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창대하나 끝이 미약해
시작은 창대하나 끝이 미약해
1977년 뉴욕 브롱크스 배경의 미드 ‘더 겟 다운’... 역사 이해 없이 흑인의 춤과 노래, 그리고 싸움만으론 그 시대 담을 수 없어 배우 폴 뉴먼이 1980년 영화 ‘암흑가의 투캅스’를 촬영하려고 미국 뉴욕 사우스 브롱크스 지역의 심슨 거리에 도착했을 때 주민들이 야유를 보냈다. 당시 그 지역은 명예스럽지 못한 일로 꽤 유명했다. 1977년 힘든 현실에 절망한 방화범들이 저지른 일련의 화재 사건이 그것이다. 잿더미가 된 건물에서 노는 아이들의 사진은 브롱크스에 관해 사람들이 알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을 말해줬다. 높은 범죄율과 실업률에 관한 뉴스는 브롱크스의 이미지를 한층 더 어둡게 만들었다. 미국의 온갖 잘못된 것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드는 듯했다. 뉴욕의 가장 번화한 맨해튼에서 강 하나를 사이에 뒀을 뿐인 브롱크스로 말이다.
‘암흑가의 투캅스’는 뉴욕 시경 제41관할구(브롱크스)의 경찰관들에 관한 영화다. 주민들은 영화에서 이 지역이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리라는 걸 알았다. 모피를 입은 뚜쟁이와 누더기를 걸친 마약중독자가 득실대는 무법천지로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관들이 없다면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곳으로 말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영화 촬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폴 뉴먼은 시위대의 주요 표적이 됐다. ‘폴 뉴먼: 300만 달러에 진보주의자에서 인종차별주의자로 전락하다’ “‘암흑가의 투캅스’는 흑인과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을 배척하는 영화”라고 쓰인 팻말들이 있었다.
시위로 촬영에 방해를 받긴 했지만 영화는 완성됐다. 오프닝 자막에 “이 영화는 경찰 영화로 ‘법을 준수하는 이 지역 주민’에겐 부당하다고 느껴질 만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경고문이 떴다. 영화에 나타난 냉소주의를 완화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뜨뜻미지근한 표현이었다. 영화는 한 매춘부(팸 그리어)가 경찰관 2명을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 주민은 “(이 영화에 나오는 경찰서는) 경찰서가 아니라 적지의 요새”라고 말했다.
호주 출신 영화감독 바즈 루어만이 폴 뉴먼 이후 35년 만에 그와 똑같은 이유로 사우스 브롱크스를 찾았다. 브롱크스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지역을 화면에 담기 위해서다. 시간적 배경까지도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1977년으로 택했다. 대다수 미국인이 브롱크스에 양키 스타디움과 유명한 동물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때였다. ‘물랑루즈’와 ‘위대한 개츠비’ 등 매우 호화로운 작품들을 제작한 루어만 감독이 반이상향을 주제로 한 액션 영화 ‘뉴욕 탈출’(1981)과 요란한 춤과 노래가 가득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합쳐놓은 듯한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더 겟 다운(The Get Down)’의 감독을 맡았다. 넷플릭스는 총 12회의 이 시리즈를 1·2부로 나눠 지난 8월 12일 제1회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우스 브롱크스는 지금도 가난하지만 1945년 독일의 드레스덴보다는 1960년의 레빗타운(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저렴한 대규모 주택단지)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한때 도심지의 범죄를 우려한 백인 중산층의 교외 이주로 인구가 급감했던 사우스 브롱크스는 이민자들과 맨해튼에서 살아갈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주거지로 떠올랐다. 오랜 세월의 수치스러웠던 과거에서 벗어난 이 지역에 새롭게 자부심을 느끼기 시작한 주민들이 이 미니시리즈 프로젝트에 경계심을 보이는 건 이해할 만하다.
루어만 감독은 브롱크스를 힙합과 브레이크 댄스의 요람으로 묘사하는 ‘희망적인 줄거리’를 약속했다. 브롱크스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그는 “이제 브롱크스를 잿더미로 묘사하는 게 지겨워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루어만 감독이 연출한 ‘더 겟 다운’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니 그의 마음이 바뀐 게 분명하다. 첫 장면이 1977년 당시의 뉴욕에 관한 상투적인 묘사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샘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연쇄살인마 데이비드 버코위츠와 맨해튼에 새로 건설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관한 뉴스 영상부터 데일리 뉴스의 유명한 헤드라인 ‘Ford to City: Drop Dead’까지(이 기사 제목은 1975년 10월 파산 위기에 처한 뉴욕시의 구제 계획을 포드 대통령이 거절한 것을 빗댄 표현으로 “포드가 뉴욕시에 ‘그냥 망해라’라고 말했다” 정도로 해석된다).
