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뤄진다
꿈은 이뤄진다
지난 2월 말 영국 런던의 집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을 달렸다. 일각에서 기적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현상을 목격하기 위해서였다.
청색 스카프와 구단 유니폼 상의를 입은 팬의 행렬이 레스터 시가지를 지나 킹 파워 스타디움으로 향한다. 킹 파워는 7000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는 태국 기업으로 면세점을 운영한다. 몇몇 사업 파트너와 공동으로 레스터 시티(이하 레스터) 프로축구단(FC)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1929년 2위에 오른 이후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 리그 우승권 근처에 얼씬도 못한 구단이다. 2010년 킹 파워 주도의 컨소시엄이 팀을 인수할 당시엔 외국 부자 구단주들의 신분 과시용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레스터는 오래 전부터 3만2000석의 스타디움을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3시즌 전에는 2부 리그에 속했다. 이맘 때 경기를 관전하러 스타디움을 찾은 팬은 8585명에 불과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이 지켜보는 국가 축구 리그다. 지난해 1부 리그 강등을 간신히 모면했던 레스터가 시즌 개막전에서 선더랜드를 격파했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지만 선더랜드를 한 번 이겼다고 그렇게 호들갑 떨 일도 아니었다. 레스터는 다음 토요일에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몇 차례 무승부와 함께 승리가 계속됐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명문 구단 중 하나인 아스널과 붙은 리그 8번째 경기에서 무패 행진이 깨졌다. 그리고 11번째 경기에서 두 번째 패배를 당했다. 상대는 잉글랜드 팀 중 유럽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이었다.
지난 2월 말 어느 쌀쌀한 토요일 오후, 레스터는 노리치시티와의 홈 경기 때까지 3패에 불과한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 정상에 우뚝 섰다. 지금은 레스터의 홈경기 티켓이 윔블던 테니스 대회의 남자 결승 경기 입장권만큼이나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이런 현상이 요행수가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레스터가 실제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오랫동안 프리미어 리그를 지배해온 사실상 슈퍼 부자 구단들의 카르텔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말도 있다.
킹 파워 스타디움 안에선 청색 카니발이 벌어진다. 깃발이 휘날리고 팬들은 박수 치며 노래를 부른다. 킥오프 직전에 키 큰 남자가 센터서클에서 은색 사냥용 뿔 나팔을 분다. 지역의 오랜 여우사냥 전통을 따라 레스터 선수들은 폭스(여우)로 불린다. 나팔 소리가 사냥의 시작을 알린다.
레스터는 이탈리아인 베테랑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5)의 인도 아래 올 시즌 처음으로 쫓아가는 사냥꾼이 아니라 쫓기는 사냥감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축구 리그에서 레스터의 우승이 거의 확실하다. 모두가 약자를 응원한다. 따라서 올 시즌 레스터는 매번 축구계의 로키 발보아(영화 ‘로키’ 주인공)로 비쳐졌다. 레스터 주민은 물론 잉글랜드 국민, 나아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관심을 가진 전 세계의 축구팬은 모두가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믿지 못한다.
올 시즌 레스터가 가장 효과적으로 구사한 전술은 상대에게 공을 넘겨주고 두텁게 수비를 하다가 번개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역습하는 방식이다. 레스터는 이 같은 게임 플랜으로 현 챔피언들인 첼시, 토트넘 핫스퍼(이하 토트넘),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그리고 (리턴매치에서) 리버풀 같은 명문 팀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오늘 노리치시티는 선뜻 미끼를 물지 않고 고집스럽게 수비에 치중한다(노리치시티에는 올 시즌 레스터가 꺾은 몇몇 팀들보다 스타가 훨씬 적다). 레스터가 불가능을 가능케 하려면 연승을 이어가야 한다. 따라서 이번에는 주도권을 잡고 공세에 나선다.사실상 공격을 주도하는 레스터는 약간 어색해 보인다. 득점 없이 경기가 계속될수록 레스터 팬들은 점점 더 조용해진다. 프리미어 리그 우승의 꿈에 제동이 걸리려는 듯하다. 이기면 승점이 3점이지만 비기면 1점뿐이다.
경기 종료 약 20분을 남기고 내 자리 건너편에서 거구의 남자 2명이 큰북을 두드리며 팀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도 손뼉을 치며 응원에 가세한다. 라니에리 감독은 수비수 2명을 빼고 공격수를 그라운드로 들여보낸다.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거침없이 공격이 연결되더니 갑자기 측면에서 공이 쏜살같이 날아든다. 올 시즌 레스터의 영웅 제이미 바디가 몸을 날렸지만 발이 닿지 않는다. 그러나 뒤에 있던 아르헨티나 출신 레오나르도 울로아가 받아 넣어 골망을 흔든다. 스타디움에 우레 같은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레스터 선수와 팬들이 마치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듯 열광한다. 꿈은 무산되지 않았다.
그 뒤로 무승부·승·승·승이 이어졌다. 지난 3월 말까지 7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레스터가 5점 차로 프리미어 리그 선두를 달린다. 7경기 중 6승을 올리면 우승이 확정된다. 5승도 우승 가능성이 크다. 4승까지도 어느 정도 기대해 볼 만하다. 이제 올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은 시즌이 시작될 때 상당수 축구 팬이 이름을 거론할 만한 선수가 1명도 없던 팀이 차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레스터뿐 아니라 선수 영입에 수억 달러를 쓰지 않는 영국 프로축구 구단의 우승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시즌 개막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한번도 잉글랜드 챔피언에 오른 적이 없는 레스터가 20개 팀으로 운영되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잉글랜드 2부 리그로 강등되리라고 예상했다. 2부 리그에는 구단이 속한 도시 외에는 세상의 거의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개막 당시 도박사들은 레스터의 우승 확률을 5000대 1(1달러 걸 때 상금 5000달러)로 예상했다. 지금은 도박사들 사이에서 우승 확률이 가장 높은 팀으로 꼽힌다.
레스터는 다른 팀 관계자와 지역 라이벌 팬까지 포함해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 이 같은 지지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 중 다수가 현대 클럽 축구의 운영방식에 대한 불만이 커진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요즘 축구는 돈의 힘으로 움직이는 구경거리가 됐다. 똑같은 유럽 슈퍼구단들이 돌아가며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 동안 나머지 구단은연습 상대 역할을 한다고 여기는 팬들이 많아졌다.
