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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각한다면 옷 3개월만 더 입어라

환경 생각한다면 옷 3개월만 더 입어라

의류산업이 탄소, 물, 쓰레기에 미치는 영향 10% 줄일 수 있어… 마모·보관에 용이한 소재와 디자인 고려해야
캐나다 밴쿠버에서 의류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홍보하기 위해 전시된 설치 미술. 약 1500㎏의 헌 옷이 사용됐다.
새 외투를 장만할 때 지금까지 입었던 외투는 어떻게 할지 얼마나 생각하는가? 낡아 보인다고, 또는 유행에 뒤진다고 정들었던 외투를 버릴 것인가? 의류산업이 갈수록 더 깊이 고민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의류업체는 재활용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소재를 사용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를 수용한다는 뜻이다. 한 번 사용된 자원이 마지막 폐기 단계 에서 버려지는 ‘선형 경제(linear economy)’ 구조와 달리 기존 상품을 수리·재단장·재활용함으로써 버려지는 자원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리바이스(레비 스트로스), 파타고니아 같은 브랜드에 이어 스웨덴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까지 그 운동에 합류했다. 칭찬 받아 마땅한 행동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쓰레기로 폐기되는 옷가지를 줄이고 자원안보 개선에 도움을 주는 다른 방법도 찾아봐야 한다.

영국에서만 매년 의류 수백만 벌(약 30만t)이 쓰레기로 매립된다. 2013년 이래 H&M이 재활용하기 위해 수집했다고 알려진 의류의 10배다. 헌 옷을 수집한다고 해서 쓰레기로 매립되는 양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재활용이나 재사용은 전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헌 옷을 재활용하려면 뒤섞인 섬유를 종류별로 분리해야 하고, 재사용하려면 윤리적인 중고의류 시장이 확보돼야 한다.

그 문제를 피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의류의 수명을 늘리는 것이다. 한번 구입한 옷을 오랫동안 입으면 소모되는 자원(소재)을 줄일 수 있고 그 옷을 재활용하거나 폐기하는 시점을 늦출 수 있다. 영국 환경단체인 쓰레기 재활용 촉진프로그램(WRAP)에 따르면 현재의 의류 수명은 평균 약 3년이지만 사용 기간을 3개월만 더 늘려도 의류산업이 탄소, 물, 쓰레기에 미치는 영향을 10%나 줄일 수 있다.

짧은 의류 수명은 패션의 변화와 관련 있다. 그러나 영국 여론조사전문기관 입소스 모리(Ipsos MORI)에 따르면 우리 중 절반 이상은 더는 치수가 맞지 않아 입지 않는 옷을 갖고 있다. 또 좋아하는 옷을 낡을 때까지 보유하는 사람이 10%, 유행에 뒤졌다고 생각하는 옷을 소유하는 사람도 36%나 된다.

물론 16~24세 연령층에선 패션을 중시하는 비율이 58%에 이른다. H&M 같은 브랜드가 표적으로 삼는 계층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 중 다수도 캐시미어 스웨터나 클래식 코트 같은 ‘투자 가치 있는 상품’으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구입하는 게 더 낫다고 인정한다.

의류업체는 소비자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들은 크기 변화에 덜 민감하고, 수선이 용이하며, 소비자가 더 오래 입고 싶어 하는 옷을 디자인하고 판촉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몸에 잘 맞고 편안한 옷을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특성이 소비자가 특정 옷에 대해 갖는 정서적 애착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소비 습관과 가치 인식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또 의류업체는 디자인팀과 하청업체에 변색이나 수축, 보풀 등의 문제를 사전에 해결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옷이 일상적인 착용과 마모, 보관에 잘 견딜 수 있는 소재와 디자인을 테스트를 통해 선택하면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디자인 과정에서 면·폴리에스테르 등 재활용이 불가능한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영국 환경식품농무부가 최근 의뢰한 프로젝트에서 노팅엄트렌트대학 연구팀은 의류업체의 내구성 강한 상품의 개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뭔지 조사했다. 출발점은 기술적으론 가능하지만 인센티브가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업체가 든든하고 오래 갈 수 있는 의류를 생산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개발돼야 한다.
H&M은 2013년부터 의류 수거함을 매장에 비치하고 재활용 소재로 옷을 제작하는 리사클링 라인도 선보였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중요하다. 상품의 수명을 늘리고, 지속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며, 재활용하기가 더 쉽도록 만들려면 유능한 디자이너가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 그러나 조사에 따르면 제품개발팀이나 갈수록 세분화되는 세계적인 공급망에 기술적인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 디자이너와 공급업체를 의료 브랜드와 연결해주는 중개기관도 부족하며, 지속가능성 확보를 추진할 수 있는 강한 리더십도 없다.

의류업체와 소비자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활발히 이뤄지면 서로가 혼란을 줄이고 좀 더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다. 고급 스포츠 양말 브랜드 단터프의 ‘영구 애프터서비스’되는 양말이나 플린트 앤 틴더의 ‘10년 가는 셔츠’가 좋은 예다. 그런 회사는 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서 좀 더 오래 가는 제품을 디자인한다. 학생복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선 내구성 강한 제품이 경쟁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핵심은 물론 돈이다. 원가와 개발·생산 속도를 중시하는 상업적 결정에 비하면 지속가능한 디자인과 기술적 결정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우리 연구와 조사에 따르면 일부 브랜드는 소비자의 소매가격 인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출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제품의 품질을 낮추기도 한다.

더 많은 브랜드가 더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개발하도록 유도하려면 사업모델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양보다는 질과 내구성, 수선 같은 서비스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그럴 경우 의류 수명이 길어지고 오래된 옷가지에 대한 소비자의 정서적 애착도 되살아날 수 있다.

영국의 의류·신발 시장 규모는 연간 약 500억 파운드(약 72조원)다. 상품의 수명을 늘리면 그만큼 적게 팔릴 수 있다. 따라서 그런 전략은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더 높은 고객 만족도와 신뢰를 통해 판매에 부가가치를 제공함으로써 판매량 감소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전제다.

여기에다 수선과 임대 같은 부가적 서비스에서 나오는 수입이 더해지고 생산과잉·가격인하에서 비롯되는 폐기품이 감소하면 업체는 수익성을 충분히 유지하면서도 지속가능성을 강화할 수 있다. 원자재 고갈 위험도 그런 방향으로 전환을 꾀하기 위한 추가적인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폴리에스테르의 원료가 되는 석유의 경우 빠르면 2020년까지 생산이 최고점에 도달하면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선 그런 방향을 추구하는 대다수 사례가 소규모의 틈새 브랜드 개념에 머문다. 따라서 그런 인센티브를 대규모로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의류 디자인과 공급사슬의 재평가가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는 헌 옷을 줄이고, 재활용의 잠재력을 강화하며, 환경 영향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지속가능한 디자인과 소비를 추구하는 안목 있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앞서 지적했듯이 기술적으론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좀 거리가 있다. 특히 소비자 시장의 변화와 글로벌 소비주의 성장의 속도가 업계 내부의 발전과 변화 속도를 능가할 때 그런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한다.

의류 산업은 패스트 패션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기보다 의류 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좀 더 균형 잡힌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디자인 과정에 투자하고, 공급 사슬 내부에 기술적 지식을 축적하며, 대안적 사업모델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 린 옥스보로



[ 필자는 노팅엄트렌트대학의 연구원이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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