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밀 CEO
리차드 밀 CEO
명품 시계 브랜드 리차드 밀이 포브스코리아의 ‘한국인이 선호하는 최고급 시계 브랜드’에 선정됐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독특한 브랜드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리차드 밀 CEO는 세계에서 가장 파격적인 시계를 만드는 사업가다. 최첨단 소재와 독특한 디자인이 결합된 제품들로 전세계 시계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4월에는 서울 강남의 핵심인 청담동에 리차드 밀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시계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는 리차드 밀 CEO의 파격적인 도전과 혁신경영은 한국의 기업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브스코리아가 리차드 밀 CEO를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지난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고급시계 박람회(SIHH)에서 리차드 밀은 F1 머신 제조사 맥라렌과 함께 제작한 새로운 시계를 공개했다. 2001년 설립 이후 미래지향적인 워치메이커로서 명성을 쌓아온 리차드 밀이 전세계 시계 애호가들을 위해 선보인 ‘RM50-03 맥라렌 F1’ 모델에 대해 박람회 관계자들과 시계 전문가, 언론들은 큰 관심을 나타냈다. F1 자동차를 테마로 꾸민 역동적인 부스에서 리차드 밀(66) CEO는 “이번 맥라렌 시계는 그간 우리가 추구해온 혁신성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모델”이라며 “특히 그라핀이라는 신소재가 적용돼 현존하는 기계식 시계 중 최경량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계를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또 한 명의 자식이 태어난다는 기분이 들 만큼 행복합니다. 특히 이번에는 맥라렌과 협업을 하게 돼 더욱 기쁘게 생각해요. 맥라렌 레이싱팀을 창단한 브루스 맥라렌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전설처럼 여기던 사람이에요. 그가 처음 경주를 할 때 탔던 자동차를 수집해 갖고 있을 정도니까요. 맥라렌과 함께 작업했던 모든 순간이 마치 꿈만 같습니다. 서로의 힘을 모아 새로운 창조물을 완성했다는 사실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낍니다.”
F1 레이싱카에서 영감을 얻는 신제품을 통해 자신의 시계 철학을 다시 한번 입증한 리차드 밀 CEO는 고급시계 분야에서 오랜 세월 몸담아온 사업가이자 혁신가다. 프랑스 남부 바(Var) 지역의 드라기냥(Draguignan)에서 나고 자란 그는 영국을 여행하며 영어를 습득했고, 스위스 브장송(Besancon) 기술학교에서 마케팅을 공부했다. 1974년 프랑스 빌레-르-락(Villers-le-Lac)에 위치한 시계제작사 핀호르(Finhor)에서 수출 담당 매니저로 일하게 되면서 시계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90년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 모부생(Mouboussin)에 합류한 리차드 밀 CEO은 시계 설계와 제작 과정에 직접 관여하며 르노 앤 파피(Renaud & Papi) 같은 스위스 최고의 무브먼트 전문 제조사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를 통해 시계 전문가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만들 수 있었지만, 투자비용이나 마케팅 전략 등에 의해 생산 방향이 결정되는 사업 구조에서는 자신의 창의력이 마음껏 표출될 수 없음을 절감했다.