지난 20년 동안 프리미어 리그 우승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맨시티, 첼시, 아스널 등 4개 부자 구단이었고 8개 구단이 최소 한 번 이상 정상에 올랐다(당시 상당 기간 1부 리그는 퍼스트 디비전으로 불렸다). 또한 같은 기간 11개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유럽 전반적으로 비슷하게 일류 구단의 범위가 좁혀졌다. 스페인에선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독일 분데스리가에선 바이에른 뮌헨, 프랑스는 파리 생제르망이 철옹성을 구축했다. 2012년 카타르 국부펀드가 최대 주주가 되면서 파리 생제르망이 세계 최고 부자 구단의 반열에 오른 이후 매년 프랑스 리그를 제패해 왔다.
주로 외국인 억만장자들로부터 현금이 쏟아지면서 유럽 축구가 거의 하나의 수학 공식으로 전락했다. 일류 선수와 유명 감독을 둔 팀이 대체로 챔피언에 오른다. 최고 부자 구단들이 정상급 선수들을 모두 쓸어가는 편이다. 일류 선수들이 요구하는 높은 계약료와 거액 연봉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챔피언스 리그(출전 팀에 큰 수입을 안겨주는 유럽 클럽 대항전) 8강전 진출팀 라인업에는 바르셀로나, 레알마드리드, 맨시티,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망 등 모두 슈퍼 부자 구단들이 올라 있다.
경제학자 슈테판 지만스키와 저술가 사이먼 쿠퍼는 축구의 경제학을 다룬 2009년 저서 ‘사커노믹스(Soccernomics)’에서 10년 동안 리그 순위와 임금 총액 간의 상관관계를 보여줬다. 그 통계의 예측에 따르면 임금총액이 리그 최고일 경우 90%의 확률로 선두를 차지한다. 임금총액 지출 규모가 14위라면 14위에 오를 확률이 90%다. 다시 말해 구단의 특성도, 팀의 긍지와 감동적인 역사도, 창의적이고 절묘한 전술도, 그리고 어떤 변수도 모두 무의미하다. 오로지 돈으로 결정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레스터가 튀어나왔다. 선두를 달리지만 임금총액 규모는 프리미어 리그 20개 팀 중 17위다. 지난 시즌에는 임금 지출 공식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임금총액이 2억1560만 파운드(약 3551억원)로 최고액인 첼시가 선두에 올랐다. 이어 임금 총액 순서대로 맨시티·아스널·맨유가 그 뒤를 이었다. 레스터는 통계상의 예측대로 14위에 올랐다.
3개월 전 레스터는 이적료 총액이 10배에 가까운 첼시(2300만 파운드 vs 2억1500만 파운드)와 맞붙어 2대 1로 승리했다. 라니에리 감독은 그 뒤 이탈리아 신문 ‘크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돈이 전부인 시대에 우리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밝혔다.
거액의 돈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레스터가 입증했다고 주장하는 낙관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증거는 레스터의 주 공격수 제이미 바디다. 바디는 팬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됐다. 공장 노동자 출신의 바디는 요크셔의 좀 알려졌지만 성적이 썩 좋지 않은 셰필드 웬즈데이라는 구단 소속이었다. 하지만 그가 16세 때 팀에서 방출되면서 그의 축구 경력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끝장나는 듯했다. 그 뒤 영국인도 거의 모르는 요크셔의 또 다른 팀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스의 2군에서 3년을 보냈다. 좌석 450석의 경기장에 영국 리그 시스템 중 8부 리그 소속이었다. 마침내 1군으로 승격됐을 때 바디는 너무 떨려서 첫 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디는 포기하지 않았고 2010년 5부 리그 소속인 핼리팩스 타운과 1만5000파운드(약 2470만원)에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몇몇 프리미어 리그 선수들의 하루치 수입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바디는 그 뒤 플리트우드 타운에 들어가 팀을 3부 리그로 승격시킨 뒤 4년 전 당시 2부 리그 소속인 레스터에 합류했다.
레스터 입단 첫 시즌에 5골을 넣었다. 보잘것없는 성적이었지만 다음 시즌에는 16득점으로 더 나은 실력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에는 34경기에서 5득점을 기록하며 다시 부진에 빠졌다. 그리고 이번 시즌을 맞아 첫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다. 이어 놀랍게도 본머스 전에서의 득점을 시작으로 레스터의 11개 리그 경기에서 매번 최소 1골 이상씩 기록했다. 전 맨유 소속의 루드 반 니스텔루이의 프리미어 리그 10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깨뜨렸다.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스는 구장 스탠드에 그의 이름을 붙일 계획이라고 발표했으며, 일부 관측통은 바디가 오는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유로 2016(유럽 축구 국가대항전)에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스타로 선발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바디는 올 시즌 4만5000파운드(약 7410만원)의 주급으로 시즌을 시작했으며 최근 주급 8만 파운드 상당의 계약을 체결했다. 거금이지만 맨시티의 스타 골게터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주급 22만 파운드와는 비교되지 않는다.
레스터의 영원한 팬이자 축구와 향수에 관해 잇따라 책을 펴낸 저술가 데렉 해먼드는 바디가 레스터 팬뿐 아니라 전국의 축구 팬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한다. 중고 신인 격인 그는 근로자 계급과 영국의 자부심이 됐다.
“사람들은 바디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고 해먼드는 말한다. “그들은 바디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고 본다. 실제로 팀 전체가 ‘시스템’에 외면당했지만 지금은 탁월한 선수들로 이뤄졌다. 사람들은 거기서 일체감을 느낀다. 팀을 떠돌아다니던 선수가 만인의 본보기가 됐다. 사람들은 바디 같은 인물에게서 자신을 본다.”
