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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는 시작에 불과하다?

브렉시트는 시작에 불과하다?

프랑스 대선 후보 마린 르펜의 지지율은 30% 선으로 2차 투표에는 충분히 진출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 6일 뒤의 아침,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옆에 또 다른 낯익은 얼굴이 서 있는 사진이 영국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국 독립당(UKIP) 전 대표 나이절 패라지였다. 모두 보통 사람들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두 사람은 뉴욕시 트럼프 소유 1억 달러짜리 펜트하우스의 번쩍이는 금박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서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은 단순히 싹트는 브로맨스(남자끼리의 친밀한 관계)의 상징이 아니라 더 폭넓은 통합의 증거였다. 극우 포퓰리즘의 마음 맞는 인물들이 국경 너머로 시선을 돌려 서로의 성공을 축하하고 있었다. 패라지 전 대표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들은 브렉시트를 캠페인의 모델로 삼았다”고 뉴스위크에 말하며 “트럼프 선거운동의 마지막 몇 주를 보면 매일 밤 유세 때마다 브렉시트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영국의 나이절 패라지 같은 극우 정치인들이 곧 중대한 결정을 담당할 수도 있다.
패라지 전 대표는 트럼프 타워의 황금 첨탑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거리를 여행했다. 바로 2시간 반 전만 해도 나는 잉글랜드 남단 해안 도시 포츠머스의 빛 바랜 강당에서 열리는 그의 강연회에 참석하려고 비 속에서 떨며 기다렸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시골 장터 같은 행사였다. 이색 상품 판매대에서 헤르만 판 롬파위 당시 EU 상임의장을 ‘젖은 걸레’로 묘사한 패러디 행주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제 패라지 전 대표와 비슷한 관점을 가진 유럽 정치인들은 그들의 운동이 변두리에서 중심부로 올라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영국 국민은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지지해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그 뉴스가 전해지자 프랑스의 강경우파 국민전선의 플로리앙 필리포 부대표는 ‘그들의 세상이 무너지고 우리들의 세상이 온다’는 트윗으로 기쁨을 나타냈다.

과장일지 모르지만 서유럽 전반에서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진보 또는 중도 정치인들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12월 4일 대선 재선거(지난 5월 선거가 무효 판정을 받았다)를 치르는 오스트리아에선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EU 최초의 극우 행정수반이 될 가능성으로 관심을 모았다. 내년 3월 열리는 네덜란드 총선에선 반이슬람 자유당이 정권을 잡고 있는 중도우파 정부를 상대로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 뒤 프랑스의 국민전선도 대권에 도전한다. 내년 6월 총선을 치르는 독일에선 반이민·반이슬람을 표방하는 신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처음으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극우 정당이 모두 선거에서 우위를 점할지는 불확실하다. 프랑스 대선은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접전 양상이다. 국민전선의 대선 후보 마린 르펜의 지지율은 30% 선으로 2차 투표에 진출할 정도는 되지만 엘리제궁 입성에 필요한 50%에는 한참 못 미친다. 네덜란드에선 자유당과 마크 루터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자유민주국민당이 선두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한다. 이는 중도파와 진보파가 안전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국 레딩대학의 유럽 극우 세력 분석가 대프니 할리키오풀루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1년 전에 ‘내년에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고 미국에서 트럼트가 당선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아마 나는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라고 대답했을 성싶다. 지금 상황에선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유럽 지역 주민은 중동 지역 출신 난민들의 유입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여 왔다. 사진은 영국의 이민 반대 시위자들.
이들 정당은 저마다 다르지만 중도 우파와 극우파 무뢰배 사이에 위치한다. 모두 ‘우리가 1순위!’를 내세우는 내셔널리즘 성향을 보인다. 이는 패라지 전 대표의 ‘우리 나라를 되찾겠다’로부터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기본 강령 ‘오스트리아 제일주의’,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공약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슬로건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들은 모두 이민 반대를 표방하지만 일부는 문화적 또는 인종적 명분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반면 더 실용적인 용어로 표현하는 그룹도 있다. 예컨대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네덜란드의 대표적 극우 정당들은 노골적으로 반이슬람을 표방하지만 네덜란드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는 “대규모의 모로코 문제”를 곧잘 지목한다(영국독립당은 다른 유럽 국가 우파들과 달리 다른 EU 국가에서 영국으로 건너오는 이민에 더 초점을 맞췄다). 이들 정당은 모두 때때로 한물간 공업 지역 근로계급 사회를 지지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경제 보호주의 나아가 국유화 같은 정책 등을 곧잘 공약으로 내세운다. 지난 수십 년간 우파보다는 좌파에서 더 많이 내세우던 정책들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지지가 순전히 경제적 우려에서만 기인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들 우파 운동 간의 관계가 항상 우호적이지는 않다. 이들 신흥 포퓰리스트 그룹 중 일부는 대립적인 성향의 탐욕스런 기회주의자다. 예컨대 패라지 전 대표는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의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며 거리를 뒀다. 이 같은 비판은 그가 영국 TV와 주류 신문매체에서 정통성을 지닌 정치 세력으로 인정받는 데 도움이 됐다. 이들 정당 중 일부가 권력을 잡을 경우 “우리가 1순위!”를 외치는 정부들이 모여 서로 치고받으면서 싸움을 벌이는 상황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들 정당은 그런 비판을 일축한다. 패라지 전 대표는 “담장이 튼튼해야 이웃끼리 사이가 좋다”는 옛날 격언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요약한다.

