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큰 손
할리우드의 큰 손
억만장자 토마스 툴은 중국 최고 갑부 왕젠린에게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팔았다. 중국의 영화산업이 할리우드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크리스마스를 맞아 미 전역은 잠시 움직임을 멈췄지만,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legendary Entertainment)를 창업한 억만장자 토마스 툴(Thomas Tull, 45)은 어느 때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단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중국 최고 갑부 왕젠린(王健林)과 그의 회사 다롄완다(大連萬達) 그룹에게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매각하려는 계약이 한창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크리스마스는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툴은 매각으로 35억 달러의 수입을 거두기까지 다양한 장애물을 극복해야 했다.
2013년 말 베이징 완다그룹 본사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시작된 2년간의 합의 절차는 세세한 내용을 논의하며 절정에 이르렀다. 레전더리는 <다크 나이트> , <고질라> 등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공동 제작하고, 최근 중국 국영 영화배급사 차이나 필름 그룹(China Film Group)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중국에서 영화를 제작 중이다. 툴은 내년이면 세계 영화시장에서 미국을 제치고 1위로 등극할 중국 영화시장 진출로를 확보한 동시에 외국영화 개봉을 연간 34편으로 제한한 중국에서 거의 확실한 배급 채널을 확보했다. 작년 왕은 미국 영화관 체인 AMC 26억 달러 인수를 시작으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연속 인수하며 완다그룹의 부동산 제국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툴과 왕은 만나자마자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노력에 착수했다. 식사를 마주하고 앉은 둘은 즉각 서로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7000마일 떨어진 곳에 살았지만) 똑같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꾸밈없는 대화를 해서 좋았다”고 실속을 중시하는 툴이 말했다.
그날 점심 그는 수익성 높은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인류와 괴물의 싸움을 그린 영화 <퍼시픽 림> 은 총 수입 4억1100만 달러 중 27%를 중국에서 벌어들였고, 상영관은 대부분 완다그룹이 소유한 영화관이었다) 파트너십을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리자 왕은 레전더리 지분 2%를 인수하며 소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이후 또 다른 식사 초대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왕이 로스앤젤레스로 왔고, 툴은 식사를 대접했다. 그는 29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중국 갑부를 센추리시티 몰에 있는 사천 음식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긍정적인 관계가 수립된 셈이다. “규모가 큰 계약을 체결할 때면 ‘안 되겠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반드시 3번 이상은 된다”고 툴은 말했다. 그러나 연말이 다가오자 툴은 왕에게 전화해 운명의 세 단어를 내뱉을 수 있었다. “계약서에 서명해도 되겠군요.”
계약서 서명은 곧 이루어질 것이다.(지난 1월 12일 왕젠린과 토마스 툴은 베이징에서 만나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렇게만 되면 할리우드 역사상 여러 이정표가 세워질 것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할리우드 6개 메이저 영화사 중 중국에서 투자를 받거나 해외 합작사를 세운 곳은 20세기 폭스, 워너 브라더스, 파라마운트, 디즈니, 유니버설 등 5개사에 달한다. 그러나 미국 영화사를 중국이 완전히 인수하는 건 역사상 처음이다. “레전더리는 할리우드 영화제작 세계와 빠르게 성장 중인 중국 시장을 문화적·재정적으로 연결하는 관문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왕은 말했다.
다른 변화도 있다. 앞으로는 만화를 원작으로 블록버스터를 제작해 높은 수익을 내는 영화사가 마블이나 DC로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계약으로 지난 10년간 할리우드에서 반향을 일으키다 최근 들어 빛이 바랜 ‘머니볼’식 데이터 전략이 옳았음을 입증할 수도 있다.
툴에게 이번 매각 체결은 놀라운 승리로 남을 것이다. 디즈니는 41억 달러를 내고 루카스필름(Lucasfilm)과 막강한 <스타워즈> 시리즈 저작권을 얻었고, 헐크와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 캐릭터를 모두 합치면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마블에는 40억 달러를 지급했다. 그런데 레전더리 인수를 위해 총 35억 달러(9억 달러 차입)를 지급한 왕의 손에 들어온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레전더리의 기업가치에 아무리 프리미엄을 준다 해도 왕이 그렇게 많은 돈을 지급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고 인수합병 전문 시들리 오스틴 로펌의 로스앤젤레스 사무소 파트너 댄 클리브너는 말했다.