레스터가 지금껏 모두 100만 파운드를 들인 바디는 스타가 됐다. 하지만 다른 헐값의 무명 선수들도 영웅이 됐다. 자메이카 국가대표 선수인 수비수 겸 주장 웨스 모건(32)에게도 비슷한 금액을 들였다. 알제리 국가대표인 공격형 미드필더 리야드 마레즈는 프랑스 2부 리그 구단 르아브르에서 약 40만 파운드에 영입됐으며 현재 프리미어 리그 득점 4위에 올라 있다(지난 2월 레스터가 맨시티를 3대 1로 꺾은 뒤 마레즈가 비슷한 유형의 맨시티 선수 라힘 스털링보다 얼마나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줬는지 큰 화제가 됐다. 그날 부진했던 스털링을 영입하기 위해 맨시티의 아랍에미리트와 중국인 구단주들은 49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했다). 프랑스 출신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는 최근 뜨기 시작한 동료들보다 인건비가 좀 더 높다. 그의 몸값은 560만 파운드로 알려졌지만 일류 스타에 비하면 푼돈이다. 그리고 올 시즌 아주 뛰어난 활약을 보여줘 레스터가 그를 이적시킬 경우 몸값이 몇 배로 뛸 가능성이 크다.
‘쓴 만큼 거둬들인다’는 축구의 경제이론을 레스터가 깨뜨린 듯하다. 레스터의 팬들과 동조자들이 보란 듯이 기뻐하는 이유다.
사이먼과 스튜어트 심슨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레스터 팬이었다. 그들은 지난 2월 27일 노리치시티 경기 전에 킹 파워 스타디움 인근 선술집에 앉아 팀의 성공뿐 아니라 카르텔 같은 명문 팀의 실패를 음미했다. 영국 해군에서 24년간 근무한 학교 케이터링 컨설턴트 사이먼은 “그동안의 패배를 설욕할 수 있게 돼 기분이 좋다”며 “이젠 빅보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빅머니’의 시대에 모두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물론 레스터는 탁월한 성적을 올린 선수들을 헐값에 발굴했다. 그러나 유럽 축구계의 다른 구단들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건 아니다. 물론 유명 팀도 못 하는 날이 있고 무명 팀이 잘 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 시즌 38경기를 치른 뒤에도 선두를 달릴 만큼 승승장구하는 건 도박판에서 밤새도록 판판이 돈을 따는 격이다. 따라서 레스터의 팬들은 그 이유를 찾기보다는 ‘킹 파워’가 왕의 축복을 내렸다고 믿어 버린다.
지난해 3월 레스터는 리그 20개 팀중 20위였다. 같은 시기에 33만 명 남짓한 인구를 가진 레스터는 온갖 예우를 갖춰 리처드 3세의 재안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에게 비방당하고 오래 전에 사라졌던 그의 유해가 도시의 주차장 바닥 아래 묻혀 있다가 2012년 발견됐다. 지난해 3월 26일 왕의 유해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전하는 의식 속에 레스터 대성당에 재안치됐다. 그때까지 레스터 시티는 29경기를 치러 겨우 4승을 올렸다. 9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팀의 운이 다한 듯했다. 하지만 리처드 3세를 도시에 정중히 안장하면서 팀의 운명이 역전됐다. 레스터가 승수를 쌓기 시작했다. 남은 시즌 팀의 기록은 7승 1패 1무였다.
그렇다면 레스터가 올해 리그 우승을 못하더라도 슈퍼클럽 시대의 종말을 입증하게 될까? 통계에 기반한 안목으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뛰어난 선수를 발굴해 내는 미국 메이저 리그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빌리 빈 단장과 같은 식이 아니라 단순히 라이벌 팀보다 더 거액의 수표를 발행해 주는 ‘머니볼’이 무명 선수들의 손에서 종말을 맞게 된 걸까?
나는 20년 넘게 축구와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그리고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가 축구에 부여하는 의미와 실제 축구의 경기와 운영 방식 간의 괴리에 항상 놀란다. 이 아름다운 스토리에는 낭만적이지 않은 현실이 있다. 레스터의 인상적인 시즌은 미안하지만 기적도 아니고 축구의 장기적인 변화를 이끄는 촉매제도 아니다.최근 작고한 이탈리아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축구를 상당히 싫어했다. 그는 ‘우스꽝스런 자유의 프레임’이라는 에세이에서 레스터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성공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인 반응을 설명하는 이론을 제시했다. 에코는 가톨릭 국가들의 사육제(부활절 금식 기간을 앞두고 갖는 관능과 자유의 축제) 중 사회의 통상적인 규칙이 어떻게 왜 전복되는지에 관해 썼다. 그는 사육제 기간을 가리켜 “물고기가 날고 새들이 헤엄치고 여우와 토끼들이 사냥꾼을 쫓는 뒤집어진 세상”이라고 묘사했다. 기존 사회질서가 전복되지만(“주교들이 미친 행동을 하고 바보들이 왕관을 쓴다”) 그것은 아주 짧은 기간에 그친다. 혼란 이후에 곧바로 사육제 전과 똑같이 엄격한 규칙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다른 작가들은 사육제가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 대중의 분출에 어떻게 안전판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줬다. 사육제 기간은 파괴적으로 보이지만 에코에 따르면 오히려 현상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유지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나는 레스터에 일어나는 일이 (축구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의 어떤 의도도 없이) 어느 정도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술가 쿠퍼는 이렇게 말한다. “프리미어 리그의 대외 홍보,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에 깊은 애정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는 축구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들은 ‘기적은 일어난다. 무명 팀이 팀워크와 의지력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프리미어 리그의 진실은 돈이 거의 전부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임금총액이 비교적 적은 레스터는 리그 밑바닥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커노믹스’의 핵심이론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저술가 쿠퍼는 이렇게 말한다. “단기적으론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 영국 축구의 한 시즌 동안 임금총액과 리그 순위의 관계가 약 70%다. 상당히 높은 비중이지만 돌발 변수와 행운도 따른다. 심판이 요행수로 유리한 판정을 내리거나 바디 같은 선수를 발굴하기도 한다. 평소라면 리그 우승할 만한 팀들이 갑자기 부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10시즌에 걸쳐 평균을 내면 임금총액과 리그 순위 간의 상관관계가 최대 90%까지 올라간다. 10시즌을 놓고 볼 때 행운의 확률은 엷어지고 품질을 나타내는 임금총액만 남는다. 프리미어 리그는 ‘돈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에서도 레스터 같은 팀이 나온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20여년 만에 한 번씩 일어나는 일이다.”