리차드 밀 CEO는 자신만의 시계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F1 레이싱 모티브를 시계에 녹여내겠다는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시계업계 최전방에서 활약해온 전문가답게 자신이 만든 시계는 기존 시계와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철학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는 제작비용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던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최고의 시계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자신이 꿈꾸어왔던 단 하나의 시계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50세가 되던 2001년, 브랜드의 첫 번째 컬렉션인 RM001 투르비옹 모델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는 “어떤 브랜드의 CEO라도 소비자들의 성향을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계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며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제약도 없는 완전한 자유가 필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모부생에서 CEO를 지내면서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사실 그 시절 저는 마케팅 측면에서 너무나 지쳐 있었어요. 하나의 시계를 개발하기 위해 경쟁 상황, 가격 책정이나 마진을 토대로 생산 비용을 결정해야만 했죠. 하지만 리차드 밀에서는 모든 것이 정반대로 이뤄집니다.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개발 비용이나 시간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요. 다른 브랜드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우리의 시각에서 봤을 때 하이엔드 중의 하이엔드라면 제작비용이 핸디캡으로 작용해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하이엔드가 되려면 우리 방식이 옳다고 봅니다. 다들 실패할 거라 예상했지만 결국 우리는 성공했고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스포츠카 마니아답게 차체의 날렵한 실루엣에 매료됐던 리차드 밀 CEO는 시계 케이스에도 이러한 디자인적 요소를 도입했다. 그의 첫 작품은 일반적인 시계 모양이 아닌 케이스 모서리를 부드럽게 곡선 처리한 토노(tonneau) 형태로 만들어졌다. 기계로 찍어내기 쉬운 흔한 케이스 대신 연구·개발 기간만 1년 넘게 걸린 독창적인 케이스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골드 소재의 케이스 상단에는 별 모양의 스크루 8개를 추가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구현했다. 개성이 넘치면서도 인체공학적인 형태의 시계 케이스는 멀리서도 단번에 리차드 밀의 창조물임을 알아챌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RM001을 탄생시킨 영감의 원천은 F1 자동차 제작에 적용된 콘셉트와 소재였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리차드 밀 시계 철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해 리차드 밀 CEO는 “시계를 통해 자동차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내가 만드는 모든 시계는 절대로 타협을 허락하지 않으며 속임수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시계 제작을 할 때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하죠. 얕은 술수를 싫어하고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하지 않아요. 진정한 의미를 담은 구상을 먼저 하고 명확한 목표를 세웁니다. 가령 맥라렌과 처음 협업했을 때 목표는 시계 역사상 가장 가벼운 기계식 크로노그래프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어요. 그 다음에서야 비로소 소재 개발과 디자인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죠. 우리 시계는 저마다 고유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어요. 이에 반해 요즘 명품 시계들은 인공적인 면이 너무 많고 진정한 의미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고객들의 눈은 굉장히 예리해요. 브랜드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이나 생산량, 철학 등을 다 파악하고 있어요. 겉만 번지르르한 마케팅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창립자 이름의 이니셜을 붙인 RM001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수백여 건의 주문이 이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제작된 RM001의 성공은 리차드 밀 CEO가 자신의 시계 제작에 대한 열정과 철학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준 밑거름이 됐다. 이후 해마다 고정관념을 뛰어 넘는 리차드 밀식 도전은 전세계 시계 마니아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우주항공산업이나 최고급 스포츠카 제조에만 사용되던 첨단 신소재들을 과감하게 도입, 외부 케이스는 물론 무브먼트와 주요 부품에 적용했다. 덕분에 하나의 시계 안에서도 최소 5종류 이상의 이질적인 소재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됐고, 이는 리차드 밀 시계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리차드 밀 CEO는 애초부터 다수의 보편적인 취향보다는 희소성과 개성을 추구하는 최상위층 고객들만을 대상으로 시계를 제작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라파엘나달(테니스)·펠리페 마사(카레이싱)·요한 블레이크(육상)·파블로 맥도너(폴로) 같은 스포츠 스타들, 나탈리포트만·성룡 같은 유명 배우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비롯해 가수 지드래곤· 배우 배용준 등이 대표적인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요즘 시계업계를 보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 제품을 만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언제나 제 열정을 실현하는 것이 먼저였죠. 