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의 도시, 우치의 변신] 낡은 공장·발전소의 변신 … 사람이 몰려든다
[붉은 벽돌의 도시, 우치의 변신] 낡은 공장·발전소의 변신 … 사람이 몰려든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일하기 좋은 도시 구현 … 고급 인력·투자 유치 선순환 구조 이끌어 지난 12월 15일(이하 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승용차로 90분쯤 달리자 남서쪽 약 100km 지점에 있는 도시 우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一)자로 길게 늘어선, 깔끔하게 정돈된 메인 스트리트(중심가)와 함께 도시 건물의 외벽 곳곳을 수놓은 벽화가 인상적이다. 과거 많은 수의 러시아인과 유대인이 폴란드인과 어울려 살던 다국적 도시답게 이들의 화풍이 남았다. ‘폴란드의 대도시 중 역사가 가장 짧다. 1827년 인구는 339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독일의 직조기능공을 불러들여 급속히 발전, 당시 러시아제국 일부를 이루던 폴란드왕국의 공업 중심지가 됐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에 나오는 우치에 대한 설명이다.
약 120만 명의 시민들은 우치에 대해 강한 자부심이 있다. 한 예로 이들은 우치를 ‘붉은 벽돌의 도시’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과거 도시에 세워진 공장들이 하나같이 붉은 벽돌로 치장돼 장관을 이룬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들 붉은 공장의 상당수는 백과사전에 나온 것처럼 초창기 직조(섬유)공업으로 번성했다. 그런 우치도 지난 10여년 간 폴란드식 지식혁명의 선봉에 서면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최첨단 과학기술(하이테크)산업 육성, 그리고 역사와 미래의 공존을 목표로 하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서다. 앞서 우치시(市)는 21세기를 앞두고 ‘일하기 좋은 도시’로 거듭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와 같은 섬유공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일자리가 줄면서 근로자들은 하나둘씩 바르샤바나 이웃 국가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방향 전환이 필요했다. 여기서 중점을 둔 부분이 하이테크 산업 육성의 디딤돌이 될 우수 인재 유치와 육성이었다. 젊은 인재들이 우치로 모이고, 이곳에 머물면서 일하기를 바라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급선무였다. 에디타 카르핀스카 우치시 투자자서비스 담당자는 “현재 시내 21개 대학교의 학생 수는 약 9만 명으로 도시 전체 인구의 7.5%”라고 말했다. 그중 2만 명은 경제학도와 경영학도, 1만3000명은 엔지니어 및 테크니컬, 1만 명은 의대생이다. 도시 전체가 그만큼 고급 인력 양성소로 자리매김했다.
우수 인재들이 이유 없이 우치로 모인 것은 아니다. 시 차원에서 장학금이나 인턴십 프로그램 같은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1945년 설립된 우치기술대학(TUL) 등 폴란드 내 톱클래스 기술대학의 활용도 극대화했다. “우치의 기술자들은 하이테크 시대에 걸맞은 우수한 역량을 갖췄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여기에 하이테크산업 육성의 거점이 되는 연구개발(R&D) 센터를 비롯해 업무 프로세스 아웃소싱(BPO), 셰어드서비스센터(SSC) 등 고부가가치 아웃소싱 거점을 대거 유치하면서 2012년 이후 고용이 급격히 늘었다. BPO·SSC에서만 직원 수가 1만7000명에 달한다. 차세대업무지원시스템(BSS)센터도 68곳이나 된다. 마케팅 업체인 볼레오의 토마시 코랄렙스키 최고경영자(CEO)는 “예전만 해도 우치의 기술자 대부분이(일자리를 찾아) 바르샤바로 떠난다는 말이 나왔지만, 지금은 대부분 우치에서 그대로 일하면서 도시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 도시들과 손잡으며 외연을 넓히는 데 힘쓴 것도 주효했다. 우치시는 중국 쓰촨성 청두시와 경제적 협력관계를 구축, 2013년에 두 도시를 잇는 롱오우 고속화물열차가 정식 개통되면서 물류 거점으로도 급부상했다. 열차는 유럽과 중국 서부 사이의 9826km 거리를 최단시간(운송에 12~14일 소요, 기존 열차보다 8~10일 단축)에 연결하며, 한 번에 40피트 컨테이너 41개를 운송할 수 있다. 이에 글로벌 기업들이 우치에 적극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페덱스·델·프록터앤드갬블(P&G, 이상 미국), 필립스(네덜란드), 보쉬(독일), 후지쯔(일본) 등이 업종과 본사 위치를 가리지 않고 우치에 진출하면서 투자자로 나섰다. 우치는 이들에 부동산세 35%를 감면해주는 공격적인 인센티브 제공(바르샤바는 15% 감면) 정책으로 순풍에 돛을 달았다. 총 10만㎡가량 규모의 현대식 사무 공간이 잇단 투자 속에 건설되고 있다.