레전더리는 자사 자금과 제작 노하우를 활용해 다른 영화사의 프랜차이즈 영화를 제작하는 전략을 유지해 왔다. <행오버> 나 <쥬라기 월드> 등, 레전더리의 최고 히트작은 대부분 워너 브라더스나 가장 최근 배급 파트너가 된 유니버설 등의 지적재산권을 기반으로 공동 제작된 작품이다.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성공시킨 영화도 있다. 토호(Toho) 영화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고질라> 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성공작 면면을 살펴봐도 그 정도의 인수가격을 정당화시킬 정도는 아니다. 자체 보유 콘텐트가 대단하다고 내세울 수도 있지만 <퍼시픽 림> 이나 저예산의 공포 영화, 실망스러운 성과를 낸 작품 3개를 죄다 합쳐도 <스타워즈> 시리즈와 동등한 가치를 쳐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니, 어림도 없다. 결국, 왕은 할리우드 영화사의 지배지분을 소유하기 위해 기꺼이 바가지를 썼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다. 중국 제 2의 갑부 잭 마는 파라마운트 등 할리우드 영화사를 통째로 인수하려 여러 번 시도했지만, 모두 좌절하고 소수지분 매입에 만족해야 했다고 소식통은 전한다. (잭 마가 소유한 알리바바 픽처스는 지난해 파라마운트의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에 자금을 공동 조달했다.)
툴에 대한 믿음도 인수 값에 포함된다. 할리우드 내부인이 동경의 눈을 빛내는 외부인에게 바가지를 씌워 영화사를 판 뒤 업계를 떠나는 오랜 관행과 달리, 툴은 돈을 챙겨 빠져나갈 계획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레전더리에 돈을 대주었던 투자사들은 엄청난 수익을 챙겨 나가겠지만, 툴은 가상주주로서 레전더리의 미래에 자신의 돈을 베팅하며 왕과 한 배를 탈 것이다. 영화 산업의 거의 모든 흐름의 중심에 레전더리가 있는 만큼, 지금까지 툴이 이룬 성과와 그가 가는 방향을 이해한다면 할리우드라는 소우주의 미래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할리우드를 통해 세계적 기업가로 성장한 툴은 뉴욕주 빙엄턴 외곽에서 싱글맘이었던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여름에는 이웃집 잔디를 깎아주고 겨울에는 눈을 치워 용돈을 벌어 두 여동생 부양에 힘을 보탰다. 어렸을 때부터 생계를 걱정하며 자란 그는 판타지와 공상과학의 세계로 도피하며 위안을 얻었다. 가장 좋아했던 작품은 <반지의 제왕> 3부작과 <듄(dune)> 이었다.
툴은 ‘덕후’ 취향의 독서와 함께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 뉴욕 북부에 있는 작은 대학 해밀턴 칼리지에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이후 레전더리에서 공동 제작한 『왓치맨(The Watchmen)』을 읽은 때가 바로 대학 시절이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네 매장이나 가게에서 돈을 받고 대학생 정보지에 광고를 실어주거나 티셔츠를 판매하는 등의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했다.
툴은 로스쿨 진학을 꿈꿨지만, 학자금 대출로 빚을 많이 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접었다. 대신 23세의 어린 나이에 세탁소 체인 스마트 워시(Smart Wash) 사업을 시작했다.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사람이 없을 때에는 가격을 낮춰 방문을 유도하고, 사람이 몰리는 일요일에는 가격을 높여 수입을 극대화하는 탄력 가격제를 통해 다른 세탁소와 차별화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독립적으로 일하거나 적어도 내 사업을 가져야 한다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고 툴은 말했다. 183㎝의 키, 다부지고 넓은 어깨, 짧은 목을 가진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미식축구 경기로 뛰어들어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 와이드 리시버처럼 보인다. (2008년 그는 피츠버그 스틸러스 구단 소수지분을 인수하며 어렸을 적 꿈을 이뤘다.) “가족의 재정상태가 워낙 안 좋았던 탓에 전기가 언제 끊길지 항상 불안해 하며 살았다. 덕분에 성공 의지를 강하게 불태울 수 있었다.”
성공 의지는 업계를 가리지 않았다. 1995년 그는 세탁소 사업을 접고 세무 사업에 뛰어들어 잭슨 휴잇 세무 사무소를 500개 인수했다. 그 다음 진출한 곳은 IT 산업이었다. 닷 컴버블이 형성되기 전, 그는 벤처 투자사 ‘사우스이스트 인터랙티브’에서 IT기업 투자 기회를 찾아 다녔다. 2001년 애틀랜타의 소규모 투자사 ‘컨벡스 그룹’에 입사하며 미디어 산업에 뛰어든 그는 바닥에서 차근차근 사장직까지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할리우드의 투자 매력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문 투자자본이 존재하지 않는 자산군 혹은 카테고리 중 가장 규모가 컸다”고 툴이 말했다. “영화 산업이 미국 수출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다는 기사도 읽었다.”