그 과정에서 돈도 따라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명품 시계라면 어느 정도 신비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마치 마술 같아야 하죠. 우리 브랜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객들에게 그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은 리차드 밀을 꿈의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유일무이한 것을 제공하기 때문에 고객들의 입장에선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기대를 하게 되죠. 요즘 명품 브랜드들을 보면 이런 새로움과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모두가 너무 평범하고 서로가 똑같은 것을 따라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리차드 밀 CEO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우선순위는 시계의 기능성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리차드 밀의 모든 시계에는 사실상 표준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콘셉트를 기반으로 각 시계의 모든 구성 요소를 정의한다. 무브먼트 전체에 널리 사용되며 케이스 표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스플라인(Spline) 스크루조차도 수개월에 걸친 연구와 투자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스무 번 이상의 공정 단계를 거쳐야 만 제작되는 이 스크루를 통해 은 것 하나까지도 최고의 기술력과 최적의 성능을 추구하는 브랜드의 세심함을 확인할 수 있다. 또 5등급 티타늄·NTPT 카본·TPT 쿼츠·카본 나노튜브 등 기술적으로 작업하기 어려운 첨단 소재들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로 모든 부품에 완벽을 기하는 시계 장인들의 마무리 수작업 역시 리차드 밀 CEO가 자랑하는 핵심 요소다. 수세기에 걸친 시계 제조기술의 전통을 이어받아 수공으로 진행되는 폴리싱 공정은 사소한 디테일조차도 놓치지 않는 꼼꼼한 손길을 통해 각각의 시계를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수없이 반복되는 피니싱 작업이야말로 무브먼트의 핵심부와 케이스 안에 숨겨져 잘 드러나지 않는 시계 제조 기술의 정수라 할 수 있으며, 하이엔드 워치메이킹의 우수성과 고품질을 대변한다. 리차드 밀 CEO는 “하나의 티타늄 토크 스크루를 만드는 데 20개의 공정이 소요되며, 1kg의 티타늄 토크 스크루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00만 스위스프랑(226억원)에 달한다”며 “핸드 피니시로 완성되는 스크루 하나하나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계의 기본 요소인 만큼 최고의 소재를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물건이 아니라 손목 위의 동반자라고 생각해요. 손목 위의 시계는 제2의 피부처럼 착용감이 좋아야 하고 편안해야 하죠. 저는 항상 우리 제품을 살까 말까 망설이는 고객들에게 ‘일단 한번 차보면 다른 시계는 절대 찰 수 없게 될 테니 주의하라’고 일러줍니다.(웃음) 그만큼 가볍고 편하다고 자부합니다. 또 기계적인 구성과 디자인 등 모든 요소들의 궁합도 잘 맞아요. 어떤 각도에서 봐도 멋지고 질리지가 않아요. 순수하게 티타늄 같은 신소재들만 사용하기 때문에 얼핏 차갑고 무뚝뚝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진한 감성이 배어 있죠. 시계 속에 숨겨져 있는 우리의 열정을 이해하고 좋아해주는 고객들에게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1년 창립 이래 리차드 밀 CEO가 걸어온 발자취는 시계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도전 그 자체였다. 60개가 넘는 다양한 컬렉션을 통해 하이엔드 시계 제조술의 유구한 전통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시계의 방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6년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가장 도발적이고, 가장 예술적이고, 가장 소장하기 어려운 시계를 만들어온 리차드 밀 CEO. 그는 스스로를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던 피카소에 비유했다.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3만 개 정도 시계를 만들었는데 중고 시장에 나온 매물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고객들 사이에서 소장 가치가 큰 예술품이라 여겨지기 때문이죠. 워낙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수집가들도 탐을 많이 낸다고 들었어요. 보통 수집가들이 경매장에 가면 품질이나 희소성, 진위 여부에 따라 투자를 결정하는데 우리 제품은 여기에 더해 탄탄한 예술성까지 갖췄다고 말하더군요. 과거의 어떤 한 시대와 구분되는 작품으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던 피카소나 호안 미로 같은 예술가들처럼 리차드 밀의 시계들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시계에는 견고함과 복잡성,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모두 담겨 있어요. 시계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완전체이기 때문에 고객들의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 포브스코리아가 한국인이 선호하는 최고급 시계 브랜드를 선정했다. 최근 국내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고 있는 브랜드를 대상으로 했다. 