레스터가 다음 시즌에도 올해의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올해의 실적을 가능하게 한 특수 상황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전략으로서 지속할 수 없다”고 저술가 쿠퍼는 말했다. “레스터는 다음 시즌엔 더 성공확률이 높고 더 높은 연봉을 지급하는 부자 구단에 주축 선수들을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또 다시 그렇게 싼값에 뛰어난 진용을 꾸리지는 못할 것이다. 2년 연속 같은 진용으로 시즌을 이끌어 간다고 해도 명문 구단들이 다시 실패하기를 바라야 한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 그런 일이 또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첼시·맨시티·맨유·아스널 모두 실망스런 시즌을 보냈다. 전례 없는 우연의 일치다. 그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억만장자 구단주들이 다시는 올 시즌처럼 부진한 성적을 거두지 않도록 대대적으로 투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아스널만은 예외로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 듯하다. 선수를 돈으로 사기보다 육성해야 한다고 믿는 아르센 벵거 감독은 지난 10년 동안 거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올 시즌 상위권 팀들이 매우 부진해 우승 확률이 높지 않다. 현재 2위 팀은 리그 우승 경력이 2회에 불과한 토트넘이다. 가장 최근의 우승은 1961년이었다. 다시 말해 레스터는 경쟁 팀들의 부진 덕을 크게 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레스터의 놀라운 성공을 설명하는 또 다른 현실적인 이론도 있다. 레스터가 ‘피라미’이자 ‘거인 킬러’라는 인식은 어떻게 보면 착각이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단지 극소수 슈퍼 부자 구단들보다 레스터의 지출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가난하다고 할 뿐이다. 프리미어 리그는 최근 50억 파운드에 달하는 TV 중계권 계약을 체결해 더 큰 부자가 됐다. 그 수입을 20개 구단이 나눠 갖는다. 최종 순위에 따라 각 팀의 배분 비율에 약간씩 차이가 생긴다. 그만한 계약금이면 꼴찌 팀에도 1억 파운드 가까이가 돌아가며 우승팀은 약 1억5000만 파운드를 받게 된다.지난 1월 발표된 딜로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레스터는 실제론 잉글랜드 12위 부자 구단이며 세계 30대 부자 구단 리스트에 올라 있다. 레스터의 예산은 맨시티나 첼시에 비해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캉테 같은 주가 높은 선수를 다른 리그에서 데려갈 힘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영입했다(캉테는 통계상 지난 시즌에서 유럽의 가로채기 왕이다).
다시 말해 레스터는 희망 없는 팀이 아니라 축구 귀족집단의 진골인 셈이다. 대단히 경험 많은 외국인 감독, 억만장자 구단주(구단 회장인 태국 거부 비차이 스리밧드하나프라바는 킹 파워의 창업자이자 CEO), 그리고 고액 연봉을 받는 세계적인 일류 선수들로 이뤄진 팀을 갖고 있다. 일부 선수는 자국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레스터의 동화 같은 스토리에 집착한다. 그것을 믿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축구가 세계화된 문화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해서다. 축구는 단순한 비즈니스, 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 가지, 심지어 스포츠를 뛰어넘어 팬들에게 같은 시대 사람들이 공유하는 재미있는 스토리 역할을 한다.
축구 경기장 주변에 늘어나는 새로운 기념 조각상 수가 말해주듯이 위대한 영웅에 대한 팬들의 갈증은 여전하다. 레스터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 시 행정당국은 필시 라니에리 감독과 선수들의 이름을 따서 거리를 명명하기 시작할 것이다.
과거 우리는 왕·정치인 또는 장군에게 이 같은 역할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인물들을 더는 떠받들지 않는 세속적인 문화에서 용기 있는 무명 구단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우승한다는 생각은 믿고 따를 수 있는 영웅을 원하는 우리의 욕구에 들어맞는다. 파이팅, 레스터! 몇 승만 더 올리면 돼. 할 수 있어.
그래서 바뀌는 건 거의 없더라도 말이다.
[ 필자는 ‘네덜란드 오렌지 군단(Brilliant Orange: The Neurotic Genius of Dutch Soccer)’과 영국 축구의 관능적인 역사(Those Feet: A Sensual History of English Football)’의 저자다.] COPYRIGHT NEWSWEEK LLC 2016 “2부 리그를 전전하던 영국 축구팀 ‘레스터 시티 FC’가 돌풍을 일으키며 프리미어 리그 1위에 올랐다. 어떤 리더십이 작동했는지 그 비결을 돌아보라.”
허창수(68) GS 회장 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2월 제주도에서 GS의 신규 임원들을 격려한 뒤 “레스터 시티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부임 후 효율적으로 골을 넣어 승리하는 방법을 놓고 선수들과 끊임없이 소통해 우승을 바라보는 팀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AS로마 선수 등을 거쳐 인터밀란·첼시 감독을 지낸 라니에리 감독은 지난해 7월 레스터 시티의 사령탑을 맡았다.
그는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감독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선수들의 특징을 키워 팀웍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항상 선수들에게 ‘신뢰한다’고 말하지만 전술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 라니에리 감독은 첼시를 감독할 때와 달리 선수들의 포지션을 많이 바꾸지 않고 전술 변화도 자제했다. 제이미 바디 같은 최고의 골잡이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허 회장은 “현재 리그 하위권인 명문 구단 ‘첼시’ 감독은 경질되기 전에 침체의 원인을 선수들 탓으로 돌렸다”며 “내가 지시하지 않아도 구성원들이 열정을 갖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드는 게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임원들이 먼저 이런 역할에 적극 뛰어들어야 조직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는 얘기다.
