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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프와 현금의 만남

스카이프와 현금의 만남

돈의 미래를 놓고 벌어지는 전쟁에서 가장 최근 기습공격이 발생한 분야는 바로 개인 간(P2P) 해외 송금이다.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은 10억 달러의 스타트업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가 지금 당장이라도 마법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트랜스퍼와이즈의 공동창업자 크리스토 카만(Kristo Kaarmann·35)이 저녁식사 자리에 지각했다. 카만을 태운 우버(Uber) 운전사가 사무실에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Tallinn)의 구불구불한 중세 시대 자갈길에 자리한 트렌디한 레스토랑 아트 프리오리로 오기까지 먼 길로 돌아온 탓이다. 이 운전사는 카만을 알아보고 자신이 가진 새로운 앱에 대한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싶어 일부러 시간을 지체했다. 먼저 레스토랑에 도착해 카만을 기다리던 트랜스퍼와이즈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타벳 힌리커스(Taavet Hinrikus·35)는 약속에 늦은 카만의 해명을 듣고 다 안다는 듯한 웃음을 짓는다. “에스토니아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니 모두들 트랜스퍼와이즈에 대해 아는 것도 당연하지요.” 힌리커스의 말이다. 그 역시 현지 택시 운전사들로부터 차를 탄 시간 내내 사업 계획을 홍보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경험이 있다.

기술기업 인큐베이터가 되는 것을 미래성장동력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구 130만 명의 조그마한 발트해 국가에서 유니콘 스타트업 기업을 마주치면 으레 일어나는 일이다. 카만과 힌리커스는 에스토니아판 마크 주커버그와 제프 베조스나 다름없다. 폭발적 성장을 뒷받침해 줄 최고의 투자자들도 알고있다. 지난해 안드리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가 5800만 달러를 투자한 덕분에 카만과 힌리커스는 직원을 600명으로 늘릴 수 있었다. P2P 기반의 송금 서비스 플랫폼(외화 송금업의 ‘스카이프’라고 생각하자)을 무기로, 이 둘은 웨스턴 유니온처럼 이미 확고히 자리잡은 거대업체들을 포함해 거의 모든 글로벌 은행과 경쟁에 나서고 있다.

“송금하는 데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희가 주장하는 콘셉트입니다.” 카만의 말이다. “송금은 사실상 전자의 이동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현재 트랜스퍼와이즈의 평가액을 기준을 했을 때, 이러한 이론의 가치는 10억 달러에 이른다. 만약 그 이론이 올바른 것으로 판명된다면, 각자 트랜스퍼와이즈의 지분 20% 가량을 소유하고 있는 카만과 힌리커스가 엄청난 부를 손에 쥘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에스토니아가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전략에 타당성을 더해 줄 수 있으며, 그 무엇보다도 전세계적으로 3조 달러에 달하는 소비자 간 외환 거래의 과점체제를 뒤엎을 수도 있다.
 에스토니아판 마크 주커버그와 제프 베조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를 러시아와 갈라놓고 있는 접경지대에 자리한 에스토니아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억압체제 덕분에 오늘날 발트해의 실리콘밸리라는 위치에 올라섰다. 냉전 시절 소련은 당시 불붙던 독립 운동의 싹을 없애기 위해 에스토니아의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 과학을 가르치는 것을 제한했고 대신 학생들이 컴퓨터와 정보기술을 배우는 데 집중하도록 했다. 그 결과 에스토니아 출신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은 소비에트 연방의 우주 프로그램과 KGB의 간첩 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이로부터 2년 후 에스토니아는 독립국가가 됐다. 넷스케이프의 인터넷 브라우저가 등장한 것이 이로부터 3년 후의 일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관료주의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고 난 후, 핀란드어에 가까운 우랄어를 사용하며 전략에 능한 에스토니아인들은 전통적 인프라의 한계를 한 달음에 뛰어넘고 창업가 정신이 넘치는 전자공화국(e-republic)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 및 분권화되어 있는 에스토니아에서는 정부관공서를 방문할 일이 별로 없다. 국가 전역에서 광대역 Wi-Fi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2007년부터 전자투표와 휴대폰을 이용한 신분증제도가 도입됐다. 2000년부터는 문자메세지로 주차료를 낼 수 있게 됐다. 국가교육과정에 프로그래밍이 포함되어 있고 일인당 스타트업의 수 기준으로 유럽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국 에스토니아는 스카이프와 한 때 높은 인기를 누렸던 P2P 음악서비스 카자(Kazaa)를 이미 세계 시장에 선보인 바 있다.

