베풂과 배려의 행위예요.” 은퇴하면 조그만 ‘살롱’을 만들어 가족과 동료, 친구들을 불러 요리해서 먹이고 얘기를 나눌 꿈도 갖고 있다. “한식 요리는 해보니 너무 손이 많이 가더라고요. 설거지 거리도 너무 많이 나오고. 대여섯 명 불러다 해먹일 때 손쉽고 맛있고 편한 게 이탈리아 요리였어요.” 요즘은 잠시 요리를 쉬고 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중국 요리에도 도전해 볼 계획이다.
“금융도 요리도 창의성이 절실”
-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유상호 : 1960년생. 1985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한일은행에서 1년여 근무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주립대에서 MBA 취득. 1988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뒤 92~99년 런던법인 근무. 99년 귀국 후 메리츠증권 상무를 거쳐 2002년 한국투자증권(당시 동원증권) 부사장 취임. 2007년부터 사장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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