그는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의 장기화인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고 국제유가의 지속적 하락, 국제금융 시장의 불안정으로 어느 때보다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며 “내실 있고 질적인 성장을 위한 창의적 도전으로 새 수익원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허 회장은 ‘세계적 기업들’과의 경쟁을 추가로 주문했다. “지난 1월 스위스의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니 한결같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온 이들”이라며 국내 기업들과의 경쟁만 생각하지 말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골을 넣기 위한 리더십의 조건을 말하면서 그는 고전인 ‘장자’의 ‘정중지와 부지대해’ 구절도 인용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넓은 바다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허 회장은 “자신이 속한 곳에 얽매이지 말고, 물리적 제약과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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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 스카프와 구단 유니폼 상의를 입은 팬의 행렬이 레스터 시가지를 지나 킹 파워 스타디움으로 향한다. 킹 파워는 7000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는 태국 기업으로 면세점을 운영한다. 몇몇 사업 파트너와 공동으로 레스터 시티(이하 레스터) 프로축구단(FC)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1929년 2위에 오른 이후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 리그 우승권 근처에 얼씬도 못한 구단이다. 2010년 킹 파워 주도의 컨소시엄이 팀을 인수할 당시엔 외국 부자 구단주들의 신분 과시용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레스터는 오래 전부터 3만2000석의 스타디움을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3시즌 전에는 2부 리그에 속했다. 이맘 때 경기를 관전하러 스타디움을 찾은 팬은 8585명에 불과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이 지켜보는 국가 축구 리그다. 지난해 1부 리그 강등을 간신히 모면했던 레스터가 시즌 개막전에서 선더랜드를 격파했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지만 선더랜드를 한 번 이겼다고 그렇게 호들갑 떨 일도 아니었다. 레스터는 다음 토요일에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몇 차례 무승부와 함께 승리가 계속됐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명문 구단 중 하나인 아스널과 붙은 리그 8번째 경기에서 무패 행진이 깨졌다. 그리고 11번째 경기에서 두 번째 패배를 당했다. 상대는 잉글랜드 팀 중 유럽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이었다.
지난 2월 말 어느 쌀쌀한 토요일 오후, 레스터는 노리치시티와의 홈 경기 때까지 3패에 불과한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 정상에 우뚝 섰다. 지금은 레스터의 홈경기 티켓이 윔블던 테니스 대회의 남자 결승 경기 입장권만큼이나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이런 현상이 요행수가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레스터가 실제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오랫동안 프리미어 리그를 지배해온 사실상 슈퍼 부자 구단들의 카르텔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말도 있다.
킹 파워 스타디움 안에선 청색 카니발이 벌어진다. 깃발이 휘날리고 팬들은 박수 치며 노래를 부른다. 킥오프 직전에 키 큰 남자가 센터서클에서 은색 사냥용 뿔 나팔을 분다. 지역의 오랜 여우사냥 전통을 따라 레스터 선수들은 폭스(여우)로 불린다. 나팔 소리가 사냥의 시작을 알린다.
레스터는 이탈리아인 베테랑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5)의 인도 아래 올 시즌 처음으로 쫓아가는 사냥꾼이 아니라 쫓기는 사냥감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축구 리그에서 레스터의 우승이 거의 확실하다. 모두가 약자를 응원한다. 따라서 올 시즌 레스터는 매번 축구계의 로키 발보아(영화 ‘로키’ 주인공)로 비쳐졌다. 레스터 주민은 물론 잉글랜드 국민, 나아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관심을 가진 전 세계의 축구팬은 모두가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믿지 못한다.
올 시즌 레스터가 가장 효과적으로 구사한 전술은 상대에게 공을 넘겨주고 두텁게 수비를 하다가 번개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역습하는 방식이다. 레스터는 이 같은 게임 플랜으로 현 챔피언들인 첼시, 토트넘 핫스퍼(이하 토트넘),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그리고 (리턴매치에서) 리버풀 같은 명문 팀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오늘 노리치시티는 선뜻 미끼를 물지 않고 고집스럽게 수비에 치중한다(노리치시티에는 올 시즌 레스터가 꺾은 몇몇 팀들보다 스타가 훨씬 적다). 레스터가 불가능을 가능케 하려면 연승을 이어가야 한다. 따라서 이번에는 주도권을 잡고 공세에 나선다.사실상 공격을 주도하는 레스터는 약간 어색해 보인다. 득점 없이 경기가 계속될수록 레스터 팬들은 점점 더 조용해진다. 프리미어 리그 우승의 꿈에 제동이 걸리려는 듯하다. 이기면 승점이 3점이지만 비기면 1점뿐이다.
경기 종료 약 20분을 남기고 내 자리 건너편에서 거구의 남자 2명이 큰북을 두드리며 팀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도 손뼉을 치며 응원에 가세한다. 라니에리 감독은 수비수 2명을 빼고 공격수를 그라운드로 들여보낸다.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거침없이 공격이 연결되더니 갑자기 측면에서 공이 쏜살같이 날아든다. 올 시즌 레스터의 영웅 제이미 바디가 몸을 날렸지만 발이 닿지 않는다. 그러나 뒤에 있던 아르헨티나 출신 레오나르도 울로아가 받아 넣어 골망을 흔든다. 스타디움에 우레 같은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레스터 선수와 팬들이 마치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듯 열광한다. 꿈은 무산되지 않았다.
그 뒤로 무승부·승·승·승이 이어졌다. 지난 3월 말까지 7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레스터가 5점 차로 프리미어 리그 선두를 달린다. 7경기 중 6승을 올리면 우승이 확정된다. 5승도 우승 가능성이 크다. 4승까지도 어느 정도 기대해 볼 만하다. 이제 올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은 시즌이 시작될 때 상당수 축구 팬이 이름을 거론할 만한 선수가 1명도 없던 팀이 차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레스터뿐 아니라 선수 영입에 수억 달러를 쓰지 않는 영국 프로축구 구단의 우승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시즌 개막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한번도 잉글랜드 챔피언에 오른 적이 없는 레스터가 20개 팀으로 운영되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잉글랜드 2부 리그로 강등되리라고 예상했다. 2부 리그에는 구단이 속한 도시 외에는 세상의 거의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개막 당시 도박사들은 레스터의 우승 확률을 5000대 1(1달러 걸 때 상금 5000달러)로 예상했다. 지금은 도박사들 사이에서 우승 확률이 가장 높은 팀으로 꼽힌다.
레스터는 다른 팀 관계자와 지역 라이벌 팬까지 포함해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 이 같은 지지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 중 다수가 현대 클럽 축구의 운영방식에 대한 불만이 커진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요즘 축구는 돈의 힘으로 움직이는 구경거리가 됐다. 똑같은 유럽 슈퍼구단들이 돌아가며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 동안 나머지 구단은연습 상대 역할을 한다고 여기는 팬들이 많아졌다.