누군가 1977년의 뉴욕을 조명한 조너선 말러의 책 ‘브롱크스가 불타고 있다(Ladies and Gentlemen, the Bronx Is Burning )’를 훑어보는 장면으로 도시의 병폐를 암시한 피상적인 분위기는 더 상투적이다. 이 역사 몽타주는 루어만 감독이 보여주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잿더미와 텅빈 건물들의 이미지다. ‘더 겟 다운’은 정확히 ‘암흑가의 투캅스’가 끝난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오프닝 크레딧이 흐를 때 우리는 1977년의 브롱크스와 1996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랩 콘서트장 사이를 오간다. 무대에 선 래퍼는 ‘더 겟 다운’의 주인공 에제키엘피구에로(저스티스 스미스)다. 우리는 에제키엘과 친구들이 1977년 여름 샬로인 판타스틱(샤메익 무어)의 지도로 힙합에 입문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들은 레코드 스크래치(레코드를 손으로 역회전시키거나 소음을 넣어 사운드를 만드는 방식)와 루핑(코드의 반복), 랩 작사 등을 배운다. 에제키엘은 또 밀렌 크루즈(헤리젠 과르디올라)의 환심을 사기에 바쁘다. 밀렌은 디스코 퀸이 되는 게 꿈이지만 목사인 아버지의 반대에 부닥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복잡성이 창조성을 해친다는 루어만 감독의 믿음을 반영한 듯하다. 간간이 1977년 당시 브롱크스의 황폐한 실상이 담긴 영상이 지나간다. 불타는 아파트들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제롬 애버뉴를 달리는 경찰차 등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금세 찾을 수 있는 그런 영상들이다. 이건 진지함을 나타내려는 싸구려 수법이다.
밀렌의 삼촌 프란시스코 크루즈(지미 스미츠의 과장된 연기가 재미있다)를 중심으로 한 부차적인 줄거리는 열세 살짜리가 펼치는 정치처럼 유치하다. 이런 요소들을 빼면 ‘더 겟 다운’은 나팔바지와 술 장식이 달린 조끼가 등장하는 ‘물랑루즈’라고 보면 된다.
바즈 루어만 감독에게 의미 있는 줄거리를 요구하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결혼에 관한 카운슬링을 부탁하는 것과 같다. 그는 화려한 춤과 노래가 펼쳐지는 장편 길이의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앞뒤 맥락은 말할 것도 없고 캐릭터, 플롯, 주제 같은 스토리텔링의 전통적인 특징은 대체로 무시한다. 댄스 뮤직이 진동하는 루어만 감독의 ‘위대한 개츠비’는 재즈 시대(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 1920년대의 향락적이고 사치스러웠던 재즈 전성기)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팬들은 개의치 않는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루어만 감독도 지나침 자체를 목표로 삼는다.루어만 감독이 브롱크스에 끌린 건 이해할 만하다. 이 지역은 내슈빌이나 디트로이트에 견줄 만큼 풍요로운 음악적 역사를 지닌 곳이다. 새지윅 애버뉴 1520번지 지하실에서 열린 DJ 쿨 허크의 파티에서 힙합이 시작됐고 맘앤팝스 디스코텍에서는 브레이크 댄스 파티가 벌어지곤 했으며 모숄류 전철역은 낙서로 뒤덮였다. 브롱크스의 음악 역사를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루어만 감독은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브롱크스 힙합 스타일의 원조인 DJ 그랜드매스터 플래시와 1980년도 히트곡 ‘The Break’로 유명한 커티스 블로우, 뉴욕 힙합의 제왕으로 불리는 래퍼 나스(그는 ‘더 겟 다운’ 시리즈를 위해 새로운 음악을 작곡했다), 그리고 문화역사가 넬슨 조지 등이다.
이들의 참여로 ‘더 겟 다운’은 재미있고 유익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를 닉 캐러웨이(영화 속 화자)의 과거 회상 형식으로 전개한 루어만 감독은 구제불능이다. 자신의 상상력이라는 정글에 갇힌 커츠 대령(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캄보디아에서 독자적인 왕국을 거느리는 군인 캐릭터)이라고 할까?
