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실리콘밸리’
‘북유럽의 실리콘밸리’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조선산업처럼 스웨덴 말뫼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 말뫼는 200여 신생기업이 입주한 창업보육지원센터 ‘미디어에볼루션’으로 활기에 차있다. 193개국 10만명 인재를 불러모아 도시 부활을 이끌고 있는 말뫼를 찾았다. 스웨덴 말뫼 서쪽 항구에 자리한 스카니아(Skania) 공원은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여가장소다. 2002년까지 코쿰스 조선소의 대형 크레인이 서있던 바로 그 자리다. 말뫼시는 현대중공업에 크레인을 팔기 직전인 2001년부터 이곳에 친환경 주거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현지 언론은 크레인의 해체 작업이 이뤄진 당시 상황을 두고 ‘말뫼가 울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당시 말뫼가 흘린 눈물은 ‘석별의 상징’에 불과했다.
1960년대 호황을 누린 스웨덴 조선산업은 1970년대 중반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배의 대형화 추세를 따라잡지 못해 한국·일본 등 아시아 신흥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경영진과 노조를 참여시킨 협의체를 구성해 조선소를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말뫼의 코쿰스마저 1986년 폐쇄되자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20여 년간 조선업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말뫼에선 총 2만8000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3~4%대로 전국 최저 수준이던 실업률은 1990년대 초반 22%대로 치솟았다.
일마 리팔루(73) 씨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말뫼 시장을 지냈다. 그는 취임 직후 상황을 얘기하며 “그때는 울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전임 시장이 세운 제조업 기반의 ‘25개년 도시 계획(1990~2015년)’을 전면 재검토했다. 더 이상 조선소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구상이었다. 리팔루 시장은 새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 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전통적인 공업도시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스카니아 지역에 들어선 유럽 최초의 친환경 주거시범단지도 리팔루 시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리팔루 시장의 마법’은 10년 만인 2000년대 중반부터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페아 안더슨 말뫼시 무역 산업국장은 “말뫼가 조선업을 포기하면서 20년 간 2만 8000여 개의 일자리를 잃었지만, 그 후 20년 동안 200여 신생기업과 6만3000여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1980년대 중반 22만 명까지 줄어든 도시 인구는 현재 32만 명으로 늘었다. 인구의 절반은 35세 미만 젊은이다.
반면 1960년대 말뫼와 비슷한 경제규모를 자랑한 ‘철강의 도시’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는 같은 시기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50년 전 17만8000여 명이던 이 도시의 인구는 현재 7만8000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여전히 철강·화학 등 제조업을 주요산업으로 내세우는 이 도시는 최근 도시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돼 단돈 1달러짜리 집이 매물로 나오는 등 ‘유령의 도시’로 전락했다. 안더슨 국장은 “일찍이 변화를 감행하지 않았다면 말뫼도 게리처럼 쇠퇴했을 것”이라며 “위기 때 내린 용단이 지금의 말뫼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
오비탈시스템즈 CEO 메하드 마쥬비(26)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실리콘밸리와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했다. 우주선 안에서 사용한 물을 곧바로 정화해 다시 쓰는 기술을 개발한 그는 2010년 창업을 위해 미국 생활을 접고 고향인 말뫼로 돌아왔다. 마쥬비는 “10년 전 말뫼였다면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뫼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우수한 인재와 뛰어난 창업 기반 시설, 국제공항과 가까운 입지 3박자를 갖춘 유럽의 실리콘밸리”라고 말했다.
