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패션시장] 경쟁사 옷 벗겨야 산다
[위기의 패션시장] 경쟁사 옷 벗겨야 산다
불황 속 시장 재편 가속화... 유통 계열사 패션업체 약진 돋보여
얼어붙은 소비심리만큼 냉기가 돌던 패션 업계가 재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을 호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이 둔화한 시장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복종(服種)을 가리지 않고 경쟁사 옷을 벗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특히 대형 패션 업체들은 중소형 브랜드까지 신경을 써야할 처지다. 불황형 전략으로 위기를 타개하려는 패션 업계를 취재했다. 2017년 패션 시장 전망과 트렌드, 증권가가 꼽는 유망 종목도 알아봤다.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 봐라. 내가 옷 사 입나, OOO 사먹지.” 지난해 12월 전파를 탄 한 라면 CF에 나오는 말이다. 시인 신천희의 시 ‘술타령’에는 나오는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 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먹지’를 패러디한 것이다. 패션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한국패션협회가 나서서 해당 업체에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옷 사 입나’가 삭제됐다. 이 광고가 패션 업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CF 하나에 이토록 민감했던 것은 내수 불황과 소비 심리 위축으로 직격탄을 맞은 패션 업계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 는 방증이다.
실제로 지난해 패션시장은 장기 불황과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면서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는 한 해였다. 올해 역시 좀처럼 희망의 빛을 찾기 어려운 험난한 가시밭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는 대내외적인 불안 요소로 가득하다. 특히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시작된 불안한 정국은 결국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어졌고, 올해 정세를 불투명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이 됐다. 물가 상승, 가계부채 증가로 암담한 상황에 처해 있는 소비자들에게 불안한 정치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소비심리는 영하의 날씨만큼 꽁꽁 얼어붙고 있다.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불안한 부동산시장 등 시장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소비가 살아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정부의 예산 집행이 소비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 생계형 소비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한 내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올 상반기에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조기 대선도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패션시장은 소비심리와 밀접해 있다. 패션시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다수의 패션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은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패션 비즈니스 전문지 [패션채널]이 패션업계 CEO 30명을 대상으로 올해 경기전망지수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4%가 '매우 불황' 또는 '약간 불황'을 선택했다. 또 응답자의 대다수가 지난해보다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주요 패션업체들은 지난해 12월까지 올해 사업계획을 세우지 못했고, 최대한 안정적인 노선을 선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장의 호재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인 만큼 최대한 움츠리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가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패션업체들은 복종(服種)을 불문하고 버티기에 집중하기 위해 보수적으로 사업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전체적으로 물량을 축소하고 반응생산(QR : 제품을 시장에 조금만 미리 내놓고 소비자의 구매 동향을 파악한 뒤 본격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 비율을 높이는 동시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를 높인 제품으로 집객력을 유지하는 불황형 전략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불황 속 패션시장에 경쟁은 더 격화되고 있다. 최근 현대백화점그룹이 자회사 한섬을 통해 SK네트웍스 패션부문을 인수하면서 국내 패션시장은 그야말로 패션 재벌들의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특히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 등 대형 유통사들이 패션사업 비중을 계속 늘리면서 중견 패션업체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아울러 업계 선두를 다투고 있는 이랜드그룹과 LF,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어 2017년 패션시장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한국 패션시장의 2016년 현황 및 2017년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패션시장 규모를 전 년보다 3.5% 성장한 43조6774억원으로 전망했다. 복종별로는 내의가 10.4%(2조3672억원), 여성복이 7.1%(4조359억원), 캐주얼이 6.4%(14조6957억원), 남성복이 6.3%(5조1223억원)로 강세를 보이며,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스포츠 및 신발시장은 지속적으로 침체돼 각각 2.3%(7조1506억원), 1.5%(6조3762억원) 역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고성장을 지속했던 아동복시장(0.8%, 1조2794억원)은 새로운 성장 모멘텀의 부재로 한동안 저성장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미나를 주관한 이유순 패션인트렌드 이사는 “최근 패션시장은 소비 트렌드의 주체가 바뀌고 있고, 가치 중심의 소비 패턴으로 변화되고 있다”며 “온라인 플랫폼과 아재슈머(아재+컨슈머)을 주목하고 패션시장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종별 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우선 남성복시장은 소비자 수요 변화로 브랜드의 세대교체가 심화할 전망이다. 또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포멀 슈트 감소와 캐주얼 아이템 강화 추세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은 일부 유명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수입이나 라이선스로 MD를 개편할 전망이고, 정통 슈트 브랜드보다는 컨템퍼러리(contemporary) 색깔이 강한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남성 캐릭터시장을 잠식하면서 볼륨을 확장 중인 트레디셔널 캐주얼은 스포티한 감성을 겨냥한 컬렉션을 선보여 여가 활동에 적극적인 중년 남성 소비자를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경기 민감도가 가장 높은 가두상권의 남성 매스밸류(massvalue) 브랜드들은 가성비 전략이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실용성과 합리적인 가격을 앞세운 프로모션이 시장 성패를 가르는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복시장도 올 한해 치열한 경쟁이 예견된다. 커리어시장은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프리미엄 강화보다 밸류를 유지하면서 가격대를 넓히는 전략을 모색할 전망이다. 홈쇼핑과 온라인 채널을 통해 고정 고객들을 붙잡는 동시에 신규 고객 확대까지 노린다는 복안이다. 일부 브랜드는 스포티즘과 캐주얼화로의 전환, 가격 다양화 등 라인 세분화로 고객층 확대를 꾀하고 있다.