‘더 겟 다운’은 소란하지만 딱히 뮤지컬이라고 볼 만한 근거도 없다. 힙합 비트가 불협화음처럼 이어지긴 하지만 신나고 일관성 있는 노래로 연결되지 못한다. 밀렌과 그녀의 두 친구가 ‘Turn the Beat Around’에 맞춰 춤추는 장면은 멋지다. 야야 압둘-마틴 2세(캐딜락 역)가 총을 휘두르며 커티스 메이필드의 ‘Superfly’에 맞춰 춤추는 것도 인상적이다. ‘더 겟 다운’이 이런 장면들로만 이어진다면 좋은 오락물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형편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더 겟 다운’에 플롯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 책임 프로듀서가 여러 번 바뀌었고 수많은 컨설턴트와 프로듀서가 참여한 이 작품은 주의력결핍장애에 걸린 것 같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밀렌이 클럽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두 번째 에피소드에선 난데없이 보라색 크레용(purple crayon, 속어로 ‘흑인 남성의 성기’라는 뜻이 있다) 이야기가 나온다. 이 드라마가 제자리를 잡아 일관성 있는 줄거리를 찾고 그에 적합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까? 3회까지 본 내 소견으로는 그보단 차라리 중동의 평화 정착을 바라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
‘더 겟 다운’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넬슨은 이 작품의 다채로운 캐스팅을 자랑거리로 내세웠다. 루어만 감독이 전도유망한 유색인종 배우를 많이 소개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특히 밀렌 역의 과르디올라와 순진하고 매력적인 라라 키플링 역의 스카일란 브룩스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작품 소재를 생각할 때 ‘더 겟 다운’의 캐스팅은 형편없다. 루어만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물랑루즈’의 쇼걸과 ‘위대한 개츠비’의 신여성들처럼 희화적인 묘사를 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브롱크스는 문제가 많은 땅이다. 어두운 피부를 가진 10대 배우들을 다루는 그의 방식이 매우 거북하게 느껴진다.
일례로 밀렌의 친구인 레지나 디아즈(셜리 로드리게즈는 이런 역할을 하기엔 재능이 아까운 배우다)는 첫 회에서 스트립 댄서처럼 온몸을 비틀며 춤추는 장면이 지나칠 정도로 오래 나온다. 엉덩이 뼈가 탈골되지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다. 한편 남자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빈민가 소년들의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매우 진부한 묘사다. 넷플릭스는 루어만 감독과 제작팀이 브롱크스의 역사에 관해 조사를 많이 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차라리 인간의 마음에 관한 연구를 하는 편이 더 좋았을 뻔했다. 브롱크스 주민들은 맨해튼이나 휴스턴, 플레전트빌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정형화된 틀에 끼워 맞출 수 없다는 교훈을 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더 겟 다운’의 제작진은 어두운 피부의 젊은이들을 춤과 노래와 싸움의 끝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그것이 1977년 사우스 브롱크스의 뜨거웠던 여름을 제대로 묘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한때 이런 영화를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1970년 즈음 흑인 관객을 겨냥해 흑인 영웅을 등장시킨 영화의 총칭)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그런 용어를 쓸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1977년 뉴욕의 혼란스런 상황을 작품의 주제로 삼은 예술가는 루어만 감독뿐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 작가 가스 리스크 핼버그는 당시 정전사태로 혼란에 빠진 뉴욕에 관한 소설 ‘불타는 도시(City on Fire)’를 펴냈다. 크노프 출판사가 200만 달러의 고료를 지불한 이 책은 매출이 형편없다.
이 소설은 당시 맨해튼의 펑크족에 초점을 맞췄지만 핼버그는 그 시절 뉴욕의 삶을 겪어보지 않았다. 루어만 감독이 브롱크스의 끔찍한 파괴 현장에 있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이 겪지 않은 과거를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긴 하다. 잘하면 E L 독토로의 소설 ‘랙타임’이나 스티브 매퀸 감독의 영화 ‘노예 12년’ 같은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단순히 과거를 그럴 듯하게 묘사하려고만 할 때는 졸작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더 겟 다운’은 졸작일 뿐 아니라 시청자를 기만하기까지 한다. 1977년 브롱크스의 방화와 약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현재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교묘한 회피전략이다. 집들이 불탄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편리하고 빠른 전철은 현대의 효율성을 자랑한다. 요즘 사우스 브롱크스는 ‘소브로(SoBro)’라고 불린다. 부르기 쉽고 감미로운 느낌마저 주는 별명이다. 하지만 모든 게 다 좋아지진 않았다.