툴은 데이터 업체를 고용해 지난 수년 간의 영화 흥행 실적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분석한 그는 자본만 충분히 확보하면 영화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사업 규모를 확대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공상과학 ‘덕후’였던 그의 레전더리 사무실에는 만화책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그는 잘 알려진 프랜차이즈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1억 달러 규모의 텐트폴 영화(tentpole movie)를 제작해야 리스크가 제일 적다고 유추했다. 글로벌 영화시장의 통계를 검토한 툴은 놀라운 성장 추세를 감지했다. 당시 DVD 시장의 수익률 또한 아주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투자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도 재정적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툴은 놀라운 설득력을 발휘하며 워너 브라더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워너 브라더스는 글로벌 시장에 영화를 배급하고 마케팅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해줬다. 이제 막 시장에 입성한 툴로서는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파트너십 계약 구조도 확립됐다. 레전더리가 워너 브라더스 기획 영화 중 성공 가능성이 높은 25개 영화를 엄선해 공동 투자 및 제작에 나선다는 골조였다. 영화 예산도 각자 50%씩 감당하기로 결정했다. 파트너십을 통해 워너 브라더스는 분기별 수익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값비싼 블록버스터 영화 리스크를 상쇄하고 필요한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레전더리는 워너 브라더스에 배급 수수료 10%를 지급하고 이후 발생하는 영화 수익은 투자 비율대로 배분하는데 동의했다. 워너 브라더스 입장에서는 투자 헤징을 확보하고, 초짜 할리우드 투자자인 툴 입장에서는 엄청난 제작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계약이었다. 파트너십을 체결한 툴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투자금이었다. 약속했던 투자금 5억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1년의 시간을 돌아보던 툴은 “초기자본 조달은 사업을 시작한 후, 아니 태어나서 한 일 중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소수 투자자가 모인 자리에서 “영혼을 담은” 마지막 호소를 하고 자기 돈도 투자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피력함과 동시에 JP모건의 대출 승인을 눈 앞에 보여준 툴은 2004년 말 간신히 ABRY 파트너스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 M/C 파트너스, 컬럼비아 캐피탈에서 초기 투자금을 지원 받는데 성공했다. 투자자 입장에선 큰 위험을 감수한 것이었다. 블록버스터가 흥행에 성공하면 10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거두고, 속편을 쏟아내며 관련 상품 제작과 함께 테마파크 입장 수입료로 수억 달러의 돈을 추가로 벌어들일 수 있다. 그러나 흥행에 실패하면 제작사 재정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는 값비싼 폭탄이 된다. 다행히 레전더리는 <배트맨 비긴즈> 와 <300>으로 빠르게 성공을 이어갔다. 이후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의 영화에서는 50% 투자, 50% 수익 배분 계약을 체결했고, 영화는 제작비 2억5000만 달러 대비 11억 달러의 수입을 거두었다. 이후 레전더리는 1억6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하고 5억29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둔 영화 <고질라> 에서 75% 지분을 확보했다. 가장 입에 오르내린 건 무엇보다 해외시장에서의 성공이었다. 액션이 논스톱으로 펼쳐지고 대사가 많지 않은 레전더리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해외시장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 대사가 많을수록 편집될 가능성이 높은 중국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툴의 성공 비법 중 하나는 치밀한 분석이었다. 월스트리트 투자금을 받아 ‘머니볼’식 분석을 수행하는 또 다른 영화사 렐러티비티 미디어(대표: 라이언 카바노)가 줄거리 구조와 장르, 출연 스타, 개봉일에 따라 컴퓨터로 흥행 성공 혹은 실패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안타만 노린 반면, 툴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능한 변수를 통제하며 홈런을 기획했다. 다시 말해, 마케팅 비용이 제작비에 육박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관객수를 늘리고 비용을 감축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레전더리는 제작 결정 전부터 고객 프로필을 조사해 영화를 관람할 가능성이 40%가 넘는 관객을 찾아내고 좀더 저렴한 방식의 디지털 광고를 통해 이들을 타겟으로 한 광고를 내보낸다. “고질라를 개봉했을 때 예산보다 마케팅 비용을 많이 절약했다. 그래서 개봉 즉시 업계 추산보다 3500만 달러 높은 수익을 냈다”고 툴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SNS 정보를 종합해 적절한 마케팅 대상을 잡는 기술을 발전시킨 덕분에 마케팅 비용은 15~20% 정도 절약됐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영화 한 편 당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비용이다.
2013년이 되자 한층 과감해진 툴은 영화 독립제작과 저작권 100% 소유를 시도했다. 그리고 거물 벤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마블 이사회에서 활동했던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 짐 브레이어도 개인 투자 펀드 등 개별 투자기구를 통해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토마스는 자신의 사업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장기적 시각과 함께 그 동안 만성적으로 고정비가 높았던 사업 구조를 기술과 분석을 통해 바꿔 나가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브레이어는 말했다.
