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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 꺾인 서울의 ‘미친 전세’] 일부에선 역전세난 걱정도 솔솔

[기세 꺾인 서울의 ‘미친 전세’] 일부에선 역전세난 걱정도 솔솔

입주량 늘며 수천만원 떨어진 곳도... 집값 하락, 금리 상승 등의 영향도
서울 전세시장이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다. 지표상으로 전셋값 상승률이 예년에 비해 높지 않다. 사진은 성북구 길음뉴타운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 전경. / 사진:중앙포토
“좀 더 기다렸어야 했는데…. 그때 은행 대출까지 받아 들어왔거든요.” 서울 길음동의 전용면적 59㎡형 아파트에 사는 이모(39)씨는 지난 8월 인근 지역에서 전세로 이사 왔다. 계약금액은 4억1000만원. 그로부터 3개월여 지난 지금은 3억 8000만원선에 시세가 형성된다. 이씨는 “괜히 서둘러 계약했나 싶어 후회된다”고 말했다.

고삐 풀린 듯 치솟던 서울 전셋값이 진정되고 있다. 전세 물건이 부족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세난이 완화되는 모습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서울 주택 전셋값이 1.83% 올랐다. 지난해(7.25%)의 4분의 1 수준이다. 전셋값이 하락세(-7.80%)를 보인 2004년 이후 2012년(11월까지 0.24%)에 이어 두 번째로 상승률이 낮다. 민간기관이 내놓는 수치도 비슷하다. 올 들어서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고 특히 11월부터 크게 둔화됐다. KB국민은행 조사 결과 서울 전셋값은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주간 기준 변동률이 0.06~0.1% 수준이었으나 11월 들어선 0.03%대로 낮아졌다.
 성북·마포구 전셋값 둔화 두드러져
전세시장의 변화가 두드러진 곳은 성북·마포구 등 지난 1~2년간 전셋값이 많이 뛴 지역이다. 이들 지역에선 지난해만 해도 전세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매물이 나오면 당일 바로 소화됐다. 매매가격의 90%를 웃도는 전셋값이 속출하면서 ‘미친 전세’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최근엔 사정이 다르다. 전세 물건이 나와도 예년에 비해 소진 속도가 떨어지고, 가격이 약세를 보이는 단지가 늘고 있다.

성북구 아파트 전셋값은 11월 28일 기준으로 한 주 새 0.03% 떨어졌다. 이곳 전셋값이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한 것은 지난 2012년 12월 17일(-0.01%) 이후 198주 만이다. 길음동 길음뉴타운 6단지 전용면적 59㎡형 전세는 지난 10월 4억 2000만원에 계약됐으나 지금은 3억8000만원대에 나온다. 두 달 새 3000만~4000만원 빠진 것이다. 자금 사정이 급한 집주인은 3억4000만원짜리 급전세를 내놓기도 한다. 돈암동 한신·한진아파트 전용 59㎡형도 지난 여름보다 1000만~2000만원 빠진 2억5000만원선이다. 저층은 2억2000만원에도 나온다. 길음동 양지공인 길현순 대표는 “전세 수요가 많이 줄어 한 달 이상 소화되지 않는 물건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아현동의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형은 지난 9월보다 5000만원 내린 6억원으로 떨어졌다. 옥수동 래미안옥수리버젠 59㎡형도 3~4개월 새 3000만원 이상 내렸다. 아현동 A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물건은 꾸준히 나오는데 전세를 알아보러 오는 사람도, 전화문의도 별로 없다”고 전했다.

지난해까지 연평균 6~7%의 상승률을 보이던 서울 전셋값에 힘이 빠진 데는 전셋집 공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2만3000여 가구로 지난해보다 11.7% 증가했다. 경기도 입주물량이 크게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올해만 8만7000여 가구로 최근 3년 간(2013~2015년) 연평균 5만7000여 가구보다 50% 넘게 늘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전세난에 허덕이던 수요가 싼 전세를 찾아 경기도 택지지구 등으로 옮겨간 것이 완충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위례신도시와 하남 미사지구에서 아파트 입주가 잇따르자 인접해 있는 강남권(서초·강남·송파구) 전셋값이 지지부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세의 월세 전환도 올해 주춤했다. 지난 10월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31.2%로 지난 3월(38.1%) 이후 약세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한 물량이 많아 월세 수익률이 떨어지자 집주인들이 다시 전세로 임대를 놓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되는 전환율은 10월 말 기준으로 연 5.7%다. 2011년 8.6%에 달했지만 3%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올 들어 둔화한 집값 상승세도 전셋값 오름세를 짓누르고 있다. 집값이 많이 오를 땐 집주인들이 집값 상승분을 전셋값에 반영해 보증금을 올린다. 가격 상승폭이 줄어들면 전셋값을 많이 올리기 부담스러워진다. 11월 말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값 대비 전셋값 평균 비율은 73.3%로 2년 전에 비해 8%포인트가량 올랐다. 집값이 오르면서 전셋값도 덩달아 오른 결과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세입자 입장에서 집값 하락에 대비해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으려면 집값보다 일정 폭 이상 저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세가 꺾인 가운데 기존 세입자들이 시장 눈치를 보며 기존 전셋집에 계속 눌러앉아 있는 것도 전셋값이 들썩이지 못하는 이유다. 전세 재계약은 통상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이뤄진다. 이 때문에 올해 전세 거래량도 줄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10만4107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만9181가구보다 4.6% 감소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상품 거래가 늘면 자연히 가격이 오르듯 전세 거래가 줄면 가격도 안정세를 띠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세 거래량도 줄어
전문가들은 당분간 전셋값이 안정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일각에선 하락 전망도 나온다. 내년부터 입주물량이 급증해 전세 공급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부동산 114는 내년 수도권에 16만여 가구, 2018년 21만여 가구의 아파트가 입주할 것으로 추정했다. 올해보다 각각 36%, 74% 늘어난 규모다. 집값 전망도 불확실해 전셋값 상승을 견인하기 어렵다. 여기다 미국발 금리 상승이 예상되면서 월세에서 전세로 다시 돌아가는 집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지역에선 대규모 입주에 따른 공급으로 ‘역전세난’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역전세난은 전셋값이 갑자기 떨어져 집주인이 계약기간 만료 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현상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내년엔 전세시장의 판도가 바뀌어 역전세난과 집값 하락 등으로 전셋값을 되돌려 받기 힘든 ‘깡통전세’가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은 주택 입주량이 멸실 가구를 고려할 때 과잉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국지적인 상승세를 보이겠지만, 경기도 입주량이 서울 전세 수요를 분산시켜주면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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