이런 선순환 구조 전반을 뒷받침하는 것이 우치의 도시재생 사업이다. 대표적 예가 12월 11일 재개장한 기차역 ‘PKP 우치 파브리츠나’다. 애초 이곳은 1865년 문을 연 낙후된 역이었다. 우치는 2011년 이 역의 재건을 위해 입찰 공고를 냈고, 컨소시엄이 구성되면서 유럽연합(EU) 사상 최대 규모의 기차역 재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다시 짓는 데 투입된 비용만 4억 유로(약 5066억원)다. 시는 이 역이 EU 11개국과 연결되고 베를린(독일)·프라하(체코)·빈(오스트리아)·부다페스트(헝가리) 등 주요 도시와 가까워 글로벌 투자 유치의 선봉장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 역은 대지 면적이 6만5000㎡로 쾌적하며 버스나 트램 등으로 환승이 가능하다.
우치의 도시재생은 단순히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데만 급급한’ 형태가 아니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붉은 벽돌의 도시’답게 기존 건물의 독창성과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새 정체성과 기능을 더하는 데 힘쓴다. 2006년 우치에 문을 연 폴란드 최대 복합쇼핑몰 ‘마뉴팍투라(Manufaktura)’는 옛 공장이나 소방서로 쓰이던 건물 13개를 재활성화(revitalization, 다른 목적을 위해 불필요한 건물을 이용하는 것을 뜻하는 건축 용어)했다. 쇼핑몰 외벽의 상당수가 고풍스러운 적색으로 뒤덮인 것도 그래서다. 이 때문에 쇼핑뿐 아니라 문화와 관광의 명소가 되면서 연간 방문객 수가 10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붉은 벽돌로 된 호텔이나 상가도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옛 공장을 개조한 것이다. 시 관계자는 “시내 300여 개 공장이 리노베이션을 거쳤다”고 전했다. 섬유공업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하이테크 기반의 공장이 대거 들어섰음에도 대부분 붉은 벽돌은 유지했다. 110년 역사의 시내 첫 화력발전소 ‘EC1’ 역시 재활성화가 잘 된 사례 중 하나다. 2010년부터 내부 보일러실 등을 개조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1만5000명 수용이 가능한 돔형 콘서트홀, 국립영화스튜디오, 수백 명이 쓸 수 있는 다목적 컨벤션홀 등이 조성됐다. 발전소와는 안 어울리는 조합 같지만 지금은 각종 문화 행사나 결혼식이 열리는 지역 내 명소로 더 유명하다. 낙후된 도시였던 우치가 지금은 많은 이웃 국가가 벤치마킹하겠다고 나서는 도시로 변모한 배경이다. 우치는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2022년 엑스포(EXPO) 유치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주제는 ‘도시의 재발명(City Re:Invented)’이다. 우치 시민들은 도시재생사업을 폴란드 사회 전반에서 진행 중인 지식혁명의 연장선이라고 여긴다. 낙후된 사회간접자본(인프라)과 주요 건물을 무조건 허물 것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재활성화하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고, 그럴수록 도시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도시재생이 ‘스마트 팩토리’ 등으로 효율성 제고와 부가가치 창출을 추구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정신과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우치는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한국에도 무거운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 정부와 서울시 등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힘을 잃은 뉴타운 사업의 대안으로 소규모 개발 중심의 도시재생사업을 주목하고 있다. 과거 ‘헌집 허물고 새 집 얻는 만능열쇠’였던 뉴타운은 지난 10여 년 간 305개 뉴타운사업구역 중 29곳만 마무리가 됐다는 최근 통계로 보듯 유명무실해졌다. 종전 같은 마구잡이식 재개발이 더는 안 통하는 시대다. 저성장과 고령화 추세는 이런 현상을 한층 심화시킬 전망이다. 구자훈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중앙정부의 안정적인 지원 속에 지방정부가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 전담조직 체계화로 도시재생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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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20만 명의 시민들은 우치에 대해 강한 자부심이 있다. 한 예로 이들은 우치를 ‘붉은 벽돌의 도시’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과거 도시에 세워진 공장들이 하나같이 붉은 벽돌로 치장돼 장관을 이룬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들 붉은 공장의 상당수는 백과사전에 나온 것처럼 초창기 직조(섬유)공업으로 번성했다. 그런 우치도 지난 10여년 간 폴란드식 지식혁명의 선봉에 서면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최첨단 과학기술(하이테크)산업 육성, 그리고 역사와 미래의 공존을 목표로 하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서다.