그러나 저작권을 온전히 소유하게 되면서 만화책을 원작으로 삼는 전략에는 변화가 불가피해졌고, 이는 성과에도 영향을 끼쳤다. 레전더리가 독립적으로 제작한 영화 5편 중 3편은 흥행에 참패했다. 가장 먼저 선보인 재키 로빈슨의 전기 영화 <42>는 그저 그런 성적을 거두었고, 9500만 달러를 들여 제작한 영화 <7번째 아들(Seventh Son)>은 1억141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두는데 그쳤다. 2015년 제작한 범죄 스릴러 <블랙햇(blackhat)> 은 7000만 달러를 들여 겨우 2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영입해 제작한 <크림슨 피크(crimson peak)> 는 5500만 달러를 투자해 747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흥행 성적 때문인지 <7번째 아들>과 <블랙햇> 은 레전더리 온라인 라이브러리에도 없다.) 독립 제작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영화는 공포물 <카타콤: 금지된 구역(as above so below)> 이다. 500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지만 419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상영 수입의 절반을 극장이 가져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레전더리의 제작 성적은 형편 없다. “새로운 걸 시작하려면 언제나 어렵다”고 툴은 말했다.
렐러티비티 미디어 또한 같은 사실을 힘든 방식으로 깨달았다. 자체 투자가 실패한 후에도 카바노는 데이터 분석으로 또 다른 실패를 막지 못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렐러티비티 미디어의 파산 소식은 지난 8개월 간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드라마 중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툴은 공동 투자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성공( <쥬라기 월드> 는 레전더리에 2억 달러의 수익을 안겨줬다) 덕분에 연이은 실패에도 버티며 렐러티비티 미디어의 운명을 피해갈 수 있었다. ‘덕후’다운 전문성과 중국 시장에 초점을 맞춘 전략 또한 말만 앞세운 카바노의 전략과는 극명히 대비됐다. 그렇게 35억 달러의 격차가 생겨났다. 툴을 “완벽한 파트너”로 부른 왕은 “함께 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재, 이야기, 관객을 향한 문을 열고 새로운 영화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상하이와 베이징 사이의 해안 도시 칭다오를 방문한 툴은 레전더리의 미래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칭다오에서 왕이 세계 최대의 제작 스튜디오를 짓는 중이기 때문이다. 200만㎡의 넓은 부지에 82억 달러의 거금을 들여 짓는 이 스튜디오는 2018년 개장 예정이다.
투자 규모가 워낙 대단하다 보니 중국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후진타오 중국 전 국가주석은 문화를 “국가 소프트파워의 구성 요소”로 삼자는 발언을 공공연히 한 바 있다. 후진타오는 문화를 “교류나 인식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확실한 사업 대상으로 규정했다”고 이스트 웨스트 뱅크의 도미닉 응(Dominic Ng) 회장 겸 CEO는 말했다. “좀더 나은 이미지를 위해 엔터테인먼트 문화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중국 정부는 강하게 믿고 있다.” 작년 뉴욕타임스는 완다가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폭로했지만, 왕은 정경 유착을 부인했다.
왕은 중국 최대의 영화관 체인 완다 시네마 라인과 함께 호주에서도 영화관 호이츠(Hoyts)를 보유하고 있다. “완다는 수직으로 통합된 글로벌 영화사를 구축하려 한다”고 2012년 레전더리 투자를 결정한 은퇴 투자자 고든 크로포드는 말했다. “이를 위해서 (왕은) 글로벌 시장에 어필하는 텐트폴 영화의 제작 역량을 습득해야 한다.”
완다와 레전더리가 본격적으로 공동 제작한 첫 영화는 곧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칭다오의 완다 스튜디오 공사는 아직 마무리 단계가 진행 중이지만, 스튜디오에서는 벌써 <만리장성(the great wall)> 촬영이 시작됐다. 중국 올로케로 진행되는 1억3500만 달러 규모의 판타지 어드벤처 영화다. 지휘봉은 장이머우 감독이 잡았고, 주연 배우로는 할리우드(맷 데이먼)와 홍콩(유덕화) 스타가 캐스팅됐다. 외계인 침공에 맞서 인류 최후의 보루로 만리장성 수호에 나선 군대의 이야기라고 툴은 설명했다. 6년 전 플롯 개요를 잡은 툴은 이후 <월드 워 z> 작가 맥스 브룩스를 기용해 이야기 집필과 각색을 맡겼다.
“어렸을 때 우주에서도 보이는 인공 건축물은 만리장성밖에 없다는 글을 읽었다”고 툴은 말했다. “‘그렇게 긴 장벽을 지은 과감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덕후 감성 때문인지 ‘누구를 물리치려고 그렇게 엄청난 걸 지었을까?’로 생각이 옮겨갔다.”