선정 방식은 다음과 같다. 지난 3월7일부터 13일까지 시계 칼럼니스트, 온라인 시계 커뮤니티 운영자, 시계 전시 기획자, 시계 전문지 기자, 매거진 및 일간지 시계 담당 기자 등 전문가 15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각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일선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리스트들을 보내왔다. 각각의 브랜드가 지닌 역사와 전통·기술력·디자인·가격·인지도 등을 고려해 추천된 24개의 브랜드들이 후보에 올랐다. 이 가운데 4회 이상 중복 추천을 받은 브랜드 10개를 뽑았다. 지금부터 국내 시계 애호가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주요 시계 브랜드를 공개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시계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F1 레이싱카에서 영감을 얻는 신제품을 통해 자신의 시계 철학을 다시 한번 입증한 리차드 밀 CEO는 고급시계 분야에서 오랜 세월 몸담아온 사업가이자 혁신가다. 프랑스 남부 바(Var) 지역의 드라기냥(Draguignan)에서 나고 자란 그는 영국을 여행하며 영어를 습득했고, 스위스 브장송(Besancon) 기술학교에서 마케팅을 공부했다. 1974년 프랑스 빌레-르-락(Villers-le-Lac)에 위치한 시계제작사 핀호르(Finhor)에서 수출 담당 매니저로 일하게 되면서 시계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90년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 모부생(Mouboussin)에 합류한 리차드 밀 CEO은 시계 설계와 제작 과정에 직접 관여하며 르노 앤 파피(Renaud & Papi) 같은 스위스 최고의 무브먼트 전문 제조사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를 통해 시계 전문가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만들 수 있었지만, 투자비용이나 마케팅 전략 등에 의해 생산 방향이 결정되는 사업 구조에서는 자신의 창의력이 마음껏 표출될 수 없음을 절감했다.
리차드 밀 CEO는 자신만의 시계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F1 레이싱 모티브를 시계에 녹여내겠다는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시계업계 최전방에서 활약해온 전문가답게 자신이 만든 시계는 기존 시계와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철학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는 제작비용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던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최고의 시계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자신이 꿈꾸어왔던 단 하나의 시계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50세가 되던 2001년, 브랜드의 첫 번째 컬렉션인 RM001 투르비옹 모델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는 “어떤 브랜드의 CEO라도 소비자들의 성향을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계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며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제약도 없는 완전한 자유가 필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모부생에서 CEO를 지내면서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사실 그 시절 저는 마케팅 측면에서 너무나 지쳐 있었어요. 하나의 시계를 개발하기 위해 경쟁 상황, 가격 책정이나 마진을 토대로 생산 비용을 결정해야만 했죠. 하지만 리차드 밀에서는 모든 것이 정반대로 이뤄집니다.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개발 비용이나 시간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요. 다른 브랜드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우리의 시각에서 봤을 때 하이엔드 중의 하이엔드라면 제작비용이 핸디캡으로 작용해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하이엔드가 되려면 우리 방식이 옳다고 봅니다. 다들 실패할 거라 예상했지만 결국 우리는 성공했고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최상위 VIP를 위한 시계 만든다
이에 대해 리차드 밀 CEO는 “시계를 통해 자동차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내가 만드는 모든 시계는 절대로 타협을 허락하지 않으며 속임수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시계 제작을 할 때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하죠. 얕은 술수를 싫어하고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하지 않아요. 진정한 의미를 담은 구상을 먼저 하고 명확한 목표를 세웁니다. 가령 맥라렌과 처음 협업했을 때 목표는 시계 역사상 가장 가벼운 기계식 크로노그래프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어요. 그 다음에서야 비로소 소재 개발과 디자인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죠. 우리 시계는 저마다 고유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어요. 이에 반해 요즘 명품 시계들은 인공적인 면이 너무 많고 진정한 의미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고객들의 눈은 굉장히 예리해요. 브랜드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이나 생산량, 철학 등을 다 파악하고 있어요. 