여성 캐릭터시장은 올해도 시장 약세를 돌파할 대안 마련이 쉽지 않다. 전체적인 하향 흐름뿐만 아니라 젊은층의 소비력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두드러지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반면 가두시장의 매스밸류 브랜드들은 충성도 높은 고객 단속에 집중할 전망이다. 안정적인 물량 공급과 합리적인 가격 제안, 트렌드의 빠른 반영 등을 통해 고객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브랜드가 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캐주얼시장 여건은 올해도 호의적이지 않다. 최근 수년간 큰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SPA(유통·제조 일괄형)·스포츠·아웃도어 등에 속수무책으로 시장을 내줘야만 했다. 감각적인 마이너 브랜드들의 유통 채널인 온라인 플랫폼의 인기도 부담이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타 복종에서 맨투맨·블루종·벤치 코트 등 캐주얼 대표 아이템들을 경쟁적으로 출시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브랜드들은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시장 사수를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또 그동안 투자 대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온라인 마켓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도 터닝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가두상권과 할인유통 중심의 캐주얼 브랜드들은 불황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각 브랜드들은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매출 볼륨을 키우고, 트렌디한 아이템의 생산 폭을 넓혀 중저가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스포츠시장의 올해 이슈는 골프웨어의 성장 및 애슬레저의 확장이다. 애슬레저는 애슬레틱(운동경기)과 레저(여가)를 합친 말이다. 골프웨어는 올해도 가장 유망한 복종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며, 아웃도어의 대체재로 콘셉트가 확대되는 추세다. 아웃도어에서 이탈한 성인 고객들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브랜드가 시장을 선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과거엔 골프웨어가 어른들만의 전유물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의 사치와 감성을 자극하는 아이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새로운 기회가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퍼포먼스보다는 스트리트 감성의 트렌드를 제안하며 소비자들의 새로운 개성을 대변하고 있다.
스포츠웨어는 애슬레저 트렌드의 진화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지금까지 스포츠시장에서의 애슬레저는 머슬녀(근육(muscle)질을 뽑내는 여성)·걸크러시(소녀(Girl)와 반하다(Crush)의 합성어) 같은 단어들로 대변되는 여성용 인도어(In door) 스포츠를 의미했다. 그러나 올해는 여성을 넘어 남성까지 아우르는 토털 인도어 스포츠 시장으로 진화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여성들의 소극적인 짐(Gym) 스포츠에서 배드민턴·풋살 등 남성들의 실내 스포츠를 포괄하는 적극적인 인도어 스포츠로 확장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지난 수년 동안 신규업체들의 시장 진입이 가속화되면서 급성장한 내의시장은 향후에도 소비자들의 아름다운 몸에 대한 관심 증가로 꾸준히 성장할 전망이다. 전통적인 위생 내의들이 안정된 시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패션 및 스포츠 내의 브랜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또 최근에는 컴프레션웨어로 불리는 압박 내의 시장이 기존 전통 내의 시장에 도전하고 있으며, SPA 브랜드들도 소재의 기능성을 앞세워 전통 내의 시장을 넘보고 있다.
출산율 하락으로 성장세가 한풀 꺾인 아동복시장은 올해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이에 아동복 업체들은 적극적인 유통망 확장이나 매출 확대보다는 기존 매장의 효율성을 높이거나 복합 매장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온라인과 모바일, 해외 직구 등 다변화된 시장에 맞춰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올해 국내 패션시장은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침체한 패션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화영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패션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소비 채널로 온라인을 지목했다. 이 연구원은 “국내 패션시장이 2007~2015년 연평균성장률 3.3%를 기록한 반면 온라인 채널 의류 판매는 같은 기간 5.3%의 성장세를 보였다”며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 주도층으로 떠오르면서 온라인 채널의 비중은 더욱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이 연구원은 온라인 채널의 대세 속에서도 유통 계열사를 보유한 패션업체들의 비교 우위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와 달리 국내 유통시장은 유통업체가 그룹을 이뤄 백화점·대형마트·아울렛·복합쇼핑몰·온라인 등 모든 채널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소비자가 어느 유통 채널로 옮기든 유통 계열사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닌다.