영화를 차이나 필름 그룹, 르 비전 픽처스와 공동 제작 중인 레전더리는 투자금을 다른 여러 영화사에서도 받고 있다. 투자금을 보면 아직 성공이 입증되지 않은 미-중 합작 영화에 들어가는 돈 치고 굉장히 많다. 포브스 추산에 따르면, 손익 분기점에 이르기 위해 영화는 세계시장에서 적어도 3억50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둬야 한다. 지난해 중국에서 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 <몬스터 헌트(monster hunt)> 의 성적은 3억9100만 달러였다.
오는 6월 상하이에서 55억 달러짜리 디즈니 테마파크가 개장하고, 수 년 뒤 베이징에서 유니버설 스튜디오 테마파크가 계획된 가운데 왕 또한 새로 인수한 영화사의 콘텐트를 활용해 테마파크 개장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레전더리가 메이저 영화사로 성장할 잠재력은 충분하다. 다만 앞으로는 칭다오 제작 스튜디오의 중요성이 버뱅크에 위치한 레전더리 본사만큼 커질 것이다. 이것만 말해두자. 요즘 툴은 중국어 과외를 받고 있다.
- NATALIE ROBEHMED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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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말 베이징 완다그룹 본사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시작된 2년간의 합의 절차는 세세한 내용을 논의하며 절정에 이르렀다. 레전더리는 <다크 나이트> , <고질라> 등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공동 제작하고, 최근 중국 국영 영화배급사 차이나 필름 그룹(China Film Group)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중국에서 영화를 제작 중이다. 툴은 내년이면 세계 영화시장에서 미국을 제치고 1위로 등극할 중국 영화시장 진출로를 확보한 동시에 외국영화 개봉을 연간 34편으로 제한한 중국에서 거의 확실한 배급 채널을 확보했다. 작년 왕은 미국 영화관 체인 AMC 26억 달러 인수를 시작으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연속 인수하며 완다그룹의 부동산 제국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툴과 왕은 만나자마자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노력에 착수했다. 식사를 마주하고 앉은 둘은 즉각 서로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7000마일 떨어진 곳에 살았지만) 똑같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꾸밈없는 대화를 해서 좋았다”고 실속을 중시하는 툴이 말했다.
그날 점심 그는 수익성 높은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인류와 괴물의 싸움을 그린 영화 <퍼시픽 림> 은 총 수입 4억1100만 달러 중 27%를 중국에서 벌어들였고, 상영관은 대부분 완다그룹이 소유한 영화관이었다) 파트너십을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리자 왕은 레전더리 지분 2%를 인수하며 소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이후 또 다른 식사 초대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왕이 로스앤젤레스로 왔고, 툴은 식사를 대접했다. 그는 29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중국 갑부를 센추리시티 몰에 있는 사천 음식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긍정적인 관계가 수립된 셈이다. “규모가 큰 계약을 체결할 때면 ‘안 되겠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반드시 3번 이상은 된다”고 툴은 말했다. 그러나 연말이 다가오자 툴은 왕에게 전화해 운명의 세 단어를 내뱉을 수 있었다. “계약서에 서명해도 되겠군요.”
계약서 서명은 곧 이루어질 것이다.(지난 1월 12일 왕젠린과 토마스 툴은 베이징에서 만나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렇게만 되면 할리우드 역사상 여러 이정표가 세워질 것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할리우드 6개 메이저 영화사 중 중국에서 투자를 받거나 해외 합작사를 세운 곳은 20세기 폭스, 워너 브라더스, 파라마운트, 디즈니, 유니버설 등 5개사에 달한다. 그러나 미국 영화사를 중국이 완전히 인수하는 건 역사상 처음이다. “레전더리는 할리우드 영화제작 세계와 빠르게 성장 중인 중국 시장을 문화적·재정적으로 연결하는 관문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왕은 말했다.
중국 영화시장 진출로를 확보하다
툴에게 이번 매각 체결은 놀라운 승리로 남을 것이다. 디즈니는 41억 달러를 내고 루카스필름(Lucasfilm)과 막강한 <스타워즈> 시리즈 저작권을 얻었고, 헐크와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 캐릭터를 모두 합치면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마블에는 40억 달러를 지급했다. 그런데 레전더리 인수를 위해 총 35억 달러(9억 달러 차입)를 지급한 왕의 손에 들어온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레전더리의 기업가치에 아무리 프리미엄을 준다 해도 왕이 그렇게 많은 돈을 지급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고 인수합병 전문 시들리 오스틴 로펌의 로스앤젤레스 사무소 파트너 댄 클리브너는 말했다.