역사와 미래 공존하는 도시
우수 인재들이 이유 없이 우치로 모인 것은 아니다. 시 차원에서 장학금이나 인턴십 프로그램 같은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1945년 설립된 우치기술대학(TUL) 등 폴란드 내 톱클래스 기술대학의 활용도 극대화했다. “우치의 기술자들은 하이테크 시대에 걸맞은 우수한 역량을 갖췄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여기에 하이테크산업 육성의 거점이 되는 연구개발(R&D) 센터를 비롯해 업무 프로세스 아웃소싱(BPO), 셰어드서비스센터(SSC) 등 고부가가치 아웃소싱 거점을 대거 유치하면서 2012년 이후 고용이 급격히 늘었다. BPO·SSC에서만 직원 수가 1만7000명에 달한다. 차세대업무지원시스템(BSS)센터도 68곳이나 된다. 마케팅 업체인 볼레오의 토마시 코랄렙스키 최고경영자(CEO)는 “예전만 해도 우치의 기술자 대부분이(일자리를 찾아) 바르샤바로 떠난다는 말이 나왔지만, 지금은 대부분 우치에서 그대로 일하면서 도시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 도시들과 손잡으며 외연을 넓히는 데 힘쓴 것도 주효했다. 우치시는 중국 쓰촨성 청두시와 경제적 협력관계를 구축, 2013년에 두 도시를 잇는 롱오우 고속화물열차가 정식 개통되면서 물류 거점으로도 급부상했다. 열차는 유럽과 중국 서부 사이의 9826km 거리를 최단시간(운송에 12~14일 소요, 기존 열차보다 8~10일 단축)에 연결하며, 한 번에 40피트 컨테이너 41개를 운송할 수 있다.
해외 도시와 손 잡고 경쟁력 키워
이런 선순환 구조 전반을 뒷받침하는 것이 우치의 도시재생 사업이다. 대표적 예가 12월 11일 재개장한 기차역 ‘PKP 우치 파브리츠나’다. 애초 이곳은 1865년 문을 연 낙후된 역이었다. 우치는 2011년 이 역의 재건을 위해 입찰 공고를 냈고, 컨소시엄이 구성되면서 유럽연합(EU) 사상 최대 규모의 기차역 재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다시 짓는 데 투입된 비용만 4억 유로(약 5066억원)다. 시는 이 역이 EU 11개국과 연결되고 베를린(독일)·프라하(체코)·빈(오스트리아)·부다페스트(헝가리) 등 주요 도시와 가까워 글로벌 투자 유치의 선봉장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 역은 대지 면적이 6만5000㎡로 쾌적하며 버스나 트램 등으로 환승이 가능하다.
우치의 도시재생은 단순히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데만 급급한’ 형태가 아니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붉은 벽돌의 도시’답게 기존 건물의 독창성과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새 정체성과 기능을 더하는 데 힘쓴다. 2006년 우치에 문을 연 폴란드 최대 복합쇼핑몰 ‘마뉴팍투라(Manufaktura)’는 옛 공장이나 소방서로 쓰이던 건물 13개를 재활성화(revitalization, 다른 목적을 위해 불필요한 건물을 이용하는 것을 뜻하는 건축 용어)했다. 쇼핑몰 외벽의 상당수가 고풍스러운 적색으로 뒤덮인 것도 그래서다. 이 때문에 쇼핑뿐 아니라 문화와 관광의 명소가 되면서 연간 방문객 수가 10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붉은 벽돌로 된 호텔이나 상가도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옛 공장을 개조한 것이다. 시 관계자는 “시내 300여 개 공장이 리노베이션을 거쳤다”고 전했다. 섬유공업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하이테크 기반의 공장이 대거 들어섰음에도 대부분 붉은 벽돌은 유지했다. 110년 역사의 시내 첫 화력발전소 ‘EC1’ 역시 재활성화가 잘 된 사례 중 하나다. 2010년부터 내부 보일러실 등을 개조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1만5000명 수용이 가능한 돔형 콘서트홀, 국립영화스튜디오, 수백 명이 쓸 수 있는 다목적 컨벤션홀 등이 조성됐다. 발전소와는 안 어울리는 조합 같지만 지금은 각종 문화 행사나 결혼식이 열리는 지역 내 명소로 더 유명하다. 낙후된 도시였던 우치가 지금은 많은 이웃 국가가 벤치마킹하겠다고 나서는 도시로 변모한 배경이다. 우치는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2022년 엑스포(EXPO) 유치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주제는 ‘도시의 재발명(City Re:Invented)’이다.
뉴타운사업 표류 중인 한국에도 시사점
우치는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한국에도 무거운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 정부와 서울시 등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힘을 잃은 뉴타운 사업의 대안으로 소규모 개발 중심의 도시재생사업을 주목하고 있다. 과거 ‘헌집 허물고 새 집 얻는 만능열쇠’였던 뉴타운은 지난 10여 년 간 305개 뉴타운사업구역 중 29곳만 마무리가 됐다는 최근 통계로 보듯 유명무실해졌다. 종전 같은 마구잡이식 재개발이 더는 안 통하는 시대다. 저성장과 고령화 추세는 이런 현상을 한층 심화시킬 전망이다. 구자훈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중앙정부의 안정적인 지원 속에 지방정부가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 전담조직 체계화로 도시재생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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