이 회사가 입주한 건물은 1986년까지 코쿰스 조선소가 있던 자리다. 말뫼시는 코쿰스 크레인을 한국에 보낸 직후 공장을 매입했다. 낡은 외벽과 골조만 남긴 채 내부는 최신식으로 개조했다. 2004년 리노베이션이 끝난 동시에 말뫼시는 시 예산 100%로 운영하는 창업보육지원센터 ‘미디어에볼루션’을 출범시켰다. 말뫼시 창업 전담 부서에서 철저한 심사를 거쳐 통과한 벤처기업만이 이 건물에 입주할 수 있다. 마쥬비가 2012년 8월 창업할 당시엔 1인 기업이었다. 현재 이 회사에는 20개국에서 온 50여 명의 엔지니어가 근무하고 있다. 그는 전 직원과 스톡옵션을 나누고, 회사에 대한 오너십을 갖게 한다. 하루 세끼를 모두 구내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게 식대를 지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마쥬비는 “스타트업일수록 유능한 인재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며 “실리콘밸리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기술력을 가진 인재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쿰스가 나간 자리엔 이제 오비탈시스템즈와 같은 신생기업 200여 곳이 생겼다. 이들은 쇠락한 옛 조선소 자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마쥬비는 “큰 나무가 죽으면 베고, 그 자리에 여러 그루의 새 나무를 심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며 “죽은 나무에 아무리 물을 줘도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걸 정부 관계자들은 코쿰스가 망하고 나서야 깨우쳤다”고 말했다.
‘미디어에볼루션’의 모태가 되는 곳은 말뫼시가 2002년 세운 창업 인큐베이터 ‘밍크(MINC)’다. 시 예산 50%와 정부·기업 펀딩 50%로 운영된다. 한번 인큐베이터에 들어오면 대개 2~3년 동안 머물 수 있다. 첫 6개월은 입주비가 무료이고, 이후엔 한달에 3000크로나(약 42만원)만 내면 된다. 밍크 CEO인 모르텐 웨브릭은 “적은 비용으로 시제품을 만들 수 있고, 벤처캐피탈을 받을 수 있도록 투자자를 연결해주기도 한다”며 “매년 200개의 사업계획서가 들어오는데 이중 20개만이 선정된다”고 말했다.
업종에 제한은 없지만 전에 없던 혁신적인 기술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특히 말뫼시가 성장동력으로 삼는 클린테크(친환경·신재생에너지) 분야와 교육·IT 관련 기업이 주를 이룬다. 지난 15년 간 120여 개 회사가 인큐베이터 과정을 거쳐 ‘탈출(EXIT)’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웨브릭은 “밍크에 머문 70%가 창업에 성공하고, 그중 20%는 큰 성과를 거둔다”며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Slowly but surely) 방법으로 도시를 성장시키는 힘”이라고 말했다. 페아 안더슨 말뫼시 무역산업국장은 “현재 인구의 절반가량인 16만3000여 명이 여러 업종의 중소기업에 종사 한다”며 “과거 조선소 하나로 연명하던 과거와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일자리가 다양해지자 인구 구성도 달라졌다. EU에 따르면 말뫼의 1인당 GDP는 2014년 기준 2만4233유로(약 3230만원) 유럽 내 50위 규모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꼽은 가장 혁신적인 도시 4위 (2014년 기준)를 차지했다. 얀 학 말뫼시 도시발전전략국장은 “1960년대엔 인구의 5%만이 다른 국가 출신이었지만 오늘날엔 33%에 달한다”며 “193개국 출신의 시민이 만들어낸 문화적 다양성이 혁신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1995년 재정비한 말뫼의 ‘25개년 도시 계획’의 핵심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이다. 학 국장은 “제조업의 위기로 인해 도시의 생존 자체를 위협받은 탓에 자연스레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데 관심을 쏟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만큼이나 좋은 학교·극장·공원과 같은 문화기반 시설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웹디자인 전문회사 ‘화이트스페이스’의 CEO 엔더스 벵엘린(34)은 웁살라 대학 출신이다. 수도 스톡홀름과 가까운 대학도시인 웁살라는 스웨덴 내에서도 최고의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졸업자는 대부분 스톡홀름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엔더스는 고향과 멀리 떨어진 말뫼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벵엘린은 “말뫼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일 뿐 아니라 두 자녀를 키우며 살기에 좋은 여건을 갖춘 균형 잡힌 도시”라며 “도시 곳곳에 녹지공간이 풍부하고, 주거단지와 교육 환경 역시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 인재가 말뫼로 모이는 까닭은 단순히 기업 친화적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얀 학 국장은 “삭막한 공업도시이던 말뫼는 이제 스웨덴은 물론 유럽에서도 가장 ‘쿨’한 도시로 각광 받는다”며 “각종 콘서트·영화제를 개최하고, 북유럽 최대 규모의 쇼핑센터를 갖춘 국제적인 도시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