브롱크스는 여전히 미국의 극빈 지역 중 하나다. 지난 30년 동안 이룬 발전의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겉치레에 불과한 측면도 있었다는 말이다. ‘암흑가의 투캅스’ 제작진이 그랬듯이 루어만 감독도 사우스 브롱크스의 도시적 병폐를 꼬집으려고 그곳에 갔다.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 이전에 많은 백인이 그랬듯이 아무런 부담 없이 브롱크스를 떠나면 된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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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가의 투캅스’는 뉴욕 시경 제41관할구(브롱크스)의 경찰관들에 관한 영화다. 주민들은 영화에서 이 지역이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리라는 걸 알았다. 모피를 입은 뚜쟁이와 누더기를 걸친 마약중독자가 득실대는 무법천지로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관들이 없다면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곳으로 말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영화 촬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폴 뉴먼은 시위대의 주요 표적이 됐다. ‘폴 뉴먼: 300만 달러에 진보주의자에서 인종차별주의자로 전락하다’ “‘암흑가의 투캅스’는 흑인과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을 배척하는 영화”라고 쓰인 팻말들이 있었다.
시위로 촬영에 방해를 받긴 했지만 영화는 완성됐다. 오프닝 자막에 “이 영화는 경찰 영화로 ‘법을 준수하는 이 지역 주민’에겐 부당하다고 느껴질 만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경고문이 떴다. 영화에 나타난 냉소주의를 완화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뜨뜻미지근한 표현이었다. 영화는 한 매춘부(팸 그리어)가 경찰관 2명을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 주민은 “(이 영화에 나오는 경찰서는) 경찰서가 아니라 적지의 요새”라고 말했다.
호주 출신 영화감독 바즈 루어만이 폴 뉴먼 이후 35년 만에 그와 똑같은 이유로 사우스 브롱크스를 찾았다. 브롱크스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지역을 화면에 담기 위해서다. 시간적 배경까지도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1977년으로 택했다. 대다수 미국인이 브롱크스에 양키 스타디움과 유명한 동물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때였다. ‘물랑루즈’와 ‘위대한 개츠비’ 등 매우 호화로운 작품들을 제작한 루어만 감독이 반이상향을 주제로 한 액션 영화 ‘뉴욕 탈출’(1981)과 요란한 춤과 노래가 가득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합쳐놓은 듯한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더 겟 다운(The Get Down)’의 감독을 맡았다. 넷플릭스는 총 12회의 이 시리즈를 1·2부로 나눠 지난 8월 12일 제1회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우스 브롱크스는 지금도 가난하지만 1945년 독일의 드레스덴보다는 1960년의 레빗타운(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저렴한 대규모 주택단지)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한때 도심지의 범죄를 우려한 백인 중산층의 교외 이주로 인구가 급감했던 사우스 브롱크스는 이민자들과 맨해튼에서 살아갈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주거지로 떠올랐다. 오랜 세월의 수치스러웠던 과거에서 벗어난 이 지역에 새롭게 자부심을 느끼기 시작한 주민들이 이 미니시리즈 프로젝트에 경계심을 보이는 건 이해할 만하다.
루어만 감독은 브롱크스를 힙합과 브레이크 댄스의 요람으로 묘사하는 ‘희망적인 줄거리’를 약속했다. 브롱크스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그는 “이제 브롱크스를 잿더미로 묘사하는 게 지겨워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루어만 감독이 연출한 ‘더 겟 다운’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니 그의 마음이 바뀐 게 분명하다. 첫 장면이 1977년 당시의 뉴욕에 관한 상투적인 묘사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샘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연쇄살인마 데이비드 버코위츠와 맨해튼에 새로 건설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관한 뉴스 영상부터 데일리 뉴스의 유명한 헤드라인 ‘Ford to City: Drop Dead’까지(이 기사 제목은 1975년 10월 파산 위기에 처한 뉴욕시의 구제 계획을 포드 대통령이 거절한 것을 빗댄 표현으로 “포드가 뉴욕시에 ‘그냥 망해라’라고 말했다” 정도로 해석된다).
