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우석훈作 '모피아'의 '외화표시채권'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우석훈作 '모피아'의 '외화표시채권'
글로벌화된 세계에서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도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1992년 조지 소로스의 공격을 받은 영국은 단 하루 만에 손을 들었다. 한국이 겪은 1997년 외환위기도 소로스의 바트화 공격에서 시작됐다. 글로벌 투기세력들이 작정하면 미국도 안심하기 어렵다.
우석훈의 [모피아]는 헤지펀드가 어떻게 한 국가의 경제를 공격하고, 파괴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투기세력이 겨누는 대상은 한국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을 무너뜨리려는 투기세력이 외부가 아닌 우리 내부의 경제엘리트라고 가정했다는 점이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의 저자다. 이 소설은 현실과 가상을 오간다. 2012년 대선에서 보수당 집권이 무너지고 진보성향의 ‘시민의 정부’가 들어선다. 2014년,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지난 정권의 대규모 감세를 이어받은 새 정권은 좀처럼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 시민의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남북통일을 앞세워 위기 타개에 나선다. 외환은행 매각 등 직전 정권에서 행해진 경제범죄에 대한 국정조사도 들어간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국 경제를 장악해온 모피아들이 좌시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원하는 인물을 국무총리로 내세운 후 총리가 경제 결정권을 갖도록 ‘경제쿠데타’를 기획한다. 이 기획을 진두지휘하는 자는 전 경제부총리인 이현도. 이현도는 비밀 헤지펀드 조직을 갖고 있다. 그는 이들을 이용해 공기업의 외화표시 채권을 투매, 채권값을 폭락시키는 작전을 짠다. 정부의 보증을 받는 공기업 채권이 폭락하면 한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 신용도가 급락하면서 환율이 폭등하고 자금 경색이 경제를 얼어붙게 만든다.
이현도의 비밀 헤지펀드팀이 가진 공격 자금은 22조원. 여기에는 남북통일을 바라지 않는 미국 펜타콘 무기거래업자들의 자금도 포함돼 있다. 이현도는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5일 간의 시간을 준다. 대통령은 공격을 막을 자금을 구하기 위해 오지환 등 대통령특사를 국내외로 파견한다.
모피아는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의 영문약자인 MOFE(Ministry of Finance and Economy)와 마피아(Mafia)를 합친 단어다. ‘마피아처럼 활동하는 재정관료집단’이라는 의미니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다. 과거 모피아는 높은 애국심과 희생정신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산이 깊으면 골도 깊은 법. 모피아는 막강한 힘을 개인과 조직을 위해 쓰기도 했다. 모피아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한국 경제를 자해한다는 아이디어는 발칙하다.
한국은행 조사팀장 출신인 오지환 청와대 경제특보는 기업의 자금 이동을 모니터링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한국전력·산업은행 등 공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한 외화표시채권의 가산금리만 갈수록 낮아지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일반 회사채는 물론이고 국채와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의 가산금리는 상승하고 있던 때였다. 오 특보는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긴급보고한다. “제가 보기엔 이건 작전입니다. 누군가가 공기업 사무라이 본드나 양키본드를 매집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모아놓고 있다가 한번에 터뜨릴 때 이런 지표 현상이 나타납니다. 정부 민간기업이 다 어렵고 지표가 나쁜데 유독 한국 공기업만 잘나간다, 그건 좀 이상하죠.”
헤지펀드가 공기업의 외환표시 채권을 일시에 ‘투매’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기업이 탄탄하고 좋을 때라면 누군가가 이 채권을 사들일 것이다. 하지만 채권값이 투기로 인해 실제 이상으로 고평가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투자자들이 시장에 나온 채권을 사지 않을 테고, 그러면 채권 값은 폭락한다.