이러한 환경과 그 어떠한 체제도 신성불가침이나 불변이 아니라는 믿음이 오늘날의 힌리커스와 카만 그리고 트랜스퍼와이즈의 직원들을 탄생시켰다. 현재 트랜스퍼와이즈의 세일즈 사무실과 본사는 런던에 위치해있지만, 대부분의 개발업자를 포함한 직원의 3분의 2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거주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한 카만은 발트해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야후 파이낸스(Yahoo Finance)와 유사한 서비스를 구축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런던 딜로이트 지사에서 은행 및 금융업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업무를 잠시 맡게 되었다. 카만은 런던에서 같은 에스토니아 출신의 힌리커스를 만났다.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머였던 힌리커스는 대학생 시절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수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했으며, 학교 수업을 듣는 대신 스카이프의 창업자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 끝내 퇴학당했다. 힌리커스는 스카이프에서 채용한 최초의 직원이었다.
 디지털 앱을 통한 P2P 기반의 송금 서비스
런던에서 해외파견직원으로 근무하던 이 둘에게 계시와도 같은 깨달음이 스친 것은 2007년의 일이다. 그 당시 스카이프의 전략담당으로 엄밀히 말해 근무지가 에스토니아에 위치했던 힌리커스는 유로화로 임금을 지급받았으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파운드화가 필요했다. 반면 파운드화로 임금을 지급받았던 카만은 학자금 대출과 탈린에 있는 주택의 융자금을 상환하는 데 유로화가 필요했다. 은행의 경우 송금수수료를 부과하고 환율에 어느 정도의 이윤(mark-up)이 계산돼 있었다. 자주 외화송금을 해야 했던 이 둘은 쏠쏠치 않은 금액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어느 해 카만은 계좌에 이체된 금액이 예상했던 것보다 500유로나 더 적은 것을 보고 거래은행인 HSBC가 크리스마스 보너스의 송금을 처리하면서 오류를 낸 것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은행은 송금액의 10% 혹은 심지어 12%를 수수료로 떼어갑니다. 직접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제게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힌리커스의 말이다. “저희는 사실상 돈 자체를 옮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돈은 이미 있어야 할 곳에 있는데 이 돈을 국경을 넘어 송금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의 두 창업자는 간단한 해결책을 고안했다. 힌리커스가 자신의 에스토니아 은행 계좌에서 카만의 에스토니아 은행계좌로 유로화를 송금하고, 카만은 자신의 영국 HSBC 계좌에서 힌리커스의 영국 로이즈 계좌로 파운드화를 송금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미드마켓 레이트(midmarket rate)로 알려진 실제 환율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외환거래에 많은 시간을 소요할 필요가 없었고 외화송금 수수료를 아낄 수 있었다. 곧 이 둘은 이러한 방법으로 환전하기를 바라는 다른 에스토니아 출신 동료들과 스카이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카이프를 매개로 한 환전의 장은 결국 트랜스퍼와이즈로 발전했다. 2011년 둘은 사표를 던지고 1년 동안 자비로 버틴 끝에 130만 달러의 종잣돈을 마련했다. 일년 후 600만 달러의 투자금을 추가로 유치했고, 2014년 억만장자 리차든 브랜슨이 26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오늘날까지 트랜스퍼와이즈는 9100만 달러의 벤처투자금을 유치했다.

“저희 서비스가 점점 더 많이 활용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커졌습니다.” 디지털로 송금하는 것이 이메일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쉬워야 한다고 믿었던 카만이 말했다. “이는 거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해결하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지요.”

그렇다면 트랜스퍼와이즈는 어떻게 이용할까? 에스토니아를 방문하기 전, 나는 트랜스퍼와이즈의 앱을 이용해 300달러 가량의 돈을 유로로 환전해 봤다. 트랜스퍼와이즈가 사용하는 시스템은 거대 금융기관들이 내부적으로 수요자와 판매자를 매칭함으로써 비용이나 수수료 없이 증권을 ‘공시세(cross-trade)’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경우는 공식적인 미드마켓 가격이 존재하기 때문에 수요자나 판매자 모두 투기를 하지 않아 명확성이 보장된다. 트랜스퍼와이즈가 컴퓨터를 이용해 수요자와 판매자 모두 돈을 교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동시에 확인을 하면 되는, 간단히 말해 밸런싱을 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매칭 시스템을 이용하면 돈이 국경을 넘나들 필요가 거의 없어진다. (트랜스퍼와이즈는 이처럼 명확한 ‘P2P 환전 루트’를 30가지의 국가 조합(country combination)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오호라, 90분이 지난 후 나의 유럽 계좌에 250유로가 입금되었다. 스프레드 없이 3달러의 수수료만 내면 됐다. (수수료는 송금액에 따라 증가한다. 10만 달러를 송금하면 710달러의 수수료가 청구된다.)