누군가 1977년의 뉴욕을 조명한 조너선 말러의 책 ‘브롱크스가 불타고 있다(Ladies and Gentlemen, the Bronx Is Burning )’를 훑어보는 장면으로 도시의 병폐를 암시한 피상적인 분위기는 더 상투적이다. 이 역사 몽타주는 루어만 감독이 보여주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잿더미와 텅빈 건물들의 이미지다. ‘더 겟 다운’은 정확히 ‘암흑가의 투캅스’가 끝난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오프닝 크레딧이 흐를 때 우리는 1977년의 브롱크스와 1996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랩 콘서트장 사이를 오간다. 무대에 선 래퍼는 ‘더 겟 다운’의 주인공 에제키엘피구에로(저스티스 스미스)다. 우리는 에제키엘과 친구들이 1977년 여름 샬로인 판타스틱(샤메익 무어)의 지도로 힙합에 입문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들은 레코드 스크래치(레코드를 손으로 역회전시키거나 소음을 넣어 사운드를 만드는 방식)와 루핑(코드의 반복), 랩 작사 등을 배운다. 에제키엘은 또 밀렌 크루즈(헤리젠 과르디올라)의 환심을 사기에 바쁘다. 밀렌은 디스코 퀸이 되는 게 꿈이지만 목사인 아버지의 반대에 부닥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복잡성이 창조성을 해친다는 루어만 감독의 믿음을 반영한 듯하다. 간간이 1977년 당시 브롱크스의 황폐한 실상이 담긴 영상이 지나간다. 불타는 아파트들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제롬 애버뉴를 달리는 경찰차 등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금세 찾을 수 있는 그런 영상들이다. 이건 진지함을 나타내려는 싸구려 수법이다.
밀렌의 삼촌 프란시스코 크루즈(지미 스미츠의 과장된 연기가 재미있다)를 중심으로 한 부차적인 줄거리는 열세 살짜리가 펼치는 정치처럼 유치하다. 이런 요소들을 빼면 ‘더 겟 다운’은 나팔바지와 술 장식이 달린 조끼가 등장하는 ‘물랑루즈’라고 보면 된다.
바즈 루어만 감독에게 의미 있는 줄거리를 요구하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결혼에 관한 카운슬링을 부탁하는 것과 같다. 그는 화려한 춤과 노래가 펼쳐지는 장편 길이의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앞뒤 맥락은 말할 것도 없고 캐릭터, 플롯, 주제 같은 스토리텔링의 전통적인 특징은 대체로 무시한다. 댄스 뮤직이 진동하는 루어만 감독의 ‘위대한 개츠비’는 재즈 시대(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 1920년대의 향락적이고 사치스러웠던 재즈 전성기)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팬들은 개의치 않는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루어만 감독도 지나침 자체를 목표로 삼는다.루어만 감독이 브롱크스에 끌린 건 이해할 만하다. 이 지역은 내슈빌이나 디트로이트에 견줄 만큼 풍요로운 음악적 역사를 지닌 곳이다. 새지윅 애버뉴 1520번지 지하실에서 열린 DJ 쿨 허크의 파티에서 힙합이 시작됐고 맘앤팝스 디스코텍에서는 브레이크 댄스 파티가 벌어지곤 했으며 모숄류 전철역은 낙서로 뒤덮였다. 브롱크스의 음악 역사를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루어만 감독은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브롱크스 힙합 스타일의 원조인 DJ 그랜드매스터 플래시와 1980년도 히트곡 ‘The Break’로 유명한 커티스 블로우, 뉴욕 힙합의 제왕으로 불리는 래퍼 나스(그는 ‘더 겟 다운’ 시리즈를 위해 새로운 음악을 작곡했다), 그리고 문화역사가 넬슨 조지 등이다.
이들의 참여로 ‘더 겟 다운’은 재미있고 유익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를 닉 캐러웨이(영화 속 화자)의 과거 회상 형식으로 전개한 루어만 감독은 구제불능이다. 자신의 상상력이라는 정글에 갇힌 커츠 대령(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캄보디아에서 독자적인 왕국을 거느리는 군인 캐릭터)이라고 할까?