겉만 번지르르한 마케팅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창립자 이름의 이니셜을 붙인 RM001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수백여 건의 주문이 이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제작된 RM001의 성공은 리차드 밀 CEO가 자신의 시계 제작에 대한 열정과 철학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준 밑거름이 됐다. 이후 해마다 고정관념을 뛰어 넘는 리차드 밀식 도전은 전세계 시계 마니아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우주항공산업이나 최고급 스포츠카 제조에만 사용되던 첨단 신소재들을 과감하게 도입, 외부 케이스는 물론 무브먼트와 주요 부품에 적용했다. 덕분에 하나의 시계 안에서도 최소 5종류 이상의 이질적인 소재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됐고, 이는 리차드 밀 시계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리차드 밀 CEO는 애초부터 다수의 보편적인 취향보다는 희소성과 개성을 추구하는 최상위층 고객들만을 대상으로 시계를 제작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라파엘나달(테니스)·펠리페 마사(카레이싱)·요한 블레이크(육상)·파블로 맥도너(폴로) 같은 스포츠 스타들, 나탈리포트만·성룡 같은 유명 배우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비롯해 가수 지드래곤· 배우 배용준 등이 대표적인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사소한 디테일조차도 놓치지 않는 손길
리차드 밀 CEO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우선순위는 시계의 기능성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리차드 밀의 모든 시계에는 사실상 표준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콘셉트를 기반으로 각 시계의 모든 구성 요소를 정의한다. 무브먼트 전체에 널리 사용되며 케이스 표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스플라인(Spline) 스크루조차도 수개월에 걸친 연구와 투자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스무 번 이상의 공정 단계를 거쳐야 만 제작되는 이 스크루를 통해 은 것 하나까지도 최고의 기술력과 최적의 성능을 추구하는 브랜드의 세심함을 확인할 수 있다. 또 5등급 티타늄·NTPT 카본·TPT 쿼츠·카본 나노튜브 등 기술적으로 작업하기 어려운 첨단 소재들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로 모든 부품에 완벽을 기하는 시계 장인들의 마무리 수작업 역시 리차드 밀 CEO가 자랑하는 핵심 요소다. 수세기에 걸친 시계 제조기술의 전통을 이어받아 수공으로 진행되는 폴리싱 공정은 사소한 디테일조차도 놓치지 않는 꼼꼼한 손길을 통해 각각의 시계를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수없이 반복되는 피니싱 작업이야말로 무브먼트의 핵심부와 케이스 안에 숨겨져 잘 드러나지 않는 시계 제조 기술의 정수라 할 수 있으며, 하이엔드 워치메이킹의 우수성과 고품질을 대변한다. 리차드 밀 CEO는 “하나의 티타늄 토크 스크루를 만드는 데 20개의 공정이 소요되며, 1kg의 티타늄 토크 스크루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00만 스위스프랑(226억원)에 달한다”며 “핸드 피니시로 완성되는 스크루 하나하나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계의 기본 요소인 만큼 최고의 소재를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시계업계의 피카소로 남고 싶다
2001년 창립 이래 리차드 밀 CEO가 걸어온 발자취는 시계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도전 그 자체였다. 60개가 넘는 다양한 컬렉션을 통해 하이엔드 시계 제조술의 유구한 전통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시계의 방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6년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가장 도발적이고, 가장 예술적이고, 가장 소장하기 어려운 시계를 만들어온 리차드 밀 CEO. 그는 스스로를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던 피카소에 비유했다.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3만 개 정도 시계를 만들었는데 중고 시장에 나온 매물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고객들 사이에서 소장 가치가 큰 예술품이라 여겨지기 때문이죠. 워낙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수집가들도 탐을 많이 낸다고 들었어요. 보통 수집가들이 경매장에 가면 품질이나 희소성, 진위 여부에 따라 투자를 결정하는데 우리 제품은 여기에 더해 탄탄한 예술성까지 갖췄다고 말하더군요. 과거의 어떤 한 시대와 구분되는 작품으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던 피카소나 호안 미로 같은 예술가들처럼 리차드 밀의 시계들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시계에는 견고함과 복잡성,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모두 담겨 있어요. 시계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완전체이기 때문에 고객들의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
한국인이 선호하는 최고급 시계 브랜드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2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3‘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4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
5 삼성전자,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주주가치 제고”
6미래에셋증권, ‘아직도 시리즈’ 숏츠 출시…“연금 투자 고정관념 타파”
7대출규제 영향에…10월 전국 집값 상승폭 축소
8“하루 한 팩으로 끝”...농심, 여성 맞춤형 멀티비타민 출시
9미래에셋, ‘TIGER 글로벌BBIG액티브 ETF’→’TIGER 글로벌이노베이션액티브 ETF’ 명칭 변경