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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반퇴의 정석(15)] 자녀 교육·결혼 돕되 올인은 금물

[김동호의 반퇴의 정석(15)] 자녀 교육·결혼 돕되 올인은 금물

“요즘 왜 이렇게 자살이 많아…. 우리 동네에 여자 한 명이 죽었는데, 공원 옆 나무에서….” “그러게 말이야. 딸 결혼시킨다고 빚을 많이 졌는데 그러고는 감당이 안 돼서 고민을 그렇게 했다는데 그만….”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녀 결혼비용으로 허리가 휘는 사람이 많다. 경제력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동원하는 게 한국의 풍속인 듯싶다. 최근 다녀온 결혼식 한 곳은 신혼부부 둘 다 직장에 다니는데도 딸이 부모에게 신혼여행비까지 타갔다는 얘길 들었다. 또 어떤 60대 여성은 아들 부부에게 신혼집을 마련해주고 외곽에 있는 소형 주택으로 줄여서 이사를 갔는데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부모 부양하고 자식 뒷바라지하고
베이비부머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다. 과거 전통 사회에선 자녀가 장성하면 노쇠한 부모를 모셨다. 고령화가 본격화하기 전이던 1990년대만 해도 자녀가 부모에게 생활비며 용돈을 보내는 전통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1~2차 베이비부머를 끝으로 이런 전통은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1차 베이비부머는 1955~63년 사이에 태어난 710만 명의 인구집단이고, 2차 베이비부머는 68~74년 사이에 출생한 604만 명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들 40대 이상 세대까지는 부모 부양에 대한 의무감을 대체로 갖고 있다. 그런 전통을 보면서 자랐고 형제가 많아 서로 보고 배우며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1차 베이비무머의 자녀·조카뻘인 ‘에코 베이비부머’부터는 다르다. 79~85년 사이에 출생한 이들 3차 베이비부머 세대 540만 명은 앞 세대와 다른 인구 특성을 갖고 있다. 이들은 10대 때 한국 사회가 외환위기를 겪은 후 저성장 체제로 접어들면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은 세대다. 이들의 부모는 1차 베이비부머 세대로 본격적으로 100세 장수를 바라보는 인구집단이다.

이렇게 장수하는 부모를 자녀가 부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미 일본에서는 ‘노노(老老)부양’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70대 자녀가 90대 부모를 정상적으로 모시는 것은 체력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렵다. 결국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만의 노후 준비 밖에 없다. 노후에도 믿을 수 있는 건 제 앞가림도 힘든 자식보다는 탄탄한 재무적 준비와 건강관리 밖에 없다는 얘기다. 자녀 결혼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리하게 도와주면 노후빈곤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녀에게 평소 지원 범위와 한계를 설명하고 분명한 선긋기를 해놓아야 한다.

자녀의 결혼이 노후를 빈곤으로 빠뜨리는 ‘중대한 리스크’가 되는 이유는 고령화 탓이다. 과거에는 환갑을 지내고 10년 안팎이면 인생을 마감했다. 1970년 기대수명은 61.9세였다. 이로부터 43년이 흐른 2013년의 기대수명은 81.9세에 이른다. 2014년에는 82.4세로 다시 늘어났다.

문제는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집 팔아서, 빚까지 내가면서 자녀 결혼 비용을 지원하고 나서도 30년을 살아야 한다. 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남자는 주로 집을 마련하느라 1억5000여만원이 들고, 여자는 주로 혼수 마련에 8000여만원이 든다고 한다. 웨딩컨설팅 듀오웨드가 발표한 ‘2015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신혼부부 한 쌍당 실제 총 결혼자금은 주택 비용을 포함하면 평균 2억3798만원에 달했다. 전체 결혼 비용을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예식장 1593만원, 웨딩패키지 297만원, 신혼여행 451만원, 예물 1608만원, 예단 1639만원, 가전·가구 등 혼수 1375만원, 주택 1억6835만 원으로 집계됐다. 주택 자금은 서울·수도권 1억8089만원, 지방(강원·영남·충청·호남 등) 1억5419만원으로 조사됐다. 신혼 주택 마련에 들인 전국 평균 비용은 약 1억6835만원이었다. 총 결혼 비용 2억3798만원에서 남성은 1억5231만원(64%), 여성은 8567만원(36%)을 분담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수도권에서 남성 1억6476만원, 여성 9268만원, 지방에서 남성 1억3828만원, 여성 7778만원을 사용했다.
 노후 위협하는 최대의 리스크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이다. 경제력이 있는 신혼부부는 더 많을 수도 있고, 이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 수도 있다. 결혼식에 가보면 부모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호텔이든 웨딩홀이든 빛나게 결혼식 치르는 모습을 보면 어느 부모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쾌적한 주거환경에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퇴직 후에도 생계를 위해 계속 일해야 하는 반퇴시대의 현실은 냉혹하다. 우선 ‘3포 시대’에 산다는 자녀의 처지를 보자. 3포 시대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고 산다는 의미다.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구해도 나이가 늘어 느지막하게 구하고, 그러니 결혼자금을 모으기도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모는 자녀가 결혼만 해도 고마울 거다. 금융자산을 최소 10억원 이상 갖고 있는 부유층이 아니라면 결국 부모가 집 팔고 빚 내서 자녀 결혼자금을 대고 나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자녀 결혼 리스크를 회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참 어려운 얘기이지만 이 리스크를 피하려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왕도는 없다. 그러나 차선책은 있다. 우선 자녀에게 처음부터 결혼에 대한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워줘야 한다. 자신의 결혼자금은 최대한 스스로 마련하라고 평소에 교육시켜야 한다. 부모가 지원해줄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선을 그어 놓는 것도 필요하다. 부모가 지원해줄 부분은 결혼 직전에 집을 팔거나 빚을 내는 방식이 아니라 평소에 준비해야 한다. 계란을 안전하게 보관하려면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처럼 자녀 결혼에 지원할 자금 역시 다른 용도와 분리해 모아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준비없이 결혼에 직면해 돈을 융통하려면 집을 팔거나 연금을 깨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방법은 많을 것이다. 집집마다 사정도 천차만별이어서 일반화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남자 평균 1억5000만원(여자는 8500만 원)에 달하는 결혼 자금을 자녀가 스스로 모두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고소득 전문직이 아닌 장삼이사 직장인이 1억5000만원을 모으려면 아무리 빨라도 6~7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어느 정도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이든 부모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결혼이 코앞에 닥쳐서 준비하려면 노후빈곤으로 전락하는 지름길이자 보증수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되겠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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