‘더 겟 다운’은 소란하지만 딱히 뮤지컬이라고 볼 만한 근거도 없다. 힙합 비트가 불협화음처럼 이어지긴 하지만 신나고 일관성 있는 노래로 연결되지 못한다. 밀렌과 그녀의 두 친구가 ‘Turn the Beat Around’에 맞춰 춤추는 장면은 멋지다. 야야 압둘-마틴 2세(캐딜락 역)가 총을 휘두르며 커티스 메이필드의 ‘Superfly’에 맞춰 춤추는 것도 인상적이다. ‘더 겟 다운’이 이런 장면들로만 이어진다면 좋은 오락물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형편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더 겟 다운’에 플롯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 책임 프로듀서가 여러 번 바뀌었고 수많은 컨설턴트와 프로듀서가 참여한 이 작품은 주의력결핍장애에 걸린 것 같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밀렌이 클럽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두 번째 에피소드에선 난데없이 보라색 크레용(purple crayon, 속어로 ‘흑인 남성의 성기’라는 뜻이 있다) 이야기가 나온다. 이 드라마가 제자리를 잡아 일관성 있는 줄거리를 찾고 그에 적합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까? 3회까지 본 내 소견으로는 그보단 차라리 중동의 평화 정착을 바라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
‘더 겟 다운’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넬슨은 이 작품의 다채로운 캐스팅을 자랑거리로 내세웠다. 루어만 감독이 전도유망한 유색인종 배우를 많이 소개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특히 밀렌 역의 과르디올라와 순진하고 매력적인 라라 키플링 역의 스카일란 브룩스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작품 소재를 생각할 때 ‘더 겟 다운’의 캐스팅은 형편없다. 루어만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물랑루즈’의 쇼걸과 ‘위대한 개츠비’의 신여성들처럼 희화적인 묘사를 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브롱크스는 문제가 많은 땅이다. 어두운 피부를 가진 10대 배우들을 다루는 그의 방식이 매우 거북하게 느껴진다.
일례로 밀렌의 친구인 레지나 디아즈(셜리 로드리게즈는 이런 역할을 하기엔 재능이 아까운 배우다)는 첫 회에서 스트립 댄서처럼 온몸을 비틀며 춤추는 장면이 지나칠 정도로 오래 나온다. 엉덩이 뼈가 탈골되지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다. 한편 남자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빈민가 소년들의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매우 진부한 묘사다. 넷플릭스는 루어만 감독과 제작팀이 브롱크스의 역사에 관해 조사를 많이 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차라리 인간의 마음에 관한 연구를 하는 편이 더 좋았을 뻔했다. 브롱크스 주민들은 맨해튼이나 휴스턴, 플레전트빌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정형화된 틀에 끼워 맞출 수 없다는 교훈을 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더 겟 다운’의 제작진은 어두운 피부의 젊은이들을 춤과 노래와 싸움의 끝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그것이 1977년 사우스 브롱크스의 뜨거웠던 여름을 제대로 묘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한때 이런 영화를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1970년 즈음 흑인 관객을 겨냥해 흑인 영웅을 등장시킨 영화의 총칭)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그런 용어를 쓸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1977년 뉴욕의 혼란스런 상황을 작품의 주제로 삼은 예술가는 루어만 감독뿐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 작가 가스 리스크 핼버그는 당시 정전사태로 혼란에 빠진 뉴욕에 관한 소설 ‘불타는 도시(City on Fire)’를 펴냈다. 크노프 출판사가 200만 달러의 고료를 지불한 이 책은 매출이 형편없다.
이 소설은 당시 맨해튼의 펑크족에 초점을 맞췄지만 핼버그는 그 시절 뉴욕의 삶을 겪어보지 않았다. 루어만 감독이 브롱크스의 끔찍한 파괴 현장에 있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이 겪지 않은 과거를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긴 하다. 잘하면 E L 독토로의 소설 ‘랙타임’이나 스티브 매퀸 감독의 영화 ‘노예 12년’ 같은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단순히 과거를 그럴 듯하게 묘사하려고만 할 때는 졸작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더 겟 다운’은 졸작일 뿐 아니라 시청자를 기만하기까지 한다. 1977년 브롱크스의 방화와 약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현재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교묘한 회피전략이다. 집들이 불탄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편리하고 빠른 전철은 현대의 효율성을 자랑한다. 요즘 사우스 브롱크스는 ‘소브로(SoBro)’라고 불린다. 부르기 쉽고 감미로운 느낌마저 주는 별명이다. 하지만 모든 게 다 좋아지진 않았다.
브롱크스는 여전히 미국의 극빈 지역 중 하나다. 지난 30년 동안 이룬 발전의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겉치레에 불과한 측면도 있었다는 말이다. ‘암흑가의 투캅스’ 제작진이 그랬듯이 루어만 감독도 사우스 브롱크스의 도시적 병폐를 꼬집으려고 그곳에 갔다.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 이전에 많은 백인이 그랬듯이 아무런 부담 없이 브롱크스를 떠나면 된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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