레전더리는 자사 자금과 제작 노하우를 활용해 다른 영화사의 프랜차이즈 영화를 제작하는 전략을 유지해 왔다. <행오버> 나 <쥬라기 월드> 등, 레전더리의 최고 히트작은 대부분 워너 브라더스나 가장 최근 배급 파트너가 된 유니버설 등의 지적재산권을 기반으로 공동 제작된 작품이다.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성공시킨 영화도 있다. 토호(Toho) 영화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고질라> 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성공작 면면을 살펴봐도 그 정도의 인수가격을 정당화시킬 정도는 아니다. 자체 보유 콘텐트가 대단하다고 내세울 수도 있지만 <퍼시픽 림> 이나 저예산의 공포 영화, 실망스러운 성과를 낸 작품 3개를 죄다 합쳐도 <스타워즈> 시리즈와 동등한 가치를 쳐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니, 어림도 없다.
중국 갑부 왕젠린에 레전더리 매각 성공
툴에 대한 믿음도 인수 값에 포함된다. 할리우드 내부인이 동경의 눈을 빛내는 외부인에게 바가지를 씌워 영화사를 판 뒤 업계를 떠나는 오랜 관행과 달리, 툴은 돈을 챙겨 빠져나갈 계획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레전더리에 돈을 대주었던 투자사들은 엄청난 수익을 챙겨 나가겠지만, 툴은 가상주주로서 레전더리의 미래에 자신의 돈을 베팅하며 왕과 한 배를 탈 것이다. 영화 산업의 거의 모든 흐름의 중심에 레전더리가 있는 만큼, 지금까지 툴이 이룬 성과와 그가 가는 방향을 이해한다면 할리우드라는 소우주의 미래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할리우드를 통해 세계적 기업가로 성장한 툴은 뉴욕주 빙엄턴 외곽에서 싱글맘이었던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여름에는 이웃집 잔디를 깎아주고 겨울에는 눈을 치워 용돈을 벌어 두 여동생 부양에 힘을 보탰다. 어렸을 때부터 생계를 걱정하며 자란 그는 판타지와 공상과학의 세계로 도피하며 위안을 얻었다. 가장 좋아했던 작품은 <반지의 제왕> 3부작과 <듄(dune)> 이었다.
툴은 ‘덕후’ 취향의 독서와 함께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 뉴욕 북부에 있는 작은 대학 해밀턴 칼리지에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이후 레전더리에서 공동 제작한 『왓치맨(The Watchmen)』을 읽은 때가 바로 대학 시절이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네 매장이나 가게에서 돈을 받고 대학생 정보지에 광고를 실어주거나 티셔츠를 판매하는 등의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했다.
툴은 로스쿨 진학을 꿈꿨지만, 학자금 대출로 빚을 많이 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접었다. 대신 23세의 어린 나이에 세탁소 체인 스마트 워시(Smart Wash) 사업을 시작했다.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사람이 없을 때에는 가격을 낮춰 방문을 유도하고, 사람이 몰리는 일요일에는 가격을 높여 수입을 극대화하는 탄력 가격제를 통해 다른 세탁소와 차별화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독립적으로 일하거나 적어도 내 사업을 가져야 한다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고 툴은 말했다. 183㎝의 키, 다부지고 넓은 어깨, 짧은 목을 가진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미식축구 경기로 뛰어들어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 와이드 리시버처럼 보인다. (2008년 그는 피츠버그 스틸러스 구단 소수지분을 인수하며 어렸을 적 꿈을 이뤘다.) “가족의 재정상태가 워낙 안 좋았던 탓에 전기가 언제 끊길지 항상 불안해 하며 살았다. 덕분에 성공 의지를 강하게 불태울 수 있었다.”
성공 의지는 업계를 가리지 않았다. 1995년 그는 세탁소 사업을 접고 세무 사업에 뛰어들어 잭슨 휴잇 세무 사무소를 500개 인수했다. 그 다음 진출한 곳은 IT 산업이었다. 닷 컴버블이 형성되기 전, 그는 벤처 투자사 ‘사우스이스트 인터랙티브’에서 IT기업 투자 기회를 찾아 다녔다. 2001년 애틀랜타의 소규모 투자사 ‘컨벡스 그룹’에 입사하며 미디어 산업에 뛰어든 그는 바닥에서 차근차근 사장직까지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할리우드의 투자 매력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문 투자자본이 존재하지 않는 자산군 혹은 카테고리 중 가장 규모가 컸다”고 툴이 말했다. “영화 산업이 미국 수출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다는 기사도 읽었다.”
