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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칭송은 내겐 중요하지 않아

세상의 칭송은 내겐 중요하지 않아

밥 딜런을 비롯해 정치인, 영화배우들이 각종 시상식에 불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6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은 스웨덴 한림원에 “다른 약속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스웨덴 한림원은 미국의 싱어송 라이터 밥 딜런을 2016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 문학상이 뮤지션에게 돌아간 전례가 없어 인터넷에서는 이 결정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한림원 측은 “딜런이 미국의 위대한 음악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딜런은 75세의 고령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상이나 칭송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아티스트다. 딜런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 불참하기로 한 결정은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림원 측은 밥 딜런이 “시상식에 직접 가서 상을 받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다른 약속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시상식엔 참석하지 못하지만 상은 받겠다는 뜻이다. 지난 12월 5일 한림원은 10일 열리는 시상식에서 딜런이 쓴 수상소감문을 한림원의 호라세 엥달이 대신 읽고 미국 가수 패티 스미스가 딜런의 노래 ‘A Hard Rain’s a-Gonna Fall’(1963)을 부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딜런 이전에도 노벨상 시상식에 불참한 수상자들이 있었다. 1954년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딜런처럼 수상소감 연설문은 작성했다. 그는 이 상을 준 노벨 위원회에 형언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로 연설문을 시작했다. 190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이지만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상식에서는 그가 보낸 전문(“입이 천 개라도 이 깊은 감동을 표현하진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 낭독됐다.

헤밍웨이와 루스벨트는 겸손한 태도로 시상식 불참을 알린 반면 딜런이 ‘다른 약속’을 운운한 것은 사실상 한림원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딜런이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한림원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회답 전화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던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됐다.
1946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조안 크로포드는 경쟁에서 밀릴 경우를 우려해 시상식에 불참했지만 결국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연예계에선 시상식에 불참하는 사유가 더 흥미롭다. 1946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조안 크로포드는 여우주연상 경쟁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질 것을 우려해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시상식에 불참했다. 하지만 결국 여우주연상은 크로포드에게 돌아갔고 집에 있던 그녀는 부랴부랴 화장을 하고 침대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받았다. 그 트로피는 2012년 경매에서 42만6000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렸다.

그러나 시상식에 불참하는 대다수 스타가 딜런처럼 ‘다른 약속’이 있다는 점을 사유로 든다. 영화계에서 이것은 또 다른 영화 촬영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스타들이 영화 촬영 현장에서 비디오로 수상소감을 전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잭 니콜슨은 1974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촬영장에서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수상소감을 전할 때 다른 어떤 배우보다 더 품위 있는 모습을 보였다.

연예계 시상식 불참 스타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우디 앨런이다. 그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24번 지명돼 4번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한 번도 시상식에 참석해 상을 받은 적이 없다. 앨런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건 2002년뿐이었는데 9·11 테러 이후 분위기가 침체된 뉴욕 시를 지지하고 기리는 특별 순서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앨런이 왜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의 여동생 레티 아론슨에 따르면 앨런이 2012년 ‘미드나잇 인 파리’로 각본상을 받았을 때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고 집에 있었던 이유는 시상식과 NBA 올스타전 방영 시간이 겹쳤기 때문이다. 앨런은 언젠가 자신의 재즈 밴드 정기 연주가 시상식과 같은 시간에 열려 참석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쩌면 2012년 앨런의 전기 집필자 에릭 랙스가 NPR에 한 말이 앨런이 시상식에 가지 않는 진짜 이유일 수도 있다. “앨런의 말대로 예술을 심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랙스는 말했다. “이 배우의 연기가 저 배우보다 낫다든가, 이 영화의 대본이 저 영화보다 훌륭하다든가 하는 식으로 판단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예술가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의존하는 함정에 빠질 경우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때로는 법적인 이유로 시상식에 불참하는 경우도 있다. 쿠바의 반체제 블로거 요아니 산체스는 쿠바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국제 언론인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출국허가를 받지 못해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한편 2014년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와 쉬지용은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연례 민주주의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감옥에 있어 시상식에 불참했다.

시상식 불참 사례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경우로는 1973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말론 브란도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영화 ‘대부’에서 비토 코를레오네 역으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가 아메리칸 인디언을 묘사한 방식에 항변하며 인디언 여배우이자 민권운동가인 사친 리틀페더를 시상식에 대신 내보내 수상거부 의사를 밝혔다. 브란도가 배우로서 최고의 영예일 뿐 아니라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에 대한 상을 거부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거의 반 세기가 지난 지금 밥 딜런이 브란도와 유사하게 세상의 피상적인 칭송에 무관심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딜런은 저항의 노래로 명성을 얻은 가수이면서도 브란도와 달리 대의를 내세우지 않았다. 딜런은 늘 자신을 운동가로 보는 시각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언젠가 그는 “난 저항의 노래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에 의해 말해져야 할 뭔가를 쓸 뿐이다.”

딜런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결코 연연하지 않았다. 노벨상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따라서 뮤지션에게 최초로 주어지는 노벨 문학상 시상식에 불참하는 사유가 된 그 ‘다른 약속’이 치과 예약이라고 해도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 라이언 보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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