이들 정당·운동 간의 개인적 유대는 강화되고 있다. 패라지 전 대표는 자신의 전 보좌관이자 핵심 측근인 라힘 카삼을 통해 트럼프의 백악관과 연줄이 닿는다. 카삼은 극우 뉴스 사이트 브라이트바트 런던 지국장이다. 그의 사부 격인 스티브 배넌 브라이트바트 뉴스 전 회장이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수석 전략가로 지명됐다. 패라지 전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몇 해 동안 알고 지낸” 사이다. 한편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그리고 프랑스 국민전선 등은 지난해 유럽의회 내에 ‘국가와 자유 유럽(Europe of Nations and Freedom)’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이들 정당은 앞으로 경선에서 서로를 후원하게 된다. 패라지 전 대표는 이들 정당의 후원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뉴스위크에 밝혔다. 일부는 곧 호의적인 미디어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브라이트바트 뉴스가 프랑스와 독일에 진출할 예정이며 그때 가면 르펜과 AfD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거칠고 때로는 인종차별적 또는 이슬람혐오적인 콘텐트를 보유한 브라이트바트는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주저 없이 영국독립당 지지를 표명해 왔다.
어정쩡하게 잔류 캠페인 진영에 속한 테레사 메이 총리는 영국을 EU의 출구로 인도한다.
어떻게 보면 이들 정당이 모든 세부 항목에서 뜻을 같이 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극우 세력 분석가 할리키오풀루는 말한다. 목적의식을 공유한다는 인상만으로도 이들의 선거 승리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그들의 지향점이 같다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이들 그룹의 일원이 선거에서 승리(특히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할 때마다 다른 구성원들의 정통성과 기세가 높아진다. “그들은 ‘보라, 그동안 우리의 주장이 옳지 않았냐’며 의기양양해 한다”고 할리키오풀루는 관측했다.

그들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서유럽의 신흥 포퓰리스트 정당들은 일부 이슈에서 헝가리·폴란드와 손잡을 가능성이 크다. 두 나라 모두 종교 우파 포퓰리스트들(헝가리의 피데스와 폴란드의 ‘법과 정의’)이 집권하고 있다. 이들 정당은 EU 탈퇴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종종 이민·난민 정책에서 유럽의 개입에 반대한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법과 정의당’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대표는 자유주의 유럽에 맞서 ‘문화적 반혁명 운동’을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총리는 12월 4일 실시한 헌법개정 국민투표에 총리 직을 걸었다. 거기서 총리가 패할 경우 포퓰리스트 정당 오성운동(Five Star Movement)이 반사이익을 보게 된다. 내셔널리즘은 그만큼 강하지 않지만 비슷하게 반체제 성향의 정당이다.

네덜란드의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와 프랑스 르펜 국민전선 대표 모두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EU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말한다(오스트리아 자유당의 호퍼 후보는 승리한다 해도 그런 권한을 갖지 못한다). 그들은 EU에서 탈퇴해 훨씬 더 느슨한 구조의 국가간 협력 체제를 새로 구축하고자 한다. 브뤼셀의 EU 정부는 이 같은 위협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 이후 유럽연합의 피에르 모스코비치 경제·금융 담당 집행위원은 한 연설에서 “이 같은 고통스런 각성을 정치적 경종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응 전략에 뜻을 같이하는 EU 지도자는 거의 없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은 국가간 협력 확대가 해법이라고 본다. 그는 지난 9월 “우리 연합에는 유럽적인 특색 그리고 연합의 성격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EU가 망명 정책 같은 논란 많은 영역에서 벗어나 산업부문의 경쟁 촉진 등에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싱크탱크 ‘오픈 유럽’의 브뤼셀 지국 피터 클레페 소장은 “이들 정당이 모두 자신들의 앞날을 통제할 수 없게 됐다고 불평한다는 점이 공통분모”라며 “EU는 분명 불만의 대상이다. 브뤼셀의 얼굴 없는 관료들이 대단히 중요한 결정을 한다”고 말했다.

패리지 전 대표나 르펜 대표 등의 극우 정치인들은 아직 그런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없다. 네덜란드의 루터 총리나 프랑스의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가 각각 네덜란드와 프랑스 총선을 쉽게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모두 풍부한 경험, 차분한 기질, 세계적인 관점을 가진 중도 우파의 온건 성향이다. 그러나 트럼프와 브렉시트 모두 국가에는 무제한의 독립을, 국민에게 문화 또는 인종적 동질성을 약속할 때 극도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내셔널리즘의 물결이 고조됨에 따라 중도파들은 그에 맞서는 더 강력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면 거기에 휩쓸려 침몰하게 될 것이다.

- 조시 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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