툴은 데이터 업체를 고용해 지난 수년 간의 영화 흥행 실적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분석한 그는 자본만 충분히 확보하면 영화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사업 규모를 확대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공상과학 ‘덕후’였던 그의 레전더리 사무실에는 만화책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그는 잘 알려진 프랜차이즈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1억 달러 규모의 텐트폴 영화(tentpole movie)를 제작해야 리스크가 제일 적다고 유추했다. 글로벌 영화시장의 통계를 검토한 툴은 놀라운 성장 추세를 감지했다. 당시 DVD 시장의 수익률 또한 아주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투자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도 재정적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툴은 놀라운 설득력을 발휘하며 워너 브라더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워너 브라더스는 글로벌 시장에 영화를 배급하고 마케팅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해줬다. 이제 막 시장에 입성한 툴로서는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파트너십 계약 구조도 확립됐다. 레전더리가 워너 브라더스 기획 영화 중 성공 가능성이 높은 25개 영화를 엄선해 공동 투자 및 제작에 나선다는 골조였다. 영화 예산도 각자 50%씩 감당하기로 결정했다. 파트너십을 통해 워너 브라더스는 분기별 수익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값비싼 블록버스터 영화 리스크를 상쇄하고 필요한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레전더리는 워너 브라더스에 배급 수수료 10%를 지급하고 이후 발생하는 영화 수익은 투자 비율대로 배분하는데 동의했다. 워너 브라더스 입장에서는 투자 헤징을 확보하고, 초짜 할리우드 투자자인 툴 입장에서는 엄청난 제작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계약이었다. 파트너십을 체결한 툴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투자금이었다. 약속했던 투자금 5억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1년의 시간을 돌아보던 툴은 “초기자본 조달은 사업을 시작한 후, 아니 태어나서 한 일 중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소수 투자자가 모인 자리에서 “영혼을 담은” 마지막 호소를 하고 자기 돈도 투자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피력함과 동시에 JP모건의 대출 승인을 눈 앞에 보여준 툴은 2004년 말 간신히 ABRY 파트너스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 M/C 파트너스, 컬럼비아 캐피탈에서 초기 투자금을 지원 받는데 성공했다. 투자자 입장에선 큰 위험을 감수한 것이었다. 블록버스터가 흥행에 성공하면 10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거두고, 속편을 쏟아내며 관련 상품 제작과 함께 테마파크 입장 수입료로 수억 달러의 돈을 추가로 벌어들일 수 있다. 그러나 흥행에 실패하면 제작사 재정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는 값비싼 폭탄이 된다. 다행히 레전더리는 <배트맨 비긴즈> 와 <300>으로 빠르게 성공을 이어갔다. 이후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의 영화에서는 50% 투자, 50% 수익 배분 계약을 체결했고, 영화는 제작비 2억5000만 달러 대비 11억 달러의 수입을 거두었다. 이후 레전더리는 1억6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하고 5억29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둔 영화 <고질라> 에서 75% 지분을 확보했다. 가장 입에 오르내린 건 무엇보다 해외시장에서의 성공이었다. 액션이 논스톱으로 펼쳐지고 대사가 많지 않은 레전더리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해외시장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 대사가 많을수록 편집될 가능성이 높은 중국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블록버스터 공동 투자
레전더리는 제작 결정 전부터 고객 프로필을 조사해 영화를 관람할 가능성이 40%가 넘는 관객을 찾아내고 좀더 저렴한 방식의 디지털 광고를 통해 이들을 타겟으로 한 광고를 내보낸다. “고질라를 개봉했을 때 예산보다 마케팅 비용을 많이 절약했다. 그래서 개봉 즉시 업계 추산보다 3500만 달러 높은 수익을 냈다”고 툴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SNS 정보를 종합해 적절한 마케팅 대상을 잡는 기술을 발전시킨 덕분에 마케팅 비용은 15~20% 정도 절약됐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영화 한 편 당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비용이다.
2013년이 되자 한층 과감해진 툴은 영화 독립제작과 저작권 100% 소유를 시도했다. 그리고 거물 벤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마블 이사회에서 활동했던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 짐 브레이어도 개인 투자 펀드 등 개별 투자기구를 통해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토마스는 자신의 사업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장기적 시각과 함께 그 동안 만성적으로 고정비가 높았던 사업 구조를 기술과 분석을 통해 바꿔 나가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브레이어는 말했다.