신생기업입주단지로 바뀐 건물 맞은편에는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코쿰스의 공장 건물 한 채가 그대로 남아있다. 과거 선박을 건조·수리하기 위해 설치한 도크(dock)엔 물이끼가 잔뜩 꼈다. 20년 전까지 쉴 새 없이 배가 들고났을 이 공간은 이제 입주기업 직원들의 구내식당으로 활용된다. 점심시간이 되자 볕을 쬐러 나온 100여 명의 직원들로 식당 외부가 북적였다. 얀 학 국장은 “초창기인 2004년엔 옛 공장의 일부만 개조해 창업지원센터로 꾸몄지만 점점 더 말뫼에서 창업하길 원하는 기업이 늘면서 나머지 공장 터도 마저 개발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말뫼(스웨덴)=글·사진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60년대 호황을 누린 스웨덴 조선산업은 1970년대 중반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배의 대형화 추세를 따라잡지 못해 한국·일본 등 아시아 신흥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경영진과 노조를 참여시킨 협의체를 구성해 조선소를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말뫼의 코쿰스마저 1986년 폐쇄되자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20여 년간 조선업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말뫼에선 총 2만8000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3~4%대로 전국 최저 수준이던 실업률은 1990년대 초반 22%대로 치솟았다.
일마 리팔루(73) 씨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말뫼 시장을 지냈다. 그는 취임 직후 상황을 얘기하며 “그때는 울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전임 시장이 세운 제조업 기반의 ‘25개년 도시 계획(1990~2015년)’을 전면 재검토했다. 더 이상 조선소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구상이었다. 리팔루 시장은 새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 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전통적인 공업도시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스카니아 지역에 들어선 유럽 최초의 친환경 주거시범단지도 리팔루 시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20년 간 일자리 2만8000개 잃고, 6만3000개 얻어
반면 1960년대 말뫼와 비슷한 경제규모를 자랑한 ‘철강의 도시’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는 같은 시기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50년 전 17만8000여 명이던 이 도시의 인구는 현재 7만8000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여전히 철강·화학 등 제조업을 주요산업으로 내세우는 이 도시는 최근 도시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돼 단돈 1달러짜리 집이 매물로 나오는 등 ‘유령의 도시’로 전락했다. 안더슨 국장은 “일찍이 변화를 감행하지 않았다면 말뫼도 게리처럼 쇠퇴했을 것”이라며 “위기 때 내린 용단이 지금의 말뫼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
오비탈시스템즈 CEO 메하드 마쥬비(26)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실리콘밸리와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했다. 우주선 안에서 사용한 물을 곧바로 정화해 다시 쓰는 기술을 개발한 그는 2010년 창업을 위해 미국 생활을 접고 고향인 말뫼로 돌아왔다. 마쥬비는 “10년 전 말뫼였다면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뫼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우수한 인재와 뛰어난 창업 기반 시설, 국제공항과 가까운 입지 3박자를 갖춘 유럽의 실리콘밸리”라고 말했다.
이 회사가 입주한 건물은 1986년까지 코쿰스 조선소가 있던 자리다. 말뫼시는 코쿰스 크레인을 한국에 보낸 직후 공장을 매입했다. 낡은 외벽과 골조만 남긴 채 내부는 최신식으로 개조했다. 2004년 리노베이션이 끝난 동시에 말뫼시는 시 예산 100%로 운영하는 창업보육지원센터 ‘미디어에볼루션’을 출범시켰다. 말뫼시 창업 전담 부서에서 철저한 심사를 거쳐 통과한 벤처기업만이 이 건물에 입주할 수 있다.