공기업 채권 금리는 금융채나 회사채의 벤치마크다. 공기업 채권 금리가 급등하면 금융채와 회사채 금리도 덩달아 뛴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이나 연기금을 동원해 공기업 채권을 사들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상황이 나쁘다’는 신호를 시장에 준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투자자들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회수하고, 투자은행(IB)들이 공매도를 이용해 하락장에 베팅하면 환율이 폭등한다. 오지환은 말한다. “달러를 풀더라도 길어도 일주일 못가 (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날 수 있습니다” 이현도는 한국 경제를 부도로 몰고가기 위해 외화표시채권을 주목했다. 외화표시채권이란 외국 정부와 기업이 해당 외환국의 채권시장에서 해당국 화폐로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일본 채권시장에서 엔화 표시로 발행하는 채권은 ‘사무라이본드’라 부른다. 원리금 상환은 엔화로 한다. 사무라이본드는 1970년 아시아개발은행이 처음 발행했다. 한국계 기관으로는 산업은행이 1978년 발행에 성공했다. ‘양키본드’는 미국 채권시장에서 발행한 달러 표시 채권이다. 미국 자본시장이 다른 곳보다 안정돼 있고, 낮은 금리로 달러를 장기 차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계 기업들은 양키본드 발행을 선호한다. 한국은 1990년 산업은행이 처음으로 발행했다. 1992년에는 한국전력과 삼성전자가 양키본드를 발행했다. 불독본드(bulldog bond)도 있다. 영국 채권시장에서 발행되는 파운드 표시 채권이다. 중국 본토에서 발행되는 위안화 표시 채권은 ‘판다본드’로 부른다. 외국 정부나 회사가 한국에서 원화표시로 채권을 발행하면 ‘아리랑본드’다. 1995년 아시아개발은행이 첫 발행했다.
채권을 발행하는 국가의 통화가 아닌 제3국의 통화로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종류의 채권을 ‘유로본드’라 부른다. 한국에서 발행한 달러 표시 채권은 ‘김치본드’라고 부른다. 2006년 미국 투자은행 베이스턴스가 첫 발행했다. 한국에 달러 유동성이 풍부해 조달금리가 원화보다 낮을 때 해외 기업은 한국에서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한다. 중국 본토가 아닌 곳에서 발행되는 위안화 표시 채권은 ‘딤섬본드’라고 부른다. 홍콩에서는 홍콩달러가 아닌 위안화 표시로 채권이 종종 발행된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이런 종류의 채권은 ‘쇼군본드’라고 불린다.
대통령의 반격에 화가 난 이현도는 대통령에게 최후통첩을 한다. 하야하지 않으면 무한대의 자금을 동원해 공기업 채권을 투매하겠다는 것이다. 이현도팀의 공격이 시작됐다. 청와대경제수석이 된 오지환은 외환은행 딜링룸에서 헤지펀드와 전면 대결을 벌인다. 이현도의 헤지펀드가 공기업 외화표시채권을 내다팔면 오지환은 케이맨제도에 만들어놓은 ‘학익 홀딩스’를 통해 이를 사들인다. 채권 공격이 여의치 않자 이현도팀은 ‘환치기(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각각의 계좌를 만든 후 한 국가의 계좌에 돈을 넣고 다른 국가에 만들어 놓은 계좌에서 그 나라의 화폐로 지급받는 불법 외환거래)’를 통해 환율을 직접 공격한다. 원화가 투매되면서 1250원대였던 환율이 2000원대 인근까지 치솟는다. 대통령이 패배를 인정하고 하야를 결심한다. 하지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ATM기 앞에 줄 선 국민들이 외환방어 자금으로 쓰라며 쌈짓돈을 청와대 경제팀에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실탄을 마련한 청와대 경제팀은 마침내 원화 공격을 막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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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모피아]는 헤지펀드가 어떻게 한 국가의 경제를 공격하고, 파괴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투기세력이 겨누는 대상은 한국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을 무너뜨리려는 투기세력이 외부가 아닌 우리 내부의 경제엘리트라고 가정했다는 점이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의 저자다.
외환위기 후 실제 사건 팩션화한 소설
하지만 오랫동안 한국 경제를 장악해온 모피아들이 좌시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원하는 인물을 국무총리로 내세운 후 총리가 경제 결정권을 갖도록 ‘경제쿠데타’를 기획한다. 이 기획을 진두지휘하는 자는 전 경제부총리인 이현도. 이현도는 비밀 헤지펀드 조직을 갖고 있다. 그는 이들을 이용해 공기업의 외화표시 채권을 투매, 채권값을 폭락시키는 작전을 짠다. 정부의 보증을 받는 공기업 채권이 폭락하면 한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 신용도가 급락하면서 환율이 폭등하고 자금 경색이 경제를 얼어붙게 만든다.
