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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호화로움을 입히다

역사에 호화로움을 입히다

캄보디아 중세 도시 앙코르, 불교 사원 유적지 관광에 대형 리조트 등 편의시설로 매력 더해
시엠립의 호화 리조트 품바이탕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앙코르 와트 관광을 잠시 미루고 며칠 머무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사원에서 나를 안내한 닌보릭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을 용케도 피해 다녔다. 우리는 관광객이 몰리는 웨스트 게이트 대신 그곳에서 약 1.6㎞ 떨어진 이스트 게이트로 입장했다.

12세기에 세워진 원뿔형 첨탑 5개가 초록색 잔디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부서진 돌 계단을 오르다 보니 앙코르 와트가 불교 사원이 되기 수세기 전 건물 벽에 새겨진 힌두교 조각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도 이 사원에서는 불교 의식이 자주 거행된다. 주황색 장삼을 입은 승려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은 앙코르 와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시엠립을 찾는 대다수 관광객이 그렇듯이 나도 중세 도시 앙코르를 보려고 이곳에 왔다. 약 1000㎢의 면적에 석조 사원들이 산재한 이곳은 세계 최대의 종교 유적지로 꼽힌다. 며칠 동안 이 중세 도시를 걸어 다니며 사원들을 구경했다. 타프롬 사원은 앙코르 와트보다 더 인상적인 건축물들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거대한 비단목화 나무와 교살목들이 건축물을 휘감고 있는 모습은 자연이 인간의 작품을 비웃는 듯이 보인다.

뉴욕 시보다 더 넓은 앙코르는 9세기~15세기 동남아 대부분을 지배한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다. 19세기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가 앙코르 와트에 관해 쓴 글이 20세기 중반 서양인들의 관심을 끌면서 부유한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은 1930년대에, 재클린 케네디는 1967년 이곳에 다녀갔다. 하지만 1975년 크메르 루즈의 공포정치가 시작되면서 관광이 중단됐다. 크메르 루즈는 4년 간의 통치 기간 동안 150만 명 이상의 캄보디아인을 학살했다.

1979년 크메르 루즈 정권이 붕괴한 이후 1990년대에 와서야 앙코르 와트 관광이 재개됐다. 처음 몇 년 동안은 관광객 수가 얼마 안 됐지만 그 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엔 200만 명을 웃돌았다. 캄보디아는 이웃 국가들보다 한발 늦게 관광산업 진흥에 눈을 돌렸다. 그래서인지 베트남과 태국, 라오스보다 더 가난하고 개발이 덜된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최근엔 호화 관광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내가 머물렀던 시엠립의 호화 리조트 품바이탕은 도시의 복잡함을 잊을 수 있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3만2000㎡의 잘 손질된 정원에 45채의 빌라가 있는 이 리조트는 지난해 말 문을 열었다. 키 큰 사탕야자 나무와 논, 물소들이 눈길을 끈다.

시엠립 도심에서 툭툭(3륜 택시)을 타고 잠깐 달리다 보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품바이탕이 나온다. 편안한 대형 침대를 갖춘 널찍한 빌라와 훌륭한 레스토랑, 시설 좋은 스파가 손님들을 즐겁게 한다. 이 리조트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앙코르 와트 관광을 잠시 미루고 며칠 머무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지난해 앤절리나 졸리가 영화(크메르 루즈 정권 하에서 가족의 파멸을 맞은 젊은 여성의 이야기) 촬영 차 이곳에 머무른 뒤 객실 예약이 급증했다.

이 한가로운 강변 마을에는 품바이탕 말고도 멋진 호텔이 꽤 있다. 훌륭한 레스토랑과 디자이너 숍도 많이 들어섰다. 옛 프랑스 식민지 구역의 ‘칸달’ 빌리지에 카페와 레스토랑, 상점들이 모여 있다. 캄보디아의 특징을 살린 패션과 가전 브랜드 트룽크, 그리고 실크 스카프와 칠기, 정교한 도자기를 파는 루이즈 루바티에르 등이 대표적이다.

마지막 날 밤엔 시엠립 도심 부근의 컨트리 레스토랑 ‘빌라 찬다라’에서 저녁을 먹었다. 시엠립에 12년 째 살고 있는 ‘어바웃 아시아 트래블’(맞춤 여행사)의 창업자 앤디 부스가 함께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뒤 1980~90년대에 런던에서 은행가로 재산을 모은 그는 현재 시엠립에서 기업인 겸 자선가로 활동한다. 그는 여행사에서 얻은 수익으로 캄보디아 전역의 100여 개 학교에 자금을 지원하며 이 나라의 교육 발전을 돕는다.

난 부스에게 “앙코르의 사원들도 훌륭하지만 맛있는 캄보디아 음식과 멋진 새 호텔들, 친절한 사람들이 더 인상 깊다”고 말했다. 그는 그게 바로 자신이 캄보디아에서 사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엄청난 역경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그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 그레이엄 보인턴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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