지난 20년 동안 프리미어 리그 우승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맨시티, 첼시, 아스널 등 4개 부자 구단이었고 8개 구단이 최소 한 번 이상 정상에 올랐다(당시 상당 기간 1부 리그는 퍼스트 디비전으로 불렸다). 또한 같은 기간 11개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유럽 전반적으로 비슷하게 일류 구단의 범위가 좁혀졌다. 스페인에선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독일 분데스리가에선 바이에른 뮌헨, 프랑스는 파리 생제르망이 철옹성을 구축했다. 2012년 카타르 국부펀드가 최대 주주가 되면서 파리 생제르망이 세계 최고 부자 구단의 반열에 오른 이후 매년 프랑스 리그를 제패해 왔다.
주로 외국인 억만장자들로부터 현금이 쏟아지면서 유럽 축구가 거의 하나의 수학 공식으로 전락했다. 일류 선수와 유명 감독을 둔 팀이 대체로 챔피언에 오른다. 최고 부자 구단들이 정상급 선수들을 모두 쓸어가는 편이다. 일류 선수들이 요구하는 높은 계약료와 거액 연봉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챔피언스 리그(출전 팀에 큰 수입을 안겨주는 유럽 클럽 대항전) 8강전 진출팀 라인업에는 바르셀로나, 레알마드리드, 맨시티,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망 등 모두 슈퍼 부자 구단들이 올라 있다.
경제학자 슈테판 지만스키와 저술가 사이먼 쿠퍼는 축구의 경제학을 다룬 2009년 저서 ‘사커노믹스(Soccernomics)’에서 10년 동안 리그 순위와 임금 총액 간의 상관관계를 보여줬다. 그 통계의 예측에 따르면 임금총액이 리그 최고일 경우 90%의 확률로 선두를 차지한다. 임금총액 지출 규모가 14위라면 14위에 오를 확률이 90%다. 다시 말해 구단의 특성도, 팀의 긍지와 감동적인 역사도, 창의적이고 절묘한 전술도, 그리고 어떤 변수도 모두 무의미하다. 오로지 돈으로 결정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레스터가 튀어나왔다. 선두를 달리지만 임금총액 규모는 프리미어 리그 20개 팀 중 17위다. 지난 시즌에는 임금 지출 공식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임금총액이 2억1560만 파운드(약 3551억원)로 최고액인 첼시가 선두에 올랐다. 이어 임금 총액 순서대로 맨시티·아스널·맨유가 그 뒤를 이었다. 레스터는 통계상의 예측대로 14위에 올랐다.
3개월 전 레스터는 이적료 총액이 10배에 가까운 첼시(2300만 파운드 vs 2억1500만 파운드)와 맞붙어 2대 1로 승리했다. 라니에리 감독은 그 뒤 이탈리아 신문 ‘크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돈이 전부인 시대에 우리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밝혔다.
거액의 돈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레스터가 입증했다고 주장하는 낙관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증거는 레스터의 주 공격수 제이미 바디다. 바디는 팬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됐다. 공장 노동자 출신의 바디는 요크셔의 좀 알려졌지만 성적이 썩 좋지 않은 셰필드 웬즈데이라는 구단 소속이었다. 하지만 그가 16세 때 팀에서 방출되면서 그의 축구 경력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끝장나는 듯했다. 그 뒤 영국인도 거의 모르는 요크셔의 또 다른 팀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스의 2군에서 3년을 보냈다. 좌석 450석의 경기장에 영국 리그 시스템 중 8부 리그 소속이었다. 마침내 1군으로 승격됐을 때 바디는 너무 떨려서 첫 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디는 포기하지 않았고 2010년 5부 리그 소속인 핼리팩스 타운과 1만5000파운드(약 2470만원)에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몇몇 프리미어 리그 선수들의 하루치 수입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바디는 그 뒤 플리트우드 타운에 들어가 팀을 3부 리그로 승격시킨 뒤 4년 전 당시 2부 리그 소속인 레스터에 합류했다.
레스터 입단 첫 시즌에 5골을 넣었다. 보잘것없는 성적이었지만 다음 시즌에는 16득점으로 더 나은 실력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에는 34경기에서 5득점을 기록하며 다시 부진에 빠졌다. 그리고 이번 시즌을 맞아 첫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다. 이어 놀랍게도 본머스 전에서의 득점을 시작으로 레스터의 11개 리그 경기에서 매번 최소 1골 이상씩 기록했다. 전 맨유 소속의 루드 반 니스텔루이의 프리미어 리그 10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깨뜨렸다.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스는 구장 스탠드에 그의 이름을 붙일 계획이라고 발표했으며, 일부 관측통은 바디가 오는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유로 2016(유럽 축구 국가대항전)에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스타로 선발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바디는 올 시즌 4만5000파운드(약 7410만원)의 주급으로 시즌을 시작했으며 최근 주급 8만 파운드 상당의 계약을 체결했다. 거금이지만 맨시티의 스타 골게터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주급 22만 파운드와는 비교되지 않는다.
레스터의 영원한 팬이자 축구와 향수에 관해 잇따라 책을 펴낸 저술가 데렉 해먼드는 바디가 레스터 팬뿐 아니라 전국의 축구 팬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한다. 중고 신인 격인 그는 근로자 계급과 영국의 자부심이 됐다.
“사람들은 바디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고 해먼드는 말한다. “그들은 바디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고 본다. 실제로 팀 전체가 ‘시스템’에 외면당했지만 지금은 탁월한 선수들로 이뤄졌다. 사람들은 거기서 일체감을 느낀다. 팀을 떠돌아다니던 선수가 만인의 본보기가 됐다. 사람들은 바디 같은 인물에게서 자신을 본다.”