이현도의 비밀 헤지펀드팀이 가진 공격 자금은 22조원. 여기에는 남북통일을 바라지 않는 미국 펜타콘 무기거래업자들의 자금도 포함돼 있다. 이현도는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5일 간의 시간을 준다. 대통령은 공격을 막을 자금을 구하기 위해 오지환 등 대통령특사를 국내외로 파견한다.
모피아는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의 영문약자인 MOFE(Ministry of Finance and Economy)와 마피아(Mafia)를 합친 단어다. ‘마피아처럼 활동하는 재정관료집단’이라는 의미니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다. 과거 모피아는 높은 애국심과 희생정신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산이 깊으면 골도 깊은 법. 모피아는 막강한 힘을 개인과 조직을 위해 쓰기도 했다. 모피아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한국 경제를 자해한다는 아이디어는 발칙하다.
한국은행 조사팀장 출신인 오지환 청와대 경제특보는 기업의 자금 이동을 모니터링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한국전력·산업은행 등 공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한 외화표시채권의 가산금리만 갈수록 낮아지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일반 회사채는 물론이고 국채와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의 가산금리는 상승하고 있던 때였다. 오 특보는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긴급보고한다. “제가 보기엔 이건 작전입니다. 누군가가 공기업 사무라이 본드나 양키본드를 매집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모아놓고 있다가 한번에 터뜨릴 때 이런 지표 현상이 나타납니다. 정부 민간기업이 다 어렵고 지표가 나쁜데 유독 한국 공기업만 잘나간다, 그건 좀 이상하죠.”
헤지펀드가 공기업의 외환표시 채권을 일시에 ‘투매’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기업이 탄탄하고 좋을 때라면 누군가가 이 채권을 사들일 것이다. 하지만 채권값이 투기로 인해 실제 이상으로 고평가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투자자들이 시장에 나온 채권을 사지 않을 테고, 그러면 채권 값은 폭락한다.
공기업 채권 금리는 금융채나 회사채의 벤치마크다. 공기업 채권 금리가 급등하면 금융채와 회사채 금리도 덩달아 뛴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이나 연기금을 동원해 공기업 채권을 사들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상황이 나쁘다’는 신호를 시장에 준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투자자들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회수하고, 투자은행(IB)들이 공매도를 이용해 하락장에 베팅하면 환율이 폭등한다. 오지환은 말한다. “달러를 풀더라도 길어도 일주일 못가 (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날 수 있습니다”
불독본드, 판다본드, 아리랑본드 등 다양
채권을 발행하는 국가의 통화가 아닌 제3국의 통화로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종류의 채권을 ‘유로본드’라 부른다. 한국에서 발행한 달러 표시 채권은 ‘김치본드’라고 부른다. 2006년 미국 투자은행 베이스턴스가 첫 발행했다. 한국에 달러 유동성이 풍부해 조달금리가 원화보다 낮을 때 해외 기업은 한국에서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한다. 중국 본토가 아닌 곳에서 발행되는 위안화 표시 채권은 ‘딤섬본드’라고 부른다. 홍콩에서는 홍콩달러가 아닌 위안화 표시로 채권이 종종 발행된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이런 종류의 채권은 ‘쇼군본드’라고 불린다.
대통령의 반격에 화가 난 이현도는 대통령에게 최후통첩을 한다. 하야하지 않으면 무한대의 자금을 동원해 공기업 채권을 투매하겠다는 것이다. 이현도팀의 공격이 시작됐다. 청와대경제수석이 된 오지환은 외환은행 딜링룸에서 헤지펀드와 전면 대결을 벌인다. 이현도의 헤지펀드가 공기업 외화표시채권을 내다팔면 오지환은 케이맨제도에 만들어놓은 ‘학익 홀딩스’를 통해 이를 사들인다. 채권 공격이 여의치 않자 이현도팀은 ‘환치기(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각각의 계좌를 만든 후 한 국가의 계좌에 돈을 넣고 다른 국가에 만들어 놓은 계좌에서 그 나라의 화폐로 지급받는 불법 외환거래)’를 통해 환율을 직접 공격한다. 원화가 투매되면서 1250원대였던 환율이 2000원대 인근까지 치솟는다. 대통령이 패배를 인정하고 하야를 결심한다. 하지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ATM기 앞에 줄 선 국민들이 외환방어 자금으로 쓰라며 쌈짓돈을 청와대 경제팀에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실탄을 마련한 청와대 경제팀은 마침내 원화 공격을 막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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