삼성패션연구소는 ‘2017년 패션시장 전망’을 통해 시장의 세분화, 성별과 시즌의 개념을 넘어선 믹스 매치, 개인 맞춤형 서비스 트렌드가 올해 패션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이 패션과 융합돼 새로운 시장을 열 것으로 예상했다. 올 초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7’에서 연결성·융합 등이 주요 화두로 거론된 만큼 패션 산업도 최신 정부기술(IT)과 융합해 진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얼어붙은 소비심리만큼 냉기가 돌던 패션 업계가 재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을 호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이 둔화한 시장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복종(服種)을 가리지 않고 경쟁사 옷을 벗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특히 대형 패션 업체들은 중소형 브랜드까지 신경을 써야할 처지다. 불황형 전략으로 위기를 타개하려는 패션 업계를 취재했다. 2017년 패션 시장 전망과 트렌드, 증권가가 꼽는 유망 종목도 알아봤다.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 봐라. 내가 옷 사 입나, OOO 사먹지.” 지난해 12월 전파를 탄 한 라면 CF에 나오는 말이다. 시인 신천희의 시 ‘술타령’에는 나오는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 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먹지’를 패러디한 것이다. 패션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한국패션협회가 나서서 해당 업체에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옷 사 입나’가 삭제됐다. 이 광고가 패션 업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CF 하나에 이토록 민감했던 것은 내수 불황과 소비 심리 위축으로 직격탄을 맞은 패션 업계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 는 방증이다.
실제로 지난해 패션시장은 장기 불황과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면서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는 한 해였다. 올해 역시 좀처럼 희망의 빛을 찾기 어려운 험난한 가시밭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는 대내외적인 불안 요소로 가득하다. 특히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시작된 불안한 정국은 결국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어졌고, 올해 정세를 불투명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이 됐다. 물가 상승, 가계부채 증가로 암담한 상황에 처해 있는 소비자들에게 불안한 정치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소비심리는 영하의 날씨만큼 꽁꽁 얼어붙고 있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로 가시밭길 예상
패션시장은 소비심리와 밀접해 있다. 패션시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다수의 패션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은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패션 비즈니스 전문지 [패션채널]이 패션업계 CEO 30명을 대상으로 올해 경기전망지수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4%가 '매우 불황' 또는 '약간 불황'을 선택했다. 또 응답자의 대다수가 지난해보다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주요 패션업체들은 지난해 12월까지 올해 사업계획을 세우지 못했고, 최대한 안정적인 노선을 선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장의 호재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인 만큼 최대한 움츠리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가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패션업체들은 복종(服種)을 불문하고 버티기에 집중하기 위해 보수적으로 사업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전체적으로 물량을 축소하고 반응생산(QR : 제품을 시장에 조금만 미리 내놓고 소비자의 구매 동향을 파악한 뒤 본격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 비율을 높이는 동시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를 높인 제품으로 집객력을 유지하는 불황형 전략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불황 속 패션시장에 경쟁은 더 격화되고 있다. 최근 현대백화점그룹이 자회사 한섬을 통해 SK네트웍스 패션부문을 인수하면서 국내 패션시장은 그야말로 패션 재벌들의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특히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 등 대형 유통사들이 패션사업 비중을 계속 늘리면서 중견 패션업체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아울러 업계 선두를 다투고 있는 이랜드그룹과 LF,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어 2017년 패션시장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한국 패션시장의 2016년 현황 및 2017년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패션시장 규모를 전 년보다 3.5% 성장한 43조6774억원으로 전망했다. 복종별로는 내의가 10.4%(2조3672억원), 여성복이 7.1%(4조359억원), 캐주얼이 6.4%(14조6957억원), 남성복이 6.3%(5조1223억원)로 강세를 보이며,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스포츠 및 신발시장은 지속적으로 침체돼 각각 2.3%(7조1506억원), 1.5%(6조3762억원) 역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고성장을 지속했던 아동복시장(0.8%, 1조2794억원)은 새로운 성장 모멘텀의 부재로 한동안 저성장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미나를 주관한 이유순 패션인트렌드 이사는 “최근 패션시장은 소비 트렌드의 주체가 바뀌고 있고, 가치 중심의 소비 패턴으로 변화되고 있다”며 “온라인 플랫폼과 아재슈머(아재+컨슈머)을 주목하고 패션시장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종별 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우선 남성복시장은 소비자 수요 변화로 브랜드의 세대교체가 심화할 전망이다. 또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포멀 슈트 감소와 캐주얼 아이템 강화 추세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은 일부 유명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수입이나 라이선스로 MD를 개편할 전망이고, 정통 슈트 브랜드보다는 컨템퍼러리(contemporary) 색깔이 강한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남성 캐릭터시장을 잠식하면서 볼륨을 확장 중인 트레디셔널 캐주얼은 스포티한 감성을 겨냥한 컬렉션을 선보여 여가 활동에 적극적인 중년 남성 소비자를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경기 민감도가 가장 높은 가두상권의 남성 매스밸류(massvalue) 브랜드들은 가성비 전략이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실용성과 합리적인 가격을 앞세운 프로모션이 시장 성패를 가르는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의시장 뜨고 아동복시장 지고
