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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도 눈치 보는 시진핑의 ‘축구 굴기’

FIFA도 눈치 보는 시진핑의 ‘축구 굴기’

중국의 글로벌 축구 강국 야망은 세계 축구의 공급사슬 장악을 전제로 하는 듯
중국의 프로축구 클럽은 스타급 축구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사상 유례없는 돈잔치를 벌인다는 비난을 받는다.
트렌트 세인스버리(25)는 최근 자신도 모르게 세계 축구의 지배구조에서 발생한 엄청난 파동의 중심에 섰다. 호주 출신 수비수로 중국 슈퍼리그 클럽 장쑤 쑤닝(최용수 감독이 이끈다)에서 뛰던 그는 지난 1월 단기 임대 거래로 이탈리아의 세리에A 클럽인 인터밀란으로 적을 옮겼다.

별 문제 없는 이동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터밀란과 장쑤 쑤닝은 둘 다 중국의 최대 가전업체 쑤닝 그룹의 소유다(인터밀란의 경우 지난해 70% 지분을 인수했다). 쑤닝 그룹이 선수를 사고파는 클럽 둘 다를 소유한다는 뜻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해 충돌이다. 물론 중국과 관련된 문제만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음료 회사 레드불과 이탈리아의 포조 가문도 여러 개의 프로축구 클럽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진행 중인 ‘축구 혁명’은 축구의 글로벌 공급사슬을 장악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듯하다. 쑤닝 그룹이 인기 선수 에이전시를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도 널리 퍼졌다.

지금 세계 축구는 다양한 이해 충돌로 치닫는 모습이지만 관리 기구의 대처는 끔찍할 정도로 느리다. 일부 지역엔 명확한 클럽 소유 규정이 있다. 영국의 경우 한 클럽의 지분 10% 이상을 소유하는 투자자는 다른 클럽의 지분 9.9%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규정에 따르면 투자자는 서로 경쟁하는 두 팀의 지배적인 지분을 가질 수 없다.

세계 전체로 볼 때 그 규정은 유럽처럼 명확하지도 않고 엄격하게 시행되지도 않는다. 쑤닝 그룹만 여러 클럽을 소유하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다. 중국 최대 스포츠 신문 티탄저보우 회장 출신인 사업가 장리장은 스페인의 그라나다 클럽과 중국의 충칭 리판 클럽을 소유한다. 하지만 중국은 다른 곳에서도 축구 지배구조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중국의 해외 축구클럽 투자가 때론 중국 정부와 밀접하게 연관됐다고 의심하는 관측통이 많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을 축구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축구 굴기’ 또는 ‘축구 공정’으로 불린다)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축구클럽의 다중 소유와 이익 충돌에 관한 우려를 제기한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외부 인력을 고용해 중국의 잉글랜드 소속 클럽 인수가 정부와 관련 있는지 조사에 나섰다. 중국 내부의 축구 지배구조 기준은 불투명하다. 그런데다 국가가 개입하고 투자자들이 자본을 국제적으로 이동시키면서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이상적이라면 국제축구연맹(FIFA)이 개입해 명확한 지침을 제공하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문제는 세계의 축구를 관장하는 FIFA가 지금으로선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근년의 스캔들로 FIFA는 재정의 늪에 빠졌다. 중국의 부동산 대기업 완다 그룹은 FIFA의 장기 후원사가 되는 수익성 높은 계약을 따내면서 그런 약점을 이용했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완다 그룹은 스위스 업체 인프론트 스포츠 앤 미디아(국제 스포츠 기구를 위해 미디어와 마케팅 권리를 관리한다)도 인수했다. 그 업체의 최대 고객이 FIFA다.

따라서 중국의 한 회사(쑤닝 그룹)가 축구 클럽의 소유권과 선수들의 노동시장 규칙에 관한 약점을 여실히 드러낸다면 중국의 다른 회사(완다 그룹)는 세계 축구의 관장 기구를 좌지우지한다. 그 두 가지가 서로 관련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야심이 엄청나며 영향력과 연줄을 이용하는 데 아주 능숙하다.

그 연줄은 중국 정부와 가까울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 축구가 직면한 지배구조 문제를 이해하려면 바로 그런 사실을 바로 아는 게 필수적이다. 중국 프로축구 슈퍼리그 소속 베이징 궈안 클럽이 좋은 예다.

베이징 궈안은 중국 슈퍼리그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2009년 이후 8년 동안 우승하지 못했고, 지난 시즌에도 5위에 그쳤다. 그런데도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축구 클럽 중 하나다. 지난 1월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시노보 랜드가 베이징 궈안의 지분 64%를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CITIC)로부터 35억6000만 위안(약 6072억원)에 인수했다. 그에 따라 베이징 궈안의 구단 가치는 총 7억5400만 유로(약 9418억원)로 책정돼 유럽 명문구단 AC밀란보다 높아졌다.

CITIC-시노보 랜드-중국 정부 사이가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미국 정책연구기관 전략 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 스콧 케네디 연구원은 “중국 관리들은 특정 산업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민간 기업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자신의 결정을 실시간으로 해명하거나 방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그때 봐가며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재량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불투명한 상태로 두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바로 그런 배경에서 베이징 궈안은 세계 프로축구계의 엘리트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투자 기회인 동시에 국가적 야심의 표출이라는 뜻이다. 그런 행보가 시장 조작으로 인식된다면 축구의 지배구조에 크나큰 도전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세계 축구의 최상층 대열로 신속히 부상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해외 인기 선수들의 영입을 적극 추진하는 데서 그런 야심이 잘 드러난다. 중국의 거대 클럽들이 크게 부풀린 이적료와 연봉을 제시하며 선수들을 독차지하는 것을 팬들은 분노와 경이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중국은 돈을 너무 헤프게 쓰며 그런 지출 거품이 언젠가는 터질 것이라는 팬들의 불평도 자주 들린다.

그러나 중국은 다른 산업에서도 이런 전략으로 경쟁업체를 공략했다. 미국의 경제 잡지 포춘은 “중국은 라이벌들의 탐욕에 호소함으로써 그들을 분할하고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중국이 선수들의 이적료와 연봉을 부풀리는 것이 유럽의 경쟁 클럽에서 우수한 선수를 빼가고 재정적인 압력을 가하기 위한 의도적인 술책일까?

사실 중국이 처음은 아니다.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도 선수들을 끌어오기 위해 엄청난 연봉을 제시하며 시장 가치를 왜곡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의도적이라기보다 우연한 현상이었다. 축구에서 중국 정부의 은밀한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건 세계의 축구 지배구조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인터밀란 팬들은 당연히 세인스버리의 경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승자가 중국과 중국인 투자자들이다. 축구의 지배구조는 중국에 의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세계의 축구계가 허를 찔린 수비수처럼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다.

- 사이먼 채드윅



[ 필자는 영국 샐퍼드대학의 스포츠 기업 교수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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