내가 이번에 환전한 금액은 300달러 남짓했지만, 오늘날 트랜스퍼와이즈를 통한 송금액은 매달 7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이미 60여 개 국가에서 100만 명의 소비자들이 트랜스퍼와이즈를 통해 송금하고 있으며, 500여 가지 유형의 거래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폴란드 즐로티(zloty)화를 방글라데시 타카(taka)화로 송금할 일이 있는가?) 소액의 수수료가 조금씩 모여 매출로 이어진다. 일년 전 매달 1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던데 반해, 현재 트랜스퍼와이즈는 매달 500만 달러 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트랜스퍼와이즈의 궁극적인 고객은 개별 소비자다. 전통적으로 은행을 통한 송금은 트랜스퍼와이즈보다 10배는 더 높은 비용이 드나, 대규모 거래에서는 반올림 오차에 불과하며 또한 이는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 검증된 방법이다. 현재 송금에 번거로운 SWIFT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은행은 트랜스퍼와이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연간 150조 달러에 이르는 외화송금 시장에서, 소비자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3조 달러 가량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소비자 송금 시장은 45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이 발생하는 꽤 큰 규모의 시장이며, 해외에서 채용되는 글로벌 인력의 수가 점점 증가하면서 이 시장 역시 성장하고 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2억3000만 명의 인구가 출생지가 아닌 다른 국가에서 거주하고 있다). 트랜스퍼와이즈의 고객은 주로 본국의 주택융자금, 휴대폰 요금, 기부금 등을 처리하기 위해 본인 명의의 다른 은행계좌로 송금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트랜스퍼와이즈에서 명명한 대로 “친구를 ATM으로 활용하기”위해 트랜스퍼와이즈를 사용한다.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트랜스퍼와이즈의 진정한 경쟁상대는 웨스턴 유니온(Western Union)과 머니그램(MoneyGram)이다. 웨스턴 유니온은 이미 웹사이트와 앱을 통해 송금서비스로 3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전세계 60만 개에 이르는 오프라인 스토어와 키오스크로 사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트랜스퍼와이즈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인터페이스(실제로 내가 경험해 보니 웨스턴 유니온의 앱보다 트랜스퍼와이즈를 통해 송금하는 것이 더 쉬웠다)와 가격에서 우세를 점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트랜스퍼와이즈는 보다 실존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트랜스퍼와이즈의 사업의 핵심이 되는 P2P 기술은 1990년대 등장했다. 비트코인(Bitcoin)의 동력이 되는 기술인 블록체인(Blockchain)은 이보다 훨씬 더 고도화된 형태로, 기업과 개인간 거래 모두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향후 10년 이내 개인 간에 이루어지는 국제 송금의 20%가 일련의 공개원장(public ledger)을 활용하는 블록체인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블록체인은 제3의 중개업체를 사라지게 만들고, 거의 즉각적인 송금이 가능해지도록 할 것이다. 트랜스퍼와이즈의 앱은 그 ‘중간 단계’일 뿐이다.
 안드리센 호로위츠가 든든한 후원사
이에 대해 트랜스퍼와이즈의 든든한 후원사인 안드리센 호로위츠의 벤 호로위츠는 상대적으로 작은 틈새시장을 노리는 트랜스퍼와이즈가 안전한 입지를 유지할 것이라 반박한다. “블록체인이 향후 수많은 응용사례를 창출하는 정말로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보다는 오늘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먼저 나올 것입니다.”

힌리커스 역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국제송금을 할 때, 현재로서는 블록체인이 이론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매일같이 국제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록체인의 매우 실용적인 응용사례라 할 수 있는 매우 실질적인 기업이 무엇인지 알려드릴까요? 바로 트랜스퍼와이즈입니다.”

- SAMANTHA SHARF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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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스기사] 벼룩의 간 빼먹기
광고에 나오는 낮은 수수료에 현혹되지 말라. 송금서비스 업체는 수수료 및 환율에 포함된 스프레드의 두 가지 방식으로 이윤을 창출한다. 자, 그렇다면 에스토니아에 1000유로를 송금하는 데 실질적으로 얼마의 비용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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