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형인가 캐릭터인가

‘아노말리사’는 ‘존 말코비치 되기’ ‘이터널 선샤인’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한 찰리 카우프만이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거듭난 작품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술이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개개인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보고 교류하려고 애쓰는 남자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아름다운 영상 속에 담았다.
카우프만이 프랜시스 프레골리라는 필명으로 각본을 쓰고 감독한 ‘아노말리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뉴 이어(New Ear) 시어터’에서 소리극(sound play)으로 먼저 공연됐다. 세상에서 유리됐다고 느끼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카우프만 감독의 필명 프레골리(Fregoli)는 자신 외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변장한 사람이라고 믿는 프레골리 망상을 암시한다. 주인공 마이클 스톤은 LA에서 사는 중년의 영국 남자다. 그는 한 회의의 기조연설자로 초빙돼 신시내티를 방문한다. 그의 세계에서는 성별과 나이, 인종과 민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겼고 목소리도 똑같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세계는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보는 흥미진진하고 익살스런 세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다. 마이클은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객실로 간다. 이것은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아노말리사’는 우리에게 친숙한 물리적 체계와 규모의 세계를 보여주는 스톱모션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세트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마찬가지로 3차원이지만 규모는 약 30㎝ 길이의 인형들에 맞춰 제작됐다. 인형 디자인(실리콘 인형은 해부학적으로 인간과 흡사해 보인다)도 친숙함을 더해준다.
소리극에서는 3명의 배우가 효과음 기사 1명이 포함된 오케스트라 앞에 앉아 대사만으로 연기한다. 소리극은 동작과 대사를 분리하고 효과음을 내는 기술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에서 유리된 듯한 마이클의 느낌을 살렸다.

인형의 스톱모션 동작은 인위성이 드러나 인간처럼 보이지 않아 세상에서 유리된 느낌을 효과적으로 살린다. 인형들은 머리가 다른 부위에 비해 크며 쾌속조형(RP) 3D 프린팅 기법으로 제작됐음에도 얼굴에서 조각조각 분할 출력된 흔적이 엿보인다. RP 3D 프린팅은 LAIKA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코렐라인: 비밀의 문’(2009)을 제작할 때 처음 개발됐으며 그 후 ‘파라노맨’(2012), ‘박스트롤’(2014)의 제작에도 이용됐다. 먼저 립싱크에 필요한 볼과 입 부분을 제작하고 눈과 이마 주변의 표정 변화를 디지털 모델로 만든다. 이 디지털 모델이 3D 합성수지 모형으로 출력되면 장면마다 달라지는 움직임과 표정에 따라 각 인형의 얼굴에 갖다 붙인다.
얼굴 각 부위 간의 경계선이 보이고 출력 과정의 결함이 드러난다는 게 3D 프린팅의 문제점이다. 출력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색상과 조형 과정에서 합성수지가 수평으로 겹겹이 쌓임으로써 나타나는 가로줄 무늬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결함과 양 눈 사이의 연결부위, 헤어라인과 턱선의 부자연스러움 등으로 ‘아노말리사’의 인형들은 사람과 흡사할 뿐 진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노말리사’는 소리극으로 출발한 만큼 대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객 서비스 전문가로 성공한 마이클은 사람들을 대할 때 의미 없는 말을 많이 한다. 그는 택시 기사와 호텔 리셉셔니스트, 벨보이, 룸서비스 담당자 등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 심지어 아내나 전 여자친구와 사적인 대화를 할 때도 곧잘 당황해 짜증을 내거나 주의가 산만해지고 갈팡질팡하기 일쑤다.
마이클의 마음이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한 대목에서 음향과 스톱모션에 동시에 장애가 나타나면서 기술과 이야기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가 목욕탕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얼굴 각 부위의 움직임이 조화를 잃고 입 모양과 말소리가 일치하지 않으며 목소리가 기계적으로 변한다. 여기서 마이클은 인형도 캐릭터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 갇힌다. 그의 인생 경험을 반영하는 딜레마다.
관객을 낯섦과 친숙함의 영역 사이에 던져 넣는 스톱모션의 특성이 카우프만 감독의 각본에 잘 맞는다. 이 영화에 평단의 찬사가 쏟아진 만큼 앞으로 스톱모션 영화 제작자들이 가족오락물의 틈새시장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간 감정의 복잡성을 표현하고 탐험하기에 좋은 애니메이션은 어린이 못지 않게 어른에게도 적합하다.
- 앨리시 우드
[ 필자는 영국 켄트대학 예술대의 연구 책임자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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