혁신적 기술 갖춘 사업계획서 선정해 지원
코쿰스가 나간 자리엔 이제 오비탈시스템즈와 같은 신생기업 200여 곳이 생겼다. 이들은 쇠락한 옛 조선소 자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마쥬비는 “큰 나무가 죽으면 베고, 그 자리에 여러 그루의 새 나무를 심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며 “죽은 나무에 아무리 물을 줘도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걸 정부 관계자들은 코쿰스가 망하고 나서야 깨우쳤다”고 말했다.
‘미디어에볼루션’의 모태가 되는 곳은 말뫼시가 2002년 세운 창업 인큐베이터 ‘밍크(MINC)’다. 시 예산 50%와 정부·기업 펀딩 50%로 운영된다. 한번 인큐베이터에 들어오면 대개 2~3년 동안 머물 수 있다. 첫 6개월은 입주비가 무료이고, 이후엔 한달에 3000크로나(약 42만원)만 내면 된다. 밍크 CEO인 모르텐 웨브릭은 “적은 비용으로 시제품을 만들 수 있고, 벤처캐피탈을 받을 수 있도록 투자자를 연결해주기도 한다”며 “매년 200개의 사업계획서가 들어오는데 이중 20개만이 선정된다”고 말했다.
업종에 제한은 없지만 전에 없던 혁신적인 기술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특히 말뫼시가 성장동력으로 삼는 클린테크(친환경·신재생에너지) 분야와 교육·IT 관련 기업이 주를 이룬다. 지난 15년 간 120여 개 회사가 인큐베이터 과정을 거쳐 ‘탈출(EXIT)’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웨브릭은 “밍크에 머문 70%가 창업에 성공하고, 그중 20%는 큰 성과를 거둔다”며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Slowly but surely) 방법으로 도시를 성장시키는 힘”이라고 말했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 잡는 ‘균형 잡힌 도시’
1995년 재정비한 말뫼의 ‘25개년 도시 계획’의 핵심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이다. 학 국장은 “제조업의 위기로 인해 도시의 생존 자체를 위협받은 탓에 자연스레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데 관심을 쏟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만큼이나 좋은 학교·극장·공원과 같은 문화기반 시설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웹디자인 전문회사 ‘화이트스페이스’의 CEO 엔더스 벵엘린(34)은 웁살라 대학 출신이다. 수도 스톡홀름과 가까운 대학도시인 웁살라는 스웨덴 내에서도 최고의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졸업자는 대부분 스톡홀름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엔더스는 고향과 멀리 떨어진 말뫼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벵엘린은 “말뫼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일 뿐 아니라 두 자녀를 키우며 살기에 좋은 여건을 갖춘 균형 잡힌 도시”라며 “도시 곳곳에 녹지공간이 풍부하고, 주거단지와 교육 환경 역시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 인재가 말뫼로 모이는 까닭은 단순히 기업 친화적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얀 학 국장은 “삭막한 공업도시이던 말뫼는 이제 스웨덴은 물론 유럽에서도 가장 ‘쿨’한 도시로 각광 받는다”며 “각종 콘서트·영화제를 개최하고, 북유럽 최대 규모의 쇼핑센터를 갖춘 국제적인 도시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
신생기업입주단지로 바뀐 건물 맞은편에는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코쿰스의 공장 건물 한 채가 그대로 남아있다. 과거 선박을 건조·수리하기 위해 설치한 도크(dock)엔 물이끼가 잔뜩 꼈다. 20년 전까지 쉴 새 없이 배가 들고났을 이 공간은 이제 입주기업 직원들의 구내식당으로 활용된다. 점심시간이 되자 볕을 쬐러 나온 100여 명의 직원들로 식당 외부가 북적였다. 얀 학 국장은 “초창기인 2004년엔 옛 공장의 일부만 개조해 창업지원센터로 꾸몄지만 점점 더 말뫼에서 창업하길 원하는 기업이 늘면서 나머지 공장 터도 마저 개발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말뫼(스웨덴)=글·사진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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