레스터가 지금껏 모두 100만 파운드를 들인 바디는 스타가 됐다. 하지만 다른 헐값의 무명 선수들도 영웅이 됐다. 자메이카 국가대표 선수인 수비수 겸 주장 웨스 모건(32)에게도 비슷한 금액을 들였다. 알제리 국가대표인 공격형 미드필더 리야드 마레즈는 프랑스 2부 리그 구단 르아브르에서 약 40만 파운드에 영입됐으며 현재 프리미어 리그 득점 4위에 올라 있다(지난 2월 레스터가 맨시티를 3대 1로 꺾은 뒤 마레즈가 비슷한 유형의 맨시티 선수 라힘 스털링보다 얼마나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줬는지 큰 화제가 됐다. 그날 부진했던 스털링을 영입하기 위해 맨시티의 아랍에미리트와 중국인 구단주들은 49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했다). 프랑스 출신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는 최근 뜨기 시작한 동료들보다 인건비가 좀 더 높다. 그의 몸값은 560만 파운드로 알려졌지만 일류 스타에 비하면 푼돈이다. 그리고 올 시즌 아주 뛰어난 활약을 보여줘 레스터가 그를 이적시킬 경우 몸값이 몇 배로 뛸 가능성이 크다.
‘쓴 만큼 거둬들인다’는 축구의 경제이론을 레스터가 깨뜨린 듯하다. 레스터의 팬들과 동조자들이 보란 듯이 기뻐하는 이유다.
사이먼과 스튜어트 심슨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레스터 팬이었다. 그들은 지난 2월 27일 노리치시티 경기 전에 킹 파워 스타디움 인근 선술집에 앉아 팀의 성공뿐 아니라 카르텔 같은 명문 팀의 실패를 음미했다. 영국 해군에서 24년간 근무한 학교 케이터링 컨설턴트 사이먼은 “그동안의 패배를 설욕할 수 있게 돼 기분이 좋다”며 “이젠 빅보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빅머니’의 시대에 모두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물론 레스터는 탁월한 성적을 올린 선수들을 헐값에 발굴했다. 그러나 유럽 축구계의 다른 구단들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건 아니다. 물론 유명 팀도 못 하는 날이 있고 무명 팀이 잘 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 시즌 38경기를 치른 뒤에도 선두를 달릴 만큼 승승장구하는 건 도박판에서 밤새도록 판판이 돈을 따는 격이다. 따라서 레스터의 팬들은 그 이유를 찾기보다는 ‘킹 파워’가 왕의 축복을 내렸다고 믿어 버린다.
지난해 3월 레스터는 리그 20개 팀중 20위였다. 같은 시기에 33만 명 남짓한 인구를 가진 레스터는 온갖 예우를 갖춰 리처드 3세의 재안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에게 비방당하고 오래 전에 사라졌던 그의 유해가 도시의 주차장 바닥 아래 묻혀 있다가 2012년 발견됐다. 지난해 3월 26일 왕의 유해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전하는 의식 속에 레스터 대성당에 재안치됐다. 그때까지 레스터 시티는 29경기를 치러 겨우 4승을 올렸다. 9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팀의 운이 다한 듯했다. 하지만 리처드 3세를 도시에 정중히 안장하면서 팀의 운명이 역전됐다. 레스터가 승수를 쌓기 시작했다. 남은 시즌 팀의 기록은 7승 1패 1무였다.
그렇다면 레스터가 올해 리그 우승을 못하더라도 슈퍼클럽 시대의 종말을 입증하게 될까? 통계에 기반한 안목으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뛰어난 선수를 발굴해 내는 미국 메이저 리그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빌리 빈 단장과 같은 식이 아니라 단순히 라이벌 팀보다 더 거액의 수표를 발행해 주는 ‘머니볼’이 무명 선수들의 손에서 종말을 맞게 된 걸까?
나는 20년 넘게 축구와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그리고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가 축구에 부여하는 의미와 실제 축구의 경기와 운영 방식 간의 괴리에 항상 놀란다. 이 아름다운 스토리에는 낭만적이지 않은 현실이 있다. 레스터의 인상적인 시즌은 미안하지만 기적도 아니고 축구의 장기적인 변화를 이끄는 촉매제도 아니다.최근 작고한 이탈리아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축구를 상당히 싫어했다. 그는 ‘우스꽝스런 자유의 프레임’이라는 에세이에서 레스터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성공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인 반응을 설명하는 이론을 제시했다. 에코는 가톨릭 국가들의 사육제(부활절 금식 기간을 앞두고 갖는 관능과 자유의 축제) 중 사회의 통상적인 규칙이 어떻게 왜 전복되는지에 관해 썼다. 그는 사육제 기간을 가리켜 “물고기가 날고 새들이 헤엄치고 여우와 토끼들이 사냥꾼을 쫓는 뒤집어진 세상”이라고 묘사했다. 기존 사회질서가 전복되지만(“주교들이 미친 행동을 하고 바보들이 왕관을 쓴다”) 그것은 아주 짧은 기간에 그친다. 혼란 이후에 곧바로 사육제 전과 똑같이 엄격한 규칙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다른 작가들은 사육제가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 대중의 분출에 어떻게 안전판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줬다. 사육제 기간은 파괴적으로 보이지만 에코에 따르면 오히려 현상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유지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나는 레스터에 일어나는 일이 (축구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의 어떤 의도도 없이) 어느 정도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술가 쿠퍼는 이렇게 말한다. “프리미어 리그의 대외 홍보,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에 깊은 애정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는 축구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들은 ‘기적은 일어난다. 무명 팀이 팀워크와 의지력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프리미어 리그의 진실은 돈이 거의 전부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임금총액이 비교적 적은 레스터는 리그 밑바닥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커노믹스’의 핵심이론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저술가 쿠퍼는 이렇게 말한다. “단기적으론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 영국 축구의 한 시즌 동안 임금총액과 리그 순위의 관계가 약 70%다. 상당히 높은 비중이지만 돌발 변수와 행운도 따른다. 심판이 요행수로 유리한 판정을 내리거나 바디 같은 선수를 발굴하기도 한다. 평소라면 리그 우승할 만한 팀들이 갑자기 부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10시즌에 걸쳐 평균을 내면 임금총액과 리그 순위 간의 상관관계가 최대 90%까지 올라간다. 10시즌을 놓고 볼 때 행운의 확률은 엷어지고 품질을 나타내는 임금총액만 남는다. 프리미어 리그는 ‘돈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에서도 레스터 같은 팀이 나온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20여년 만에 한 번씩 일어나는 일이다.”