여성 캐릭터시장은 올해도 시장 약세를 돌파할 대안 마련이 쉽지 않다. 전체적인 하향 흐름뿐만 아니라 젊은층의 소비력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두드러지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반면 가두시장의 매스밸류 브랜드들은 충성도 높은 고객 단속에 집중할 전망이다. 안정적인 물량 공급과 합리적인 가격 제안, 트렌드의 빠른 반영 등을 통해 고객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브랜드가 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캐주얼시장 여건은 올해도 호의적이지 않다. 최근 수년간 큰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SPA(유통·제조 일괄형)·스포츠·아웃도어 등에 속수무책으로 시장을 내줘야만 했다. 감각적인 마이너 브랜드들의 유통 채널인 온라인 플랫폼의 인기도 부담이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타 복종에서 맨투맨·블루종·벤치 코트 등 캐주얼 대표 아이템들을 경쟁적으로 출시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브랜드들은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시장 사수를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또 그동안 투자 대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온라인 마켓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도 터닝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가두상권과 할인유통 중심의 캐주얼 브랜드들은 불황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각 브랜드들은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매출 볼륨을 키우고, 트렌디한 아이템의 생산 폭을 넓혀 중저가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스포츠시장의 올해 이슈는 골프웨어의 성장 및 애슬레저의 확장이다. 애슬레저는 애슬레틱(운동경기)과 레저(여가)를 합친 말이다. 골프웨어는 올해도 가장 유망한 복종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며, 아웃도어의 대체재로 콘셉트가 확대되는 추세다. 아웃도어에서 이탈한 성인 고객들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브랜드가 시장을 선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과거엔 골프웨어가 어른들만의 전유물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의 사치와 감성을 자극하는 아이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새로운 기회가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퍼포먼스보다는 스트리트 감성의 트렌드를 제안하며 소비자들의 새로운 개성을 대변하고 있다.
스포츠웨어는 애슬레저 트렌드의 진화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지금까지 스포츠시장에서의 애슬레저는 머슬녀(근육(muscle)질을 뽑내는 여성)·걸크러시(소녀(Girl)와 반하다(Crush)의 합성어) 같은 단어들로 대변되는 여성용 인도어(In door) 스포츠를 의미했다. 그러나 올해는 여성을 넘어 남성까지 아우르는 토털 인도어 스포츠 시장으로 진화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여성들의 소극적인 짐(Gym) 스포츠에서 배드민턴·풋살 등 남성들의 실내 스포츠를 포괄하는 적극적인 인도어 스포츠로 확장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소비 트렌드 변화에 주목하라
출산율 하락으로 성장세가 한풀 꺾인 아동복시장은 올해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이에 아동복 업체들은 적극적인 유통망 확장이나 매출 확대보다는 기존 매장의 효율성을 높이거나 복합 매장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온라인과 모바일, 해외 직구 등 다변화된 시장에 맞춰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올해 국내 패션시장은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침체한 패션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화영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패션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소비 채널로 온라인을 지목했다. 이 연구원은 “국내 패션시장이 2007~2015년 연평균성장률 3.3%를 기록한 반면 온라인 채널 의류 판매는 같은 기간 5.3%의 성장세를 보였다”며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 주도층으로 떠오르면서 온라인 채널의 비중은 더욱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이 연구원은 온라인 채널의 대세 속에서도 유통 계열사를 보유한 패션업체들의 비교 우위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와 달리 국내 유통시장은 유통업체가 그룹을 이뤄 백화점·대형마트·아울렛·복합쇼핑몰·온라인 등 모든 채널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소비자가 어느 유통 채널로 옮기든 유통 계열사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닌다.
삼성패션연구소는 ‘2017년 패션시장 전망’을 통해 시장의 세분화, 성별과 시즌의 개념을 넘어선 믹스 매치, 개인 맞춤형 서비스 트렌드가 올해 패션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이 패션과 융합돼 새로운 시장을 열 것으로 예상했다. 올 초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7’에서 연결성·융합 등이 주요 화두로 거론된 만큼 패션 산업도 최신 정부기술(IT)과 융합해 진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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