그러나 저작권을 온전히 소유하게 되면서 만화책을 원작으로 삼는 전략에는 변화가 불가피해졌고, 이는 성과에도 영향을 끼쳤다. 레전더리가 독립적으로 제작한 영화 5편 중 3편은 흥행에 참패했다. 가장 먼저 선보인 재키 로빈슨의 전기 영화 <42>는 그저 그런 성적을 거두었고, 9500만 달러를 들여 제작한 영화 <7번째 아들(Seventh Son)>은 1억141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두는데 그쳤다. 2015년 제작한 범죄 스릴러 <블랙햇(blackhat)> 은 7000만 달러를 들여 겨우 2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영입해 제작한 <크림슨 피크(crimson peak)> 는 5500만 달러를 투자해 747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흥행 성적 때문인지 <7번째 아들>과 <블랙햇> 은 레전더리 온라인 라이브러리에도 없다.) 독립 제작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영화는 공포물 <카타콤: 금지된 구역(as above so below)> 이다. 500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지만 419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상영 수입의 절반을 극장이 가져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레전더리의 제작 성적은 형편 없다. “새로운 걸 시작하려면 언제나 어렵다”고 툴은 말했다.
렐러티비티 미디어 또한 같은 사실을 힘든 방식으로 깨달았다. 자체 투자가 실패한 후에도 카바노는 데이터 분석으로 또 다른 실패를 막지 못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렐러티비티 미디어의 파산 소식은 지난 8개월 간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드라마 중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툴은 공동 투자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성공( <쥬라기 월드> 는 레전더리에 2억 달러의 수익을 안겨줬다) 덕분에 연이은 실패에도 버티며 렐러티비티 미디어의 운명을 피해갈 수 있었다. ‘덕후’다운 전문성과 중국 시장에 초점을 맞춘 전략 또한 말만 앞세운 카바노의 전략과는 극명히 대비됐다. 그렇게 35억 달러의 격차가 생겨났다. 툴을 “완벽한 파트너”로 부른 왕은 “함께 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재, 이야기, 관객을 향한 문을 열고 새로운 영화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상하이와 베이징 사이의 해안 도시 칭다오를 방문한 툴은 레전더리의 미래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칭다오에서 왕이 세계 최대의 제작 스튜디오를 짓는 중이기 때문이다. 200만㎡의 넓은 부지에 82억 달러의 거금을 들여 짓는 이 스튜디오는 2018년 개장 예정이다.
투자 규모가 워낙 대단하다 보니 중국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후진타오 중국 전 국가주석은 문화를 “국가 소프트파워의 구성 요소”로 삼자는 발언을 공공연히 한 바 있다. 후진타오는 문화를 “교류나 인식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확실한 사업 대상으로 규정했다”고 이스트 웨스트 뱅크의 도미닉 응(Dominic Ng) 회장 겸 CEO는 말했다. “좀더 나은 이미지를 위해 엔터테인먼트 문화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중국 정부는 강하게 믿고 있다.” 작년 뉴욕타임스는 완다가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폭로했지만, 왕은 정경 유착을 부인했다.
왕은 중국 최대의 영화관 체인 완다 시네마 라인과 함께 호주에서도 영화관 호이츠(Hoyts)를 보유하고 있다. “완다는 수직으로 통합된 글로벌 영화사를 구축하려 한다”고 2012년 레전더리 투자를 결정한 은퇴 투자자 고든 크로포드는 말했다. “이를 위해서 (왕은) 글로벌 시장에 어필하는 텐트폴 영화의 제작 역량을 습득해야 한다.”
공동제작 첫 영화는 장이머우 감독의
“어렸을 때 우주에서도 보이는 인공 건축물은 만리장성밖에 없다는 글을 읽었다”고 툴은 말했다. “‘그렇게 긴 장벽을 지은 과감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덕후 감성 때문인지 ‘누구를 물리치려고 그렇게 엄청난 걸 지었을까?’로 생각이 옮겨갔다.”
영화를 차이나 필름 그룹, 르 비전 픽처스와 공동 제작 중인 레전더리는 투자금을 다른 여러 영화사에서도 받고 있다. 투자금을 보면 아직 성공이 입증되지 않은 미-중 합작 영화에 들어가는 돈 치고 굉장히 많다. 포브스 추산에 따르면, 손익 분기점에 이르기 위해 영화는 세계시장에서 적어도 3억50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둬야 한다. 지난해 중국에서 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 <몬스터 헌트(monster hunt)> 의 성적은 3억9100만 달러였다.
오는 6월 상하이에서 55억 달러짜리 디즈니 테마파크가 개장하고, 수 년 뒤 베이징에서 유니버설 스튜디오 테마파크가 계획된 가운데 왕 또한 새로 인수한 영화사의 콘텐트를 활용해 테마파크 개장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레전더리가 메이저 영화사로 성장할 잠재력은 충분하다. 다만 앞으로는 칭다오 제작 스튜디오의 중요성이 버뱅크에 위치한 레전더리 본사만큼 커질 것이다. 이것만 말해두자. 요즘 툴은 중국어 과외를 받고 있다.
- NATALIE ROBEHMED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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