레스터가 다음 시즌에도 올해의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올해의 실적을 가능하게 한 특수 상황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전략으로서 지속할 수 없다”고 저술가 쿠퍼는 말했다. “레스터는 다음 시즌엔 더 성공확률이 높고 더 높은 연봉을 지급하는 부자 구단에 주축 선수들을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또 다시 그렇게 싼값에 뛰어난 진용을 꾸리지는 못할 것이다. 2년 연속 같은 진용으로 시즌을 이끌어 간다고 해도 명문 구단들이 다시 실패하기를 바라야 한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 그런 일이 또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첼시·맨시티·맨유·아스널 모두 실망스런 시즌을 보냈다. 전례 없는 우연의 일치다. 그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억만장자 구단주들이 다시는 올 시즌처럼 부진한 성적을 거두지 않도록 대대적으로 투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아스널만은 예외로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 듯하다. 선수를 돈으로 사기보다 육성해야 한다고 믿는 아르센 벵거 감독은 지난 10년 동안 거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올 시즌 상위권 팀들이 매우 부진해 우승 확률이 높지 않다. 현재 2위 팀은 리그 우승 경력이 2회에 불과한 토트넘이다. 가장 최근의 우승은 1961년이었다. 다시 말해 레스터는 경쟁 팀들의 부진 덕을 크게 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레스터의 놀라운 성공을 설명하는 또 다른 현실적인 이론도 있다. 레스터가 ‘피라미’이자 ‘거인 킬러’라는 인식은 어떻게 보면 착각이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단지 극소수 슈퍼 부자 구단들보다 레스터의 지출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가난하다고 할 뿐이다. 프리미어 리그는 최근 50억 파운드에 달하는 TV 중계권 계약을 체결해 더 큰 부자가 됐다. 그 수입을 20개 구단이 나눠 갖는다. 최종 순위에 따라 각 팀의 배분 비율에 약간씩 차이가 생긴다. 그만한 계약금이면 꼴찌 팀에도 1억 파운드 가까이가 돌아가며 우승팀은 약 1억5000만 파운드를 받게 된다.지난 1월 발표된 딜로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레스터는 실제론 잉글랜드 12위 부자 구단이며 세계 30대 부자 구단 리스트에 올라 있다. 레스터의 예산은 맨시티나 첼시에 비해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캉테 같은 주가 높은 선수를 다른 리그에서 데려갈 힘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영입했다(캉테는 통계상 지난 시즌에서 유럽의 가로채기 왕이다).
다시 말해 레스터는 희망 없는 팀이 아니라 축구 귀족집단의 진골인 셈이다. 대단히 경험 많은 외국인 감독, 억만장자 구단주(구단 회장인 태국 거부 비차이 스리밧드하나프라바는 킹 파워의 창업자이자 CEO), 그리고 고액 연봉을 받는 세계적인 일류 선수들로 이뤄진 팀을 갖고 있다. 일부 선수는 자국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레스터의 동화 같은 스토리에 집착한다. 그것을 믿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축구가 세계화된 문화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해서다. 축구는 단순한 비즈니스, 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 가지, 심지어 스포츠를 뛰어넘어 팬들에게 같은 시대 사람들이 공유하는 재미있는 스토리 역할을 한다.
축구 경기장 주변에 늘어나는 새로운 기념 조각상 수가 말해주듯이 위대한 영웅에 대한 팬들의 갈증은 여전하다. 레스터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 시 행정당국은 필시 라니에리 감독과 선수들의 이름을 따서 거리를 명명하기 시작할 것이다.
과거 우리는 왕·정치인 또는 장군에게 이 같은 역할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인물들을 더는 떠받들지 않는 세속적인 문화에서 용기 있는 무명 구단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우승한다는 생각은 믿고 따를 수 있는 영웅을 원하는 우리의 욕구에 들어맞는다. 파이팅, 레스터! 몇 승만 더 올리면 돼. 할 수 있어.
그래서 바뀌는 건 거의 없더라도 말이다.
[ 필자는 ‘네덜란드 오렌지 군단(Brilliant Orange: The Neurotic Genius of Dutch Soccer)’과 영국 축구의 관능적인 역사(Those Feet: A Sensual History of English Football)’의 저자다.] COPYRIGHT NEWSWEEK LLC 2016
[박스기사]“라니에리 감독의 러더십 배워라” - 허창수 GS 회장,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도록 임원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
허창수(68) GS 회장 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2월 제주도에서 GS의 신규 임원들을 격려한 뒤 “레스터 시티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부임 후 효율적으로 골을 넣어 승리하는 방법을 놓고 선수들과 끊임없이 소통해 우승을 바라보는 팀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AS로마 선수 등을 거쳐 인터밀란·첼시 감독을 지낸 라니에리 감독은 지난해 7월 레스터 시티의 사령탑을 맡았다.
그는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감독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선수들의 특징을 키워 팀웍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항상 선수들에게 ‘신뢰한다’고 말하지만 전술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 라니에리 감독은 첼시를 감독할 때와 달리 선수들의 포지션을 많이 바꾸지 않고 전술 변화도 자제했다. 제이미 바디 같은 최고의 골잡이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허 회장은 “현재 리그 하위권인 명문 구단 ‘첼시’ 감독은 경질되기 전에 침체의 원인을 선수들 탓으로 돌렸다”며 “내가 지시하지 않아도 구성원들이 열정을 갖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드는 게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임원들이 먼저 이런 역할에 적극 뛰어들어야 조직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는 얘기다.
그는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의 장기화인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고 국제유가의 지속적 하락, 국제금융 시장의 불안정으로 어느 때보다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며 “내실 있고 질적인 성장을 위한 창의적 도전으로 새 수익원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허 회장은 ‘세계적 기업들’과의 경쟁을 추가로 주문했다. “지난 1월 스위스의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니 한결같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온 이들”이라며 국내 기업들과의 경쟁만 생각하지 말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골을 넣기 위한 리더십의 조건을 말하면서 그는 고전인 ‘장자’의 ‘정중지와 부지대해’ 구절도 인용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넓은 바다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허 회장은 “자신이 속한 곳에 얽매이지 말고, 물리적 제약과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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